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무조건 모든 내담자를 도와야만 하는 걸까요? 물론 전문의가 자신의 전공 분야에 맞는 환자만 진료하듯이 자신의 주력 분야에 걸맞는 내담자를 중심으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담자도 있기는 하지요.
오늘은 이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좀 더 급진적인 방향의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내담자는 자신에게 맞는 상담자를 신중하게 물색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그럼 상담자는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내담자를 신중하게 물색하면 안 되는 걸까요?
물론 그런 선택 자체를 고려할 수 없는 기관 소속의 상담자들은 자신에게 배정되는 내담자가 누구이든 그냥 상담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요? 정말 효과적인 상담이 가능한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중독 상담을 할 때 모든 내담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착 외상이 너무 심해 중독 문제보다 애착 외상 치유가 더 시급한 내담자도 있었고, 성격 장애가 너무 심하고 특히 저랑 기질이 상극이라 역전이를 다루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다 빼앗겨 정작 중요한 주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한 내담자도 있었습니다. 또 중증 우울 장애가 있어 상담보다 당장 입원하여 집중적인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하는 내담자도 만났습니다. 또 나는 부부 갈등이 문제이니 중독은 다루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중독자도 있었습니다.
상담자는 이 모든 변수를 고려하여 접근의 우선 순위를 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눠야 합니다. 그 결과 내담자를 받아들일 지 아니면 거부할 지도 결정해야 할 수도 있죠. 정말로 내담자를 위하는 상담자라면 효과적이지 않은 상담때문에, 궁합이 정말 좋지 않은 상담자와 만나서 낭비하게 될 내담자의 에너지와 시간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내담자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과 위치에 있는데도 오는 내담자를 모두 다 받는 상담자가 있습니다. 그게 본인의 사명이자 신념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담자가 모든 내담자를 상담할 수 있다는 착각도 결국은 '구원자의 환상'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심하면 나는 내담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순종성(submissiveness)이나 역의존성(counter-dependence)의 덫에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잘 상담할 수 있는 내담자를 가려서 받는 것이 유능한 상담자의 덕목이라고 믿고 그것이 결국은 내담자를 위하는 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나를 찾아오는 모든 내담자를 거부할 권리가 없고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상담자라면 위에서 언급한 문제때문이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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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틀에서 보자면 내담자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 본 상담자일수록 내담자를 더 잘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결혼을 해 본(결혼을 유지하고 있거나 이혼을 한 상태이든 간에) 상담자가 부부 상담을 덜 잘할까요?
자녀가 있는 상담자가 아동/청소년 상담을 더 잘할까요?
도박을 해 본 상담자가 도박 중독 상담을 더 잘할까요?
('도박 중독 치료자는 반드시 도박의 고수여야만 하는가')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훨씬 더 불리할 수 있습니다.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보죠. 부모, 담임 교사, 학원 선생, 친구처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동/청소년을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부모, 담임 교사, 학원 선생은 모두 알게 모르게 자신의 욕망을 관계에 투영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 내담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없습니다. 친구는 이보다 덜하지만 대신 아동/청소년과 비슷한 발달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시야가 좁은 문제가 있죠.
상담자의 입장도 얼핏 보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담자와 전혀 상관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분석할 수 있고 충분히 잘 훈련되었다면 온전히 내담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에게 자녀가 있다면, 특히 지금 만나고 있는 아동/청소년과 같은 또래의 자녀가 있다면 객관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공감하기 어렵게 됩니다. 자신의 부모-자녀 관계 역동이 알게 모르게 투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개인적인 경험은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결혼을 해 본(부부 갈등이 진행중이라면 더더욱) 상담자는 부부 상담을 할 때 더욱 주의해야 하고 도박을 좋아하는 상담자는 도박 중독 상담을 할 때 자신의 역동을 투영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합니다.
상담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경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시각으로 내담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경험을 많이 한 상담자가 오히려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이는 전이-역전이 분석을 꼼꼼히 해야 하는 이유와도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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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가 상담에서 보이는 행동의 의도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건 상담자가 흔히 하는 일이지만 그 행동이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인 유형인 경우 이를 해석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역전이 때문에 어렵기도 하고 상담 초기인 경우는 저항으로 해석하기 쉽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담자에게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고 내담자의 행동 의도가 '파괴적 관심끌기'라면 이는 당연히 상담 장면에서도 재현됩니다.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오는 이유가 심적 고통을 해소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굳게 믿고 있는 상담자는 이러한 의도를 간파하기 어렵습니다(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지만 해결 방법만을 몰라서 상담자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내담자는 극히 드문 경우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특히 파괴적 관심끌기를 통해 애정 욕구를 채우려는 내담자는 스스로 상담자에게 어필할 만한 강점이나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실제로 그런 능력과 강점이 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에 자연스럽게 체화된 파괴적 관심끌기를 통해 상담자에게 어필하려고 하고 부모-자녀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담자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파괴적 관심끌기 행동으로 선택하게 됩니다.
