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가 잘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이건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경우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하는 것 이외의 다른 스트레스가 없는 부인의 경우 반응성 우울증의 원인으로 남편의 구타에 주목하고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 원인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원인 찾기에만 집중하면 상담자의 관심 영역이나 상담자가 유능한 영역의 문제만 선택적으로 찾아서 거기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부터 자꾸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어요'라고 내담자가 호소한다고 가정해보죠.
어떤 치료적 접근법을 따르는 상담자냐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영역이 달라질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최근에 발생한 스트레스 상황을 분석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어렸을 때 경험했던 트라우마를, 누군가는 애착 관계를 비롯한 대상 관계를, 누군가는 정신 병리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설정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그 원인에만 집착하게 되면 상담의 폭이 지나치게 넓어지고 깊이있는 상담이 어려워집니다.
무엇보다 원인 찾기는 행동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인데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을 상담자가 고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과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밀어닥치는 문제에 대처할 여분의 에너지가 없어서 문제가 심화되거나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상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무조건적인 원인 찾기에 매진하기보다는 문제 해결 중심적인 접근을 주로 하면서 상담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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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박 중독자를 치료하는 초기에 심리적인 문제를 꼼꼼히 살피는 편입니다.
그래서 MMPI-2를 비롯한 다양한 심리평가 도구를 사용해 도박 중독자가 기타 중독, 우울 장애, 불안 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문제를 겪고 있지는 않은 지 평가하고 해석 상담도 꼭 합니다.
물론 현장에서 실제로 보면 교과서에서 보듯이 도박 중독자에게 공존 질환이 높은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문제를 반드시 평가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만에 하나 놓친 심리적 문제가 재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울 장애가 기저에 있는 사람의 치료 목표를 도박 중독에만 맞출 경우 설사 그 목표가 달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우울 장애에 의해(우울한 기분을 잊기 위해 다시 도박을 하는 등) 재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도박 중독 치료는 도박 중독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도박 중독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치료에 있어서도 다양한 재발 요인을 꼼꼼히 챙겨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가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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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저는 다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임상/상담을 전공하는 많은 분들이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또는 그런 경험을 다른 분들과 나누거나 이를 발판으로 도움을 주기 위하여 이쪽 분야를 선택하곤 하는데 저는 그런 경험이 중요할 뿐 아니라 어찌보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간혹 임상/상담을 전공하는 분들의 블로그에 놀러가서 포스팅한 글을 읽거나 제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경험을 handicap으로 생각해서 자신감을 잃거나 위축되는 분들이 있던데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직까지 개인 분석과 심층 상담을 받아보지 않아서 저도 모르는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거나 의식적으로는 별다른 심리적 상처와 트라우마가 없다고 느끼는데 그래서 그런지 특정 영역을 다룰 때에는 '이거 정말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구만'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깊이와 성찰이 부족한 접근을 할 때가 많아요.
심리적 문제를 극복한 경험, 또는 극복하는 과정에서 느낀 소중한 일들이 상담자의 개인적 성장 뿐 아니라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상담을 끌고 나갈 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겸손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오만하게 생각하는 상담자일수록 내담자를 위에서 내려다 보려고 할 것이고 그럴수록 진심어린 공감과 경청은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개인적인 상처와 문제를 극복했거나 지금 열심히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상담자분들, 힘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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