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는 제목만 보고 '또 멍청한 예비역 하나가 헛소리를 하겠구나'라고 냉소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뭐 그러려니 하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군대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니까요.
군대를 떠올리면 아직 가지 않은 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요, 갔다온 자들에게는 무용담을 펼침으로써 인생의 낭비와 다름없는 2년이 넘는 기간을 말로나마 잠시 위로받는 대상이요, 못 가서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테지요. 사람은 각자의 처한 위치와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군대뿐 아니라 그 어떤 것에서도 언제나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상하게도 현역으로 군생활을 하기를 잘했다고 말하면 예비역들은 네가 편한 곳에서 군생활을 해서 덜 고생을 해서 그렇다고 거품을 물고, 군생활을 안(못)해 본 사람들은 심리학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인지 부조화 이론(cognitive dissonance theory)에 입각하여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미화하려는 시도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글쎄요.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생도 많이 했지만 배우고 느낀 것이 더 많았고 재미난 경험도 많이 했거든요. 고생한 만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층 더 성숙했다고 생각합니다. 눈이 나빠서 현역을 빠질 수 있었던 동생도 제 영향으로 두말없이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쳤고 저와 마찬가지로 가기 싫었다 어쨌다 일체 이야기가 없더군요.
우리나라 남자에게 군생활은 경제적 독립, 결혼, 자녀 출산만큼이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떤 자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크기는 매우 다르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2년이 넘는(저는 2년 2개월 9일입니다만) 기간이 한창 혈기왕성하고 공부를 포함한 할 일이 많은 젊은이에게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군대에 가지 않으면 그 기간을 정말 금쪽같이 활용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군대에 다녀오면 정말 머리가 굳어서 바보가 될까요? 저는 사람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제 경우에는 모두 그렇지 않았습니다. 군생활을 기점으로 저는 제 인생이 가야할 방향을 정립했고 사람과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고 공부도 훨씬 열심히, 잘하게 되었습니다.
군생활이든 뭐든 배울 것이 있다는 자세로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군대 아니라 군대 할아버지를 다녀와도 인생에 분명 도움이 된다고 믿습니다. 군대는 피할 수 있으면 좋은 곳, 안 갈 수 있으면 좋은 곳, 어떤 수를 쓰든 빠질 수 있으면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군대를 가지 않아도 항상 그런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게 마련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준비된 것은 결국 패배자의 자리뿐이라고 믿습니다.
지금 군대의 처우가 형편없어서, 인권을 침해해서, 위험해서, 차별이 존재해서, 등등 사람이 하기 싫은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 사람은 군대가 아무리 지상 낙원처럼 바뀌어도 가고 싶지 않을 겁니다. 군대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겠지만 그것이 군대를 빠지려는 이유를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입대 전에는 당연히 가야할 곳을 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 적합한 표현이지만) 담담했고, 그러니 안 가려는 시도(몸을 혹사하거나, 배경을 이용하거나)를 해 본 적도 없었고, 가서는 뭐든지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으며(이것은 아래에서 자세히 나열해 보겠습니다), 다녀와서는 고생은 되었지만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그렇게 좋은 군대라면 또 가지 그러냐고 하신다면... 나라가 부르면 주저 없이 가겠다고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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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질, 바느질, 구두 닦는 방법, 각종 도구를 다루고 수선하는 방법, 삽질(이게 결코 보기처럼 쉬운 것이 아니죠), 요리 재료 다듬는 법 등을 배웠고(사회에서 이런 거 배우기 쉽지 않습니다. 아니면 돈 내고 배워야 하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사색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웠고,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배웠고,
농부의 수고를 배웠고,
신체적인 고통으로 정신을 억압할 수 없음을 배웠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도 손을 잡고 협동하는 법을 배웠고,
건강한 육체의 소중함을 배웠고,
불굴의 인내심을 배웠고,
신의 존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이래도 군대에서 배우는 것이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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