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30분 정도 걸려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이 좀 험하기도 했고 일행 중에 어르신이 세 분이나 계셨기 때문에 가이드가 완급을 조절한 것 같습니다.
절벽이 가파르지 않아서 별로 위험할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돌이 부서져서 쌓여 있는 지형이라 발을 잘못 딛으면 미끄러져 바닥까지 그대로 굴러 떨어질 수 있으니 절벽 가장자리로 가지 말고 부디 조심하라고 가이드가 경고하고 있습니다;;;;
제가 겁도 없이 가장자리까지 다가가서 아래를 내려다봤는데 정말로 후덜덜합니다.
저기 계곡 아래까지 한달음에 내려갈 수 있다는거지요. 굴러서. ㅡㅡ;;;;
스발바르에는 산마다 정상에 보시는 것 같은 철제 박스가 있습니다. 일종의 메일 박스처럼 엽서를 보내기도 하고 어디 산에 올라왔다는 인증 도장을 찍기도 하고 방명록을 작성할 수도 있습니다.
방명록을 살펴보니 드물기는 하지만 한국인도 있더군요.
산 아래쪽을 보니 롱이어바이언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이렇게 보니 엄청 가까워 보이지만 돌아서 올라왔기도 하고 산의 규모가 커서 그렇지 사실 꽤 멀리 떨어진 거립니다.
지금은 눈이 많이 녹은 상태지만 겨울에 눈이 내리면 계곡을 모두 채우고 마을 언저리까지 빙하가 내려온다고 합니다.
사진의 마을 입구에 짙은색 지붕의 흰 건물이 하나 보이시죠? 예전에는 겨울이 되면 빙하가 거기까지 내려오기 때문에 마을 한계선처럼 그 앞에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빙하가 많이 후퇴해서 겨울에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제는 좀 더 산에 가까운 부분에도 길 따라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산 정상까지 힘들게 지고 올라간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건조 식량을 데우고 차를 우려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등산(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을 마치고 야외에서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죠~
저희는 미리 비건이라고 일러 두었기에 비건용 쿠스쿠스를 받았습니다. 이거 보기보다 은근히 맛있고 든든합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으면 구해봐야겠습니다. 여행 나갈 때 가져가도 비상식량으로 좋을 듯 합니다.
이건 스발바르 사람들에게 지급되는 알코올 구매 카드입니다.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영토이기는 해도 주세가 면제되는 면세 지역이기 때문에 지나친 알코올 소비를 막기 위해 한달에 정해진 쿼터만큼만 술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특이하죠.
산 정상이라고 해도 평평한 지역이 꽤 됩니다. 한쪽에는 눈이 쌓여 있지만 다른 쪽에는 야생화들이 피어 있어요.
지역이 척박해서 그런지, 돌무더기 틈에서 피어 있어서 그런지 빛깔이 더 선연해 보이네요.
무리를 지어 피어도 예쁘고, 홀로 피어도 예쁩니다.
점심을 먹고 한숨 돌린 후 슬슬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올라갈 때는 잘 몰랐는데 내려오면서 보니 제가 입은 기모 바지가 살짝 기장이 짧은데 뒷꿈치 쪽으로 눈이 계속 들어와서 결국 신발 안쪽과 양말까지 다 젖었습니다. ㅠ.ㅠ
해가 높이 떠서 그런지 눈이 많이 녹아서 더 질척거리더군요. 결국 호텔로 돌아와 벗은 운동화를 히터에 널어 말리느라 애 좀 먹었습니다.
확실히 올라갈 때와는 달리 내려오는 발걸음은 빨라서 금방 산자락에 도착했습니다.
모피 코트를 입었던 어르신인데 정상에서 다른 옷으로 갈아 입으셨습니다. 남편 분 배낭이 작아 보이던데 어떻게 모피 코트를 담았는지 아직도 이해 불가~ @.@
이 때가 오후 2시 쯤 되었는데 예정보다 빨리 내려왔기 때문에 산의 오른쪽으로 돌아서 long glacier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습니다(오전에는 산의 왼쪽으로 돌아서 올라갔었죠). 모피 코트를 입고 올라가셨던 어르신은 힘에 부친다고 하셔서 부부 두 분은 먼저 숙소로 돌아가고 저희 넷만 끝까지 갔습니다.
산의 오른쪽은 그늘이 많아서 그런지 쌓인 눈의 양도 많습니다.
사진의 느낌표 위치가 아까 올라갔던 정상입니다. 거기에서 발을 헛딛으면 여기까지 굴러서 오는 것이죠;;; 눈 사이로 기둥 두개가 솟아 있는 부분은 폐광 입구입니다(이게 아마도 지도에 표시된 1번 광산). 예전에는 여기에도 탄광이 있었죠.
