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에게 엄마 또는 아빠가 필요하다며 이혼을 꺼리는 내담자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믿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알고 보면 이혼의 두려움을 감추려고 자녀 핑계를 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그냥 아빠가 아니라 좋은 아빠가 필요하다' 포스팅에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자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냥 아빠, 엄마가 아니라 좋은 아빠, 엄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쁜 아빠, 엄마는 부모의 존재가 주는 안심보다 자녀에게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하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이혼을 하게 되면 편부, 편모 가정에서 자라는 게 자녀에게 낙인처럼 안 좋게 작용할까봐 이혼을 꺼리는 내담자도 많습니다. 이 역시도 이혼부, 이혼모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수치심을 감추려고 자녀 핑계를 대는 게 아닌지 먼저 따져봐야겠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혼이 나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혼보다 부부 갈등이 자녀에게 더 해롭기 때문입니다. 심하게는 부부 갈등의 불똥이 자녀에게 튀어 학대 등 가정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부모가 싸우는 모습이 자녀에게 주는 심리적 고통감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 자체가 주는 시각적, 청각적 폭력도 만만치 않지만 때로는 미성숙한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녀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모의 갈등 자체가 자녀에게는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갈등이 심한 가정의 자녀들이 신체화, 불안, 틱, 주의 집중 곤란, 강박 행동, 중독 행동 뿐 아니라 등교 거부, 품행 문제, 자해 등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고통감을 호소하는 겁니다.
부모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옥 같은 생활을 연장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혼 후 안정감을 주는 편부, 편모 가정에서 사는 게 자녀의 심리적 안정에 더 좋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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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동/청소년 심리평가를 할 때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수검 아동/청소년의 부모 모두 MMPI-2와 SCT와 같은 자기 보고형 검사지를 작성토록 하는 겁니다.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많은 기관에서 부모 심리검사를 생략하거나 실시한다고 해도 엄마만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엄마만큼 아빠도 아동/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거든요. 부모, 특히 아빠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책은 이러한 제 평소 소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여실히 증명해 주는 책입니다. 누다심 심리학 아카데미로 유명한 심리학 전도사 강현식 선생님이 쓰셨고요. 그동안 꽤 많은 책을 내셨는데 사실 이 책이 제가 읽은 이분의 첫 책입니다. 심리학 대중화를 위해 애쓰는 분이라 독자 대상이 일반인이겠거니하고 생각해서 그동안 굳이 찾아서 읽어볼 마음을 먹지 않았는데 소울메이트 출판사에서 선물로 보내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으로 기대 이상의 책이고 일반인 뿐 아니라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 임상가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입니다. 특히 예비 아빠를 포함해 아빠 역할을 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이 책은 자녀 양육은 생물학적, 심리학적, 또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 엄마가 하는 것이 맞고,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엄마가 잘못 키워서 그런 것이라는 일반 대중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자 고정관념이라는 전복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아빠가 생계를 부양하고 엄마는 자녀를 양육한다는 이분법적 구도는 산업화 때문에 생겨난 20세기 패러다임이고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패러다임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무엇보다도 대다수의 아빠들이 양육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건 생물학적으로 부족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단지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아빠는 준비된 양육자이며 오히려 엄마보다 자녀에게 더 큰 영향(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을 미치는 중요한 존재이고 게다가 자녀 양육을 통해 아빠 자신도 엄청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인들을 위해 쓴 책임에도 이 책은 1960년대에서부터 2000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합니다. 당연히 참고 문헌을 나중에라도 찾아볼 수 있도록 책 뒤에 싣고 있고요.
제가 읽으면서 인상깊게 생각했던 내용을 아래에 정리해 두었으니 일단 그걸 읽어보시면 강현식 선생님이 이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연구 결과들을 바탕으로 쓴 책임에도 딱딱하지 않고 쉽게 읽히는데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편한 책입니다. 글을 참 읽기 쉽게 쓰시네요. 즐겁고 유익한 독서였습니다.
닫기
* 사실 아빠가 자녀 양육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저 아이와 행복하고 즐겁게 함께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남편의 호르몬은 아내의 출산이 아닌, 아내의 호르몬에 따라 변화한다. 이는 남편이 아내를 통해 임신과 출산을 간접적이지만 실제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 태교는 아이에게 좋은 성격과 똑똑한 머리를 준비시키는 일종의 선행학습이 아니라 '부부'를 '부모'로 준비시키는 예비교육인 셈이다.
