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에는 여러가지 이유로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들을 것이 없어서였고,
두 번째 이유는 하루 단위 등록이 아닌 3일을 한꺼번에 등록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나서였고,
세 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올 겨울 쿠바 여행을 길게 가기 위해 연차 휴가를 최대한 아껴야 해서였습니다. ^__^;;
그런데 심포지엄 중에 작년에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발주한 연구 용역 결과 발표가 끼어있었고 그 날 특별한 일이 없는 전문가는 모두 참석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와서 하는 수 없이 직원들과 함께 들으러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학회 중 최악이었습니다.
들을 것이 없는거야 제 관심 분야에 해당되는 내용이 없어서였는데 이번 학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행복 심리학 석학 초청 강연에 대해 나중에 지인들과 트위터를 통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통역 서비스가 전혀 제공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언어 상의 문제로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대체 동시 통역 서비스 비용이 얼마나 한다고 그걸 안 합니까? 언제부터 한국 심리학회가 유학파를 위한 학회가 되었죠? 작년 연차 학술 대회의 국제 심포지엄에서도 그러더니(
참조 글) 여전히 개념을 장착 못하고 있네요.
게다가 대체 하루 단위 등록을 안 한 이유가 뭐랍니까? 직장을 다니는 심리학회 회원은 참석하지 말라는 건가요? 대체 언제부터 심리학회가 교수와 대학생만을 위한 학회가 되었습니까? 대체 어느 정신 나간 직장에서 학회 참석을 하는데 3일이나 시간을 빼 준답니까? 아니면 일단 닥치고 3일치 돈이나 내라는 건가요?
가장 짜증나는 건 무더위였습니다. 요새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공무원들부터 실내 온도를 통제당하고 있고 당연히 학회가 열리는 서울대도 국립대이니 실내 온도를 높여놨을테고 그러니 많은 사람이 몰리면 체감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감안해 냉방 대책을 세웠어야 합니다. 그런데 복도와 로비는 말 할 것도 없이 찜통 그 자체이고 제가 들은 소규모 심포지엄도 사람들이 연신 부채질을 해야 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얼마나 사전 준비 점검을 안 했으면 다과상에 올려놓은 음료수마저도 시원한 것이 아니더군요.
제 경우는 너무 더워서 발표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더위를 먹어서인지 하루종일 뒷골이 띵 하더군요. 날씨가 이렇게 무더울 줄 몰랐다는 건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는 항상 여름 방학 끝무렵인 8월에 하고 덥기로 유명한 경주에서 한 적도 있기 때문에 더위에 대한 대비가 소홀했다는 건 운영 위원회에서 변명할 수 있는 건덕지가 전혀 없습니다.
외국에서 석학만 데려오면 학회의 격이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했다면 정신 좀 차리기 바랍니다. 심리학회의 역사가 대체 몇 년인데 매년 치르는 연차 학술대회의 운영이 이렇게 개판이란 말입니까. 이딴 식으로 계속 하면 저는 앞으로도 연차 학술대회는 보이콧할겁니다.
덧. 이건 논외의 이야기지만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매년 심리학회를 후원하는데 이번 연차학회를 후원하는 기업들이 많아서 작년과 같은 금액으로는 후원자 명단에도 실어줄 수 없다고 해서 이번에 후원금을 내고도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또 학회 홈페이지의 배너 광고 계약을 1년 단위로 갱신하는데 계약이 끝나는 8월에서 새로운 계약이 발효되는 9월 1일까지 한 달이 빈다고 그 동안 배너 광고를 내리겠답니다. 하도 열 받아서 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유입되는 경로를 분석해 봤더니 거의 없더군요. 제가 일하는 기관의 이득을 위해 배너 광고를 유지하는 줄 아십니까? 제 말을 들을 지 모르겠지만 내년에는 배너 광고도 내리고 지원 예산도 다른 학회로 돌리자고 내년 예산을 편성할 때 윗선에 건의할 생각입니다. 기업 후원금 받아서 해외 석학에게 많이 퍼주세요. 냉방도 제대로 안 되는 학회에서 회원들이야 고생하든 말든 후원금 액수로 차별하면서 그나마 있는 후원 기업들 다 떨궈내세요. 아주 잘 하십니다. 두고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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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는 연세대에서 개최됩니다. 서울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자격증 유지를 위해 평점이 필요한 저로서는 빠질 수 없는 학회이죠.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관심 분야도 그것에 국한되기 때문에 요새는 어떤 학회에 참석을 해도 재미가 통 없습니다. 실전 이야기는 없고 맨날 이론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략적으로 꼭 들어야 할 발표만 듣고 빠지는,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전략을 구사할 예정입니다. ^^;;;
어쨌거나 잘 다녀오겠습니다.