갱도로부터 이어지는 철길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건 예전에 개 썰매용 개들을 기르던 농장의 흔적입니다. 지금은 버려져 있지만요.
눈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습니다. 가이드가 뭔가 보여줄 게 있다고 자꾸 그러네요.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습니다.
알고 보니 화석을 보여주려는 거였더라고요. 보시는 것은 나뭇잎 화석입니다. 믿겨지지 않게도 롱이어바이언에는 대학도 있는데 극지방 연구나 침식 지형 연구 등을 위한 전문가를 양성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화석 연구를 위한 채집도 많이 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가이드의 노력에는 아랑곳 않고 바위틈의 야생화만 줄창 찍으며 돌아다녔다죠. :)
돌아다니다 보면 이처럼 돌 위로 올라온 흰색 반점 같은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일종의 미네랄이라고 합니다.
이런 색깔의 미네랄도 있고요. 가이드가 이걸 보여 주면서 했던 이야기가 좀 충격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스발바르는 매우 척박한 지형이라서 겨울에는 순록 같은 초식동물들이 먹을 게 거의 없답니다. 그러면 이렇게 바위 위로 올라온 미네랄을 갉아 먹으면서 겨울을 버틴다고 하네요.
이게 순록이 갉아먹은 흔적인데 그야말로 돌을 씹어 먹는 것이니 나이가 들게 되면 약한 치아가 돌을 씹을 때 부러지고 부서져서 나이가 많이 먹은 순록은 윗니가 거의 없답니다. 이걸 그대로 두면 돌도 못 씹기 때문에 결국은 굶어 죽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냥철이 되면 나이든 순록은 사냥을 하도록 제한을 풀어 준답니다. 정말 척박한 땅이죠. ㅠㅜ
느낌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long glacier를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인데 거기까지 올라갔다 오면 너무 늦어진다기에 저희는 이쯤에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길가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었습니다. 이건 가이드가 준 캬라멜 초컬릿인데 맛있기는 하지만 너무 달아서 한번에 다는 못 먹겠더군요. 갖고 다니면서 며칠에 걸쳐 천천히 먹었습니다. 저희는 걷는 걸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여행을 가면 항상 과일 같은 주전부리를 챙겨 다니면서 허기를 때우고 수분을 섭취하곤 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어김없었고요. 그래서 오슬로 공항에서 버릇처럼 산 사과를 나눠줬습니다. 가이드가 먹어보더니 이거 스발바르 사과가 아닌 것 같다고 하기에 깜짝 놀라서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니 스발바르 사과는 이렇게 맛있지 않답니다. 아무래도 본토에서 들여온 것 같다고;;;;
날씨도 좋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사람 하나 없는 적막한 곳이라서 아무데나 의자 하나 갖다 놓고 앉아서 산만 바라보고 있어도 절로 힐링이 될 것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무심코 롱이어바이언 건너편을 바라봤는데 흡사 깔대기 모양의 산이 인상적이더군요. 눈이 많이 내리면 저 깔대기 부분도 눈으로 가득 찰 지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거위 가족(가이드가 기러기라고 했는지 거위라고 했는지 헷갈리네요)을 만났습니다. 경계심이 쩔어서 망원렌즈로 당겨서 겨우 찍었습니다. 조금만 다가가려고 해도 꽥~ 꽥~ 거리면서 어찌나 빨리 멀어지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덧 마을 초입까지 다 왔습니다. 가이드가 자기꺼라고 자랑하던 스노우 모빌이 저기 있네요. 제가 일본 애니메이션의 건담이 연상된다고 농을 던졌더니 진지하게 검색해서 찾아보겠답니다;;;
당연하겠지만 장전된 소총을 갖고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 안 되기 때문에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탄약을 회수하고 약실 검사를 한 뒤에 빈 총 상태에서 들어가야 합니다. 사진은 가이드가 약실 검사를 하는 모습.
하루종일 걸은데다 제대로 앉아서 쉰 적도 거의 없었는데 가이드도 그렇고 어르신도 그렇고 지친 기색이 없습니다. 저는 이때 이미 다리가 천근만근이었는데 말이죠.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마을 안쪽으로도 버려진 폐광이 많습니다. 한 편으로는 쇠락한 탄광 마을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애잔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그래도 한 때 당당했던 역사를 증언하는 것 같아 듬직해 보이기도 합니다.
