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인지'와 '역동'을 결합한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인지 흥미를 가지게 되어서입니다. 인지 과학과 정신역동적 접근은 심리치료의 큰 줄기들 중 의식과 무의식을 대표하는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통합한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책은 그런 결합에 실패한 것 같습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이 책은 사고와 정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이론은 대인관계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비합리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다분히 인지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비합리성의 근원은 무의식에 있으나 이는 자기-자각, 고양된 자각을 통해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고 통찰을 통해 근본적인 태도를 바꿔 적응적인 행동패턴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내용을 보면 저자가 이미 답을 정해놓고 끼워맞출 생각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목차를 보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지는데,
1장. 갈등 : 침투적 정서, 반복적인 대인관계 패턴들
2장. 마음의 상태
3장. 자각 : 도식, 동기, 표상 양식들
4장. 정서의 통제 : 방어적 통제과정들
5장. 정체성 : 자기 도식
6장. 관계들 : 역할 관계 모델
7장. 성격 : 성격의 병리학적 수준
8장. 심리치료에서의 성격의 통합
보시는 것처럼 초반의 1, 2장을 제외하고는 다루는 내용 대부분이 인지 영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나름 집중해서 읽었는데도 대체 어디에 정신역동적 접근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입니다.
물론 각 장의 내용은 충실하며 충분한 정보가를 가지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저처럼 인지역동적 접근이 궁금해서 책을 펴든 분이라면 책을 덮을 때 실망하실 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내용들이라 '월든지기가 흥미롭게 읽은 구절들'도 없네요.
덧. 이 책은 국민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127
심리치료나 상담 supervision을 받고자 할 때 정작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supervisee들이 많습니다.
한 회기의 verbatim을 몽땅 풀어 가야 하는지, 지금까지 상담한 내용을 회기 별로 묶어서 요약해야 하는지, 염두에 두고 있는 심리치료 기법에 대해 정리를 해야 하는지도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 쉬운데 supervision을 받을 때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결정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몇 가지 guideline을 정리해 봤습니다.
아래의 질문들에 차근차근 답을 하다 보면 뭘 준비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 A : 내담자의 현재 문제를 간단히 설명하라
B : 이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 회기에서 역동(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반응과 당신과 내담자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라
* A : 배경 정보를 포함하여 회기 중 알게 된 다른 중요한 정보를 설명하라
B : 회기 중 논의된 주요 문제들을 요약하라
* 현재 문제(들)와 관련된 문화적 또는 발달 정보를 설명하라
* A : 내담자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처음 했던 개념적인 해석은 무엇인가
B :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당신이 한 개념적 해석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DSM 체계를 고려할 때 당신의 진단적 인상을 나열하라
* A : 이 내담자에 대한 최초 치료(상담) 계획을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하라
B : 이 내담자에 대한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의 변화(또는 확장)를 설명하라
* 당신의 치료(상담) 계획을 바탕으로, 다음 회기에서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 이 회기에서 어느 정도까지 당신의 목적이 달성되었는가
* 이 사례의 어떤 양상이 당신에게 윤리적 염려를 불러일으키는가
* 회기에 대한 개인적인 성찰을 무엇이든 공유하라
* 당신의 supervisor에게 어떤 구체적인 질문이 있는가
A : 최초의 상담 회기
B : 현재 상담 회기
출처 : 'Fundamentals of Clinical Supervision, 3rd(by Janine M. Bernard & Rodney K. Goodyear, 2004) 중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265
통상적으로 상담 시간은 일 대 일 대면 상담의 경우 50분인 경우가 많고 길다고 해도 90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상담 기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적으로 50~90분을 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죠.
물론 사안에 따라 특정 회기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되더라도 꼭 다뤄야 할 주제라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런 특수한 상황이 아닌데도 언제나 상담 시간이 예정된 시간을 많이 초과하는 상담자라면 다음의 경우가 아닌지 한번쯤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첫째.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background information을 수집하고 있거나 history taking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자신의 상담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상담자일수록 상담의 목표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중언부언 내담자의 호구 조사를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많이 알수록 rapport가 공고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상담자에 대한 불필요한 의존만 강화된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둘째. 내담자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 특히 상담 초기의 경우 내담자들이 핵심 문제를 회기의 초반에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칠 때 쯤에 꺼내곤 합니다. 문제는 이것 또한 상담자-내담자 역동으로 다뤄야 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내담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내담자에게 질질 끌려가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상담은 누가 주도를 해야 하는 일방적인 상호작용이 아니므로 내담자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건 결과적으로 그리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셋째. 상담을 자신의 전능 환상을 충족하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 상담자의 입장이 두 번째 경우와 반대되나 결과는 마찬가지로 상담 시간이 초과되는 경우입니다. 상담자가 자만심에 가득차 자신의 상담 기술을 자랑하고 내담자에게 들이붓느라고 예정된 상담 시간을 훌쩍 넘어버리게 되기도 합니다. 내담자의 피로도나 개인적인 사정을 고려하지도 않으나 언뜻 보면 열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담자가 불만을 터뜨리지도 못합니다. 나르시스틱한 상담자에게서 자주 나타납니다.
그 오랜 심리치료와 상담의 역사에서 상담 시간이 50~90분으로 정해진 것이 그냥 가위바위보나 주사위를 던져서 한 것이 아닙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주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시간으로 오랜 세월 동안 반복 검증된 것이지요.
그러니 매번 상담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상담자라면 자신의 사명감이나 열정으로 손쉽게 내부 귀인하지 말고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