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책은 이미 꽤 많이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화내지 않는 연습(2009)'이라는 책이 있죠. 그리고 직접적으로 화를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을 합리적, 기능적 시각에서 다룬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2010)' 같은 책도 있고요.
상담을 하는 제 입장에서는 화를 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쪽이지만 내 생각이나 마음과 달리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외부 환경이 강한 타격을 가하거나 또는 '화가 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고 하더라도 이미 통제할 수 없이 분노가 치밀어 오른 상황과 같은 예외 경우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앞서 말씀드린 '화내지 않는 연습'과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의 중간 정도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신숙옥씨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어려운 가정 형편과 그것에 못지않은 차별의 이중고를 경험하면서 자란 재일교포입니다. 게다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약자라는 인식으로 점철된 일본 사회에서 성장한터라 자신의 감정을,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를 정당하게 드러내는 것의 중요성에 자연스럽게 눈을 떴을거라 생각합니다.
국가, 권위주의, 유교사상에 의한 억압, 성차별, 마이너리티 차별과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에서 정당하게 분노하는 법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내가 나로 살아가기 위하여 화를 낸다'고 말합니다.
효과적으로 화내는 법을 '테크닉 편', '스타일 퍼포먼스 편'으로 나누어 세부적인 기술까지 가르쳐주는 걸 보고 '과연 일본식 책이군'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도움되는 분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화를 내는 법 뿐 아니라 남이 나에게 화를 낼 때 적절히 대응하는 부분도 있어서 제게도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볍게 집어든 책인데 의외로 내용도 알차고 무엇보다도 저자의 당당한 가치관과 신념이 마음에 들었고요. 꽤 좋은 책입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도우면서도 정작 수련 과정에서 수련 감독자, 학회, 지도 교수에 대한 분노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 많은 수련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인상적인 한 마디
"다른 사람에게 화를 낼 수 있으려면 옳은 것, 선량한 것, 아름다운 것, 공평한 것, 합리적인 것 등에 대한 가치관이나 기준이 자신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기준이 애매하거나 확신이 없다면, 분노를 느낀다 하더라도 '어쩌면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라고 겁이 나서, 그 분노를 솔직하게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수가 없게 된다""패배가 허용되지 않는 남자들은, 그래서 지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이긴 쪽에 서려고 한다. 그 결과, 대부분은 가해자 쪽에 가담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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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초에 다음 아고라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킨 글이 있었는데 바로 취업 관련 성차별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칼퇴근에 야근 안하겠다고 답한 여성 지원자는 탈락하고, 야근을 불사하겠다고 한 남성 지원자는 합격한 것을 놓고 여성들의 자세 문제를 성토한 글이었고, 항상 그랬듯이 갑론을박 게시판이 온통 시끄러웠습니다.
평소에 정치, 종교, 성차별에 대해 논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그러는가보다 하고 지나갔습니다만 우연히 제 생각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분의 글을 읽고 김에 제 생각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요즘의 여성 운동을 보면 엉뚱한 지점을 포격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여성들은 남성 위주의 성차별적인 사회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도를 공격해야 하는데 남성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합리한 제도를 만든 것이 남성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제대로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방법일지는 몰라도 현명한 방법은 아닙니다.
의도와 목표는 좋은데 방법이 틀렸습니다. 여성들의 생각대로 성차별적인 사회 제도를 남성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미 남성들은 불합리성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제도에 익숙해진 상태이고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제도를 개선하라는 요구에 당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변화에 저항하는 심리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을 받는 내담자들도 정작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변화에 저항합니다. 대다수의 남성들은 남성들도 그런 제도의 피해자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남성에 대한 공격은 반발을 살 수 밖에 없고 원하는 목적을 이룰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 제도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꿀단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 뿐입니다. 불리하면 남성을 공격하고(제도가 아니라), 유리할 때는 여성이 가지는 이득(남성이 돈을 내는 것을 당연히 생각하는 것, 힘든 일은 여성이기 때문에 빠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등)을 취하는 자세는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얼핏 당연하게 생각될 수 있지만 실상은 문제 의식을 가진 남성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잠시 잠깐의 달콤함에 취해 여성 착취를 정당화 할 제도와 문화와 가치관을 공고화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힘을 보탠다면 결국에는 꿀단지에 빠져 죽는 파리꼴이 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려면 달콤한 꿀부터 거부해야 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열외되는 일에 편리함을 느끼고 안주하지 말고 분노해야 하고, 동등하게 대우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남자들이 그동안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누려왔던 특권을 내세우면서 변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군대 문제도 그렇습니다. 해당 사항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군가산점에 목 매고 흥분하는 이유는 기득권을 빼앗긴데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형평성이 없다고 느끼는데 대한 분노의 감정인데, 별로 관계도 없는 출산 이야기나 군대 환경 개선이라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꺼내면 말문은 막을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변화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병역은 필요악이며 동시에 성차별을 공고화하는 무기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성들이 우리도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겠다고 들고 일어나 공동 병역을 요구하고 주장하면 실제로 여성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느냐의 여부와 상관 없이 이 문제는 훨씬 더 빨리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효과를 거두는 전술입니다. 성차별은 이미 합리성, 형평성, 대의명분 등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차원에 있기 때문에 거대 담론 차원의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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