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아내가 많습니다.
도박자가 치료를 거부했다면 모르겠지만 순순히 치료에 응해온 도박 중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이고 배우자가 자신을 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일견 불합리하고 불공정해 보이는 아내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도박 중독자가 먼저 헤아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배우자의 행동은 도박 중독자에 대한 벌의 의미가 분명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있을 때 자신과 자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막상 정신이 돌아와 근시안(tunnel vision)에서 벗어나고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겠다고 뒤늦게서야 나서는 도박자가 밉기 때문에 제동을 거는 것이죠. 특히 도박자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아직 도박자를 신뢰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박차를 가하라는 의미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자녀를 데려가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도박과 관련 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가족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이유' 포스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기 위해 가시적인 행동들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유가 다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댁에 자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경한 배우자일수록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부모님들에 대한 원망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도박 중독자의 부모가 며느리에게 하는 행동 패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박 중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닦달함으로써 과중한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뒷짐지고 물러나 있어 자신이 도박 문제의 피해를 몽땅 감당하도록 수수방관한 시댁 식구들이 그래도 손주는 보겠다고 데려오라는 꼴이 미운 것이지요. 이러한 시댁의 요구를 뻔뻔스럽다고 지각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자녀를 본가로 데려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배우자를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집중하고 배우자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기다려 달라고 본가의 식구들을 설득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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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 치료는 대개 원가정보다는 현가정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됩니다. 즉 도박자가 가정을 꾸려 독립한 성인인 경우 부모님보다는 배우자를 도박자의 일차적인 보호자로 생각하고 치료하는 것이죠. 바로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들이 도박 중독임을 알게된 부모가 며느리에게 보일 수 있는 행동 패턴은 크게 두 가지 중 하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너만 믿는다' 유형
: 도박자에게는 이야기하지 못하면서 며느리에게 수시로 연락해 너만 믿는다고 부담을 주는 패턴입니다. 대개 아들이 도박을 하지 않는지 확인하라고, 잘 해주라고 부담을 주는데 그나마 아래의 유형보다는 며느리가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편입니다.
* 원인 : 부모의 내부 귀인
: 자신(특히 어머니)이 아들을 잘못 키워 도박자가 되었다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으며 아들의 도박 문제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기 때문(도박자에게 끌려 다님)에 며느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대개 도박자를 감시, 통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간수 역할 거두기'를 중요한 치료적 기술로 고려하는 치료자와 충돌하곤 합니다.
* 대처 방법
: 이런 유형의 부모는 우선적으로 가족 교육을 통해 도박 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 및 대처 기술을 교육한 후 현가정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적절한 물리적 정서적 거리를 두게끔 협조를 요청해야 합니다.
2. '너 때문이다' 유형
: "너랑 결혼하기 이전에 내 아들은 도박을 하지 않았는데 너랑 결혼을 하고 나서 도박을 했다면 너는 대체 우리 아들 내조를 어떻게 한거냐? 네가 오죽했으면 내 아들이 도박을 했겠니"와 같은 식의 비난을 하는 유형입니다.
* 원인 : 부모의 외부 귀인
: 대부분의 시부모(특히 시어머니)가 이 유형에 속하며 앞서 설명한 '너만 믿는다' 유형보다 스트레스와 부담의 강도가 훨씬 더 큽니다. 특히 결혼하기 이전에는 도박을 하지 않았거나 했는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이 유형의 행동 패턴을 보이는 부모가 많은데 희생양을 찾아 외부 귀인을 하지 않으면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무의식적인 방어가 작동하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 대처 방법
: 도박 중독이 병이며 단순한 양육 잘못이나 배우자의 내조 잘못이 아닌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을 교육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만약 부모가 관련 교육 및 가족 상담을 거부하는 경우(꽤 많은 경우 거부합니다)에는 도박 중독 치료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안정된 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원가정과 일시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 때 며느리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도박자가 나서서 거리 두기를 선언하게 되면 책임감 배양에도 좋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치료자를 악역으로 내세우는 것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박 중독은 '선택'과 '책임'의 문제가 아주 중요한 병이므로 도박자와 현가정이 스스로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원가족은 힘들더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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