당연히 상담자는 강한 역전이를 경험하게 되고 내담자를 제압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를 느끼게 되는데 감정의 강도가 지나치게 강하다면 이것이 내담자의 파괴적 관심끌기가 재현되는 것인지를 한번쯤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파괴적 관심끌기는 일종의 가해자 테스팅 같은 거라서 상담자가 이를 간파하고 현명하게 소거 및 대치할 수 있다면 부모-자녀 관계에서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담자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감정을 제어하기 어렵다면 한번쯤 파괴적 관심끌기 가능성을 고려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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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에서 내담자는 어떤 주제로든 어떤 내용이라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신이나 타인을 해하겠다는 행동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내담자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입 밖에 낼 수 없었을 부끄러운 개인적인 이야기나, 실수담, 환상, 상처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상담자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상담의 진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담자 개인에게는 기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 맥락에서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언제든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어떠한 질문이라도 진지하게 대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묻는 것이죠.
하지만 상담 장면 안에서 내담자에게 질문할 권리가 주어진다고 해서 상담자가 모든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씀드리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질문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유보하거나 필요하다면 답하기를 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담 수퍼비전을 하다 보니 내담자가 한 질문에 반드시 답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힘들어 하는 상담자가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곧이곧대로 대답을 하자니 개인적인 이야기를 오픈하는 것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내담자에게 호응하지 않고 밀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는거지요.
다시 한번 제목을 빌어 말씀드리면, 내담자에게는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에 상담자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닙니다.
단순히 상담자로서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상담자가 답하는 데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전이-역전이 문제 때문이든, 아직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렇든, 자신의 개인사를 오픈하는 것이 불편하든 간에 결과적으로 억지로 답하는 것이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 주장에 동의하는 많은 분들이 불편한 질문을 받았을 때 즉답을 피하고 "그게 왜 ~님께 중요하게 생각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와 같은 우회적인 방식으로 다루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많습니다.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연극성 성격 문제가 있는 여자 내담자가 반복된 실연으로 상처를 받고 상담을 받고 있는데 어느 날 남자 상담자에게 묻습니다. "선생님도 제가 사랑받을 만큼 매력있는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그렇죠?"
이 때 위와 같은 방식으로 질문을 되돌려 주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내담자는 상담자가 대답을 해야 할 만큼 자신이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질문을 회피한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게 왜 중요한지 그동안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 상담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 실력이 없는 상담자이거나 내 말을 경청하지 않은 주의가 부주의한 상담자라고 단정할 가능성도 있기 떄문입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대답하기를 거절해야 합니다. 문제는 방법이죠.
"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방향으로 대답하든 우리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인데 제가 매력있다고 대답하면 ~님께 사심이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 앞으로의 상담에서 상담자-내담자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고, 그렇다고 제가 매력이 없다고 대답하면 상심하셔서 저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우실테니까요. 저는 ~님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 상담자 역할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질문에 답하기 싫습니다"
이건 출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유명한 상담자의 일화에서 따온 겁니다. 제 이야기는 아니고요;;;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상담자는 내담자의 모든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상담자의 역할은 내담자를 돕는 것이지 내담자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내담자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 올라오는지 찬찬히 관찰하시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대답이 상담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면) 어떻게 거절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면 대체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 전혀 감도 안 잡힐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의무는 없다고 믿으신다면 내담자에게 상처주지 않고 상담을 위태롭지 않게 하면서도 현명하게 대답을 거절할 수많은 방법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방법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아야만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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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상담자 선생님들을 위해 제가 생각하는 아동/청소년 상담의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 봤습니다.
