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분위기가 점차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도 임상현장이라면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상담 현장에서는 MMPI-2/A와 SCT를 갖고 일단 선별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담을 진행할 지, 병원 등에 의뢰해 종합심리평가를 추가로 실시할 지 결정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MMPI-2 결과 해석에서 자살 사고 척도(DEP4)만 유의미한 수준까지 상승하면 이 수검자의 자살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죠.
임상 척도, 재구성 임상 척도 뿐 아니라 DEP 내용 척도와 4개의 관련 소척도가 모두 상승했다면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간혹 임상 척도, 재구성 임상 척도, DEP 내용 척도, DEP4를 제외한 나머지 3척도 모두에서 의미있는 상승이 관찰되지 않을 때가 꽤 많습니다. 그러니까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를 반영하는 DEP4만 상승한거죠.
그런데 자살 사고 척도가 상승했다고 무조건 자살 위험성이 높아지는 건 아닙니다. 왜냐햐면 최근에 자살을 생각한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겠다고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죽고 싶을만큼 괴롭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살 사고 척도가 상승한 수검자를 그냥 내비둬도 상관없냐 하면 그건 아니죠.
그래서 자살 사고 척도가 유의미한 수준(기준점 65T,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70T)까지 상승했을 때 함께 뜨면 자살 시도 가능성을 높이는 내용 소척도 몇 개를 정리해 봤습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각 소척도들이 포함된 내용 척도의 다른 소척도는 유의미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폭발적 행동(ANG1)은 의미있는 수준까지 상승해야 하고 성마름(ANG2)은 상승하지 않아야 조합 해석이 가능합니다.
* 폭발적 행동(ANG1)
* 염세적 신념(CYN1)
* 반사회적 행동(ASP2)
폭발적 행동(ANG1) 척도는 용어 그대로 폭발적 행동과 발끈하는 성질을 측정하기 때문에 함께 상승하면 충동적 자살 시도 위험성을 증가시킵니다. 손목을 긋는 등의 방식은 덜 위험하지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달리는 차에 뛰어드는 등의 치명도(fatality)가 높은 방식을 택하는 경우 자살 성공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위험하죠.
염세적 신념(CYN1)은 사실 저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승 조합입니다. 왜냐하면 이 척도가 측정하는 건 다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믿고 자신의 복리에만 관심이 있다는 내용이라서 오히려 자살 위험성을 낮출 것 같거든요. 하지만 경험적으로 CYN 내용 척도에서 대인적 의심(CYN2)가 의미없고 염세적 신념 척도만 상승했을 경우는 자살 위험성이 현저히 높아지는 걸 자주 봤기에 일단 주의하며 보자는 척도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척도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나 지지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상승 관계가 생기지 않았을까 추론하고 있습니다.
반사회적 행동(ASP2)은 반사회적 행동이나 법적 문제, 물질 남용 문제 유무를 측정하는 내용 소척도지만 경험적으로 이 척도 역시 상승하면 자살 시도 가능성을 증가시킵니다. 아마도 성을 잘 내고 충동적이고 쉽게 분개하는 특성을 측정하기 때문에 동반 상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리해 보면 자살 사고(DEP4)척도가 의미있는 수준으로 상승하였을 때 폭발적 행동(ANG1), 염세적 신념(CYN1), 반사회적 행동(ASP2) 소척도가 모두 상승되어 있다면 충동적인 자살 시도 가능성을 염두에 두셔야 하고 좀 더 깊은 수준의 자살 위험성 평가를 하셔야 합니다.
이런 조합 해석 시 먼저 충족되어야 할 조건으로는,
1. 우울 장애 등 자살 위험성이 높은 전형적인 주요 장애가 아니어야 함
2. 위에서 언급한 4개의 내용 모척도와 다른 하위 내용 소척도가 모두 의미있는 수준으로 상승하지 않아야 함
덧. 이 포스팅은 내용 소척도만을 이용해 '비전형적인 자살 위험성'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성격 병리 척도 중 DISC의 상승도 충동적인 자살 위험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척도이니 염두에 두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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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몇 번 말씀 드린 적이 있지만 최근 상담 현장의 추세는 단기 상담입니다. 상담에 대한 수요는 폭증하는데 비해 상담자의 공급은 굉장히 더딘 양상이기 때문에 이 추세는 쉽게 바뀌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불만입니다만).
상담 현장이 단기 상담 위주로 돌아가게 되면 생기는 변화 중 하나가 심리평가의 강조입니다. 정해진 회기 내에 내담자의 문제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고 그에 따른 개입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죠. 그러다보니 예전과 달리 모든 내담자를 심리평가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가 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런 방향으로 갈 겁니다.
