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임상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서 올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응시 예정자에게 발송한 메일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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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련위원회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 필기 및 면접시험 자격심사에 응시하시는 분들은 다음 사항들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3) 심리평가 -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1항에 따르면, 3년 동안 심리평가 수련 중 최소 30례 이상은 종합평가(Full Battery)를 시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이번 수련완료 심사에는 3년 동안 시행한 심리평가 중 종합평가 30례를 함께 첨부(인쇄물)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 모든 심리평가는 수련감독자의 지도하에 실시되어야 하며 3년 동안 300시간 이상 수련해야 한다. 이중 50%까지는 신경심리평가, 재활기능평가로 할 수 있으며, 종합평 가(FULL BATTERY) 30례 이상으로 한다. (박사 과정생은 총 200시간 및 종합평가 20례 이상, 박사학위 취득자는 총 150시간 및 종합사례 15례 이상으로 한다.) 단, 수 련시간 산정에 있어서 종합평가에 대해 1사례 당 8시간까지만 산정할 수 있다. |
- 수련수첩에 기록 시, 실시검사 란에 “종합평가”“종합신경심리평가”“성격검사” 등으로만 기재하시 마시고, 각 평가들이 어떤 검사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 1항이 심리평가 30례를 인쇄한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도록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위원회의 이 요구에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레지던트 선생님이 잘 정리해 주신 것처럼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요구가 의도가 무엇이었느냐와 상관없이 학회의 행정편의주의에만 입각한 것이라는 겁니다.
우선 제출되는 심리평가 보고서에 포함되는 피검자가 무시되었습니다. 치료 사례를 제출할 때에도 내담자의 동의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학회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구하지 않은 심리평가 보고서를 제출(그것도 30케이스라면 대체 어떻게 동의를 구하라는 말인가요?)하라는 요구는 아무리 익명 처리를 한다고 해도 평가자와 피검자 관계를 생명처럼 생각해야 하는 학회에서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고도 윤리 교육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하겠습니다.
또한 이 요구는 현장의 상황을 무시했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는 의무 기록입니다(물론 학회는 이런 것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련 기관은 병원 장면이고 간단한 의무 기록도 의무 기록 확인을 거쳐 발급하는 의료 기관에서 아무런 절차 없이 의무 기록 제출을 허가할 리 만무하니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입니다. 제가 병원장이라면 허가 안 할겁니다. 수련 레지던트에게 행정 절차를 무시한 기록 제출 부담을 안기는 일입니다.
이 요구는 수련 레지던트도 무시했습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어느 피검자가 그 수련 레지던트 내지는 그 레지던트가 속한 수련 기관을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 때 학회가 과연 수련 레지던트를 방어할 수 있을 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즉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의무 기록에 준하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보안성이 떨어지기 이를 데 없는 문서로 제출하고 문제가 생기면 네가 알아서 책임지라는 식의 매우 무책임한 요구입니다.
이 요구는 supervisor도 무시했습니다. 즉 수련 수첩에 적힌 심리평가의 내용과 supervisor의 관리 감독 능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직무 유기를 자행하는 supervisor의 사례가 왕왕 보고되고 있으니 학회 차원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테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절차는 행정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매년 1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가 서류 형태로 수련위원회에 도착할텐데 아시다시피 수련위원회는 사무실이 없으며 수련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매번 병원과 같은 수련 기관이 수련위원회로 사용됩니다. 즉 A 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B 병원의 어딘가(임상심리실 내지는 검사실 캐비넷, 전공의실 등)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죠. 보안 유지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걸 누가 다 점검할 겁니까? 수련위원회 간사? 간사도 수련 레지던트입니다. 그럼 수련위원장이 다 볼 겁니까? 어느 세월에? 그리고 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적법한 절차를 거쳐 폐기할 겁니까? 아니면 다시 수련 레지던트에게 일일이 비용을 들여 돌려줄겁니까? 이후 생각을 하지 않은 단순한 요구라고 봅니다.
저는 이처럼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supervisee에게만 모든 부담을 떠 넘기는 심리평가 보고서의 문서 형태 제출을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supervision 체계를 바로잡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supervisor의 직무 유기 행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supervisor가 supervision도 제대로 안 하면서 대충 도장이나 찍어주는 행위부터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supervisor가 제대로 supervision을 안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그냥 supervisee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편법, 탈법 행위가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수련 레지던트가 전문가가 되고, supervisor가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겁니다.
그러니 정 수련 내용을 살펴봐야겠다면 표본 추출을 해서 표적 실사를 하고 문제가 적발되면 supervisor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supervisor들이 수련 내용을 꼼꼼히 챙길테고 supervisor들이 학회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게 됩니다.
이 문제 제기에 대해 수련위원회 간사가 너무도 빨리 답변을 했던데 수련위원회 위원들의 회람을 거쳤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다만 이 답변에만 그치지 말고 최초 문제 제기자가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 믿을만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임상심리학회의 핵심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임상심리학회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학회의 용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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