보시는 것은 하수관입니다. 영구동토층 때문에 하수관을 지하로 매설하지 않고 땅 위로 지나가게 만들었더군요.
이처럼 소형 집수장에 모아서 정수한 후 흘려보내는 것 같습니다.
유치원인지 초등학교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학교입니다. 학생 수가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하네요.
학교 앞에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설비가 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노르웨이는 산유국인데도 불구하고 대체 차량으로 전기차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도 전기차 충전 시설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저기 써 있는 말은 내부 히터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인데 아마도 전압이 맞지 않거나 그러니 연결하지 말라는 말이겠지요.
이건 무슨 시설인지 듣고 깜짝 놀란 건물인데요. 무려 실내 수영장입니다;;;; 인구가 2,500여 명 밖에 안 되는 북극권에 가까운 극지방 롱이어바이언에 실내 수영장이 있더군요. 노르웨이인들의 스포츠 사랑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복지 정책도요~ ㅠ.ㅠ
예전에 탄광에서 캐낸 철광석이나 석탄을 항구로 실어나르는데 사용되었던 설비인데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더군요. 노르웨이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시설이라도 함부로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산에서도 못 봤던(응가만 봤죠. ^^;;;) 순록을 마을 안에서 봤습니다. 풀을 뜯으러 들어온 것 같은데 가이드 말로는 나이 어린 녀석 같답니다. 스발바르의 순록은 암컷도 뿔이 있기 때문에 이 정도 거리에서는 암수 구분을 하기 어렵다네요. 순록이 왜 혼자 다니냐고 물어봤더니 새로운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가 이전에 있던 새끼를 쫓아내서 강제로 독립시키기 때문에 가끔 혼자 다니는 순록이 목격된다고 합니다.
올라갈 때는 초입까지 차로 데려다 줬기에 편했지만 내려올 때는 지쳐서 그런지 거리가 얼마되지 않는데도 호텔까지 걸어서 오는데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그래도 오래 걷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하고, 대자연 좋아하고 사람 많은 거 싫어하는 사색형 인간에게는 강추하는 activity입니다.
롱이어바이언도 계속 건물이 들어서고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나무를 아끼지 않고 쓴다는 거. 함께 갔던 지인말로는 우리나라였으면 엄두도 못 낼 수준으로 목재를 펑펑 사용하면서 건물을 짓고 있다고 합니다;;;
5시 30분 쯤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가이드와 인사하고 헤어지면서 항상 주던 팁을 안 주니 상당히 뻘쭘하더군요. 팁 문화가 없다고는 하지만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건 마지막으로 오늘 올랐던 산의 파노라마 샷~
1시에 겨우 잠들었는데 새벽 3시 40분 쯤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리는 바람에 잠에서 깼습니다(아 놔;;;). 다행히 스팸 전화가 아니라 짜증이 덜 나기는 했지만 외국으로 여행을 오면 이런 신경 거슬리는 일들이 가끔 생기곤 하죠.
이후로 숙면을 못 취했는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인 7시 30분에 절로 깼습니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애매해서 일어나 샤워하면서 어제 입은 속옷을 빨아서 욕실에 널었는데
스발바르는 습도가 엄청 낮은 지 욕실에 빨래를 널어도 반나절이면 마릅니다. 오늘 트래킹하면서 보니 금방 입술이 건조해져서 립밤까지 발라야 하더군요.
9시쯤 아침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는데 이미 다들 식사를 마치고 오늘 일정을 소화하러 나갔는지 한적한 분위기입니다. 투숙객은 제가 좋아하는 유럽 어르신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대체로 조용하고 점잖거든요). 나중에 알게 되지만 식당에서 뵈었던 어르신들이 오늘 Trekking을 함께 할 일원이었습니다.
조식 메뉴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구색을 잘 갖추었습니다. 우측 하단에 berry 종류를 갈아서 만든 쥬스가 있는데 이거 맛있습니다. 노르웨이 호텔이라면 조식 부페에서 항상 볼 수 있는 메뉴인데 한 입에 홀짝 마실 수 있는 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쥬스잔에 나오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하나같이 신선하고 맛있어요. 추천합니다. 노르웨이에 가시는 분들은 꼭 드셔보세요.
샐러드 바가 조금 부실한 감이 있는데 나중에 가이드한테 들으니 스발바르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답니다. 뭐 그런고로 감수하기로 하고 대신 드레싱 종류가 많아서 이것저것 뿌려서 먹어 봤습니다.