* 부모(보호자)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 문제 양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나의 정보원도 아쉬운 상담자는 가능하면 많은 정보를 모으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아동/청소년 상담의 경우 라포 형성 전까지 내담자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많은 아동/청소년들은 대개 자신의 문제를 조리있게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활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례에서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나타나고 관계 갈등의 주 대상이 부모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모는 객관적인 관찰자가 아니며 주관에 의한 왜곡과 윤색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에 의해 보고된 정보는 생각보다 정보가가 높지 않습니다. 또한 아동/청소년의 문제라고 보고하는 내용들이 실제로는 부모의 욕구나 기대가 투사된 경우 또한 많기 때문에 부모가 보고하는 문제가 실제로 상담에서 해결해야 하는 주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가정하는 게 오히려 실수를 줄이는 방법입니다.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또래 관계가 좋지 않고 아무래도 왕따를 당하는 것 같다고 부모가 보고할 때 상담자가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또래 관계 양상이 아닙니다. 가정 내에서 부모, 형제자매, 친척들과의 관계는 어떤지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소위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새는 경우이거나 부모-자녀 관계 갈등에 대한 문제때문에 쌓인 불편감을 밖에서 호소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자면, 이보다 더 흔히 부모가 보고하는 주요 문제로 자신의 자녀가 통 공부에 집중을 하지 못해 속상하다는 게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의 집중력의 문제(예를 들어 ADHD)가 주요 문제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불안과 같은 심리적 불편감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는 게 관찰되는 것 뿐입니다. 정말 ADHD라면 주의가 산만해서 수업 시간에 앉아 있지 못한다든가 하는 눈에 띄는 행동 문제를 주로 호소할 겁니다.
* 부모와 달리 접근해야 한다
: 저는 상담 초기에 항상 부모의 양육 태도와 훈육 방법을 확인하는 편인데 그것이 자녀와의 상호작용을 상당 부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자기 방을 잘 치우거나 깨우지도 않았는데 일어나서 알아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 등의 행동은 당연하게 생각해 칭찬을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것만 지적하고 잔소리를 하거나 심하게는 체벌을 하는 부모라면 부모와 자녀 관계가 건강할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아동/청소년이 보기에 상담자도 부모와 같은 어른이므로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이러한 역기능적인 관계 양상을 상담에서 그대로 재현하는 겁니다. 맨날 부모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잘못한 것에 대한 지적을 당하는 것에 익숙한 아동/청소년은 상담자에게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고 그런 반응을 촉발하는 행동을 골라 하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을 파악한 뒤에는 부모와 달리 행동해야 합니다. 전이-역전이 분석은 필수이며 부모와 의도적으로 다른 식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초기에는요. 물론 라포가 형성된 이후에는 이 부분을 다룰 수 있어야겠지요. 굳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할 필요도 없이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죠.
* 호기심을 가져라. 취조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 상담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 지금의 위치에 왔건 간에 자신이 살아온 궤적에 대한 가치관을 내담자인 아동/청소년에게 대입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선행 판단과 선입견으로 인해 상담이 아닌 취조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질이 되면 상담은 하나마나한 일이 되고 맙니다. 자칫하면 상담자가 더 큰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가치관을 중립화하면서 상담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게 호기심이라고 봅니다. 상담자들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호기심을 간직하고 공부해 온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서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상담자가 되고 나니 자신의 공부를 지탱해오던 호기심을 팽개치고 갑자기 자신의 좌절된 욕구를 내담자에게 투사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상담자가 되게 만든 호기심을 계속 유지해야 합니다.
온통 게임에만 몰두하고 학교에 가는 것 조차 거부하는 아동이 좋아하는 게임이 마인크래프트라고 한다면 그게 무슨 게임인지, 그 게임은 어떻게 하는건지, 그 게임을 왜 좋아하는건지, 그 게임에서 충족되는 욕구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해야지 게임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고 상급 학교에 진학할 수 없어서 결국은 패배자가 되고 말거라는 기성 어른들의 논리만 읊조린다면 치유적 상담이 가능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판단은 뒤로 미루고(없앨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본원적인 호기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 길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라포 형성이 되고 치유적 변화가 절로 따라옵니다.
* negative한 건 중요하지 않다. positive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라
: 많은 상담자들이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상담자가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하는(또는 해결을 돕는) 사람이라는 믿음입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 당연히 아동/청소년의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런 문제를 자신이 없애려 하거나 아동/청소년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게 하려고만 애쓰게 됩니다. 하지만 상담자가 해결사가 되려고 마음 먹으면 상담은 대결의 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느끼는(혹은 이차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을 지키려는 내담자와 이를 빼앗으려는 상담자의 대결 말이죠.
저는 아동/청소년 내담자가 보이는 모든 증상은 임상적으로 병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사실 상의 문제가 아니며 반드시 이차적인 이득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이차적인 이득을 건강하게 충족할 수 있게 도와주지 않는 한 그 증상은 모양을 바꾸면서 계속 변형될 것이고 그러한 증상의 변화와 숨박꼭질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설사 겉으로 보이는 그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해도 궁극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positive한 측면입니다. 그게 상담자가 내담자와 함께 다루어야 할 기본 재료인 것이죠.
재미있는 건 자신의 자녀가 가진 장점과 미덕에 대해 물어보면 거침없이 대답하는 부모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negative한 측면만 바라보는 것에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에) 그래도 흐믓한 표정으로 장점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자녀들이 훨씬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걸 경험하면서 상담의 포인트를 negative한 측면이 아닌 positive한 측면에 맞추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믿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를 두서없이 말씀드렸습니다만 한번쯤 심사숙고해 보시라고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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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관련 입문 서적을 보면 어떤 책이든 간에 상담 회기 동안에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합니다.
