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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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장 좋아하는 치료자 중 한 사람인 Irvin Yalom의 대표작 모음집인 'The Yalom Reader(1998)'의 번역본입니다.
얄롬 박사의 아들인 벤 얄롬이 엮은 이 책에는 심리치료 관련 전문서 세 편, 연구 보고서 네 편, 논픽션 에세이 두 편, 그리고 그가 쓴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총 11편의 저술을 얄롬 박사의 주요 관심사였던 '집단 치료', '실존적 심리치료' 그리고 '문학적 저술'의 세 파트로 구분하여 다시 배치하였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집단치료
- 치료적 요인 : 무엇이 치료적인가?
- 치료자의 지금-여기 작업
- 특수 집단을 위한 집단치료
2부. 실존적 심리치료
- 네 가지 궁극적 관심
- 죽음, 불안, 그리고 심리치료
3부. 문학적 저술
- 심리의 문학적 이해
- 문학의 심리적 이해
- 심리치료에서 소설에 이르는 여행
- 교육용 소설
- 심리소설
얄롬을 제 치료적 모델의 선구자로 존경하기는 하지만 소설가로서의 역량에 대해서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3부를 읽을 때는 그리 흥미롭지 않았지만 절반에 이르는 3부를 제외한다 해도 이 책의 가치가 결코 덜해지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모음집을 읽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수록된 각각의 저서를 먼저 일독하고 종합하는 의미에서 모음집을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먼저 모음집을 읽으면서 핵심적인 내용을 익히고 난 뒤 개별적인 저작으로 넘어가서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이 책은 당연히 첫 번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러니 얄롬의 기본 저작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을 따라가는 것만해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내용 중 국내에 번역되어 발간된 책이라도 먼저 읽은 뒤 이 책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책에 발췌된 국내 역서의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 집단정신치료의 이론과 실제
* 입원환자의 집단 정신치료
* 실존주의 심리치료
* 매일 조금 더 가까이
*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 니체가 눈물을 흘릴 때
* 카우치에 누워서
굳이 저처럼 얄롬빠가 아니더라도 임상, 상담 현장에서 심리치료나 상담일을 하고 있는 임상가라면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꼭 읽어보실 것을 권하는 책입니다.
닫기
* 치료적 요인 : 무엇이 치료적인가?
- 희망의 고취
- 보편성
- 정보 전달
- 이타주의
- 초기 가족의 교정적 재현
- 사회화 기술의 발달
- 모방 행동
- 정화
- 실존적 요인
- 집단 응집성
- 대인관계 학습
- 축소된 사회로서의 집단
* 희망을 심어 주고 그것을 유지하도록 하는 일은 모든 심리치료에서 아주 중요하다.
* 나는 집단치료가 끝날 무렵, 집단원들이 다른 집단원의 회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종종 듣곤 한다.
* 치료 집단에서, 특히 모임의 초기 단계에서 나만이 이렇다는 집단원의 느낌에 대해 그렇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은 상당한 위안이 된다.
* 치료 집단의 가장 공통된 비밀은 그들 자신이 기본적으로 부적절하다고 깊이 확신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 다음으로 많았던 비밀은 깊은 대인관계의 소외감이다. 세 번째로 많았던 유형은 여러 가지 성적인 비밀이다. 흔히 동성애적 경향에 대한 두려움이다.
* 정보 전달이라는 개괄적인 항목 아래에 나는 치료자와 다른 집단원이 제공하는 충고, 제안, 또는 직접적 지도 뿐만 아니라, 치료자가 제시해 주는 정신건강, 정신질환, 그리고 일반 정신역동에 관한 교수적 강의를 포함시킨다.
* 어느 정도의 설명과 명료화는 그 자체가 효과적인 치료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항상 불확실함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종교적 또는 과학적 설명을 제공함으로서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현상을 통제하는 첫 단계이다.
*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즉 조언의 내용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도움이 된다. 조언을 제공하는 것은 상호 관심과 보살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다른 집단원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개탄하는 집단원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이다.
