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틀렸습니다.
저는 3년 전 임상심리학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 이후로 결성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일종의 원년 멤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꾸준히 오프 모임에도 나갔고 초기에는 무료로 게릴라 워크샵도 진행을 했습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뒤로 물러나 이제는 수련에 도움이 될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정도로만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모임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글은 빠짐없이 읽고 댓글로 의견도 개진하는 편입니다.
올 4월에 임상심리학회에서 부회장이신 조선미 선생님의 명의로 대의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의 대표 참석을 권유하는 공식 요청이 모임에 도착했는데 일단 시일이 촉박했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임상 심리학회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3년 동안 회원 수가 500명이 넘는(2009년 10월 3일 현재 523명), 가장 큰 수련생 모임을 방치해 왔습니다. 물론 그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도 자신의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 가입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수련 레지던트들의 수가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임상 심리학회에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수련생 협의회로 발족시켜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공식적인 절차 없이 대표 참석을 요구하는 것은 수련생이 처한 약자 입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고 실제로 이 사안에 대해 준비 모임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반가운 시도이기는 하나 누가 총대를 멜 것인지 걱정이라는 논조가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가장 큰 조직이기는 하나 대표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수련생들이 배제되는 문제가 당연히 발생할텐데(이 점에 대해서도 모임에서는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아닌 전체 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한 배려도 아쉬웠습니다.
따라서 저는 임상 심리학회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의원 제도와 맞물려서 무엇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의협의 전공의 협의회처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위한 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학회가 총대를 메고 임상심리 레지던트 권익 보호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깊어진 불신의 골을 지금이라도 메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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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공식적인 명칭이 임상심리 레지던트였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에도 그렇게 기술했고 병원 가운에도 '임상심리 레지던트'라고 새겨 있었고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 현장에 나와 '임상심리 수련생'이라는 명칭을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수련생이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수련을 받는 학생이라는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수련생'이라는 말은 착취를 정당화하는 용어입니다.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전문 기술과 지식을 사사받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족쇄같은 명칭입니다. 실제로 정당한 급여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수련 병원에 가운, 식대 비용으로 일정한 금액을 내고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수련생 협의회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명칭을 쓰자는 말이 나왔고 임상심리학회 게시판을 통해 건의도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여전히 수련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요.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학교에 계신 교수님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supervisor로 있는 전문가들도 심각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경우 '전공의'라고 하지 절대로 '전공의 수련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의사들의 인턴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십 과정에 들어온 사람들이 학생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더 큰 문제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마저 스스로를 '수련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 교수의 절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임상심리 레지던트는 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 고급 수련 과정에 있는 준 전문가이며 이미 검사 수가, 치료, 연구 등 충분한 공헌을 수련 기관에 하고 있습니다. 수련생이라고 폄하될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임상심리학회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부터 지켜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들 스스로도 자기를 낮추는 이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용어를 추천하고 지금도 제게 supervision을 받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어떤 쪽으로 정리가 되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부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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