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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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등단한 시 제목부터 멋짐~)로 데뷔한 황인숙 시인의 에세이집입니다.
고양이에 대한 시로 등단한 시인답게 고양이 사랑 하나는 대단합니다. 고양이 카페 벼룩시장에 올라온 고양이 용품을 사러 수도권 전역을 지하철로 돌아다니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분이죠.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성품도 닮는지 1부 고양이로 산다는 것.에 실린 에세이들을 보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 많습니다.
걷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딩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저와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런지 친근했고, 조곤조곤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울림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3부 사노라면.에 실린 '아이들 몰래 어른에게 보내는 편지'와 '아이들은 자란다'가 특히 좋았습니다.
이 책의 그림을 담당한 이정학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도 멋집니다. 그림체도 제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인데다 표지 사진에서처럼 모든 그림을 노란색과 검은색으로만 그렸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저자와 함께 사는 고양이 세 마리가 모두 '치즈 태비'와 '얼룩소'라서 노란색과 검은색이 주를 이루거든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하는 에세이집이고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겁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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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주인인 이 지구에서 다른 동물들은 행복할 권리는커녕 살 권리도 요구할 여지가 없는, 너무도 가련한 존재죠. '반려동물'은 이 무서운 세상에서 자기와 인연이 닿은 동물이나마 지켜주려는 마음이 전전긍긍 담긴 말이에요. -> 이 구절 정말 뭉클하다. ㅠ.ㅠ
* 길고양이 실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건 버려진 고양이(원래부터 길에서 자란 고양이가 아닌)를 길에서 만나는 거에요. -> 이것도 캐공감. ㅠ.ㅠ
* 집에 고양이가 있는 사람들은 동감할 얘긴데, 기르던 고양이를 버리는 사람은 사람도 쉽게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 그래서 내가 동물을 버리는 사람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다.
* 새끼고양이를 집에 들이면 그건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하는 거거든요. 고양이는 그렇게 알고 있거든요.
* 바깥 고양이들한테 밥을 주기 시작하고 나서 바뀐 게 둘인데, 그 중 하나가 비에 대한 감정이에요. 비는 고양이들이 자는 동안만 왔으면 좋겠어요. 바뀐 것 또 하나는 골목에 세워놓은 자동차에 대한 감정이에요. 전에는 좁은 골목에 떡 버티고 있는 자동차를 보면 짜증이 났는데, 이젠 얼마나 고마운지!
* 부비부비하는 길고양이를 보면 가방에서 물휴지를 꺼내 눈꼽도 살살 떼어주고 뺨도 닦아줘요. 더러워 보이면 사람들이 더 깔보고 해치기 쉽거든요.
* 지하철은 부드럽게 달리고, 서고, 문이 열리고,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고. 지하철 리듬에 몸을 싣고 책을 읽는 즐거움이여. 내릴 채비를 하며 허겁지겁 읽어 치우는, 책장을 덮기 직전 페이지의 달콤함이여.
* 지금도 라면으로 끼니를 잇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식성 때문이 아니라 가난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라면의 탄생은 다행스런 사건이다. 이 시대 대한민국에 고흐가 살았다면,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라면 먹는 사람들>을 그렸겠지.
* 그들은 결혼을 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한다. 결혼은 할 수 있거나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혼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쏟는 것만큼 다른 사람의 복지에 관심을 보인다면 인류는 얼마나 행복해질 것인가?
*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힘이 된 적이 그토록 많았으니, 나는 그닥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하지만 그 말이 슬픈 적도 종종 있었으니, 나는 종종 행복했던 게다.
*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사람 늘어나면 그만큼 세상이 가벼워질 거에요.
* 동물을 대하는 마음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 그대로다.
덧.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이유로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첫째는 재생용지로 만든 책이라는 것, 둘째는 한 손에 딱 들어오는 판형, 셋째는 깔끔한 책갈피를 넣어주는 센스, 넷째는 책이 상하지 않도록 보관할 수 있는 박스 제공.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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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를 제대로 감상할 정도의 깜이 안 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심보선 시인의 첫 시집입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요새 나름 '핫'한 시인이더구만요.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경'이라는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한 뒤 무려 14년 만에 낸 시집이죠. 총 58편의 시가 담겨 있습니다.
허윤진 문학 평론가가 '찰나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는 그의 시집은 그가 그 자신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가까스로 긁어모아 내뱉은 그의 핏자국이다'라고 평했듯이 심보선 시인의 시는 말랑말랑하고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곰씹으며 읽으면 탄성을 자아낼 정도의 가공할 표현력을 보여주는 문구를 드물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심장을 서늘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질척거리지 않고 적절한 거리에서 날리는 유머가 돋보이는 시입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잔인하게 아름답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시집에 평론가의 해설이 실려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시집에 실린 허윤진 문학 평론가의 해설은 괜찮은 편입니다. 크게 거슬리지 않네요.
예전의 저처럼 시라는 건 그냥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으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을 시집입니다. 혹시 압니까? 저처럼 생각이 바뀔 지....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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