* 20세기 대부분 동안 행동과학 분야에서는 아빠를 연구 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연구 자체가 드물었다.
* 자녀를 돌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성별이 아니다. 부모 자체의 특성이다.
* 아빠가 친부이든 계부이든, 인종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아빠가 양육에 많이 참여할수록 자녀의 문제행동은 낮은 경향을 보였다.
* 비행 청소년이 경험했던 아빠와의 분리는 물리적이고 신체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인 측면, 즉 아빠로부터 거절당했다는 느낌이 중요하다.
* 자녀의 정신병리 중 겉으로 드러나는 외현화 문제(ADHD, 품행장애, 비행 등)가 심리적으로 겪는 내현화 문제(우울, 불안 등)보다 아빠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 자존감은 아빠와의 친밀감과는 상관이 없었고, 엄마와의 친밀감과 상관이 있었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어린 시절 타인의 반응에 근거한다. 따라서 자존감은 아이에게 칭찬하거나 혼을 냈던 엄마, 그리고 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던 엄마의 영향일 수 있다.
* 집에 와서 잠만 자는 아빠들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예 집을 떠나버린 아빠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 아이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자녀 양육에 관심이 없는 아빠라면 오히려 집에 없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다. -> http://walden3.kr/1932 참고
* 아빠 양육의 양적 측면이 아닌 질적 측면이 자녀의 적응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즉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 아니라 어떻게 보냈는지의 질이 더 중요하다.
* 엄마가 직장에 나감으로써 야기되는 자녀에 대한 시간적 소홀함은 아동 발달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 3~5세 아동은 부모가 자신 때문에 이혼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그 이상 연령의 아동들은 부모의 성격차이 같은 요인이 이혼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 부부 관계는 엄마-아이 관계보다 아빠-아이 관계에 더 체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아빠와 달리 엄마는 부부 관계에서 부정적 변화를 경험할수록 아이에게 보다 긍정적이 되며, 아이 역시 긍정적으로 엄마에게 반응하는 경향이 강하다. 엄마가 아빠의 부정적 영향력을 상쇄하고자 보상적으로 아이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 엄마가 아빠의 양육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할수록, 아빠의 양육 참여에 대해서 만족할수록 아빠들의 양육 참여가 높았다. -> 이거 중요!
* 아빠의 따뜻함은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엄마의 따뜻함은 자녀를 가족의 의사결정에 보다 많이 참여하게 만듦으로 자녀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의 싸움으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으며, 아이들 앞에서 싸웠다면 아이들 앞에서 화해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 http://walden3.kr/2492 참고
* 아빠가 아들과 따뜻하고 온화한 관계를 맺을수록 그들의 문화가 가지는 표준적인 성역할에 순응하게 된다.
* 아빠가 양육에 참여할수록 아들의 인지적 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나 여자 아이들은 전체적으로나, 사회계층별로 구분했을 때 관계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 품행 장애 아동 중 아들은 아빠와, 딸은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 말러는 대략 만 2세가 되어야 유아가 한 인격체로 탄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폭식증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거절(특히 방임과 거부)을 당했다고 더 크게 지각하고 있었다.
* 부부 갈등이 발생했을 때 아들은 부모 모두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낮아지지만, 딸의 경우는 이런 경향이 엄마보다는 아빠에 대해 더 많이 나타났다. 이는 부모의 부부 갈등으로 아빠-딸의 관계는 심하게 손상되기 쉽지만 엄마-딸의 관계는 회복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 중요한 것은 '활동'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다. -> 이거 중요!
* 남편으로서나 아빠로서 만족한다면, 직장에서 만족하지 않아도 심리적 어려움을 상당히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으로 새 책으로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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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채 성장해 열등감으로 고통받는 어른이 되었고 그러한 사랑을 대리 충족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풍족하지만 지극히 가부장적인 집으로 시집가서 자신과 똑같은 딸아이를 낳아 투사한 나머지 그 아이는 어릴 때의 엄마 모습과 똑같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아이를 상담한 실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케이스를 만나셨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아동 임상 현장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자아가 성숙하지 못하고 자아 강도도 약하기 때문에 훨씬 더 세심하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죠. 발달 수준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기술의 조율이 필요합니다.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는 상대적으로 포탄이 난무하는 피투성이의 전쟁터이기 때문에 꽃밭의 민들레 한 송이 한 송이까지 모두 살릴 수는 없습니다. 떨어지는 포탄을 막아내기에도 벅차니까요. 그런 점에서 아동의 세심한 마음을 무한 인내심으로 보듬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주 예민한 악기를 조율하는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겉으로는 아니라고 했지만 제 마음 한 구석에는 놀이 치료나 표현 예술 치료 등의 치료 기법에 대한 폄하가 자리잡고 있었음을 반성합니다. 문제는 칼이 아니라 그 칼을 쓰는 고수의 내공이었던 것인데 말이지요. 어떤 치료 기법이든지 마찬가지겠지만요.
