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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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버트런드 러셀 연구가인 로버트 E. 에그너 교수가 버트런드 러셀의 대표 저작들 중에서 최고의 문장만을 발췌하여 정치, 심리, 윤리, 교육, 종교, 성과 결혼이라는 6개 주제로 묶어 펴낸 책입니다.
이 책의 원고는 버트런드 러셀이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성 윤리에 대한 자유로운 사고를 옹호한 것 때문에 1940년 대 뉴욕에서 큰 곤경을 겪어야 했고 지금까지도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철학자이죠. 100여 권이 넘는 책과 수많은 저술 중 정작 성과 관련된 것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도 말이죠. 그런 점에서 앙리 베르그송에 이어 철학자로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결혼과 도덕(1929)'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고 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 버트런드 러셀의 글을 참 좋아라합니다. 독단이 인류에게 미치는 폐해에 대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던 행동가였죠.
월덴 3에서도 이미
'행복의 정복(1930)',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2005)',
'게으름에 대한 찬양(1997)' 등을 통해 러셀의 사상을 여러 차례 소개한 바 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글 중 '교육', '성과 결혼' 주제로 분류된 내용에 해당하는 책들은 전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을 접하게 되어 신선하고 좋았습니다만....
해학이 넘치는 버트런드 러셀의 명문을 읽는 재미는 좋았는데 여러 저작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묶어 싣는 바람에 자꾸 흐름이 끊기고 산만해져서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각 장마다 '편집자의 여는 글'과 '해설자의 닫는 글'을 앞뒤로 배치해서 버트런드 러셀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게 배려한 건 좋았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저작을 대부분 읽은 분들이 총정리하는 차원에서 읽으면 좋은 책입니다. 최소한 대표 저작 정도는 다 읽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에 소개된 러셀의 저작들을 다시 한번 뒤져 봐야겠습니다.
닫기
* 나는 근엄하게 굴어야만 진지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엄함에 맞설 최고의 무기는 재치이다. 재치가 아닌 다른 무기를 쓸 경우 대개는 또 다른 독단주의적이고 분파주의적인 근엄함이 나타날 뿐이다.
* 러셀의 방대한 저작 목록에서 유일하게 찾을 수 없는 철학적 주제는 미학에 관한 것인데, 그 이유는 아마도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과학적 세계관과 논리적 방법으로 철학에 접근한 그에게 미학은 적절한 관심을 끌지 못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 러셀의 주된 관심사는 무수한 형태로 행사되는 독단적 권위가 인류의 진보를 심각하게 가로막아왔고, 이런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었다.
* 인도주의를 기억하라.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라.
* 러셀의 견해에 따르면 정치학 이론의 핵심적인 문제는 진보에 필요한 개인적 창의성과 생존에 필요한 사회적 결속력을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였다.
* 만일 성취욕이 경쟁심보다 강하다면 세상은 더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 훌륭한 삶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 설사 신이 있다 해도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들에게 노여움을 느낄 만큼 위태로운 허영심을 지녔을 것 같지는 않다.
* 나는 신념은 죄다 해로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신념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증거가 있는 것을 신념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리는 증거를 감정으로 대체하고 싶을 때 신념이라는 말을 쓰는 것 뿐이다.
* 불가지론자들은 죄가 유용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어떤 행위는 바람직하고 어떤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처벌은 고통을 줄 목적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되며, 예방이나 계도의 목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인생에 맞서기 위해서 어떤 신념이나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겁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태도는 다른 영역에서는 경멸받지만 종교의 영역에서는 훌륭한 태도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영역이라고 해도 비겁한 태도를 칭찬하고 싶지 않다.
* 죄란 명시된 법, 곧 신의 계시에 의해서 신의 뜻이라고 알려진 도덕 법규에 의식적으로 맞서고자 하는 의도적인 행동이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
*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그 속에 죄로 인한 해악을 포함시켰다면 그 신은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사악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낙관적인 신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최선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두려움에 호소하는 종교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이다.
