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상담을 하게 된 이후 supervisee 선생님들께 지나가는 말처럼 자주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개인 감정대로만 생각하면 시험을 봐서 일정 수준을 통과한 부모만 아이를 낳도록 허용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에서 무슨 망발이냐고 나무라실 수 있지만 그만큼 자격도 능력도 안 되는 부모들이 생각없이 낳은 아이들이 지금도 받고 있는 상처와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아이를 증오하고 노골적으로 학대하는 부모가 분명히 있고 그보다 더 흔하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은밀한 학대 또한 존재하니까요.
아동을 만나는 임상가들은 미묘한 형태의 아동 학대를 탐지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 학대를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하는 심리검사 결과를 정리해 봤습니다.
* 아빠의 MMPI-2 결과
- K척도의 상승(70T 이상 또는 그에 근접하는)
- DISC 성격병리 척도의 상승
- GM, ES 보충척도의 상승
* 엄마의 MMPI-2 결과
- S척도의 상승(70T에 근접하고 K척도의 상승 보다 높은 수준)
- GF, Re 보충 척도의 상승
* 아동의 문장완성검사 결과
- 부정적 내용이 거의 없으며 특히 부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기술로 일관
위와 같은 아빠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방어적이며 가부장적인 성역할에 집착하고 고집이 매우 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는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보일 수 있지만 자기의 가치관을 가족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고 DISC 척도가 상승할 때 분노, 적대감을 측정하는 척도가 동반 상승하지 않아도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발현 가능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배경 정보에 음주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해야 하고요. 대부분의 경우 문제 인식이 없고 치유적인 개입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는 MMPI-2, SCT와 같은 검사 실시 자체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빠처럼 K척도의 상승으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지 않지만 S척도의 상승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경향 때문에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밖으로 노출하지 않으려고 감추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의 도움 호소를 무마하거나 축소하여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남편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역할만 감당하기 쉽고 원가족의 어머니에게 밀착되어 있고 어머니도 자신과 비슷한 경우 이런 성역할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학대와 관련해서는 방관자의 위치를 담당하기 때문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있도록 자아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 됩니다.
학대를 당하는 아동의 경우 부모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지능이 우수한 아이일수록 이런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경향이 일반화되면 아예 부정적인 내용의 이야기 자체를 못하게 되거나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전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신체적인 학대를 주로 당하는 아동은 가해 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드러내고 무섭다는 표현을 하거나 악몽을 꾸는 등의 증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언어적인 공격이나 정서적 방임, 지나친 기대 투사 등의 미묘한 학대를 가하는 부모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랑에 기인하는 것으로 포장하거나 스스로도 자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동을 이중 구속의 덫에 빠뜨립니다. 즉 '내 부모가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이고 부모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나서이다'라는 식으로 자기 귀인하게 만듭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고 어른이 되고 난 이후 성공 경험을 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처받은 학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 나열한 심리검사 결과는 아주 전형적인 profile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여러가지 형태의 변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위의 검사 결과를 모두 충족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부모의 아동 학대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덧.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다룬 훌륭한 참고 서적으로는 수잔 포워드가 쓴
'독이 되는 부모(2002)'가 있죠.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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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YES24
제가 지금까지 읽은 심리 문제를 다룬 소설 중 단연코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강력 추천부터 한방 날리고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 작가로 무라카미 하루키, 히라노 게이치로, 오쿠다 히데오 3명을 꼽곤 했는데 오늘부터 덴도 아라타를 추가합니다.
덴도 아라타는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본인도 그런 문제로 상처받은 기억이 있지 않나 의심될 정도로)로 가정 내 아동 학대, 성범죄, 학교 폭력 등의 사회 문제에 천착하는 작가로 하나의 작품을 쓸 때마다 모든 등장 인물과 배경, 장소 등을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설정해서 현실과 같이 만들어놓지 않으면 집필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1996년에 등단했는데도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이 몇 편 안 됩니다. 움베르토 에코와 비슷한 스타일인 것 같네요.
그 중에서도 영원의 아이는 무려 5년 8개 월이나 걸린 과작으로 작가 스스로도 상처입은 아이들의 마음을 안은 채로 축하해야 마땅할 장소에서 행복하라고 말하며 웃는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97년 경부터 집 밖으로 거의 나올 수가 없었고 긴장성 두통, 불면으로 힘들어하며 집필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악전고투 끝에 나온 책이어서 그런지 1,560페이지나 되는 엄청난 분량의 소설(2권의 하드커버)인데도 그야말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 속에서 정신없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물, 장소, 분위기의 묘사가 생생한 건 두 말 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각 등장 인물의 마음이 그대로 달라붙어 희노애락을 동일 시점에서 똑같이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걸 알고 꽤 많은 트위터 친구분들이 자신에게 치유가 되는 좋은 책이었노라고 멘션을 주셨는데 무슨 말씀인지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됩니다. 학대받은 상처가 없는 저도 치유되었거든요.
꼭 읽으셨으면 하는 대상군은 부모-자녀 관계로 상처받은 모든 분들입니다. PTSD due to Family Problem을 다루는 임상가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꼭 읽으세요.
덧. 가정 학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분들은 수잔 포워드의
'독이 되는 부모'를 읽고 나서 이 소설을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덧2. 덴도 아라타의 책은 국내에도 몇 작품이 번역되어 있지만 고독의 노랫소리, 애도하는 사람은 제가 보이콧하는 문학동네에서 출판되어 저는 읽을 수가 없네요. '가족 사냥'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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