저는 환경 개선을 위해서라도 아동을 심리치료할 때에도 부모에 대한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의 저자인 이보연 선생님은 부모의 협조 유무와 관계없이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것에 대한 믿음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더군요. 상담자의 그런 확신이 미정이가 딛고 일어설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후반부에서 전이가 일어났을 때 상담자가 아이의 마음 읽기 요구에 동참하지 않고 스스로 표현할 때까지 끝까지 버텨준 부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아주 좋은 책입니다만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랬을 것 같지 않은데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미정이와 헤어지는 부분(상담의 종결 부분)이 분량때문에 다소 급하게 처리된 듯 보이더군요. 조금 더 깊이있게 다뤄주셨으면 개인적으로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아동을 만나는 임상가 뿐 아니라 어린 아동을 둔 부모님이라면 분명히 도움이 될 좋은 책입니다. 이처럼 상담 실화를 매끄럽게 엮은 책을 만나기는 정말 쉽지 않거든요.
덧. 이 책은 열심히 북 크로싱에 참여하시는 별사탕님이 북 크로싱을 위해 기증하신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별사탕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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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소아 정신과의 신의진 선생이 2009년에 내놓은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 :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을 위한 심리학(2009)'을 북 크로싱합니다.
임상 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한 내용을 아픈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면서 정리했기 때문에 가식이 없고 진심이 담겨 있으면서도 내용 또한 유용합니다.
임상가들에게는 추천하지 않지만 어린 아이를 둔 엄마내지는 예비 엄마들에게는 일독을 권하는 책입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궁금한 분들은 '소개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국민도서관 이용)가 적용됩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방법에 있는 내용대로 하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변경된 북 크로싱 제도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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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임상 현장에서 소아/아동을 만나는 임상가를 염두에 두고는 별 3개로 평범하게 평가했지만 일반인 어머니들에게는 별 4개로 평가해도 충분한 좋은 책이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너무나 당연하고 옳은 소리들 뿐이어서 이런 책이 2009년에야 소개되었다는 것이 더 놀라운데 2009년에 처음 나왔을 때는 '현명한 부모는 자신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다'라는 다소 진부한 이름이었는데 개정 증보판을 내면서 '나는 아이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로 제목이 (잘) 바뀌었습니다. 홍보 효과를 위해 좀 더 강렬한 문구를 선택하는 출판사의 전략은 대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이 제목이 훨씬 더 내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어 훌륭한 전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하루에 스무 명이 넘게 아이들을 만난다면 근무 시간을 8시간으로 잡으면 한 아이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10분에서 최대 20분을 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심층적인 심리치료는 어림없는 일이죠. 물론 이것만 해도 소아 정신과의 현 실태를 감안하면 대단한 애정과 노력이기는 합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소아 청소년 정신의학 분야에서 16년을 한 길만 걸어왔고 특히 저자가 자신의 양육 문제에 대한 숙고와 고민을 임상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런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사실 단순합니다.
행복한 어머니가 행복한 아이를 만들 수 있으니 좋은 엄마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절대 아이를 삶의 최우선으로 두지 마라', '희생이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와 같은 다소 도발적인 소제목이 난무합니다만 개인적으로 100% 동감합니다. 저는 행복하지 않은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양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거든요.
이 책의 장점은 참 쉽게 쓰여져 있어 읽기 편한 것 이외에도 자신이 어떤 유형의 엄마인지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예를 제시하고 거기에 좋은 엄마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실제 행동 지침도 제공하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후반부에는 아직 아이를 갖지 않은 예비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자상한 조언이 많습니다. 결혼 뿐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왔던 제게 이 책은 상당히 반가운 응원군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장의 임상가보다는 예비 엄마나 자녀 양육 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덧.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은 대부분 높게 평가할 정도의 quality가 보장되는 경우가 드문데 이 책은 시비를 걸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좋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임상가라면 문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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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의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 보리스 시륄니크의 고전(무려 20년이 넘은 책인데 이제서야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네요)입니다.