* 삶의 의미는 계속적으로 생겨하는 것이지 의식적으로는 추구할 수 없다고 한 빅터 프랭클의 말에 나는 동의한다. 삶의 의미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초월했을 때, 즉 우리 자신을 잊고 우리들 밖에 있는 어떤 사람(또는 어떤 대상)에 몰입하게 될 때 실현되는 파생적인 현상이다.
* 집단치료에서 내담자가 자기와 유사한 문제를 지닌 다른 집단원들의 치료를 관찰함으로써 도움을 얻는 일은 아주 흔한 경우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대리(vicarious) 또는 관찰(spectator) 치료라고 일컬어진다.
* 정화가 치료효과에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로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나의 내담자들이 회기 중에 흐느껴 울 때, 나는 물론 그들이 우는 이유에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종종 그것보다도 그들이 내 앞에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느낄까에 관심을 갖게 된다.
* 정화는 응집성과 미묘하게 얽혀 있다. 정화는 일단 지지적인 집단 유대가 형성된 후에 좀 더 유용하다.
* 긍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긍정적 결과와 관계가 있다. 반면,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나 또는 다른 집단원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노력이 있을 때만 치료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감정 표현의 강도는 매우 상대적이며 그것은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반드시 각 집단원의 경험적 세계의 관점에 근거해서 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 세 개의 실존지향적 문장들, (1) 아무리 타인에게 가까워진다 해도 여전히 나는 삶을 혼자서 직면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면하기 (2) 나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들을 직면하고 삶을 좀 더 정직하게 살고 사소한 일들에 덜 얽매이기 (3) 타인에게 받은 지도와 지지와 상관없이 결국 내 삶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기는 매우 중요하다.
* 최근의 연구는 개개인의 소속감과 전체 집단활동에 대한 그들의 평가(즉 집단이 전체적으로 얼마나 잘 기능하는가)를 구분하였다. 한 개인이 "집단은 잘 진행되고 있으나, 나는 그 집단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느끼는 것이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집단 응집력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강력한 치료적인 힘일 뿐만 아니라, 다른 치료적 요인들이 최상의 기능을 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라는 점이 더욱 중요하다.
* 치료 목표가 고통의 완화에서 대인관계적인 것으로 변화하는 것은 역동적 치료 과정의 초기 단계에서 필수적이며, 치료자의 생각도 이와 같이 변하는 것이 중요하다.
* 치료자-관찰자가 갖고 있는 개념적 관점과 상관없이 중요한 점은 각 집단원들의 대인관계 양식이 결국에는 집단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 어려움에 봉착해 있거나 생기를 잃은 집단에 대해서 자문을 의뢰받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어김없이 치료자들이 지금-여기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행동과 성격 변화의 효과를 보고자 하는 정신치료 집단이 다른 집단들, 예컨대 알코올 중독자 모임, 심리교육 집단, 인지-행동 집단, 암환자 지지 집단 등과 다른 주요한 차이는 심리치료 집단이 지금-여기의 경험을 매우 강조한다는 점이다. 지금-여기에 초점을 두는 일은, 그것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가 없이는 나머지 것도 치료적인 힘을 갖지 못하는 두 가지 공생적 측면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는 경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측면, 즉 과정에 대한 명료화 없이 지금-여기에 초점을 두는 것은 그 유용성에 한계를 갖게 된다. 집단은 순수한 경험을 넘어서서 그 경험을 통합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 우리가 과정에 대하여 묻는다고 할 때,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은 "이러한 명시된 단어들, 참석자들의 스타일, 토론의 본질이 참석자들의 상호 대인관계에 대하여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이다. 과정지향적 치료자의 관심은 내담자 발언의 언어적 내용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 발언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와 '왜'라는 질의는 환자의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규명해 주기 때문이다.