상담은 단순한 조언을 하는 자리가 아니며 그러한 조언이 효과적이었다면 내담자가 상담자를 찾아올 리가 만무했을 것이기에 내담자가 스스로 길을 찾을 때까지 내담자의 문제와 그 원인이 파악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라는 것이죠. 그래서 초기 정신분석의 흐름을 따르는 임상가들은 중립을 깨뜨리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중립을 깨고 내담자의 심리적 장(psychological field)에 함부로 뛰어드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엄숙주의에 빠져 무조건적인 중립을 고수하는 건 반치유적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기계적 중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상담자도 나름의 가치관과 도덕 관념을 갖고 있는 한 사람의 인간이며 상담 회기 중에도 그런 가치들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상담자는 기계가 아니니까요.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전이와 역전이 분석을 통해 비중립적인 사유와 감정들로부터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끌어내는 것이지요.
다음으로 중립이라는 것의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죠. 중립이 대체 무엇입니까? 내담자와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 관찰하고, 분석하고, 공감하되 개입하지 않는 것?
상담 회기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연결됨으로써 시작됩니다. 연결과 해체는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누구에게서 끝이 납니까? 상담자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정말로 상담자가 의도적인 중립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과연 내담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선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제 경험으로는 치유적인 흐름을 유지하면서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중립이 과연 치유적인가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죠. 이 글의 앞 부분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중립을 유지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때까지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는 게 과연 꼭 필요한 일일까요? 약간 과장해서 비약해 보자면 상담자가 중립만 지키면 내담자가 스스로 해답을 구할 수 있을까요? 저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게 효과적이라고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진정한 상담자의 중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설사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내담자에게 이로울 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중립은 전이-역전이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자가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개인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제안을 함부로 조언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심리적 브레이크 정도의 기능입니다.
내담자가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릴 때 그들과 함께 허우적대면서 헤엄치는 법을 돕는(모방하든, 창조하든 간에) 상담자가 될 것인지, 안전한 배 위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내담자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상담자가 될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립의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엄정한 중립을 끝까지 유지했기 때문에 비로소 내담자가 통찰에 이르게 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섣불리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저는 제 내담자가 제 중립 고수로 인해 받게 될 상처로 아파하기보다는 제 섣부른 개입으로 인해 함께 허우적거리는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라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전자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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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Rapport)가 상담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건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없거나 약하다면 그 상담의 결과는 결코 희망적일 수 없는거지요. 상담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만큼 상담자와 내담자의 치료적 신뢰 관계는 아무리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내담자와 공고한 라포를 맺는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저는 필요하다면 전체 상담 회기의 절반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라포를 중요시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라포가 잘 형성되었는지, 튼튼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전의 저도 한 때 그런 착각을 했지만 상담자와 내담자의 사이가 화기애애하면, 내담자가 저항을 그치고 상담에 몰입하게 되면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믿는 상담자가 많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말을 경청하고, 치료적 조언을 그대로 따르면 라포가 튼튼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라포는 단순히 상담자가 내담자와 좋은 관계를 맺는 게 아닙니다. 많은 내담자들이 기본적인 신뢰감이 약해진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오고, 가끔은 재애착을 해야 할 정도로 무너진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 장면은 신뢰를 재구축하는 일종의 인큐베이터와 같습니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안전하고 전적으로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누군가를 믿는 것을 재경험하는거지요.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공고해 질 수 있을까요?
바로 갈등 상황을 통과해봐야 비로소 그 정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갈등 상황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상황 자체가 바로 라포의 시험대입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마음에 드는 말만 하고, 상담자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건 역설적으로 상담자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담자의 언행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인 상담자에게 버림받을까봐, 그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에 뒤로 감추고 겉보기에 좋은 가면만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라포는 상담 장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검증받게 됩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자가 내담자를 비난하지 않고, 역전이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내담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내담자는 상담자로부터 버림받을거라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담자가 자신의 편에 설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드디어 탄탄한 라포가 형성되었구나 하고 한시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꽤 많은 회기를 거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상담이 기대되고, 이야기를 할 때는 분위기도 좋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한번 들으면 척 아는 수준까지 진행이 되었어도 회기를 돌이켜 보면 맨날 같은 이야기만 하는 것 같고 이건 상담이 아닌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오면 라포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라포의 강도를 확인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태그 -
rapport,
갈등,
경청,
기본적인 신뢰감,
내담자,
라포,
상담,
상담자,
신뢰감,
애착,
역전이,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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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에 나왔으니 15년이 넘은 케케묵은 구닥다리 책 아니냐고 우습게 보시면 곤란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임상/상담 수련 과정을 위한 교과서 중 감히 최고라고 평가하는 책입니다.