오믈렛도 있고 크로와상도 있고 나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샐러드는 그리스처럼 각종 채소를 썰어서 담아 놓은 수준입니다. 이건 여기 뿐 아니라 노르웨이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죽이 깔려 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좋습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져간 진공 텀블러 2개에 커피와 뜨거운 물을 채우고 홍차 티백 2개도 따로 챙겼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양치하고 짐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갔습니다. 오늘 일정은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5시에 끝나는, 'Mountain Scrambling'으로 불리는 trekking 상품인데 basecamp hotel에 묵는 투숙객들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롱이어바이언 주변의 산을 가볍게 오르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one-day hiking trip 상품입니다.
혹시나 해서 든든히 입고 나갔는데 상당히 쌀쌀합니다. 트래킹 도중 바람이 불면 더 춥더군요. 참고로 6~7월 스발바르 트래킹에 필요한 옷차림과 필수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방풍 재킷, 장갑, 최소 기모 바지, 하드 커버 등산화(눈길을 걸어야 하므로 방수 필수이며 눈이 신발 안에 못 들어오게 발목을 감싸는 방식), 선글래스(눈 때문에 빛 반사가 장난 아님)
트래킹 코스 입구까지 우리를 날라줄 차량이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조수석 옆에 서 있는 게 가이드인데 저게 6~7월 스발바르의 표준 복장입니다;;;
오늘의 일행은 덴마크에서 오신 어르신 세 분(두 분은 부부, 다른 남자 어르신은 여행 중 만나 친구가 되었다고)과 여성 가이드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면 잘 모르겠지만 바이킹의 후예답게 어깨도 떡 벌어졌고 장딴지도 딱 보기에 근육질입니다. 저 보다 더 튼실해요;;;
오늘 트래킹을 할 산자락까지 호텔에서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지만 차량으로는 금방입니다. 타자마자 곧 내리네요.
산기슭에 이르자 스노우 모빌 주차장(?)에 차를 세우더니 갑자기 1인 당 1개씩 2 리터들이 보온병을 나눠줍니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을 때 사용할거랍니다. 저희는 뜨거운 물을 이미 챙겼기에 안 받으려고 했지만 가이드가 지고 갈 짐을 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줬는데 그 후덜덜한 무게를 알고 나니 도저히 필요없다고 돌려주지 못하겠더군요. 가볍게 걸어다니려고 슬링백 하나만 메고 왔는데 어쩔 수 없이 둘러메고 올라갔습니다. ㅠ.ㅠ
보온병을 다 나눠준 뒤인데도 저 짐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저도 원래 가방을 무겁게 메고 다니는지라 저 정도쯤이야 하고 얕보고 들었다가 헉~ 했습니다. 저 가이드는 저 짐을 오후 5시까지 계속 메고 다녔습니다. @.@
그리고 옆의 메쉬 포켓에 꽂혀 있는 건 라이플입니다. 마을 밖으로 나갈 때 3발을 장탄하고 들어올 때 약실을 비웁니다. 과거에 호신용 무기 없이 다니다가 북극곰에게 인명이 살상되는 일이 발생한 이후 생존 규범이 되었답니다. 물론 북극곰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저 정도 라이플로는 어림도 없겠지요. 어디까지나 북극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용도로 들고 나가는 겁니다.
교전 수칙(?) 같은 것도 있어서 200미터 내에 북극곰이 들어오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북극곰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더 가까이 오면 뒷걸음질로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북극곰이 계속 다가오면 허공에 공포탄을 발사하고 50미터 안쪽으로 접근한 뒤 더 다가오려는 의도가 분명한 경우는 방어 사격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용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가이드가 농담하더군요. ㅡㅡ;;;;
우리나라에서는 스노우 모빌을 보는 게 쉽지 않은데 스발바르에서는 스쿠터 타듯이 누구나 타고 다닙니다. 롱이어바이언 인구가 2,500명 정도 되는데 스노우 모빌은 3,000대 쯤 된다고;;;;
여름철에는 공용 주차장이나 자기 집 차고에 세워두었다가 겨울에 눈이 내려 쌓이면 주 교통수단이 된다고 하네요.
각자 짐을 챙겨 들고 나섰습니다. 왼쪽의 모피코트를 입은 여자분과 검은 가방을 멘 어르신이 부부이고 키가 좀 큰 어르신이 친구분입니다. 모피코트를 입은 어르신은 나중에 덥고 무거워서 고생 좀 하게 됩니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좀 추웠습니다.
공용 주차장이 아닌 곳에 세워둔 스노우 모빌도 있는데 겨울이 되면 산쪽에서 마을 방향으로 눈이 쌓여서 내려오게 되는데 남들보다 손쉽게 타려고 그런답니다.