* 내가 기억하는 한, 어느 복음서에도 지성을 칭송하는 내용이 들어 있지 않다.
* 근거가 없을 때는 판단을 보류하도록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독단적인 예언자의 말에 넘어가고 무식한 광신자나 엉터리 협잡꾼이 지도자가 되기 쉽다.
* 멜서스는 인구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도덕적 자제와 악덕과 빈곤, 이 세 가지뿐이라고 보았다.
* 죄에 대한 신념이 덕망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막대한 보상은 바로 아무 거리낌 없이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기회이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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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Ellis의 A-B-C 모형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A -> B -> C
각 구성 요소는 각각
A(Antecedents or Activating events) : 선행 사건 또는 촉발 사건
B(Beliefs) : 신념
C(Consequences) : 결과
입니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해 우울증에 걸린 부인을 치료한다고 해보죠. 문제는 남편이 술에 진탕 취해 들어와서 시비거리를 찾아내면 그걸 빌미로 마구잡이로 자신을 때릴 때 이 부인이 남편이 아닌 자신을 비난한다는 겁니다. '내가 뭔가 잘못했으니 남편이 때리겠지, 내가 내조를 조금만 잘 했어도 남편이 그러지는 않았을텐데 맨날 술 마시고 때리는 걸 보면 나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나 보다' 하면서 자기를 비하함으로써 점점 더 무기력과 우울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이죠.
위의 예를 아주 단순하게 A-B-C 모형에 대입하면
A :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 부인을 때림
B : 자신이 남편에게 맞아도 싸다고 믿음
C : 매사에 우울하고 무기력해짐
처럼 분석할 수 있습니다.
Ellis의 A-B-C 모형을 활용하는 치료자는 대개 B에 해당하는 내담자의 부정적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 등을 교정하는 것에 치료의 중점을 두지만 사실 현장에서는 A, B, C 모두에 치료적 초점을 맞추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각 요소의 비중과 접근 방법의 난도 차이가 있을 뿐이죠. 변화 시 효과성은 A가 제일 크고 그 다음이 B, C의 순서지만 어려움의 정도도 A, B, C 순이기 때문에 쉽지 않기는 합니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이고 하루가 멀다않고 술에 취해 들어와 폭력을 휘두르는데 인지 오류만 교정해서는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실제로 이런 상황에서는 인지 오류마저도 교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결된 것처럼 보여도 재발하기 쉽죠.
선행 사건(A)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위의 예에서 남편의 알코올 중독과 구타, 이 두 가지가 개선이 필요한 선행 사건이죠. 이 두 가지 요소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모두 개선해야 합니다. 남편의 폭력 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법의 도움을 받는다든가(경찰, 변호사, 여성의 전화 등의 지원 필요), 시댁 또는 친정 친지의 도움을 받아 알코올 중독에 대한 치료를 위한 직면 계획을 세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는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일시적인 별거를 할 수도 있고 유사시 아이들을 데리고 쉼터로 대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상담자와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신념(B)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해석을 변화시키거나 좀 더 효과적인 자기 대화법을 배우거나 사고의 오류를 탐색해서 수정하거나 비합리적인 신념을 찾아서 교정하는
전통적인 인지 치료 기법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결과(C)를 바꾸는 것은 현장에서 흔히 accomodation이라고 부릅니다.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해도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구하거나 효과적인 스트레스 해소 기술을 배우는 것, 독립을 위한 경제적 자립 연습을 하는 것,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지지적인 사람을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상담도 포함). 이완이나 명상 등의 방법으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방법 등이 포함됩니다. 이 때 주의할 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땜질'이나 증상 완화적인 처방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A와 B의 변화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Albert Ellis의 A-B-C 모형을 활용할 때 B만이 아닌 A, B, C 모두에 대해 동시에 치료적 접근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꼭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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