최근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걸 대학원 때나 수련 1년차 때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마음에 배가 아플 정도였으니까요.
캐나다 Manitoba 대학 교수들을 주요 집필진으로 해서 David Martin과 Allan Moore가 엮었는데 그야말로 임상/상담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모든 것을 집대성 해 놓았습니다. 그것도 아주 상세하면서도 친절하게요.
내용을 간략하게 함께 살펴보죠.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1. Foundations
2. Phases of Therapy
3. Client Populations
4. Contexts
5. Therapists' Considerations
1부는 두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1장에서는 empathy와 sympathy의 차이, 경청, 현존 같은 아주 기초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고 2장에서는 치료 관계, 라포 형성하기, 전이와 역전이 등 관계에 대한 issue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심리치료의 국면에 대한 내용을 5개의 장에 할애하고 있는데 3장에서는 초기 면접에 대해서, 4장에서는 심리평가, 5장에서는 초보 상담자가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 6장에서는 자살 위험성 평가와 개입, 7장에서는 종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3부 역시 5개의 장을 포함하고 있는데 주요 내담자를 유형 별로 다루고 있습니다. 8장에서는 아동, 9장에서는 청소년, 10장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 11장에서는 신체적 장애가 있는 내담자들, 12장에서는 비자발적인 내담자들을 어떻게 상담하는지 알려줍니다.
4부도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에서는 현장 및 치료의 유형 별로 임상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죠. 13장에서는 학교 상담실, 14장에서는 가족 치료에 대해서, 15장에서는 집단 치료, 16장은 법적, 윤리적 문제, 17장은 비교 문화적 상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지막 5부에도 5개의 장이 있는데 임상가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다양한 사안들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18장에서는 임상 수련에서 살아남는 방법, 19장에서는 수퍼비전과 관련된 모든 것들, 20장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를 비롯한 각종 보고서 쓰기, 21장은 심신의 안녕과 관련된 이슈들, 마지막으로 22장은 임상 수련 모델의 시조가 되는 임상가들을 리뷰하고 있죠.
각 부분을 좀 더 심도있게 공부하려면 당연히 세부 전문 서적을 따로 읽어야 하겠지만 임상 수련 과정의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하기 위해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충분할 정도로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게다가 총 5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22개의 장으로 잘게 쪼개 놓았기 때문에 나눠서 읽기에 별로 부담이 안 되는 수준입니다.
제가 특히 마음에 드는 이 책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아주 쉬운 영어로 쓰여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은 원서 중 이해가 잘 되는 순서로만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이 정도의 원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심리학도라면 앞으로 공부하는데 애로가 꽃필거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을 꼭 읽으셨으면 하는 추천 대상은 임상/상담 대학원생 등 임상/상담 수련을 앞둔 분들입니다. 1년차들도 꼭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강력 추천합니다.
덧. 아마존에서 2월 말까지 무료 배송(35불 이상인 경우)하고 있으니 45.55$이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돈값은 확실히 하는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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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뭔지 모르는 상담자는 사실 상담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감은 상담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개념이고 모든 상담 관련 책과 자료의 맨 앞에 나오는 핵심 주제니까요.
그런데 사실 공감만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개념도 많지 않을 겁니다.
현장의 상담자가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는 공감을 단어 뜻 그대로 내담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과거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리면 상담자도 감정에 북받쳐서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제가 볼 때 그건 공감이 아닙니다. 그건 공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공명입니다. 소리굽쇠를 두드린 후 다른 소리굽쇠에 가져다 대면 그 소리굽쇠도 함께 울리는 공명과 같은 거지요.
물론 공명도 공감이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의 공명이 아닌, 내담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행간을 흐르는 핵심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공감이라고 할 수 있죠.
내담자가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거기에 반응해서 상담자도 울컥하지만 내담자의 슬픔이 (인지적, 정서적, 영적으로 통합되어)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내담자에게 공감한 것인지 상담자의 역전이 때문에 의식 수준으로 올라온 자신만의 또 다른 감정인지 구분하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공감의 이해와 역전이에 의한 공명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상담자 스스로 평소에 상담을 꾸준히 복기하면서 동시에 자기 분석을 통해 자신의 전이-역전이 패턴을 파악해놔야 합니다. 그래야 상담 중 결정적 순간에 그것이 공명인지 공감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지속적인 훈련은 당연히 필요한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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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정신건강의학과 세팅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교과서로 꼽히는 '임상에서의 역동정신치료(Psychodynamic Psychiatry in Clinical Practice)'를 쓴 대가 Glen O. Gabbard 박사의 책입니다. 저는 아직 못 읽었지만 오늘 소개하는 이 책과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고 역자께서 서문에서 추천하셨더군요.
