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성인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살던 단독 주택을 떠나 독립을 한 이후로 반지하 월세방 2년, 12평 다가구 1층 원룸 7년(서울 봉천동, 전세)(
'아파트가 정말 살기 좋은가요?'), 25평 한 동 아파트 16층 4년(서울 신도림, 전세), 25평 한 동 아파트 9층 8년(서울 신도림, 전세)을 거쳐 2022년 초에 34평 대단지 아파트 8층(경기도 부천시, 반전세)으로 이사해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상하지 않은 평범한 집주인들을 만나는 행운이 따라서인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몇 번 이사하지 않고 잘 살았네요.
지금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산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하다 못해 전세를 얻을 때도 대출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벌어서 아끼고 모은 돈으로 형편에 맞게 전세를 옮겨 다녔습니다. 저는 집 주인이 전세금 돌려줄 돈이 없어서 받는 전세금 반환 대출이라는 상품이 있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금이 없어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집 주인의 처지라는 걸 아무리 생각해도 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무슨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인가요. 세상이 미쳤거나 제가 바보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2006년에
'진정한 실수요자가 되겠습니다' 포스팅에서 저는 집을 투자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죠. 그리고
'최대한 남들과 다르게 살아라'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집을 사지 않고 제 집을 짓겠다는 결심을 더 늦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지어진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집을 지으려면 땅이 있어야겠죠?
그래서 집 지을 땅부터 샀습니다.
저만의 집을 짓겠다는 결심을 앞당기게 된 건 2020년 예상치 못하게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이었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해 비대면 업무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대면 업무보다 효율적이고 제 기질과도 잘 맞고 저만의 차별점을 만들 자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살아도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겠다는 자신이 생겼거든요. 이제는 서울을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고 귀농, 귀촌을 할 건 아니고 말 그대로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되 너무 오지가 아니어야 했습니다.
지어진 집을 사는 게 아니라면 집을 지을 땅을 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필지를 사서 기반 시설을 직접 인입하거나 기반 시설이 이미 갖춰진 구옥을 사서 헐고 짓는 게 첫 번째 방식인데 전자는 상대적으로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이 많이 들어서 초보자가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후자는 이미 사람이 살던 곳의 땅을 매입하는 것이니 전기, 상하수도, 인터넷 등 기반 시설이 이미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이미 사람이 거주하던 땅인만큼 이미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어 있죠. 게다가 이미 형성된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니 가능하면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고 싶은 저와는 맞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방식은 전원주택단지를 개발하는 시행사로부터 필지를 분양받는 것입니다. 가격대가 지역, 인프라, 개발 방식에 따라 다양하지만 대개는 기반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집을 짓는 것 이외에는 신경 쓸 일이 크게 없는 게 장점입니다. 대신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수 있죠.
제가 땅(정확하게는 전원주택단지의 분양 필지)을 고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서울로부터 2시간 이내 거리일 것
2. 평 당 10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3.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미 개발되어 유명한 곳이 아닐 것)
4. 기존 마을과 어느 정도 이격되어 있어 소위 시골 텃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곳
5. 근처에 공장, 송전탑, 축사, 무덤, 추모공원, 군 사격장이 없을 것
6. 수해나 산사태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곳
7. 분양 업체의 간섭없이 개별 건축이 가능한 곳
저는 아이가 없으니 학군이나 교육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없고 쇼핑을 즐기지 않으니 백화점 등이 주변에 없어도 상관없고 비건이라 배달 음식을 시킬 필요가 없고 재택 근무를 할거라서 대중 교통이 없어도 되었기에 비교적 선택지가 넓은 편이었습니다.
지역으로는 용인, 가평, 양평 정도를 고려했는데 용인은 땅값이 이미 말도 못하게 오른데다 용인의 전원주택단지는 개별 건축을 허용하는 곳이 거의 없더군요. 그래서 일찌감치 접었죠. 용인 아래 남쪽 지방은 아예 보지도 않았습니다. 기후 변화 때문에 점점 더 강해질 것이 명확한 태풍들이 지나가는 예상 길목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제주도를 포함한 바닷가 근처도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고요.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찾았습니다. 양평에 있더군요.
양평에 땅을 샀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대부분 서종면, 양서면, 옥천면 등 이미 잘 알려진 곳(두물머리 근처)을 떠올리시는데 양평군은 사실 경기도에서 가장 큰 기초자치단체로 서울시 전체보다 훨씬 더 넓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서종면, 양서면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강이 북한강이고 양서면 아래로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 남한강입니다. 두 강이 만나는 곳이 두물머리고요. 그래서 양평의 전원주택이라고 하면 서종면, 양서면, 옥천면 등이 유명합니다. 하지만 임장을 다녀보니 너무 번잡하고 어렸을 때 보던 유원지 느낌이라서 저는 싫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강뷰도, 서울과 가깝다는 것도, 편의 시설이 많다는 것도 제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조건이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서울보다 원주에 더 가까운 양동면의 땅을 샀습니다.
써니빌 양평 개발사가 분양하는 양동면의 전원주택단지입니다. 사진의 아랫쪽이 북쪽입니다.
* 특징
- 서울 잠실 기준 78km(자동차로 분당 40분, 잠실 50분)
-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형 독립 단지로 절반은 녹지 조성(총 15만 평)
- 주변에 오염 시설 또는 혐오 시설이 들어올 가능성이 없음
- 원주민 마을과 1km 이상 떨어져 있어 갈등 요소 없음
- 산으로 둘러 쌓이고 주변에 도로가 없어 어떠한 소음도 없음
- 도시형 LPG 공급으로 사실 상 도시가스와 비슷한 요금과 편의성
- 전기, 통신 지중화로 전신주 없는 마을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은 총 길이 4.3km의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어 산책길로도 그만입니다.
겨울에 찍은 단지 사진입니다. 총 200필지 중 100필지가 분양 완료되었으며 현재 20가구 정도의 집이 건축된 상태입니다. 예전에는 모동골이라고 불리던 곳인데 북쪽으로 나가는 도로가 유일한 도로입니다. 그래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조용한 마을이죠. 저 같은 은둔자에게 딱입니다.
제가 분양받은 필지입니다. 사진의 위쪽이 서쪽, 오른쪽이 북쪽인데 북서쪽으로 경사가 있어 집을 설계할 때 이를 고려하면 근사한 조망이 나올 것 같습니다. 제 필지가 가장 바깥쪽 필지라서 서쪽과 북쪽으로는 집이 들어오지 않아서 숲뷰입니다. 서쪽으로는 곧바로 산책로로 연결되고요.
저쪽 키 큰 푸른 숲 건너편이 제가 분양받은 필지쯤 됩니다. 보시는 집은 3번 필지에 건축된 집인데 서쪽으로 2번, 1번 필지가 더 있고 1번 필지가 제가 분양받은 필지와 남쪽으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땅만 구입했을 뿐 아직까지 갈 길이 멀지만 일단 내년에 설계를 먼저 할 것 같습니다. 설계도가 나와야 형질 변경도 하고 건축 허가 신청을 낼 수 있으니까요. 그동안 시중에 나와 있는 건축 관련 책은 거의 다 구입해서 읽은 것 같은데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대략의 윤곽은 이미 잡았습니다.
건축은 2025년으로 예정하고 있고 빠르면 2025년 말, 늦으면 2026년 초에 입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제 인생 최대의 프로젝트이니만큼 차근차근 그 과정을 정리해보려고 'Home Sweet Home'이라는 카테고리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재테크 카테고리에 올리려고 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재테크와는 관계가 없으니까요.
혹시라도 전원 주택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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