*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하나는 지금-여기 속에서의 경험이며, 다른 하나는 과정의 명료화이다. 이 두 가지 단계들의 결합은 경험 집단에게 강력한 힘을 불어넣어 준다. 치료자는 각 단계마다 다른 과제를 갖는다. 첫째는 집단을 지금-여기의 경험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두 번째 과업은 집단을 도와 지금-여기의 경험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의 과정을 관찰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일이다. 일상의 사회관계에서는 과정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치료자는 강한 저항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치료자는 초점을 외부에서 내부로,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일반적인 것에서 개인적인 것으로 옮겨 간다.
* 환자에게 직접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해 보도록 요구하는 것, 즉 삼인칭보다는 이인칭 대명사('당신')를 사용하도록 하고 서로를 바라보게 하는 단순한 기술도 매우 유용하다.
* 긍정적인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면서 시작해 보라.
* 가정법 시제를 사용하는 것은 안정감과 간격을 주고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촉진적이다. 최초의 저항을 맞이했을 때, 나는 가정법 시제를 자주 사용한다.
* 환자들을 교육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원리는 전체적인 질문과 관찰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 "좋습니다"라든가 "멋진 사람이에요"와 같은 피드백은 유용하지 못하다.
* 저항은 전적으로 공평하다는 교묘한 가장을 하고서 종종 드러난다.
* "우리가 발굴하기만 한다면, 오늘 우리 모두에게 가치 있는 정보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들 각자가 이 침묵 속에서 떠올렸던, 말할까 하다가 하지 않았던 생각들을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 집단에서 특히 많은 부분이 침묵으로 일관되었다고 느낀다면, 나는 다음과 같은 기법을 자주 구사하는데 꽤 성공적이다. "이제 6시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30분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들이 '벌써 6시 반이고,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라고 했을 때, 오늘 모임에 대해서 어떤 점이 만족스럽지 않을지 이야기할 수 있나요?"
* 치료자가 하는 상당수의 관찰들은 추론적일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 정확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즉 당신이 집단을 무관한 것을로부터, 즉 그때-거기에서부터 지금-여기로 끈질기제 이끌기만 한다면, 당신은 방법적으로 제대로 한 것이다.
* 개입의 효율성은 집단을 그 자체에 집중시키는 데 성공하느냐에 따라 측정되어야 한다.
* 지도자의 활동과 결과는 곡선 상관을 보인다(너무 많거나 너무 적은 활동은 성공적이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 지도자의 활동이 너무 적으면 집단은 힘겨워한다. 지도자의 활동이 너무 많으면, 집단원들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지도자를 바라보게 되는 의존적인 집단이 되고 만다.
* 너무나 기만한 치료자는 상호작용과 정서적 표현, 자기개방을 보다 수월하게 해 주려고 책략들을 구사하는데, 그러다가 전반적 핵심을 놓치게 된다. 저항, 두려움, 방어, 불신 등 간단히 말해서 만족스러운 대인관계를 저해하는 모든 것들이 표현되도록 허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치료자들이 내담자 자신의 의도를 결정으로, 그리고 결정을 행동으로 전환하도록 도왔다고 해서 치료자의 과제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치료자는 변화를 공고화시키고 집단에서 일어난 변화가 내담자의 삶으로 전환되도록 도와야 한다.
* 때때로 과정은 언급된 것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략된 것에 대해서도 주목함으로써 명료해진다. 예컨대 세 가지 금기인 성, 돈, 죽음에 대한 생략들은 집단의 상호교류 과정의 일부가 된다.
* 치료자는 결석한 집단원에 대한 느낌을 그 당시와 후에 집단이 논의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유익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치료자가 결석했을 때, 치료자에게 가졌던 느낌에 대한 풍부한 정보의 제공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 치료자가 한 집단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집단원들 사이에 형제간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 집단 치료자는 환자가 다음과 같은 순서대로 움직이도록 유도함으로써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1. 당신의 행동이 어떤 모습인가?
