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전북대학교 경제학과의 원용찬 교수가 Thorstein Veblen의 유한계급론을 풀어낸 책입니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한 책이지만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걸로 유명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책의 소중함이 빛을 발합니다.
비싼 게 더 잘 팔리는 베블런 효과로 알려진 베블런은 유한계급을 비판하는 '과시적 소비'라는 개념으로도 잘 알려진 진화경제학자입니다. 진화경제학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배격하고 무목적성을 강조하는 경제사관입니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보세요~).
베블런은 26개 국어를 말할 수 있었던 능력자였지만 노르웨이 출신이라는 핸디캡과 독특한 사고 방식으로 인해 미국으로 와서도 주류 경제학계에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평생을 아웃사이더로 지냅니다. 사실 그 시대가 베블런을 받아들일만큼 성숙한 시기도 아니었지요.
베블런에게 있어 소유제도는 약탈문화의 산물이며 소유물의 효용은 소비하는데 있지 않고 과시하는데 있으며 돈은 과시를 상징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기 위해 소비한다는 것이죠.
유한계급은 어떻게든 타인과의 경쟁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차별화하고 구별짓고자 합니다. 과시적 소비는 돈만 많으면 누구나 비싼 옷을 사 입고 뽐낼 수 있는 사회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비생산적인 일에 사용하는 여가 활동은 많은 노력과 훈련을 요구하죠. 그래서 유한계급은 자신의 부를 여가 활동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유한계급은 과시적 소비 과정에서 하류계급의 소득과 가용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사고습관을 전파함으로써 하류계급을 보수화시켜나갑니다. 하층계급은 상층계급에 칼을 겨누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쟁적인 모방 속에서 튼튼한 줄을 타고 상층의 사회적 지위에 올라서려 합니다. 왜 극빈층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실제로 일체의 에너지를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 생존투쟁에 모조리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 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하는 노력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죠.
현대 사회의 유한계급의 행태에 대해서도 놀랄만한 통찰을 주는 베블런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것 같지만 경제학 지식이 별로 없는 저 같은 독자에게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에게만 도전을 권합니다.
덧. 책의 말미에 베블런과 관련해서 더 읽어볼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도 꽤 좋습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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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소비'와 '체험의 소비'의 구분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펙이 한 것을 본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처음 접했을 때 인상에 많이 남아 언젠가는 나름대로 정리를 해 봐야지하고 벼르던 내용을 포스팅 해 보려고 합니다.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은 쓰기 위해서죠. 버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정말로 어려운 것은 쓰는 것이라는데 이의가 있는 분은 없을 줄로 입니다(아닌가요?).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바로 쓰는 것이 가장 어렵죠.
소유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비교'의 잣대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들이 소비하는 이유는 상대방과의 비교를 통해서 우월감을 만끽하기 위해서입니다. '명품'을 사더라도 자신의 쓸모에 맞는지를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비싼 지, 희귀한 것인지를 주로 따집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자기고양)을 할 수 있으니까요. 소유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만족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항상 비교의 기준을 갖고 소비하므로 항상 자신보다 소비력이 왕성한 사람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아무리 소비해도 항상 목마릅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사 모으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와 달리 체험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주관적 만족'이라는 기준으로 소비합니다.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한 접시 사먹더라도 떡볶이 떡의 쫄깃함과 매콤하면서도 얼얼한 맛, 그리고 북적거리는 포장마차의 활기를 온 몸으로 경험하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들은 남들이 오뎅을 먹든, 튀김을 먹든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입 속에서 헤엄치는(^^;;;) 떡볶이를 음미하고 즐길 따름이지요. 체험의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애쓰기 때문에 소유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소유의 소비와 체험의 소비는 칼로 자르듯이 명확하게 나눌 수는 없으며 중복되는 부분도 많지만 무엇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삶의 만족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금 소유의 소비를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체험의 소비를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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