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그래서 그렇지 사실 임상심리학 분야에만 국한된 내용은 아니라서 분류는 '임상심리'가 아닌 '심리학 일반' 범주에 넣었습니다.
논문 supervision을 하면서 선생님들이 초기에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을 간략하게나마 한번 요약해 봤습니다.
* 어떤 종류의 논문을 쓸 것인가 : 논문의 유형 선정
임상심리학 분야의 논문은 난도(?)에 따라 대략 3단계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1단계 논문
: 제가 'How about 논문'이라고 부르는 유형으로 특정 장애의 심리적 특성이나 실태, 현황을 description을 통해 보여주는 논문입니다. 주로 기술 통계적 기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연구 방법론이 어렵다기보다는 기존에 많이 다루지 않은 특이한 장애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접근성(accesibility)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죠. 예를 들자면 성 정체감 장애의 심리적 특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이 유형에 속합니다.
2단계 논문
: 제가 'How much 논문'이라고 부르는 유형으로 집단의 차이를 보여주는 연구입니다. 집단 간 차이가 유의미하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카이스퀘어 검증이나 T검증, 변량 분석 등의 통계 기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연구 설계 당시부터 통제 집단을 설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비교 집단도 2개 이상을 상정하곤 합니다. 예를 들자면 정상 성인 집단, 도박 중독 집단, 알코올 중독 집단의 자극 추구 기질 차이를 알아보고자 하는 연구가 이 단계에 속합니다.
3단계 논문
: 제가 'Why 논문'이라고 부르는 유형으로 상관 관계, 가능하면 인과 관계와 관계의 정도를 설명하고자 시도하는 연구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2단계 논문에서 다루는 차이가 왜 나타나는지를 밝히려는 연구가 3단계에 속합니다. 주로 중다 회귀 분석 이상의 고급 통계 기법을 사용하고 공변량 구조 분석을 이용한 모형 검증을 하는 연구도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도박 중독은 왜 알코올 중독보다 더 쉽게 재발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연구가 이 단계에 속합니다.
* 논문을 쓰기 위해 어떻게 감을 잡는가
호기심 -> 궁금증 -> 선행 연구 review -> 연구 설계
아주 간략하게 도식화했지만 논문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호기심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생긴 호기심이건, 현장에서 심리평가나 상담을 하다가 생긴 호기심이건 '대체 뭘까?'하는 호기심의 끈을 일단 붙잡아야 뭐가 되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없다면 제대로 된 논문을 쓰는 건 물 건너 갔다고 보는 편입니다. 호기심이 있어야 흥미가 생기고 흥미가 생겨야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호기심이 생겼다고 땡이 아니라 일단 호기심이 생겼으면 그 다음에는 본인에게 호기심을 유발한 현상 또는 사건을 머릿속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궁금증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궁금증이 모양을 갖추고 가지를 쳤으면 그 다음에는 기존에 실시했던 선행 연구를 review해야 합니다. 자신은 기상천외한 발상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이미 연구되어 논문으로 발표되었을 가능성도 꽤 크거든요. 그래서 엄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내가 궁금해 하는 주제에 대해 꼼꼼하게 디벼보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선행 연구를 review하면서는 어떤 방향으로 연구를 할까 생각을 정리하고, 그런 생각을 다듬고 난 다음에는 거기에 맞는 연구 설계를 해야 합니다. 실험 연구를 할 지, survey를 할 지, 질적 연구를 위해 인터뷰를 활용할 것인지 등등의 내용은 모두 연구 설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죠.
* 선행 연구를 어떻게 review 하는가
선행 연구를 review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Handbook 등을 찾아서 reference를 일별하면서 대가의 논문을 중심으로 review 하는 방법
자신이 연구하려고 하는 주제를 다룬 handbook이 있다면 일단 그 handbook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handbook은 일종의 연구 역사서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handbook을 읽으면서 각 글 꼭지에 달린 references(그 중에서도 최신 연구 중심)를 꼼꼼히 정리해 보면 그 쪽 분야의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고 어떤 추세로 진행되어 가는지, 그리고 누가 최고수인지를 자연히 알게 됩니다. 그러면 최고수의 최신 연구를 기준해서 내 연구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 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죠.
2) 논문 검색 엔진에서 키워드 검색을 통해(최근 기간으로 범위를 잡아서) 리스트된 논문 중 major journal 위주로 뽑아서 관심 분야의 최근 경향을 파악하는 법
일단 RISS4U, KISS, DBpia, e-article 등의 국내 학술 DB 및 검색 엔진과, PubMed, ScienceDirect, ISICC 등의 국외 학술 DB 및 검색 엔진을 활용하는데 키워드 검색을 통해 1) 최근 5년 안쪽의 논문을 중심으로, 2) SCI, SSCI에 등재된 major journal 위주로 정리하여 관심 주제의 최근 연구 경향을 파악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술 DB는 유료지만 학교, 병원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무료로 접근이 가능할 겁니다.
