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당연한 거라서 굳이 포스팅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최근 제목과 같은 말을 내담자에게 하는 상담자에 대한 제보를 여러 차례 받고 충격을 받은 김에 정리해 봤습니다.
치료적 접근법에 따라 정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상담자가 내담자의 '편', '지지자'여야 한다는 걸 모르는 상담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자신이 생각해 볼 때 내담자가 호소하는 어려움이 일정 부분 내담자 때문에 발생한다고 느낄 때, 그걸 다루는 것이 내담자를 위해 필요하겠다고 착각할 때 생각보다 큰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 심리적 저항을 불러 일으킴
저항 또한 치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저항이 나쁜 것은 아니나 상담자가 자신을 탓한다고 내담자가 받아들였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저항은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관계를 손상시키고 신뢰를 약화 시킵니다. 즉, 내담자는 상담자가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의심을 품게 되고 그 뒤로 어떤 말이든 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 자기 파괴적 내부 귀인을 하게 됨
내담자를 탓하는 이런 언급은 자존감이 약하고 자기 회의가 강한 내담자에게는 더욱 치명적인데 이런 내담자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의 원인이 평소에도 자기 때문이라고 귀인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원인의 탐색을 외부에서 하지 못하게 됩니다.
* 변화를 위한 긍정적인 동기를 찾을 기회를 상실하게 됨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온 것이지 책임의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를 상담자에게 확인받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설사 내담자가 겪는 고통의 원인 중 더 많은 부분이 내담자 때문이라고 해도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상담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리기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 내담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자원을 동원하고 그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함께 찾기 위해 하는 것인데 내담자를 탓하는 언급은 이러한 노력을 위해 필요한 동기를 저하시킵니다. 내담자를 무력하게 만들어서 치유적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란 건 없습니다.
* 상담자에 대한 의존만 강화될 위험이 있음
상담자를 징벌자, 판관과 같은 위치에 두게 되는 경우 내담자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지 않으며 상담자의 입만 바라보게 됩니다. 상담자가 전문가이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상담자의 말이 맞을 것이고 상담자가 시키는 것만 해야지 하는 의존의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전지전능함의 오류에 빠진 교주형 상담자라면 이러한 내담자의 순응성을 좋아라 할 수 있겠지만 확실한 건 내담자의 치유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 불필요한 전이를 유발할 수 있음
불필요한 전이라는 말이 좀 어폐가 있기는 합니다만 너도 뭔가 잘못한 게 있지 않니? 라는 언급을 하는 상담자는 내담자로 인해 강한 역전이를 느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항상 문제가 생기면 내담자 탓을 했던 부모, 형제, 친지, 친구, 지인들의 역할을 상담 공간에서 재연하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불행하게도 이는 내담자에게서 불필요한 전이를 유발하고 자기 충족적 예언을 달성함으로써 점점 더 문제를 고착하는 방향으로 후퇴하게 됩니다.
내담자를 탓하는 방식의 언급이 내적 성찰을 촉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설사 강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상담자-내담자 사이에서도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지지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상담자라면 최소한 중립이라도 지키기 위해 애쓰세요.
상담자라면 절대로 내담자에게 '당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와 같은 언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유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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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만나는 내담자가 특정한 대상에만 국한되어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한 특수한 유형의 내담자들을 주로 만나는 상담자라고 해도 이직을 해서 다른 세팅으로 옮기거나 개업을 하게 되거나 하면 다시 다양한 내담자를 만나게 되지요. 그러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내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이런 다양한 내담자들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까요?
제가 사용하는 호칭법부터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대학생 이상 성인의 경우는 ~님으로 통일하고 미성년의 경우는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지만 대신 말높임을 합니다. 최대한 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하려는 노력인데요.
다른 상담자들도 대체로 저처럼 내담자를 호칭하지 않을까 싶은데 문제는 이를 지키기가 어려운 상황이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EAP 사내 상담을 하는 경우 회사 직원을 대상으로 상담하면 full name에 ~님을 붙여 호칭하기보다는 ~대리님, ~차장님 등의 직책으로 호칭하기 쉽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 상담을 할 때 부모를 함께 상담하는 경우 ~어머님, ~아버님으로 호칭하기 쉽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호칭을 사용하게 되면 상담에 임하는 내담자의 마음도, 상담에서 다루게 되는 주제와 내용 모두 관계의 틀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제약을 받게 됩니다.
얼핏 보면 대수롭지 않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 제약의 틀이 상당히 견고한데 사내 상담에서 ~차장님이라고 계속 불리는 상태에서는 내담자가 중간 관리자의 시야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상담의 내용을 바라보기가 쉽지 않고 ~어머님으로 불리는 내담자는 자신의 내면 문제나 원가족과 관련된 문제를 성찰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관계지향문화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약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가 아무런 관계틀의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라도 full name으로 호칭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본인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는 내담자에게는 꽤 중요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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