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국심리학회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실시한 세월호 참사 심리지원 관련 '재난심리 사전교육'을 다녀왔습니다.
1, 2차 교육은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에서 실시했는데 3차는 이화여대 포스코관에서 진행되었네요. 장소가 서울인데다 휴일인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습니다.
주최측이 좀 더 큰 강의장을 현장에서 긴급 섭외해서 교육 전에 옮겼는데도 나중에는 보조 의자마저도 모자랄 정도였으니까요. 그만큼 이 사안의 심각성과 심리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석자들에게는 학지사에서 한국심리학회에 기증한 '재난현장의 심리적 응급처치(권정혜, 안현의, 최윤경 공저)' 책이 무료로 한 권씩 주어졌습니다.
초반에는 재난심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현의 선생님이 재난심리위원회 활동과 관련하여 간략한 브리핑을 하셨고 이어서 이화여대 트라우마연구실의 주혜선 선생님이 '재난 및 외상의 심리적 응급처치'라는 주제로 2시간 30분 정도 강의를 하셨습니다.
중 2가 된 딸을 둔 엄마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동안(저는 처음에 학회 간사나 진행 요원 중 한 명인 줄 알았다는;;;;)이셨는데 강의 실력은 발군이고 내용도 아주 충실하고 좋았습니다. 핵심만 쏙쏙 짚어주는데다 나중에는 이완 및 grounding 기법도 실제로 시범을 보여주셔서 유익했고요. 역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분의 강의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짧은 시간에 큰 도움이 되는 강의였습니다.
청중석에 질문을 요청했을 때 재난심리위원회의 느린 행보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빨리 현장으로 가고 싶어 조바심을 내는 분들이 꽤 계시던데 개인적으로 좀 안타깝더군요.
지금의 상황은 전문 인력이 충분하다고, 치유가 급하다고 무조건 투입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특성 상 지금 투입된다고 더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작 문제는 사건 발생 4주에서 6주 이후에 터져나오게 될 테니까요. 권정혜 선생님 말씀처럼 초반에 주도권 경쟁하느라 힘 빼고 여론이 시들해지는 상황에서 모두들 물러났을 때 누가 끝까지 남아서 치유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언제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언제 나오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죠.
그리고 하나 묻죠. 어제 모인 그 많은 심리치유 전문가 중 PTSD 전문가가 대체 몇 명이나 됩니까? 당장 단원고에 파견하면 본인도 심리적으로 소진되지 않으면서 단원고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상처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죠? 의욕과 사명감 만으로 내담자가 치유됩니까?
이건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입니다. 충분히 몸을 풀고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투입되는 전문가들도 부상당하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나치게 과열된 이런 분위기가 두렵습니다. 그리고 매일 몇 번씩 제게 묻습니다.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과연 그들을 도울 능력이 내게 있는지, 모두들 등 돌리고 돌아섰을 때도 동요하지 않고 오직 내담자만 바라보면서 끝까지 그들의 손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이 내게 있는지, 그리고 짐작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난 그들의 상처에 충격받지 않고 굳건히 버텨낼 단단한 마음이 내게 있는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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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심리', '심리치료', '치유', 이런 말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민감해지곤 합니다. 저자가, 혹은 출판사가 별 의미 없이 던진 떡밥에 걸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던 상처를 받게 되는지요.
이 책도 그런 책들 중 하나는 아닌 지 끝까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읽었습니다만 지금은 날카롭게 벼린 단도를 어디에 찔러 넣어야 할 지 몰라 어리둥절한 마음이 듭니다.
심리치료와는 별 상관없는 미술사 전공자인 저자가 다양한 서양화와 함께 풀어내는 잃어버린 나를 찾는 법,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사랑하는 법은 딱히 복잡한 심리학 이론을 찾을 것 없이 복잡한 일상과 사람에 치여 퍽퍽해진 마음을 차분하게 달래주는 맛이 있습니다.
이 책은 지나치게 심각하게 무게 잡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잘난 척하지도 않으면서(원래 이런 류의 책은 자칫하면 저자가 잘난 척 하기가 쉬운 법인데)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묘한 느낌이 은근히 좋습니다.
그림을 보고 글을 썼다기보다는 글에 필요한 그림을 찾아서 짝을 맞추어 놓은 느낌이 더 강하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요? 좋은 그림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 덤이 될 지, 아니면 주가 될 지는 보는 사람의 몫일 겁니다.
필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소탈하고 담백하게 느껴집니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제목을 가장 잘 지은 책인 것 같습니다. 마음을 그림에 내려놓는다는 의미도 되고, 그림을 보면서 마음을 놓게 된다는 의미도 되니 참으로 절묘한 제목이 아닐까요?
유일한 단점은 12,800원이라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가격입니다. 저작권이 있는 그림들을 실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만 그래도...
그래서 북 크로싱합니다. ^^
그림과 함께 하는 잠깐의 휴식이 절실히 필요한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림도 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글도 읽고,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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