만약 그런 DB를 활용하기가 어렵다면 그 정도로 풍부한 자료는 아니지만 구글에서 제공하는 Scholar.google.com 검색 엔진을 통해서도 원문 PDF를 꽤 많이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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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작년에 수억 원대의 대규모 연구 용역을 발주했습니다. 표본 수가 2만 명이 넘는, 제가 일하는 분야에서는 국내 최초의 전국 실태 조사였습니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본 연구 조사 설계를 위한 사전 연구, 본 연구, 본 연구에 대한 감리 연구의 3단계로 이루어진 국내 유일의 연구 프로젝트였죠.
본 연구비만 해도 4억 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래서 SKY 심리학과 교수팀 중 하나에게 맡겼습니다.
얼마 전에 이 연구의 분석 결과물 파일을 CD로 받았습니다. 그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종합보고서(PDF파일), 요약보고서(PDF파일), SPSS원자료(SAV파일), 원자료엑셀파일(이건 열어봤더니 결과표를 편집한 파일을 잘못 보냈더군요. -_-;;;) 달랑 4개입니다. 그나마 연구 보고서 파일을 빼면 제대로 된 통계 분석 결과 자료는 SPSS 원자료 파일 하나가 답니다.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4억 원이 넘는 프로젝트의 통계 분석 결과 자료가 원자료 하나라...
하도 어이가 없어서 공동 연구원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을 설명하고 SPSS로 분석을 했으면 output 파일과 syntax 파일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박사 과정이 분석을 했기 때문에 잘 모른다고 하더니 그 다음에는 어차피 기본적인 분석 방법이 기술 통계이기 때문에 syntax 파일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나중에는 원자료만 주면 되지 왜 그런 것을 요구하냐, 연구자에 대한 지나친 간섭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정말 개가 웃을 일입니다.
syntax 파일 작성은 SPSS를 이용한 분석의 기본인데 명문대 박사 과정이 그런 것도 모른다는 것 자체가 한심하고 박사 과정생이 덜 떨어졌으면 공동 연구원이나 하다 못해 연구 책임자라도 최종 점검을 해야 하는 것인데 4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최종 확인도 안 하고 결과물 CD를 그냥 보낸다? 프로젝트가 애들 장난입니까?
기술 통계이기 때문에 syntax 파일을 만들지 않았다는 말도 웃기는 것이 나중에 누가 replication을 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 syntax 파일인데 syntax 파일을 안 주면 나중에 확인하는 사람 엿 먹으라는 말 밖에 더 됩니까? 그걸 어떻게 일일이 확인하라는 말입니까? 게다가 이 연구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원자료를 완전 공개하고 검증을 받을 예정인데 하다 못해 사감위에서 결과 확인을 하겠다고 하면 대체 이 원자료로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누가 검증해 줄 겁니까? 잔금 다 치렀는데 그 때 가서 도와줄겁니까?
연구자에 대한 지나친 간섭 운운도 웃기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석사 학위 논문 분석을 도와줄 때에도 저는 분석 flow를 하나하나 작성해 텍스트 파일로 만들고 모든 분석 결과는 일일이 syntax 파일(SPS파일)을 만들어서 원자료와 syntax 파일, output 파일을, 구분하기 좋도록 각각의 디렉토리를 만들어 저장한 다음, 혹시 SPSS 프로그램이 없을 지 모르기 때문에 각 결과와 histogram 등을 이미지 파일로 저장해서 일련 번호를 붙인 다음 압축해서 줬습니다. 의뢰자가 압축을 풀기만 하면 분석 순서대로 카테고리를 열어서 분석을 그대로 다시 재현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했지요.
20만 원짜리 개인 대 개인 통계분석도 그렇게 해 주는 것이 당연하거늘 수억 원짜리 프로젝트 결과로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이 연구자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라고요?
그럼 원자료의 신뢰성을 확인하기 위해 최초 코딩된 엑셀 파일을 달라고 하니 리서치 회사에는 주지 말라고 했고 자기네들이 가진 것만 보내준 건 또 뭡니까? 구린 것이 없다면 왜 cross checking을 못하게 합니까? 이건 엑셀을 변환한 원자료에 뭔가 장난질을 쳤다는 의미 아닙니까. 아니면 그냥 기분 나쁘니 감정대로 처리하자는 건가요?
