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원하는 만큼 시간을 내고, 쓰고 싶은 만큼 여행비를 펑펑 써 가며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특히 직장인이라면 말이죠.
시간이 남아 돌지만 돈은 그야말로 처절하게 아껴야 하는 배낭여행족에 비해 그래도 조금은 금전적인 여유를 더 갖고 있는 정도랄까요. 대신 시간은 훨씬 더 쪼들리겠지만요. ㅠ.ㅠ
처음부터 시간과 비용이 제한적인 직장인에게 여행비 모으기 전략이라는 것 자체가 좀 웃픈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전략을 세우는 것과 안 세우는 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답은 없지만 여행 좋아하시는 분들도 각자의 전략을 한번 점검해 보시라고 제가 하고 있는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서 좀 더 중요한 기본적인 원칙을 하나 먼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행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생겼을 때 가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여행을 최우선으로 할 것'
제가 여행을 자주 다니는 걸 부러워하는 주변 지인들에게 여행 참 좋다고 많이 다니라고 추천하면 항상 듣는 말들의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아이가 어려서',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등등. 10년 전부터 그런 말을 줄창 듣고 있지만 그 말을 했던 사람 중 저처럼 여행을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여유는 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여행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시간과 돈을 가장 먼저 할당해야 합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가고 싶은 여행지가 생기면 일단 신용카드로 선결제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빚을 갚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 방법은 여행의 즐거움을 깎아 먹어 계속 여행을 다닐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기 때문에 비추합니다. 여행지를 물색할 때부터 어느 정도의 빚이 생길 것이고 여행을 다녀와서 얼마나 생활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계산부터 서기 때문에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기분을 잡치거든요. 그런 마음으로는 오래 여행을 다니기 힘듭니다.
1단계. 십일조 전략
그야말로 뻔한 수준의 월급을 받던 사회 초년병 시절부터 저는 개신교 교회에 내는 것처럼 무조건 제가 버는 것의 1/10을 여행비로 모았습니다. 적금을 넣고, 생활비를 쓰고 난 다음 남은 돈을 모은 것이 아니라 제일 먼저 1/10을 여행비 계정으로 모은 뒤에 남은 돈으로 재테크를 하고 생활을 했죠. 그렇게 강제적으로 모으지 않으면 여행을 가기 위한 최소 자금을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이 단계에서는 모이는 돈의 총액에 따라 갈 수 있는 여행지를 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첫 여행지인 앙코르 와트가 금액에 맞춰 정해졌죠.
2단계. 차곡차곡 전략
여행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여행지가 어디냐(유럽이냐, 동남아냐 등등)에 따라 어느 정도 금액이 필요한지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조금씩 쌓이게 되면 2단계에서는 매년 가고 싶은 여행지를 먼저 정하고 필요한 어림 금액을 적금처럼 모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체코 여행을 비수기에 가려는데 항공권 구입 비용을 포함해 대략 600만 원이 필요하다면 그 금액을 12로 나눠 한 달에 50만 원을 모으는 것이죠. 물론 예상 못한 추가 비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은 넉넉하게 모으는 게 좋습니다. 위의 경우에는 55만 원이나 60만 원을 모으겠죠.
3단계. 유비무환 전략
2단계 전략에만 의존해 여행비를 모을 때의 한계는 가고 싶은 여행지가 갑자기 바뀌거나 일년에 여행을 한번 이상 다니게 될 때 드러납니다. 즉, 여행이 본격적인 취미가 되면 여행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나는 게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습니다. 변수가 많이 생기고 그만큼 여행비도 많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여행지를 고려하지 말고 처음부터 충분한 금액을 설정하여 모아야 합니다. 제 경우는 아이 하나를 키우는 것과 자동차를 운용하는데 들어가는 월 비용을 산정하여 이걸 기본 여행비로 모으고 있습니다. 아이와 자동차가 있다면 어차피 한 달에 들어가야 할 고정 비용이 있으니 아이와 자동차가 없는 저는 이걸 여행비로 전환하는거지요. 꼭 저처럼 하실 필요는 없고 각자의 사정에 따라 반드시 나가야 할 고정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면 그걸 다른 곳으로 전환하지 말고 여행비로 모으면 됩니다. 중요한 건 평소 1년에 여행을 다닐 때 사용하는 평균 여행비를 웃도는 금액을 설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1년에 사용하는 총 여행 비용이 8백 만 원이라면 1천만 원을 목표로 모으는 겁니다. 어느 해에 동남 아시아로 짧게 그 해의 여행을 다녀왔다면 평소보다 적은 여행비를 지출했을테니 그만큼 예비비가 많이 모일테지요. 그걸 다음 해 여행 때 사용하는 겁니다. 짧은 여행을 한번 더 다녀올 수도 있겠지요.
별 거 아닌 전략이지만 실제로 해 보는 것과 당장 생활하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모으냐며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것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제가 그랬다면 10여 년동안 20여 개국을 절대로 여행하지 못했겠지요.
꼭 1단계부터 시작하실 필요는 없고 개인의 경제적인 여력과 사정에 따라 본인에게 맞는 단계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중요한 건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청년은 시간과 체력은 남아도나 돈이 없고, 장년은 돈과 체력은 충분하나 시간이 부족하고, 노년은 시간과 돈은 여유있지만 체력이 딸려서 여행을 못 갑니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최적기란 사실상 없는거지요. 지금이 바로 여행을 떠날 최적기입니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항상 뒤로 미루기만 했던 분들에게 올해가 드디어 첫 발을 내딛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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