2.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남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3. 당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하여 갖는 의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4. 당신의 행동이 당신 자신에 관한 당신의 의견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 당신이 만든 세계에 대하여 당신은 만족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당신이 행동하여 남에게, 당신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한 당신의 의견에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당신의 행위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 행위를 일으키고 의도와 결심을 행동으로 바꾸는 내적 심리요인은 의지이다. 의지는 개인 안에 있는 중요한 책임 있는 원동력이다. 비록 현대의 분석적인 메타심리학이 우리 행동에 대한 무책임한 원동력(즉, 무의식적 동기와 충동)을 강조할지라도, 우리가 변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의지에 대한 개념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변화에 대한 이해는 어려울 것이다.
* 치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환자의 속박된 혹은 억제된 의지의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돕는 일이다.
* 치료자의 목표는 환자가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전제들 가운데 하나, 여럿 또는 전부를 수용하는 지점으로 환자를 인도하는 일이다.
1. 오직 나만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2. 변화하는 데 위험은 없다.
3.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나는 변화해야만 한다.
4. 나는 변화할 수 있다. 나는 잠재력이 있다.
* 오직 수용과 신뢰의 맥락 속에서 해석이 전달될 때만 효과가 극대화된다.
* 집단은 명확한 경계가 있는 공간, 즉 방문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만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 집단의 이상적인 좌석 배열은 원형 구조이다. 치료자는 집단원이 나머지 집단원들을 볼 수 없는 배열은 피해야 한다.
* 치료자는 집단 모임 시에 될 수 있으면 중단되는 시간이 없게 해야 한다.
* 치료자는 신속함의 모범을 보여야 하며, 각 모임을 정시에 시작해야 하며 정확한 시간에 마치는 것도 중요하다.
* 높은 수준의 집단인 경우에 나는 모임에 늦게 오는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방침을 여러 해 동안 사용하였다.
* 모임이 끝나기 전에 집단원들이 이탈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하다.
* 환자들은 치료자의 확고한 중재를 받음으로써 더 안심하게 될 것이다. 종종 어떤 환자들은 치료자의 단호한 행동으로 인해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환자들의 반응은 그 사건 및 그 사건에 대한 치료자의 반응을 토론하는 과정에서 개선된다.
* 환자와 치료진 간의 기대 불일치는 필연적으로 절차상 요구되는 것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것이 특히 단기치료에서 중요하다.
* 실제 정신치료를 할 때 치료자는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불안은 치료 모델이 제공해 주는 구조를 통하여 훨씬 줄어들게 된다. 어떤 치료모델이냐보다는 치료 모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
* 치료자는 각 집단원의 자율적인 기능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집단을 구조화해야 한다.
* 치료자가 행동하는 방식을 환자들이 모방하는 것이 집단 규범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방식 중의 하나이다.
* 많은 집단 치료자들은 각 집단원에게 병원에 왜 왔는지를 간략히 물어보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면 불이익이 많은데, 그 한 가지 이유는 환자가 자신이 입원하게 된 이유로 생각하는 것이 치료집단에서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상용되는 또 다른 방식은 치료자가 단순히 각 개인에게 그날 느끼는 방식에 대해 물으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각 환자와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집단 구성원의 전반적인 정서 상태에 대한 느낌을 파악할 수 있게 하지만, 종종 집단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한다. 즉 모임의 나머지 시간에 대한 어떠한 청사진도 제공해 주지 못하며, 환자들이 불행감을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한다. 회기를 시작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은 각 환자에게 집단에서 다룰 개인적인 의제를 간단하게 정리하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나는 집단원들에게 대인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의제, 그리고 가능한 경우 그 회기의 집단 모임에 참석한 한 명 이상의 집단원들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는 대인관계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의제를 만들라고 권한다.
* 많은 환자들의 경우, 의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주요 치료 활동이다.
* 의제 정리에는 세 단계가 필요하다.
1. 환자는 자신이 바꾸고 싶은 어떤 중요한 개인적인 면을 찾아내야 하며, 그 면은 현실적이어야 한다. 즉 그 개인적인 면은 쉽게 바꿀 수 있어야 하며 치료 집단 방식에 적합해야 한다.
