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을 당시만 해도 심리평가보고서에 긍정적인 내용을 담는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는 수검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필요한 경우 정확한 변별 진단을 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수검자의 심리적 자원이나 긍정적인 가치관, 태도, 대처 양식 등을 찾을 생각도 안 했고 설사 검사 sign을 통해 어렵사리 발견했다고 해도 보고서에 수록하려는 노력조차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을 병리적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반성과 함께 긍정 심리학의 영향으로 인해 수검자의 긍정적인 자원을 찾아내는데 관심을 갖는 임상가의 수가 점차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수검자의 핵심 문제도, 긍정적인 자원도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쓰여진 심리평가보고서가 가장 잘 쓴 보고서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더라도 막상 써 보면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그럼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는 건 결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밍밍한 보고서가 되기 일쑤입니다. 왜냐하면 문제를 날카롭게 드러내자니 수검자가 받을 상처가 신경쓰여 두루뭉술하게 기술하기 쉽고 잘 보이지도 않는 수검자의 심리적 자원을 억지로 찾아내 적자니 평가자 스스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다 수검자의 비위나 맞추는, 아부하는 보고서를 쓰는 것 같은 찜찜한 불편함이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임상가 중에도 수검자의 심리적 문제를 잘 찾아내는 평가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긍정적인 부분을 더 잘 발견하는 평가자도 있거든요. 둘 다 잘하는 평가자보다는 어느 한 쪽에 특화된 평가자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둘 다 확실히 잡을 수 없다면, 차라리 어느 한 쪽을 확실히 하는 방식으로 연습하실 것을 권합니다.
아니면 자신이 주로 활동하는 영역에서 필요한 기술 방법을 우선적으로 확실히 마스터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장애 진단을 비롯해 정확한 문제 양상 파악 및 원인 확인이 필요한 분야(대개 병원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어설프게 긍정적인 내용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수검자가 고통스러워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러한 고통감에 영향을 미치는 잠정적인 변인들은 무엇이 있는지, 예후는 어떻고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 등에 확실하게 초점을 맞추는 게 더 낫습니다.
이와 달리 수검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병리 정도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관계 갈등 등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하는 수검자를 많이 만나는 분야(일반적인 상담 장면)라면 상담 효과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내담자의 긍정적 심리 자원을 찾아내기 위해 주력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솔직히 긍정적인 것보다는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해서 진입로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내는 데 좀 더 익숙한데(아무래도 수련 환경의 영향이 크겠지요), 그러면서도 주로 몸 담고 있는 분야는 상담이라서 둘 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쓰고 있습니다만 심리평가를 하는 임상가라면 자신이 주로 일하는 영역과 어떤 내용을 찾아내는 데 특화되어 있는지 점검해서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방향을 잡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른 포스팅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것 같은데 단점을 극복하는 것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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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6년 전 쯤에 포스팅한
'심리평가에서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찾아내는 것의 중요성'이라는 글에서 임상 심리 파트의 수련 과정이 수검자의 문제점을 골라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정작 현장에 투입되어 심리치료나 상담을 진행해야 할 때 꼭 필요한 장점과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검자의 장점과 건강한 심리적 자원은 어떻게 찾아낼 수 있는 걸까요? 검사를 할 때마다 '이 수검자의 장점은 뭐지? 어떤 자원이 있는 걸까?'하고 고민만 하면 찾아낼 수 있는 걸까요?
물론 그런 조망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수련 과정이 문제점만 찾아내는 것에 온통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개인이 그런 마음만 먹는다고 그게 쉽게 되나요?
하지만 몇 가지 도움이 되는 실천 방법은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꼭 필요한 건 평가자가 수검자를 상담 또는 심리치료를 직접 하는 겁니다. 이것만큼 수검자의 장점 찾기에 도움이 되는 연습은 없습니다. 얼핏 보면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심리치료/상담을 하려면 내담자의 장점과 자원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치유 효과를 가져오는 건 바로 그거거든요. 그러니 자신이 평가한 수검자를 상담/심리치료를 한다고 하면 심리평가를 할 때도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실질적으로는 좀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이, 심리평가를 담당하는 임상가가 심리치료와 상담까지 원 스탑으로 진행하는 기관이 많지 않죠. 오히려 요즘 추세는 분업화를 통해 상담자와 평가자, 사례관리자를 엄격히 구분하는 겁니다(물론 저는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만).
그래서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평가자가 심리치료나 상담까지 진행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자신이 심리평가만 실시하고 상담이나 심리치료는 다른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는 최소한 평가자가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해야 합니다. 임상심리 파트의 수련 과정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해서 의뢰자(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회복지전문가, 정신보건전문간호사 등)에게 넘기고 난 뒤를 가르치지 않는데 수검자의 문제점으로 빼곡한 심리평가보고서를 들고 해석 상담을 하는 곤혹스러움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음부터는 저도 모르게 수검자의 장점과 심리적 자원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정리해보면
평가자가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해야 하는 이유는 수검자의 장점과 심리적 자원을 찾기 위한 연습을 독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상담 및 심리치료까지 진행하는 경우가 더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해석 상담만이라도 꼭 직접하도록 노력해보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도움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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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피검자의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내는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이라는 수련 환경의 특성 상,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제를 찾아내는 훈련만 집중적으로 받게 되기 때문이죠. 거기에 치료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배제되는 우리나라 임상 현실이 반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전문가가 된 이후 심리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발생합니다. 심리평가도구를 이용해 환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진단을 하는 것에만 치중된 수련을 받은 전문가는 문제로 자신의 책임 하에 환자를 치료하게 될 때 엉킨 실타래를 앞에 둔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방법을 무작정 시도해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작 심리치료는 문제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에서 시작해야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단순 반복적인 행동 수정 기법이 효과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듯이 말이죠.
따라서 심리평가를 할 때에는 피검자의 문제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장점과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찾아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건 전통적인 수련과정에서 제공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항상 자신이 평가한 피검자를 자신이 맡아서 치료를 한다고 가정하고 그 출발점을 그 피검자가 갖고 있는 장점에 두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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