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중독자의 가족이 쉽게 걸리는 대표적인 '병'으로는 '의심병'과 '조급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도박자에게 자신이 의심병에 걸렸다고 이야기하자'라는 글에서 다룬 바 있죠.
오늘은 가족 중에서도 콕 집어 도박 중독자의 아내에게 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합니다. 남편이 도박에 중독된 주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과도한 귀인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죠. 이는 '당신이 하도 돈 돈 하면서 바가지를 긁어서', '당신이 내조를 엉망으로 하니'와 같은 도박 중독자의 책임 전가로 인해 더욱 악화됩니다. 특히 도박 중독의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는 아내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박 중독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라서 어느 하나의 원인만 갖고 설명할 수가 없죠. 따라서 아내가 이렇게 저렇게 했다고 해서 남편이 도박에 중독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부적절한 죄책감과 적절한 죄책감의 차이는
'적절한 죄책감과 부적절한 죄책감'이라는 글에 정리해 두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지나치게 희생적입니다. 이건 첫 번째 문제인 부적절한 죄책감과 결합하여 나타날 때 더욱 강력해지는데 남편이 도박에 중독된 원인을 자신이 제공했다고 잘못 원인 귀인을 하게 되니 도박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모든 시간, 역량을 쏟아 붓는 겁니다. 도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자체는 좋습니다만 문제는 지나치게 희생적인 아내는 노력 자체에만 치중한 나머지 치유의 원칙들을 지키면서 균형을 잡는 걸 잘 못합니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자가 자신의 행동 결과를 책임지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대위 변제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러한 대위 변제 절대 금지 원칙과 도박 빚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충돌할 경우 우선 순위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의도와 달리 반치유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죠. 특히 지나치게 희생적인 아내는 도박 중독자와 상호의존(co-dependence)된 경우가 많은데 이 문제 또한 꼭 해결해야 합니다.
셋째,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편이 도박에 중독되기 이전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도박에 중독되어 문제가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는지는 구분하기 쉽지 않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정도의 상태에서 보면 더 이상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말이 더 맞겠네요. 그래서 자신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한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여가 선용은 사치이고, 대인 관계는 끊겼으며 쇼핑이나 외식과 같은 사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것조차 어려워합니다. 그러니 인생에 즐거운 경험이 언제인지, 과연 있기는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태가 됩니다. 당연히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할수록, 지나치게 희생적일수록 자신을 위한 투자나 위안은 뒷전으로 밀리게 됩니다. 이 세 번째 문제가 심할수록 기분 부전 장애(Dythymic Disorder)나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로 진단될 가능성이 커지며 아내 본인 뿐 아니라 도박 중독자와 다른 가족들의 치유도 요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도박 중독 치유와 관련해서 기둥의 역할을 하는 존재가 바로 아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은 과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제가
'지금은 각자의 성을 돌볼 때다'라는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무엇보다 자신을 위한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안합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부적절한 죄책감이 강하고, 지나치게 희생적이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아내는 개인주의자가 되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적어도 이기주의자가 될 정도로 자신의 성에만 온전히 투자해야 겨우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는 수준이죠.
사실 위의 문제들이 있는 아내가 제아무리 이기주의자가 되겠다고 노력해봤자 개인주의자가 되는 것 마저도 쉽지 않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덧.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에 대해서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자신이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이 두려운 분들은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를 구분하는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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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도박 중독자인 경우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아내가 많습니다.
도박자가 치료를 거부했다면 모르겠지만 순순히 치료에 응해온 도박 중독자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사이고 배우자가 자신을 벌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일견 불합리하고 불공정해 보이는 아내의 이러한 처사에 대해 도박 중독자가 먼저 헤아려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자녀를 시댁에 데려가지 못하게 하는 배우자의 행동은 도박 중독자에 대한 벌의 의미가 분명 있습니다. 도박에 빠져 있을 때 자신과 자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으면서 막상 정신이 돌아와 근시안(tunnel vision)에서 벗어나고 어른들에 대한 도리를 다 하겠다고 뒤늦게서야 나서는 도박자가 밉기 때문에 제동을 거는 것이죠. 특히 도박자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나 가시적인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 아직 도박자를 신뢰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치료에 박차를 가하라는 의미에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자녀를 데려가지 말라고 딴지를 거는 겁니다. 그래서
'도박과 관련 없어 보이는 행동들이 가족의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이유' 포스팅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단순히 도박을 하지 않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우자의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지기 위해 가시적인 행동들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이유가 다가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시댁에 자녀를 데려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강경한 배우자일수록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부모님들에 대한 원망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도박 중독자의 부모가 며느리에게 하는 행동 패턴' 포스팅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박 중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닦달함으로써 과중한 스트레스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뒷짐지고 물러나 있어 자신이 도박 문제의 피해를 몽땅 감당하도록 수수방관한 시댁 식구들이 그래도 손주는 보겠다고 데려오라는 꼴이 미운 것이지요. 이러한 시댁의 요구를 뻔뻔스럽다고 지각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도박 중독자는 자녀를 본가로 데려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배우자를 윽박지를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배우자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집중하고 배우자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당분간 기다려 달라고 본가의 식구들을 설득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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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실락원'으로 유명한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책이라기에 나름 기대를 갖고 봤는데 대실망입니다. 뭐 '섹스'와 '외도'에 대한 이야기가 전체 분량의 1/4이니 와타나베 준이치가 쓴 책은 맞는 것 같습니다(웃음).
남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세상의 아내(엄밀히 말하면 일본의 아내)에게 알리기 위해 써서 그런지 정작 남편인 제 입장에서는 뻔한 내용들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도 많아요. 남자와 여자의 입장을 완전히 반대로 써 놓은 것(대표적인 것이 '대화는 싫고 혼자 떠드는 것은 좋다'의 내용)도 있습니다.
도무지 남편이라는 족속들에 대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여성들에게는 뭔가 읽을거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불만스럽게도 이 책은 남편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습니다. 그냥 남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수준이고, 몇 군데 왜 남자가 그런 행동을 보이는가에 대한 설명도 그저 저자의 추측이나 공상 수준입니다. 게다가 그러니 남편들이, 아내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요. 풍기는 뉘앙스는 남편이라는 것들은 원래 그런 것들이니, 아내가 이해하고, 보듬고해야 한다고 징징거립니다.
그래놓고는 맨 뒤에서 과연 일부일처제가 좋은 결혼제도일지에 대해 고민을 해 봐야 한다고, 일부다처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지는 않더라도 아이를 낳는 것까지 허용하자는 식으로 슬그머니 주장("따라서 이보다 현실적인 것은 가정이 있는 능력있는 남성의 애인으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되는 것으로, 이러한 사례는 전통적인 윤리관이 약해짐에 따라 조금씩 용인되는 분위기다" - 288p 일부 인용)을 하네요. 아항 이 이야기를 꺼내려고 남편은 외도를 해도 결국은 돌아오지만 아내는 외도를 하면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는 복선을 미리 깔아놓으셨군요. 와타나베 준이치 선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쓰신 건지...
베이붐 세대의 황혼이혼으로 절벽으로 밀려 떨어지는 일본 남편들의 입장이 얼마나 절박하기에 이런 구차한 책까지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에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우리나라 남편들이 보고 정신 차리는데 사용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차리라는 정신은 못 차리고 위로만 받게 될 것 같아서 추천도 못 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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