2. 환자는 자신의 불만을 대인관계와 관련된 용어로 표현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3. 환자는 대인관계에 대한 불만을 지금 당장 나타나는 결과가 있는 것으로 변환해야 한다.
* 환자를 덜 짜증나게 만드는 유용한 한 가지 기법은 환자가 진행 과정을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환자와 함께 대화하면서 "제가 너무 괴롭히고 있죠?"라든가 "제가 너무 심하게 압박하고 있나요?"라고 한 번 이상 물어보라. 그렇게 하면 환자에게 자신이 상호작용을 통제한다는 느낌과 자신이 정말로 원하면 그만둘 수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 의제 발표하기는 각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돕는 활동으로 구성할 수 있다. 치료자는 의제의 그 부분을 강조하여 저항을 우회하고 치료를 위한 연대감을 만든다. "자신을 위하여 무언가를 요청하세요".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세요", "더 이기적이 되세요" 또는 "자신을 가치있게 여기고 자신을 더 많이 돌보는 것을 배우세요" 와 같은 권고는 기본적으로 환자를 매우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 권고는 모두, 치료자가 환자가 가치 있으며 돌봄과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치료자가 의제를 표현하라고 압력을 가해도 방어적이 되지 않는다.
* 치료자가 집단원들이 모든 관련 정보를 집단으로 가져올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는 사실을 가능한 한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이것이 집단 외 교제를 금지하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현명한 과정이었다.
* 문제를 보여 주는 훨씬 더 실질적인 방법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과 긍정적인 감정 모두에 대해 더 솔직하고 직접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는 다소 불쾌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대방에게 더 귀중한 것일 수 있는 장기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이것을 확신하는 집단원들의 경우 치료자에 대한, 그리고 치료 방식에 대한 상당한 믿음이 확립되어야 한다.
* 많은 집단원들의 가장 기본적인 걱정은 죽어 가고 있다는 두려움, 유한한 존재이며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두려움뿐만 아니라, 죽음에 수반되는 매우 극심한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다.
* 집단을 죽어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집단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집단이 죽어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의사들이 환자를 더 많이 추천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죽음에 당닫ㅇ하게 맞서게 되면 많은 환자들이 발병하기 전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풍요로운 존재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환자들은 인생에 대한 관점이 극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고한다.
* 우리는 상실, 고통 또는 감정적인 카타르시스에 머무르기보다는, 성장, 자신에 대한 지식, 실존적 책임 등에 초점을 두었다. 침묵과 사별의 외로움을 다루기보다는, 테니슨의 표현대로 '삶의 소음이 다시 시작'되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였다.
* 좋은 치료는 항상 현실 검증과 개인적 깨달음을 수반한다.
* 나는 심리치료 실제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두 가지 기본 명제를 제시하려 한다.
1. 삶과 죽음은 상호의존적이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삶의 표면 밑에서 끊임없이 윙우이 소리를 내고 경험과 행동에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2. 죽음은 불안의 가장 근원적 요소이고, 따라서 정신병리의 주요 원천이다.
* 치료자는 특히 환자의 삶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발생한 주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숨어 있는 실존적 불안에 대한 방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별거나 이혼이 이러한 사건에 대한 예이다. 이러한 경험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치료자들은 종종 전적으로 고통 경감에 대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실수를 범하고 더 깊은 치료를 위해 나타나는 풍부한 기회를 놓치곤 한다.
* 집단치료는 특히 자기애적 내담자에게 잘 맞는다.
* 자기개방은 성공적인 집단 심리치료를 위해 핵심적인 부분이며, 치료자는 어떻게 자기개방을 촉진시키는지, 어떻게 자기개방의 위험을 최소화하는지, 어떻게 집단을 유용하고 치료적인 자기개방으로 이끌어 가는지 등 자기개방의 모든 측면을 잘 다룰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달라"는 책임 회피를 위한 말이다.