Gabbard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아닌 임상심리학자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알아야 하는 대가 중 한 사람이죠. 이 책은 미국의 정신과 수련의가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다섯 개 정신치료 중 하나인 정신역동치료의 교과서로 저술된 책입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얇은 책이지만 '역동정신치료의 핵심 개념', '평가, 적응증, 정신역동의 공식화', '정신치료의 기본 요소', '치료적 중재', '치료 목표와 치료 행위', '저항 다루기', '역동정신치료 시 꿈과 판타지의 사용'. '역전이의 발견과 작업'. '훈습 과정과 종결', '지도감독의 이용', '장기 역동정신치료의 핵심 능력 평가' 등 역동정신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내용들을 아주 폭넓게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Gabbard 박사도 언급하고 있듯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깊이는 다소 부족하기 때문에 각 영역에 특화된 전문 서적으로 보강해야합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입문서에 가까운 책이니까요.
하지만 굳이 역동정신치료를 따르지 않는 임상가라고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될 만큼 중요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다루고 있어서 치료 이론적 접근의 차이와 상관없이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은 책입니다.
다만 미국에서 출판되는 치료 관련 서적은 각 장의 핵심 요약이 발군인 책이 많은데 이 책은 아쉽게도 요약 부분이 상당히 부실하다는 것이 단점입니다.
소장을 권하는 수준은 아닙니다만 한번쯤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닫기
* 표현적인 것과 지지적인 것 중 어느 것을 치료에서 강조할 것인가 하는 것이 회기의 빈도를 결정한다. 일반적으로 표현적인 치료인 경우 좀 더 전이를 강조하며, 주당 2~3회 정도 회기를 갖는 반면, 지지적 치료의 경우 주 1회 미만을 갖는다. 회기의 수가 증가하면 전이는 강화되고, 그 전이의 해석이 핵심적인 치료 방법이 된다. 주 1회 미만의 빈도일 때는 회기 사이의 연속성이 방해받을 수 있고, 전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장기 역동정신치료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 * 전이가 치료에 저항으로 작용할 때에만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유용한 지침이다. * 역동정신치료의 기본 전제는 감정, 전이, 지각 등에 대해 일정 부분은 액면 그대로를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양면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 가장 흔한 형태의 저항은 이야기가 한 회기에서 다음 회기로 이어지지 않고 마치 매번 새 회기를 시작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 프로이트는 꿈 내용을 두 가지 수준으로 구분하였다. 즉 명시적 내용(manifest content)은 꿈꾼 이가 자각하는 꿈의 표면적인 것이고, 잠재된 내용(latent content)은 무의식적인 소망과 생각들이다. 잠재된 내용은 꿈을 꾸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도록 위협할 수 있기에 꿈에서는 위장되어 나타난다. * 치료자가 꿈 해석에 접근하는 유용한 방식은 환자가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고 난 뒤에 환자에게 "그 꿈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 투사적 동일시와 역전이 재연은 둘 다 비슷한 과정을 포함하지만 전자는 클라인(Klein) 학파와 대상관계이론에서 발생하였고 후자는 미국 자아심리학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 투사적 동일시의 두 가지 단계 중 1단계는 정서 상태를 동반하는 자신 혹은 타인의 표상이 무의식적으로 자기 안에서 부인되고 상대에게 투사되며, 2단계에서 투사자가 상대로 하여금 투사된 것을 무의식적으로 경험하거나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첫 번째 단계는 전이, 두 번째 단계는 역전이로 간주된다. 그런데 정신치료적 상황이라면 세 번째 단계가 일어난다. 투사를 받는 치료자는 문제자아 또는 타인 표상을 받아들인 후 이를 포용(contain & tolerate)하고 투사된 내용을 잘 소화하여 다소 변화된 형태로 투사한 사람에게 다시 돌려주거나 환자에게 다시 받아들이도록(reintroject)한다. 이 과정을 통해 환자는 자기는 참기 어려운 심리 상태를 치료자가 감내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배우게 된다. 환자가 투사된 내용을 다시 돌려받을 때 자아 표상 또는 타인 표상이 수정되고, 여기에 동반된 감정도 바뀌어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의 내적 대상 관계의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 치료자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 자신과 환자 사이에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한다. 투사적 동일시일 수 있다. * 환자에게 치료자의 직접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환자와 딜레마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예를 들자면, "당신의 질문은 저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군요. 만약 제가 당신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 당신은 매우 상심하실 것이고, 만약 제가 그렇다고 하면 당신은 이 치료가 이전에 생각한 만큼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와 같이 반응할 수 있다. * 훈습 과정과 치료 종결을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환자가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느냐는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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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지치료학회의 창시자이자 국제 인지치료학회의 회장을 역임한 Robert L. Leahy가 쓴 이 책의 핵심 주제는 바로 '저항(Resistance)'입니다.