뭐 앞으로 그 학교 연구팀에게는 연구 용역을 맡기지도 않겠지만(그런 한심한 자세로 일하는 교수에게 뭘 믿고 연구를 맡기겠습니까. 제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릴 겁니다) 책임 연구원의 선배라는 분이 제가 위에서 이야기했던 결과물을 요구하는 것은 평판과 신뢰를 깎아먹는 문제라는 말씀에 또 한번 기절했습니다. 이 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분이고 평소 공명정대하다고 평가했던 분인데 무슨 이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나요. 많이 실망했습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교수라서 교수편을 드시는 건가요?
연구를 제대로 했다면 '갑'(제가 볼 때 이 교수팀은 우리 기관을 갑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만)이 무슨 무리한 요구를 해도 떳떳하게 공개하면 되는거지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확실하게 분석을 했는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시간을 내서 하나하나 점검을 좀 해봐야 겠습니다. 불안해서 그냥 놔둘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 수준이 이렇다면 심리학계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됩니다. 다른 대학은 안 그러길 간절히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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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임상심리학회가 당면한 모든 위기는 임상심리학회를 지탱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제도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면 나머지 문제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자격 제도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건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통해 양질의 전문가가 현장에서 제 몫을 담당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현장의 임상심리전문가는 심리평가/치료/교육에 모두 능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 가르침에 따라 지금도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임상심리학회는 세 영역의 불균형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존의 강점이었던 영역마저도 점차 약점으로 전락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심리평가 영역은 제가
'심리평가를 하찮게 생각하는 임상심리학자'라는 글을 올린 것이 2007년 2월이니 거의 3년이나 되어가는데도 오히려 그 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 감소는 누구라도 체감할 정도인데 그 이유로는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의 부재(관련 포스팅
'표준화된 심리평가보고서의 필요성'), R/O 또는 NOS 진단의 남발(관련 포스팅
'심리평가에서 NOS의 의미'), case formulation이 아닌 검사 별 기술 방식의 남용(관련 포스팅
'임상심리평가보고서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심리평가 supervision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supervisor에게 1:1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제게 Big 5에 속하는 수련 기관마저도 1:1 supervision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심리평가를 전혀 하지 않는 supervisor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10년 째 동일한 강의 노트를 고수하는 교수들을 뒤에서 얼마나 욕했습니까? 자신이 심리평가를 하지도 않고 1:1 supervision도 하지 않는 supervisor를 우리는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치료 영역은 더 암담합니다. 사실 상 치료 영역의 수련은 전무하다고 봐야 됩니다. 그나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을 겸하고 있는 기관에서 정신보건센터를 활용하는 것과 대학교의 학생생활연구소가 동원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과연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치료 수련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요? supervisor부터 치료를 하지 못하는데 수련 레지던트에게 치료 기회가 있을리 만무하고 그러니 제대로 된 치료 supervision이 가능할 리 없지요. 그런데도 사례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입니다. 제대로 된 심리치료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투입되니 학회에서도 전문가들의 치료 사례 발표나 치료 기법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교수들이 학회에서 치료 기법 강의하는 것도 인정하자고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런 분들께는
'내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의 최소 역할' 포스팅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제가 환자나 내담자를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치료자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교육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supervision만 놓고 본다면 supervisor를 위한 supervision 지침서 한 권 없기 때문에 모든 수련 과정이 supervisor 자신이 배운 그대로 답습되며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supervisor의 지식 편차가 supervisee에게서 그대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심리검사에 대한 개론서(아무리 봐도 별로 차별화되지 않는 그 책이 그 책 수준인)는 매년 그렇게 쏟아지고 있건만 정작 수련 레지던트를 위한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과 같은 필수적인 책은 한 권도 없으며 Clinician's Thesaurus같은 책이 번역된 적도 없습니다. 정말 답답해 죽겠습니다.
그럼 연구는 좀 나은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funding이 이루어지고 의사와 co-work이 되는 일부 수련 기관에서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물이 간간히 나올 뿐 대부분의 수련 기관에서는 심리평가 loading에 치인 나머지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학원 연구 논문 수준을 능가하는 결과가 나오기 힘들고 그나마 학교에서는 연구 대상군인 환자를 접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만만한 대학생(그것도 교양 강의를 듣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을 대상으로 해 일반화 가능성이 극히 낮은 뻔한 논문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좋은 논문 고르는 법' 같은 포스팅을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학회도 점점 재미가 없고 매번 뻔한 커리큘럼이라는 feedback이 나오는 겁니다(참고로 이번 임상심리학회 추계학회에서는 EMDR 강의 하나 겨우 건졌다는 후문입니다). 도무지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니 시류에 맞춰 인기있는 새로운 영역의 기초 발표만 반짝 이루어지고 후속타가 없습니다.