그렇다면 상담 과정을 통틀어 심리평가는 언제 실시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가장 이상적인 건 전담 상담자가 내담자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이밍에 실시하는 것이겠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그런 속 편한 소리나 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기는 지났으니 이건 넘어가고요.
저는 종합심리평가와 선별 평가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초기 면담에서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종류와 심각도에 따라 선별 평가 실시 여부를 상담자가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저는 접수 면담과 정식 상담을 나누어 상담자를 따로 두는 사례 관리 체계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얼핏 보면 효율적일 것 같지만 나중에 추가로 투입되어야 하는 노력을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접수 면담에서 자신의 문제를 다 이야기한 내담자가 새로 배정받은 상담자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다시 해야 한다면 기분이 어떨지를 생각해보세요.
특수한 심리치료적 접근을 추가해야 하는 상황을 예외로 하면 상담은 한 명의 상담자가 첫 접수 상담부터 종결 상담까지 책임지는 방식이 가장 치유적이라고 믿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처음 만난 내담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예사롭지 않고 심각하다고 판단될 때, 저는 TCI, MMPI-2, SCT를 선별 평가 도구로 활용합니다. 그 결과를 보고 종합심리평가에 포함된 나머지 검사를 추가로 실시할 지, 선별 평가 결과를 해석 상담할 지 결정합니다.
이 절차를 간단히 도식화해서 보여드리자면,
접수 면담 -> 증상의 종류와 심각도에 따라 선별 평가 실시 여부 선택 -> 해석 상담 또는 종합심리평가 추가 실시 -> 결과에 따른 추가 상담 진행
저는 전체 상담 과정 중 심리평가를 비교적 초반에 실시하는 편입니다. 물론 상담을 진행하면서 사전-사후 평가 차원에서 종결을 앞두고 다시 평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그 때도 종합심리평가보다는 선별 평가 도구를 활용합니다.
포스팅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리평가 실시 시점은 담당 상담자가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
2. 초기 면담(접수 면담)과 정식 상담은 한 사람의 상담자가 전담하는 것이 좋다.
3. 초기 면담 시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종류와 심각도에 따라 선별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보고 추가 검사를 실시할 지 해석 상담을 할 것인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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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피검자는 대개 종합심리평가를 받게 됩니다. 게다가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수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임상심리학자가 어떤 검사를 실시할 지 선택할 수 있는 재량권이 거의 없죠.
하지만 상담 현장에서는 종합심리평가를 곧바로 실시해야 할 만큼 severe한 피검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대개는 MMPI-2 + SCT 조합으로 된 선별 평가(screening evaluation)를 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런데 MMPI-2와 SCT로 평가를 해 보니 뭔가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그렇다고 종합심리평가를 받으라고 정신건강의학과로 refer할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게다가 평가를 받은 곳에서 곧바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기로 예정되어 있는 내담자라면 추가적인 투사법 검사를 실시해서 구조화된 자기 보고형 검사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문제를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그럴 때 상담자들이 최근에 많이 추가하는 도구는 HTP입니다. 미술치료사와 함께 일하는 기관도 많은데다 검사 도구에 대한 정보, 사례집 등을 구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검사를 실시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경우 가능하면 HTP보다는 로샤를 실시하도록 권하는 편입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HTP와 로샤 모두 무의식 영역을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검사 도구이기는 하지만 방어의 차원에서 보면 로샤보다는 HTP가 방어에 더 취약합니다. HTP가 대중 매체를 통해 더 많이 노출되기도 했고(대중 매체 노출의 부작용) 검사 자극 자체가 이미 익숙한 것(집, 나무, 사람 그리기)이기 때문입니다. 로샤의 경우는 피검자들이 보기에는 거의 무의미한 그림이기 때문에 방어하는 것이 훨씬 어렵죠. HTP는 평가자가 뭘 알고 싶어하는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또 inquiry하는 과정에서 로샤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자의 의도가 노출될 위험성이 더 큽니다.
둘째. 상담자들이 HTP에 비해 로샤를 기피하는 이유는 로샤 검사의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입니다. 정신역동적인 해석법도 익혀야 하고 무엇보다 Exner 방식으로 structural summary를 구성하여 해석하는 지표들을 익히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강점으로 작용하여 10장의 카드만 갖고 간단히 실시할 수 있으면서도 구조화된 방식의 해석과 정신역동적인 방식의 해석 둘 다 가능하기 때문에 피검자로부터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끌어낼 수가 있지요.
게다가 큰 문제는 아니지만
부가적으로 상담 현장에서 심리평가를 받는 내담자의 경우 로샤를 실시하는 것보다 HTP를 실시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개인적으로 HTP는 상담을 하면서 상담 기법의 하나로 활용하고 심리평가에서는 HTP 대신 로샤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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