사실 저항이라는 주제는 정신역동적 치료에서 핵심적이었고 상대적으로 인지, 행동적 접근에서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지치료자들도 그것의 이름이 저항, 비협조, 비순응 그 무엇으로 불리든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은 별로 의심하지 않았죠. 이 책은 인지행동치료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저항을 다룬 결과물입니다.
Robert L. Leahy는 정신분석가이자 인지행동치료자로서 절충 통합적 치료자로서의 면모를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데 현장에서 임상가들이 '저항'으로 구분하는 거의 모든 내용을 총망라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는데 1부는 저항에 대한 이론과 기본적인 개념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에서는 저항의 차원을 '타당성 저항', '자기일관성', '스키마 저항', '도덕적 저항', '희생양 저항', '위험 회피와 우울증적 저항', '자기 불구화'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고 3부에서는 '인지치료와 역전이'라는 제목 하에 역전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지치료에서 역전이를 어떻게 치료적으로 활용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제목처럼 인지치료에서 저항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고 그것을 치료 과정에서 어떻게 다루는가였는데 저자의 치료자 정체성 때문인지 몰라도 저항에 대한 comprehensive handbook을 본 것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중간중간에 스키마를 통해 저항을 탐지하고 자동적 사고 교정을 통해 저항을 다루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제가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항'을 총론 차원에서 일별하고 싶은 임상가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제가 2007년에 소개한
'지금-여기에서의 전이분석(1993)'과 함께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
최영희 선생님이 단독으로 번역하신 걸로 되어 있지만 역자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5년 동안 ACT 인증 인지행동치료 연수 과정의 연수생들이 각 장을 나누어서 초벌 번역을 한 것을 다시 원문과 비교한 것입니다. 원래 공동 번역된 책의 번역 quality는 단독 번역본에 비해 떨어지게 마련인데 이 책은 괜찮습니다. 읽기에 그리 껄끄러운 수준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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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f-monitoring은 원래 심리학자 Snyder가 주창한 개념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 상태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대나 상황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사회적 눈치라고 할 수 있을텐데 제가 이 글에서 사용할 때는 상담자 스스로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개념으로 사용한 겁니다. 내담자와 상담하면서 나타나는 역전이를 들여다보라는 것도 아닙니다.
상담자가 자신을 주의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꽤 오래전에 소개한
'건강한 상담자만이 남을 도울 수 있다(The Resilient Practitioner, 2001)'는 책에도 나오지만 단적으로 말하자면 상담자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담자 또한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임상이나 상담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입문합니다. 그런데 다행히 전문가가 되기 전에 이를 해결했다면 모르겠지만 심리적 문제라는 것이 정답이 떨어지거나 해결 방안이 명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진행 중인 상태에서 일을 시작합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을 해 보죠.
자존감이 낮은 상담자가 낮은 자존감으로 사회 생활이 어려워 찾아온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요?
우울한 상담자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찾아온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두려운 상담자가 발표 불안으로 고통받는 내담자를 제대로 도울 수 있을까요?
아무런 성격적, 심리적 문제가 없는 완벽한 상태가 되어야만 상담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가진 내담자를 상담할 때 좀 더 깊은 공감과 경청이 가능하고 내담자의 문제를 더 잘 볼 수도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상담자가 자기 감찰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러한 문제가 상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또, 자신의 사고와 감정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는지를 수시로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담자가 신체, 사고, 감정의 균형을 잘 유지하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면 내담자도 더 이상 상담자에게 신경쓰지 않고 자신을 self-monitoring하는데 집중할 수 있고 좀 더 편안하게 상담이 진행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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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현장에서 심리치료 및 상담을 하는 임상가들에게 반드시 읽어볼 것(+소장)을 권하는 치료전문가용 서적 3종 세트가 있습니다.