* 내가 가진 근본적인 임상적 가설-나의 치료 기법이 근거를 둔 가설-은 삶의 모진 사실, 즉 주어진 실존을 극복해 보려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노력에서 근본적 불안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네 가지 주어진 실존(죽음, 불안, 소외, 무의미)이 특히 심리치료와 많은 관련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가 불가피하게 죽는다는 것, 우리의 의지대로 우리 삶을 만들어야 할 자유, 궁극적으로는 혼자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삶에서 그 자체로 분명한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 죽음이 임박한 암 환자들과의 여러 해 동안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완화시키는 두 가지 강력하고 일반적인 방식을 발견했다. 이 두 가지 신념 혹은 망상은 안전감을 제공한다. 하나는 '개인적으로 특별하다'는 신념이고 다른 한 가지는, 궁극적인 구원자에 대한 신념이다.
*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은 이 전문 영역에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다. 치료자들은 갈팡질팡하고, 즉흥적으로 대처하고, 방향을 찾아 헤맨다. 학파의 이념과 견고한 치료적 체계를 가진다면 확실성을 얻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매우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오히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필수적인 불확실하고 자발적인 만남을 막아 버린다.
* 일반적으로 해결보다 문제를 더 일으키지 않는 한, 그리고 대신할 더 나은 무언가가 있지 않는 한, 방어를 파헤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 치료 과정은 정서환기(affective evocation)와 정서통합(affect integration)이 번갈아가며 연속되는 것이다. 강력한 정서들-짜증, 공포, 흥분, 증오 등-이 회기에서 경험된다. 그러고 나서 내담자와 치료자는 그러한 정서들을 살펴본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국민도서관을 통해 대여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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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제일 좋아하는 임상가 중 한 명인 Irvin D. Yalom의 고전 '실존주의 심리치료(Existential Psychotherapy, 1980)'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박하게 평가했냐 하면 번역으로 '똥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월덴 3의 심리학 카테고리에 있는 책들은 이렇게까지 엉망인 경우가 별로 없는데 이 책은 2008년 8월에 소개한
'프로이드와 인간의 영혼(2001)'보다 더 형편없습니다. 그 때도 엉망진창인 번역 때문에 제가 게거품을 물었는데 이 책은 그보다 한술 더 뜹니다. 제가 웬만하면 분노를 잘 안 느끼는 편인데 이 책의 번역가는 정말 밉더군요.
아주 대놓고 직역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얄롬이 다른 저작에서 얼마나 글을 쉽게 써왔는지 아는 저로서는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얄롬이 쓴 책들은 월덴 3에서도 자주 소개했으니 한번 확인해보세요.
게다가 이 책은 실존주의적 접근을 따르는 임상가들은 반드시 봐야 하는 책인데 이런 책을 망쳐놨으니 이걸 대체 어떡해야 합니까?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는 죽음, 자유, 소외, 무의미, 이 4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현재가 되어가는 미래(future-becoming-present)를 주요 시제로 다룹니다.
특히 얄롬은 죽음의 의미에 주목하면서 죽음을 불안의 가장 근원적인 요소이고 정신병리의 주된 원천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은 '삶의 우선권을 재조정'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며 '바로 지금이라는 삶의 향상된 감각'을 느낍니다. 얄롬은 죽음을 직면하게 된 사람들이 보이는 치유의 힘을 깨달았던 것이죠.
죽음과 삶은 상호보완적인데 인간은 보통 죽음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억압합니다. 죽음의 육체적 성질은 우리를 파괴하지만 죽음에 대한 사상은 우리를 치유할 수 있다고 얄롬은 보았죠. 그는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면 삶의 관점에 대한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더 본질적인 삶의 유형으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에 죽음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적으로 몇 안 되는 죽마고우 중 하나인 술 친구를 잃었던 경험과 제가 상담하던 내담자가 충동적으로 자살했던 경험을 하고 난 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저로서는 기존에도 실존주의적인 접근에 끌렸지만 이후로 좀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실존주의적 접근에 대해 다룬 좋은 자료가 있으면 자주 소개하겠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필요한 책이었는데 원서로 다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을 계획이 있는 분들께도 원서 강독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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