넷북의 예비 배터리까지 완전 충전해서 가져가니 wibro를 100% 활용해서 현장 포스팅 러쉬를 함 해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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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한국 심리학회와 이런 저런 일로 얽히는(나쁜 일은 아니고) 동안 느낀 점에 대해 몇 가지 쓴소리 좀 하려고 합니다.
* 차기 심리학회장 선거에 우편 선거 제도를 도입한 것은 그것이 설사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할지라도 개인적으로는 찬성합니다. 연차 학회에 참석한 사람의 현장 투표만 인정한다는 건 좀 무리한 발상이라고 보거든요. 저만 하더라도 학회장 선거에 투표해 본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학회장 선거를 하려고 연차 학회에 참석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우편으로 도착한 투표용지를 보니 반송용 봉투에 등기우표(1,570원)가 붙어 있고 반드시 등기로 보내달라고 안내장에 적혀 있더군요. 우편사고를 염려하는 것도 좋지만 일과 시간에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 등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학회원이 몇 명이나 될까요? 교내 우체국을 이용하거나 그냥 맘 편하게 조교를 시키면 되는 교수들이야 그런 걱정 할리가 없지만 직장인은 어쩌라고요. 가까운 곳에 이용할 수 있는 우체국이 없는 회원들은요? 설사 있더라도 점심 시간에 우체국에 가 보셨나요? 기다리다 볼 일 다 봅니다. 그렇다고 그냥 우체통에 넣자니 등기우표값이 아깝고 이러나 저러나 영 신경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왕 우편투표제를 도입하려면 눈높이를 조금 더 평회원에 맞추는 자세와 눈썰미가 아쉽습니다.
* 저는 이번 연차 학술대회에 참석하지 않는데 연수 평점을 신경써야 하는 임상 심리학회 회원의 입장에서 모처럼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동보 메일을 보니 최다 논문이 등록되었다고 자랑이던데 그걸 자랑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대체 사전등록 기간이 끝나도록 프로그램이 확정되지 않는다면 무엇을 보고 등록을 하라는 것인가요? 그냥 심리학회의 전문성을 믿고 일단 등록을 하라는 건가요? 학회에 참석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그를 통해 사전등록을 유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이 아닐까요? 사전등록 기간이 몇 차례 연기되는 것을 보면 짐작컨대 발표자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은데 사정은 이해하겠으나 심리학회의 역사가 얼마인데 아직도 사전등록 전에 프로그램이 확정이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좀 심한 것 같습니다.
* 서두에서 심리학회랑 얽히는 일이 좀 있다고 말씀드렸지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 이번에 연차 학술대회 후원금으로 500만 원을 냈습니다. 그걸 중간에서 조율하고 자리를 만드느라고 회장님을 비롯해 몇몇 운영진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가 일하는 기관의 후원금 규모가 제일 크다고 하더군요.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 오랜 역사와 그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는 심리학회의 규모가 겨우 그 정도였군요. 사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도 기업 차원의 후원금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회원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은 학문의 영역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죠. 뭐 그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도 아니지만 모든 기업이 돈 되는 걸 찾아서 게걸스럽게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차원에서도 학문 분야 지원을 통해 대외 이미지를 개선할 필요가 있고 서로가 윈-윈 하는 합의점을 찾으면 되는 것인데 굳이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굳이 수익모델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더라도 심리학회의 운영진이라면 교수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기 이전에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funding을 위해 좀 더 낮은 자세로 일해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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