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노파심에 말씀드리는데 이 포스팅을 '심리학 일반' 카테고리에 올리기는 하지만 주된 내용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에 기반한 것이고 심리학과는 거의 상관이 없으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으세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지면 악한 사람들이 더 활개를 치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끔찍한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날겁니다. 그래서 이런 험악한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중요하죠. 제 생각에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경험을 많이 해 보는 방법
: 소위 몸으로 때우는 방법인데 경험을 많이 하면 그만큼 경험치가 쌓이고 그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무식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를 잘 한다는 건 자신에게 맞는 좋은 사람과 사귀게 된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연애를 많이 해 보면 자신과 맞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길러지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경험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쌓이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초보일 때 극악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거든요. 아무에게나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암벽 등반에 도전할 때 장비부터 짊어지고 무턱대고 산에 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의 지도를 받거나 최소한 동호회라도 가입하여 선배 고수를 눈동냥하죠. 마찬가지로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는 기질의 소유자라고 해도(그렇다면 더더욱) 사람 만나는 걸 조심해야 합니다. 열 명이 괜찮았어도 한 명이 psychopath라면 엄청난 trauma를 경험할 수 있고 심하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2.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 어려운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낫습니다. 왜냐하면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당연히 좋은 사람이 눈에 들어오거든요. 사실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저절로 알게 되는 것에 가깝지만요. 정확하게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알게 되는 겁니다만. 이와 비슷한 의미로 포스팅했던
'화분이 쓰레기통과 어울릴 수 없는 이유'라는 글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쓰레기통을 피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화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고 그 사람과 자동으로 친하게 되거나 사귀게 되는 건 아닙니다. 그건 또 다른 영역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최소한 나쁜 사람과 엮여서 사기 당하거나 마음 상하는 일은 없어집니다. 그야말로 세상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지는거지요.
그렇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남는데 바로 위 '화분이 쓰레기통과 어울릴 수 없는 이유'와 그 포스팅에 링크한
'쓰레기통을 비우지 말고 화분을 가꿔라'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주변의 쓰레기통부터 정리하고 적극적으로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변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면 자신을 철저히 외롭게 만들고 남는 시간에 자신과 최대한 많이 대화해야 합니다. 산책을 하든, 명상을 하든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 하는 거죠. 혼자 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어쨌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면 그걸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자신의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삶의 목표와 가치관, 태도가 정립되게 될텐데 그런 실존적인 영역이 정리되면 더 이상 쓰레기통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흔들림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정리해 보자면, 주변의 쓰레기통을 최대한 치워라(이 때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마음이 불편한 건 무조건 멀리해야 함), 철저히 혼자가 되어 외로움과 익숙해져야 한다, 방법을 가리지 말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야 한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그 다음은 모든 게 자동으로 정리가 될 겁니다. 자신이 꽃이 되고 나면 절대로 똥파리가 꼬이지 않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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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년 6개월 전에
'쓰레기통을 비우지 말고 화분을 가꿔라'라는 제목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포스팅 한 적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결과적으로 행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그러지 말고 화분을 가꿔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오늘 글은 그 포스팅과 연결되는 내용입니다.
일단 화분이 되고 난 뒤에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일 것 같지만 단기간에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쓰레기통이었을 때 만났던 오랜 절친이 아직도 쓰레기통이라면 스스로 화분이 되고자 할 때, 혹은 화분이 되고 난 이후에 그 친구를 만나는 시간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럽게 됩니다. 그렇다고 헤어지자니 그동안 쌓은 추억과 정이 만만치 않거든요.
그래서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고 찾아보지만 그 친구가 함께 화분으로 바뀌지 않는 한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화분은 쓰레기통과 어울릴 수 없어요.
