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야심만만'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C가 사적인 자리에서 사진 촬영을 거절하는 원칙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봅니다(저는 TV가 아예 없기 때문에 못 봤습니다만). 강호동이 연예인이 받는 보수는 그런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식의 멘트를 했고 그건 고액을 받는 강호동에게나 적용된다는 식의 반발도 있었고. 어쨌거나
제가 불편한 건 연예인이기 때문에, 보수를 많이 받기 때문에 개인 사생활 침해에 대해서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에 저변에 깔려 있는 논리입니다.
보수를 많이 받기 때문에 감내하라는 논리는 참 어처구니가 없는데 일단 그 기준부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받으면 찍 소리 않고 팬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줘야 하나요? 100만 원? 1,000만 원? 1,000만 원이라면 대체 뭐까지 해 줘야 하나요? 싸인? 사진 촬영? 허그? 이런 걸 논리라고 들이대는 사람들을 보면 자본주의의 논리에 완전히 세뇌되어 자신의 자존감까지 돈에 사고 팔 사람들 같아서 참 서글픕니다.
그런데 이들보다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도 감내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사실은 더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잘 들여다 보면 인간 대 인간이라는 관계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내가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너는 당연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그 서비스의 한계는 내 마음대로 정하겠다는 안드로메다의 논리이죠.
그들의 논리대로 그대로 돌려준다면 연예인은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돈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돈을 냈으면 그 돈에 상응하는 서비스만 받으면 됩니다. 김C가 이야기를 했듯이 공연에 티켓을 사서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사진 촬영을 해 준답니다. 그런데 길에서 달려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사진 촬영에 연예인이 왜 응해야 하죠? 그 잘난 돈도 안 냈는데? 지금 돈도 없으면서 사진 구걸하나요?
연예인도 엄연한 직업인이고 직업 정신을 갖고 자신의 일터에서 댓가를 받은 만큼 일하면 됩니다. 일터를 떠나서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 사생활 침해를 감수하는 연예인도 있을테고 일과 사생활을 구분하고 싶은 연예인도 분명 있을 겁니다. 저도 제 사진 촬영에 응해주는 연예인이 당연히 고맙겠지만 그렇다고 거절하는 연예인을 욕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어요. 제 사생활이 중요한 것처럼 그들의 사생활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런 것 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게 자신에게 적용되었을 때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지 한번 심사숙고해 보시고 그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무엇까지 감수해야 하는지도 다시 한번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 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때문에 우리는 매 년 아까운 연예인들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있으니까요.
연예인의 사생활이 뭐 그렇게 대수냐, 침해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말고요. 쭈욱 그렇게 사세요.
우이독경을 한 제가 바보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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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최진실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남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 문구도 '남자들은 참아달라'는 캔디바 광고 이상으로 짜증을 불러 일으켰고(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남자, 여자 구별하는 말투들이 싫었는지), 약간은 코맹맹이 소리처럼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도 귀에 거슬려서 지금도 최진실은 제게 박경림과 비슷한 수준의 비호감 연예인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던 또래들이 겪는 허무함과 비애, 충격이 제게는 없습니다. 국민배우라는 칭호도 솔직히 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요. 김광석, 유니, 정다빈과 마찬가지로 아까운 생명 하나 또 스러졌구나 하는 감상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오히려 최진실의 죽음을 앞에 두고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과 짜증인데 안타까움은 남겨진 두 아이에게 향하는 것입니다. 떠나간 최진실과 남겨진 가족들 어느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두 아이는 피치 못하게 외조부모와 친부 사이의 상속과 양육권 분쟁의 대상으로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게 될 것이 뻔합니다. 그것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엄마를 잃은 슬픔을 가누기에도 버거운데도 말이죠. 승냥이떼는 이들에게 엄마와의 이별을 슬퍼할 시간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 짜증나는 감정은 '견찰'에 대한 것입니다. 안재환씨가 사망한 이후에 안재환씨의 누나가 의혹을 제기하고 정선희씨가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가 공개되고 이상한 루머가 돌았을 때 최소한 최진실과 사채업자의 연루설에 대해 몇 가지 기본적인 부분만 규명했어도 최진실씨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릅니다. 자꾸 루머라고만 일축하고 덮으려고 하니까 루머의 속성 상 점점 더 크기와 정도가 불어나서 감당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이죠. 산불이 지나가고 희생양이 생긴 다음에 소방법을 개정하면 뭐 합니까? 산불은 초기 진화가 생명인데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자기 앞가림 못하는 저 같은 못난이들만 장맛비에 집 떠내려간다고 왁왁대는 청개구리처럼 쳐짖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에서 지상에 남은 두 아이를 지켜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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