초입은 암석 지대입니다. 돌무더기의 크기가 꽤 커서 발목을 잘 잡아주는 하드부츠를 신지 않으면 발을 접지를 위험성도 있어 보이더군요.
빙하가 녹은 물이 돌무더기 사이를 내를 이루어 흘러갑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노르웨이는 물이 많아도 너무 많더군요.
스발바르는 경작이 가능한 지역이 3%인가 밖에 안 되는 척박한 곳인데 여름철에는 바위틈 곳곳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핀다고 합니다.
돌틈으로 수줍게 핀 야생화가 정말 예쁘네요.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우리나라처럼 무심결에 꺾으면 큰일납니다.
야생화를 꺾으면 벌금이 5,000크로네(한화 70만 원 상당)나 합니다;;;;
오늘 우리가 오를 산은 저 산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면 그리 높아보이지 않지만 사실 꽤 높습니다. 게다가 가파르기 때문에 정면으로 오를 수가 없습니다. 측면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는 길이 결코 녹록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초입은 둘무더기로 된 길이고 다음은 툰드라 식생이어서 이끼를 밟을 때는 부드럽지만 안에 빙하가 녹은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진창에 가깝고 그 다음은 녹지 않은 빙하라서 눈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든 길 따위는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풍광이 워낙 색달라 눈이 즐거워서 그런지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왼쪽 산 사면을 잘 보시면 폐광 입구가 보일텐데요. 입구만 막았지 시설을 철거하지는 않았더군요. 그냥 보라고 놔두는 것 같았습니다. 각 폐광에는 번호를 매겨 놓아서 지형을 확인할 때 사용하더군요.
경사면을 보면 폐광을 들어가볼까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집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빙하가 녹으면서 사면이 무너져 자연스럽게 쪼개진 돌들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멀리서 들으면 냇물이 흐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바위가 내는 경쾌한 노랫소리 같기도 하고요. 계속 듣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잠깐 다리를 쉬면서 가이드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트래킹 코스에 인위적인 건 거의 없기 때문에 앉아서 쉴 곳도 없습니다. 아직은 초반이니 서서 쉬어도 그리 힘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암석 지형이 끝나면 이끼가 낀 지형으로 접어듭니다. 밟는 감촉은 폭신폭신 좋지만 안에 물이 가득차 있어 흠뻑 젖은 양탄자를 밟는 느낌입니다. 가이드가 가능한 한 밟기 좋은 길로 안내하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방수가 되는 신발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래도 잘 보면 바위 위로 이끼가 덮인 곳이 있습니다. 대신 미끄럽기 때문에 발목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걸어야 하죠.
그 다음은 눈길입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발자취를 놓치면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고생 좀 하게 됩니다. 눈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 양말까지 흠뻑 젖는 건 덤이죠. ㅠ.ㅠ
앞에 보이는 어르신은 잘 미끄러지는 발바닥 재질로 된 등산화를 신고 오신 바람에 눈길에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다행히 한번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계속 미끄러지는 통에 체력을 많이 소진하셨죠.
여기도 풍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모피코트를 입은 어르신이 슬슬 힘에 부치신 것 같습니다.
정상쪽으로 다가갈수록 쌓인 눈이 더 많아집니다.
산을 오르던 중 발견한 겁니다. 뭔지 잘 안 보이시죠? 사진 한가운데 있는 바위 뒤에 새 한마리가 바람을 피해 앉아 있습니다. 조금 확대해 볼까요?
이제 보이시나요? 눈가에 빨간 띠를 두른 새가 보이네요. 가져간 쌍안경으로 확인하고
18-200 줌렌즈로 당겨 찍었습니다. 사실 굉장히 멀리 있거든요.
이건 순록 응가입니다;;; 처음에는 콩 같은 먹이를 먹으라고 뿌려놓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하늘색이 참 예쁘죠? 어렸을 때 먹은 샴페인맛 '야구왕바'가 생각나는군요. :)
정상에 거의 다 왔습니다. 정상으로 접근하는 마지막 부분은 다시 이끼 식생이네요.
설명을 듣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천천히 걷기는 했지만 정상까지 2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이런 속도로 천천히 걷는 트래킹 좋습니다~
눈 덮인 산만 보여드리니까 어느 정도의 풍경인지 모르실 것 같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더 보여드립니다.
빨간색 느낌표 부분의 개미처럼 보이는 점은 다른 트래킹 코스를 걷는 여행자 그룹입니다. 저도 가이드 말 듣고 쌍안경으로 확인하고나서야 사람인 줄 알았죠;;;
오전 10시쯤 출발했으니 슬슬 배가 고파질 때입니다. 정상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