왜냐하면 화분이 되고 난 이후에는 쓰레기통이 하는 말에 맞장구를 치는 법 자체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가 자신의 결혼 생활이 얼마나 불행한 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 지, 남편은 왜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지 하소연을 늘어놨다고 해 보죠. 내가 같은 쓰레기통이라면 맞장구를 치는 방법은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더 불행하다"며 자신의 불행담을 늘어놓는 겁니다. 불행을 경쟁하듯이요. 그게 쓰레기통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화분은 일단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불행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 너 참 힘들겠구나"라고 동정이나 위로를 하고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조언하지만 쓰레기통이 원하는 건 그런게 절대로 아닙니다. 쓰레기통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잘 버티고 살고 있으니 너 참 대단하다는 칭찬이거든요.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예전처럼 나도 힘들다고 푸념을 하면 될까요? 그것도 안 됩니다. 화분이 불행을 하소연하게 되면 상대방 쓰레기통은 위로는 커녕 고소해하거나 즐거워합니다.
이건 쓰레기통이 남의 불행을 기뻐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불행을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의해서만 판단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점이 완전히 다른 거지요. 화분은 상대방이 하는 말에 초점을 맞춥니다. 상대방이 기뻐하면 축하해주며 함께 기뻐하고, 상대방이 힘들다면 위로를 건네고 고통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지만 쓰레기통은 자신이 하는 말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쓰레기통이 힘들다고 할 때는 위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극복담을 칭찬받고 싶어하고 자신이 기쁘다고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질투하기를 바랍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상대방이 행복해 하면 질투심에 차서 흠집을 내거나 저주를 하고 상대방이 힘든 점을 이야기하면 상대적으로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에 고소해하는 거지요.
그러니 화분의 입장에서는 쓰레기통을 만나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즐거운 이야기를 하든 힘든 이야기를 하든 아무런 위로나 공감을 얻지도 못하며 상대방 쓰레기통이 즐거운 이야기를 하든 힘든 이야기를 하든 덫에 걸린 것처럼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화분은 쓰레기통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화분은 화분과, 쓰레기통은 쓰레기통과 어울릴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관계라면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한 방법인데 거리를 두는 것 마저도 쉽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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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현장에서 많이 쓰는 말로 ventilation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정확한 용어는 emotional ventilation이 될텐데 이를 줄여서 그냥 ventilation이라고들 많이 사용하죠.
환기라고 번역하면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딱 들어맞는 말은 아니지만 발산의 의미로 많이 씁니다.
부정적인 정서를 계속 억압하면 좋지 않기 때문에 건강한 방법으로 적절히 ventilation을 시켜야 한다고 하죠. 그래서 흔히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서 남편 흉보고, '시월드' 욕하면서 발산을 해야 건강에 좋다고 생각합니다(비하의 의도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예임).
그런데 그렇게 발산을 하면 정말 정서적으로 건강해질까요?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위에서 이야기한 ventilation을 '쓰레기통 비우기'에 비유합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꽉 차면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쓰레기통을 비워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 쓰레기통을 들고 나와 한 자리 모여 비웁니다. 쓰레기통을 비우고 나면 잠시동안 후련하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래봤자 쓰레기통은 쓰레기통입니다. 쓰레기통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쓰레기가 가득차게 되고 또 모여서 비워야 합니다. 이런 과정의 무한반복이죠.
언제부터인가 주기적으로 만나서 수다떠는 친구들이 부담스럽고 맨날 똑같은 레퍼토리로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것이 소모적이고 지겹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으십니까?
그런 분이 있다면 그것이 쓰레기통 비우기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통 비우기는 해결책이 아닐 뿐더러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효과도 전혀 없습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쓰레기통 비우기를 하러 나오는 친구 중에 행복한 사람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행복한 사람은 쓰레기통 비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혹시 있다면 친구들이 쓰레기통을 비우는 동안 별 말 없이 묵묵히 듣고 있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일겁니다.
무의미한 쓰레기통 비우기를 그만두려면 쓰레기통을 화분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을 심었는지, 뭘 심어보니 좋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서로 자신의 화분을 자랑하고 상대방이 가꾼 식물을 칭찬하고, 그렇게 가꾸는 노하우를 배우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쓰레기통을 비우려고 만나자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화분을 가꾸는 사람들을 가까이에 두세요.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는 걸 비난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세요. 그 사람은 평생 화분을 가꾸는 즐거움을 모를 사람입니다.
우리는 쓰레기통을 비우려고 사는게 아닙니다. 화분에 예쁜 꽃을 가꾸기 위해서, 그게 행복해서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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