이처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 빈틈투성이니 자격 제도가 건실할리가 없고 자격 제도가 부실하니 임상심리학회의 허리가 약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니 점점 동력을 잃게 되는 겁니다. 동력을 잃게 되면 임상심리학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일대 개혁해야 합니다. 시행 세칙이나 바꾸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재정비해야만 임상심리전문가, 더 나아가서는 임상심리학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냐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다른 글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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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가라는 압력을 도처에서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남의 사생활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건 매우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주변에 있는 분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하신 말씀은 아닐테니 그건 넘어가고요.
대체 박사 학위는 왜 따려고 하는 겁니까? 실질적으로 박사 학위가 필수 요건인 교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면 박사를 따야 할 이유가 정말 있나요? 혹시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나도 불안한 마음에 혹은 덩달아 하는 것은 아닌가요?
저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합니다. 두 번 사는 인생도 아닌데 그렇게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아요.
그저 박사 학위가 있어야 어느 위치에 있던 더 좋은 기회가 온다는 막연한 기대로 너도나도 박사 과정에 들어가는데 대체 그 좋은 기회라는 것이 뭡니까? 결국 좀 더 높은 자리에서 연봉 좀 더 받고 그 댓가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게 행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지금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있어서 충분히 행복하고 돈도 더 벌 생각이 없고, 더 많은 일을 하느라 제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뭐하러 지금의 행복한 인생을 희생하면서 필요도 없는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수 년의 시간과 수 천 만원의 돈, 그리고 자존심을 버려가며 현장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교수에게 굽실거려야 한답니까?
학회의 supervisor들은 언제나 의사처럼 전문가 자격만 있으면 현장에서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자신의 제자, 수련 레지던트들에게는 박사 학위를 따도록 종용합니다. 자신만의 라인만을 구축하려고 혈안이 된 자격 미달의 supervisor들도 있고 소수이기는 하지만 후학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full time 박사가 된 이들이 교수가 될 수 없다면(대개는 나이 때문에 교수가 될 수 없죠)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요? 학교의 주변을 배회하면서 프로젝트가 생기면 투입되어 비정규직의 불안한 삶을 감내해야 하는 허울좋은 인생이 아닌지요.
박사도 박사 나름이고 박사 학위가 그 사람의 실력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막말로 말해서 박사 학위를 따면 논문을 더 잘 쓰게 된답니까? 연구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아니면 치료를 더 잘하게 된답니까? 현장에서 겪어 보면 학위에 따른 차이는 별로 없어요. 오히려 박사는 이론에 경도되다보니 현장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앞으로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치료자를 뽑을 때에도 박사는 들어올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어차피 교수의 꿈을 접은 저로서는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할 아무런 이유와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박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박사를 못 따면 회사에서 나가라고 한다든지 하는. -_-;;;)가 도래하지 않는 이상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엄한 짓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제가 박사 학위 과정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정말 박사가 되지 않으면 안 될 큰 일이 생긴 줄 아시면 됩니다).
그러니 저를 아는 분들은 제발 제 앞에서 박사 학위 이야기를 꺼내지 말기 바랍니다. 행복한 제 인생에 똥물 튀기는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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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화요일에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에서 내놓은 사행산업건전발전종합계획안(이하 계획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감위가 정말로 답답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선 사행산업체가 계획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명분을 전혀 안 주었습니다. 지방 사업체는 모두 문을 닫고 직원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데도 구제책이나 대안이 전혀 없었고 줄어드는 지방 세수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고통을 너희들이 뒤집어 쓰고 죽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니고 그냥 추진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일단 손쉬운 사행산업체부터 때려잡자는 논리만 붙잡고 접근하니 그런 무리한 계획안이 나올 수 밖에 없지만 정작 문제는 그 계획안을 떠받치는 연구들의 부실함이었습니다. 모든 연구 용역이 3개월 안팎의 시간만 주어지는 통에 날림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고, 사행산업체를 적으로 규정하고 계획안 시안을 마련하다보니 용역을 발주받은 연구팀이 사행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치료 센터와 접촉하는 것도 규제하게 되어 제대로 된 연구가 이루어 질리가 만무했습니다. 현재 도박 중독의 전문가가 모두 사행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치료 센터에 몰려있는데 그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무슨 연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어차피 엉망진창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공청회를 열기 이전부터 사감위가 신뢰를 잃은 것으로 사감위가 어떤 말을 하든 아무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획안을 떠받치는 연구 결과들 중 2006년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실태조사 자료를 제외한 어떤 것도 공개를 하지 않고 있으며 자료 공개 요구도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니 내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사감위의 계획안을 지지할 수가 없는 것이죠.
사감위가 모든 연구 결과를 완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하지 않는 이상 이미 어떠한 화해의 제스쳐를 보이더라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겁니다.
참 답답한 사감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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