도박 중독 치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도박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도록 해야 하는 것임을 누차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 원칙을 어기게 되기 때문에 누구든 도박자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 원칙은 너무나 중요해서 어떤 상담자이든 상담 초반에 무엇보다 먼저 도박자와 그 가족에게 특별히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족(특히 원 가족의 부모)이 상담자의 조언을 귀담아 듣기는 커녕 뒤로는 계속 빚을 갚아주면서 앞으로는 도박자를 부탁한다고 읍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담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요.
그렇게 강조해서 단속을 해 놨는데 상담자와 상의 한 마디 하지 않고 도박 빚을 냉큼 대신 갚아 주는 겁니다. 당연히 도박자는 가장 큰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 상담에 매진할 동력이 상실되어 유야무야 하다가 상담자와 합의도 없이 상담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재발해서 더 큰 빚이 생기게 되죠. 그러면 다시 그 가족 구성원이 부랴부랴 찾아와서 도박자를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일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혹은 두 가지 모두)입니다. 첫째,
가족들이 도박자와 상호 의존(co-dependence)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쉬운 표현을 빌자면 공동 운명체라는 강한 느낌을 갖고 있어서 도박자가 망하면 가족도 망한다는 두려움에 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박자가 망하지 않게끔 빚을 해결해줘야 한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둘째,
가족 중 누군가가 도박자의 인생을 좌지우지(enabling)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인은 그걸 전혀 모릅니다. 그저 도박자를 사랑해서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enabling을 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도박자가 치유되고 회복되고 성장하는 건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닙니다. 계속 무능하고 무기력한 도박자로 남아 있어야만 계속 챙겨줄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능력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빚을 갚아주면 또 다시 구렁텅이로 떨어져 계속 철부지같은 어른애로 살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빚을 갚아줍니다. 물론 이 모든 작용은 무의식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본인은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가족 중 상호 의존의 덫에 걸려 있거나 enabling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과 조력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족 중 누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최대한 빨리 파악해야죠.
그 다음에는 문제가 되는 그 가족을 도박자와 최대한 거리를 두게 하면서 안전한 가족과만 치유 과정을 협의해야 합니다.
사실 상호 의존의 정도가 심하거나 enabling에 집착하는 가족은 조력자라기보다는 도박자와 마찬가지로 치유가 필요한 병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273
아직 초보 상담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주제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개인적인 견해 정도로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저도 그랬지만 상담 초보는 상담 회기를 오래 끌고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담을 길게 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이 상담자의 능력을 재는 척도인 양 상담 기간에 무지하게 집착합니다. 10회기 이상은 끌고 가야 제대로 된 상담을 하고 있다고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기도 하고,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내담자의 지각 왜곡인지 확인하지도 않으며,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의존, 또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상호 의존(codependence)을 라포(rapport) 형성으로 착각한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계를 제대로 설정하지도 못하고 무조건 길게 끌고 가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특히 유료 상담인 경우는 그런 압력을 더 강하게 받습니다.
반면에 상담 고수는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명징하게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내면의 힘을 스스로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상담의 목표로 삼기 때문에 이미 상담을 얼마나 길게 끌고 가느냐는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니 단 3회의 상담만으로도 내담자에게 충분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상담 고수는 아니지만 상당히 다양한 내담자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100회기를 넘긴 내담자가 있는가 하면 3회기를 넘기지 못하고 drop out되는 내담자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100회기를 넘겼다고 제 상담 실력을 자랑할 정도의 어리석음에서는 충분히 자유로워졌고 3회기를 넘기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단계에서도 벗어났습니다.
생각해보면 상담은 상담자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내담자의 마음가짐, 상담의 타이밍, 상담자와 내담자의 환경적인 요소, 그리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코드가 맞느냐의 여부도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상담자가 통제할 수는 없으니 그저 맡은 상담에 최선을 다하고 내담자에게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 부족한 점을 보완해서 다음 내담자에게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 이상의 방법이 있을까요?
상담자가 모든 내담자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내게로 오는 모든 내담자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는 자신이 '구원자의 환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부터 점검을 해 봐야 합니다.
상담자들은 상담 기간에 너무 구애받지 않도록 하세요. 중요한 것은 상담 기간이 아니라 내담자의 심적, 영적 성장이니까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14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