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 저항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너드 펠티어'의 옥중 수기집인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1999)'를 북 크로싱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행한 악행의 리스트는 너무나도 길고 길지만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범죄에 대한 죄값을 치르기 위해 40년이나 갇혀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무죄가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나올 수 없다는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그럼에도 자유로움과 평안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의 영혼이 놀랍기만 하네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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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이 책은 아메리카 원주민 저항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레너드 펠티어(Leonard Peltier)'의 옥중 수기입니다.
레너드 펠티어가 누구냐 하면 1975년 2명의 FBI 요원을 암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일급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현재까지 복역하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 조직인 AIM의 활동가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으로 웃긴 게 최근 정보공개법에 의해 그 당시 파인리지의 총격전이 FBI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펠티어가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하나도 없고, 재판 당시 FBI가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들을 매수하거나 위협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는데도 세 번의 항소심과 가석방 요구가 모두 기각되었거든요. 그래서 펠티어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값을 치르고 있는 겁니다. 이런 국가 권력에 의한 범죄는 우리나라의 전매 특허이기도 하지만 미국도 예외가 아니네요.
현실적으로 펠티어가 자유의 몸이 되는 방법은 대통령의 특별 사면 뿐인데 클린턴 대통령 때는 FBI 직원과 가족들이 데모하는 바람에 무산되었고, 조지 부시 대통령 때는 아예 생각도 못했으며 그나마 오바마 대통령이 가능성이 있지만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사면할 낌새가 없죠.
미국은 평화롭게 살고 있던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피바다 위에 건설된 정복 국가입니다. 자기들 마음대로 지정 구역으로 몰아넣더니 그 땅에서 석유나 금광이 발견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땅을 다시 빼았았죠.
실제로 1877년에 미국 정부가 수 족이 살던 블랙힐 땅을 강제로 빼앗은 것을 무려 100년이 넘게 지나 대법원에서 부당하다고 판결하고 수 족에게 땅값 1,500만 불과 103년 간 이자 명목으로 1억 5백만 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지만 수 족은 돈 대신 자신들의 고향을 돌려달라고 다시 소송 중입니다.
이 책에는 레너드 펠티어가 옥중에서 쓴 시, 명상록, 회상, 영적 사색 등을 담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넬슨 만델라가 떠오릅니다. 감옥 안에서도 끊임없이 핍박당하고 암살의 위협까지 견디면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의 댓가를 치르고 있는 펠티어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그 오랜 기간동안 신체가 구속당할 때에도 인간의 영혼이 과연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는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오늘만이라도 레너드 펠티어를 생각하며 그의 육신의 자유를 희망합니다. 정의의 실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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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움에 대한 기억보다 더 큰 슬픔은 자유로움에 대한 망각이다. 그것이 가장 큰 슬픔이다
* 나는 지난 세기의 도둑들에 대해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에도 여전히 우리를 유린하고 있는 자들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매일매일 삶 속에서 토착민으로서 우리의 인간적 권리는, 혼자만 독실한채 다른 나라에게 천부인권의 도덕적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는 바로 그자들에 의해 침해당하고 있다.
*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포기할 순 없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인이듯이 오직 자유인으로서 행동해야만 생존을 보전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의 몸을 족쇄와 자물쇠로 채운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 우리의 정신, 우리의 꿈은 자유롭다.
* 죽음 속에서 삶이 나온다. 고통 속에서 희망이 나온다. 이것이 내가 긴 상실의 세월을 보내며 배운 것이다.
*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떤 대답도, 어떤 정해진 해결책도 갖고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 땅의 모든 생명에 대한 연민과 존중 없이는 우리 중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
덧. 이 책은 dung님께서 북 크로싱하는 책으로 국민도서관을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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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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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영화
일단 조니 뎁이 제가 아주 선호하는 배우는 아니라는 걸 먼저 전제하고 시작해야겠습니다. 제목도 오해할 수 있게 붙였으니;;;
왜 영화 소개글에 조니 뎁 이야기를 먼저 꺼냈냐하면 이 영화에는 헬레나 본햄 카터, 윌리엄 피츠너, 제임스 뱃지 데일, 베리 페퍼 등 개성 강하고 연기력 있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캐리비안의 해적이 사막에 간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별로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론 레인저 역을 맡은 아미 해머의 무존재감입니다. 론 레인저가 되기 전의 우유부단함과 경직된 도덕관이야 뭐 그럴 수 있다손 쳐도 론 레인저가 되고 난 이후에도 역시나 존재감이 별로입니다. 게다가 론 레인저가 되고 난 이후의 러닝 타임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클라이막스의 액션 장면을 소화하는데 모두 사용되어 주인공의 존재감을 살리는데 실패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에 중심이 없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슬픈 역사와 조니 뎁이 분한 '톤토'의 상처, 백인들의 탐욕, 정의를 수호하는 것은 법인가 주먹인가 하는 가치관 갈등에다가 액션씬까지 뒤죽박죽 뒤섞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재미 좀 봤던 고어 버빈스키 감독이 무대만 사막으로 옮겨 안전하게 가려다가 망한 작품입니다.
무려 2억 1천 5백만 불의 제작비를 쏟아 부었지만 열차 액션씬 두어 부분을 제외하고는 기억나는 장면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헬레나 본햄 카터의 섹시한 다리 장총이 더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는 조니 뎁에게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을 지 모르나 계속 비슷한 역할만 답습하면 연기의 무덤이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 개봉 예정인 트렌센던스(Transcendence)에서 꼭 부활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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