지금 소개를 드리는 '정신분석적 진단'과 이전에 소개한 '
정신분석적 심리치료(2007)', '
정신분석적 사례이해(1999)'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세 권의 책을 쓴 Nancy McWilliams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치료자 중 한 사람이면서 제 role model 중 한 명입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어떤 교재도 치료의 효율성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심리치료가 주는 그런 종류의 마음 깊숙이 느껴지는 믿음을 제공해 줄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제가 이런 태도 때문에 Nancy McWilliams를 좋아합니다. ^^
Nancy McWilliams가 정신역동적 접근을 하는 치료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책 3권이 모두 '정신분석적'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판되었지만 사실 상 그녀의 책은 오랜 임상경험이 녹아 있는 개념 충만한 책이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 정신분석과 전혀 상관이 없더라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제목 때문에 이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얻지 못한 분들도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Nancy McWilliams의 책 중 이 책이 가장 먼저 나온 책인데도 국내에는 가장 늦게 소개가 되어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정한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책을 쓴 순서대로 '진단' -> '사례 이해' -> '치료'의 순으로 읽었다면 맥락에 기초한 공부를 할 때 더 큰 도움을 받았을 것 같거든요.
앞서 번역된 다른 두 권의 책과 달리 '정남운', '이기련'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는데 '
지금-여기에서의 전이분석(1993)'에서 보여주신 깔끔한 번역 실력을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하셔서 원래 Nancy McWilliams가 책을 쉽게 쓰는 편이기도 하지만 더욱 이해하기 좋게 나왔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1부에서는 진단이 왜 필요한지(정신역동적 접근을 하는 치료자라면 다소 뜻밖인 주장)에 대해 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이 부분도 재미있습니다)하고 있고 성격 구조에 대해 발달 수준과 그 임상적 함의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특징적인 것은 일차적(원시적) 방어 기제와 이차적(상위) 방위 기제를 아주 상세하게 설명한 것인데 풍부한 사례를 제공하고 있어 방어 기제를 이해하는데 있어 더 할 나위없이 좋은 책입니다.
2부에서는 반사회성 성격, 자기애성 성격, 분열성 성격, 편집성 성격, 우울성 성격과 조증 성격, 피학성 성격, 강박성 성격, 연극성 성격, 해리성 성격 등 주요 성격을 '추동', '기질', '방어 기제', '대상관계', '자기', '전이와 역전이', '치료적 함의', '감별진단'의 구분에 따라 현장 치료자들이 확실히 개념을 잡을 수 있도록 풍부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현장에서 성격 문제를 가진 내담자를 많이 만나지만 성격 문제에 대해 참고할 만한 서적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 책 한 권이면 기본적인 감을 잡는데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Nancy McWilliams의 책을 소개할 때마다 제가 정신역동적 접근을 따르지 않는 치료자라고 해도 꼭 필독하시라고 말씀을 드립니다만 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장 가치 천만 점의 책이며 임상가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셨으면 하는 책으로 강추합니다.
덧. 이 책은 새 책으로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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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좋은 상담자와 나쁜 상담자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능력있는 능숙한 상담자와 서툴고 더욱 수련이 필요한 미숙한 상담자만 있다고 봅니다(물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상담자는 예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담자도 좋은 내담자와 나쁜 내담자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내담자는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갖고 오기 마련이고 원칙적으로 상담자는 그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상담을 이끌어야 합니다.
만약 상담자가 내담자를 대할 때 '도움을 줘야 하는 것이 상담자가 할 일이지만 이 내담자는 정말 싫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내담자의 문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동시에 혹시나 상담자의 문제를 반영하는 역전이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물론 상담자와 내담자의 궁합(저는 주로 코드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합니다만)이 맞지 않는 불행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담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앞서 상담자나 내담자의 선호, 가치관, 신념, 태도 등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상담에 집중할 수 없는 경우입니다. 그 간극이 너무 크고 깊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뭐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고집하기보다는 내담자가 상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생기기 전에 빨리 다른 상담자에게 의뢰하여 문제를 탐색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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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및 상담 supervision을 해 드립니다.
임상심리전문가/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을 받고 있는(혹은 마친) 분 중 심리치료 및 상담에 대한 supervision이 필요한 분은 walden3@gmail.com으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supervision을 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상담/심리치료 구조화* 치료적 관계의 형성* 심리평가와 치료의 통합* 치료 계획 세우기* 한계 설정하기* 다양한 응급 상황 대처법* 전이와 역전이 다루기* 윤리적 문제들* 상담 종결하기
특수한 치료적 접근의 세부 내용보다는 심리치료 및 상담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덧. supervision을 원하는 선생님은 아래의 정보를 메일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어떤 수련 과정에 계신지(혹은 마치셨는지)
- supervision을 받으려고 하는 case에 대한 간략한 정보
:
죄송하지만 국가 공인 자격 소지자이거나 한국 심리학회 산하 수련 과정 또는 전문가 자격 보유자가 아닌 경우 supervision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덧2. 공부 차원에서 supervision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수련 인정도 필요한 분들은 반드시 해당 학회나 수련 위원회에 미리 문의하여 절차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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