미국 심리학에 경도되어 있는 우리나라 심리학도들이 이 유명한 프랑스의 과학자를 알 턱이 없지만 그는 심리학도에게 너무나 익숙한 개념인 탄력성(resilience)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입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만... ^^
심리학 서적 범주에 넣을 것인가를 30분 동안 고민하게 만든 책입니다.
왜냐하면 심리학도라면 공부하는 과정에서 지긋지긋하게 듣게 되는 '애착', '관계',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핵심이니까요. 물론 비교행동학적 관점에서 동물 세계와 인간 세계를 넘나들며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비교 설명하고 분석하기 때문에 저는 결국 일반 서적의 범주로 분류했습니다.
1부에서는 탄생 이전의 생애와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생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부부를 중심으로 성, 사랑과 애착에 대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고요. 물론 비교행동학적으로요. 3부에서는 애착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가지 부정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애착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대개의 심리학도라면(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상당히 낯설게 느껴지는 전개 방식입니다. 인간의 관계를 다루기 위한 설명 도구가 동물의 비교행동학이니까요.
그렇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읽어보시면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닫기
* 자연 상태에서 동물들이 동일 그룹에 속하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반면, 오히려 우리 인간은 알려진 것보다 근친상간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 인간은 말을 통해 맥락을 벗어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여러 명의 엄마가 있는 가족 형태 내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핵가족 형태 내에서 성장한 아이들보다 정신 장애와 정신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환경이 우호적일 때에는 암컷에 의해서만 번식하는 복제 번식이 경제적이며, 환경이 열악할 때는 태어난 개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성적 결합이 유리하다. 인간은 모든 점에서 불리한 환경에 놓여 있다. 바로 이것이 인간이 성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이다. * 아빠들이 5개월 된 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서 아빠의 존재가 아이의 분리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관찰되었다. 요컨대 아빠가 돌보는 아기들은 미지의 대상에게 좀 더 호기심을 많이 보이는 듯하다. * 아버지란 존재가 자녀의 머릿속에 각인되기 위해서는 자녀가 6개월에서 8개월에 이르기까지의 민감한 시기에 지각되어야 한다. 대상 관계가 맺어지는 이 시기를 놓치면, 아버지란 존재는 자리를 잡지 못하게 된다. * 사실상 엄마가 일하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 자녀들이 변하는 까닭은 엄마가 일을 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의 변화로 인해 애착의 통로가 변경되기 때문이다. * 사랑에 빠졌다가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애착이 생겨나는 것이다. * 동공 확대는 성적으로 흥분할 때 신경전달물질인 아트로핀이 분비됨으로써 야기되는 생물학적 현상이다. * 사내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에 비해 애정 결핍의 정도가 심하다. * 가정에서 자란 아기들은 낯선 것과 대면하면 흥미를 느끼지만, 가족 없이 자란 아기들은 불안을 느낀다. 그래서 이런 아기들은 뭔가 마음을 안정시켜 줄 수 있는 애착의 대체물을 찾아나선다. 이 때 가장 안정적이면서 영속적인 감각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신체(자위행위 집착)다. 이런 아동의 정신기제는 바깥세계를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내향적인 반추 작용에만 기울어져 있다. * 노인은 질소질 유기물의 부족으로 최근에 있었던 일을 기억 속에 잘 고착시키지 못한다. 의식이나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의 일들이다. 노인들이 머나먼 과거의 일로 괴로워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이다.
"관찰자는 자신이 조약돌을 관찰하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조약돌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관찰하는 셈이다"
저자가 서문에 쓴 말인데 처음에는 무심코 넘어갔지만 책을 읽으면서 곰씹어 보니 참 의미심장한 말이더군요.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위의 말을 염두에 두고 읽으시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이 책의 단점은 원저가 오래된 책이라서 그런건지,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딱딱한 문체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읽으실 분들은 이 점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책상머리에서 집중해서 보면 상관없지만 출, 퇴근 길에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서 틈틈히 읽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입니다. 계속 흐름을 놓치는 바람에 저도 다 읽는데 평소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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