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감위에서 사행산업체에게 강제하는 평가 지표 중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도박중독 예방교육 실적 및 만족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계량평가 지표로 6점의 가중치를 갖고 있으며 교육 실적 횟수와 교육 만족도로 평가합니다.
교육 실적은 회당 0.5점, 교육 만족도는 80% 이상 시 만점, 미만 시 5% 단위로 1점을 차감하여 계산합니다.
문제는 교육 만족도인데 이게 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현장을 전혀 모르는 머저리의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육 만족도 평가 때문에 예방교육 자체의 질 저하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거나 하다못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외부 예방교육은 어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의 참석자가 도박중독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있거나 최소한 예방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전문가가 조금만 내용에 신경쓰면 만족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행산업체에서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예방교육은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KRA(한국 마사회)에서 실시하는 경마팬 대상 예방교육을 예로 들어보죠. 경마팬들은 기본적으로 중독이라는 말 자체를 재수없다고 터부시하는데다 경마가 도박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경마로 인한 도박 중독이 어떻느니, 도박 중독의 피해가 어느 정도로 추산된다느니, 공존 장애로는 어떤 것들이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 대놓고 얼굴 표정이 싹 바뀌는 건 기본이고 중간에 욕하면서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경마 전문가가 나와 말 고르는 법, 순위 예상하는 법을 알려주는 인기 강좌와 달리 참석자의 수 자체가 비교도 안 되게 적기 때문에 기분이 상한 참석자 한 사람만 불만족으로 체크해도 전체 만족도가 확 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사감위는 교육 만족도 기준을 더 높이겠다느니, 예방 교육 프로그램이 천편일률적이니 좀 더 사업 특성에 맞도록 구체적이고 세분화하여 예방 교육을 실시하라느니 하면서 뭣도 모르고 속 편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입니다.
아무리 현장 전문가가 사명감을 갖고 프로그램 준비와 강의에 공을 들여도
교육 만족도 평가가 존재하는 한 알게 모르게 80점이라는 점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히 도박 중독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내용을 순화시키거나 뺄 수 밖에 없습니다. 청중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쉽게 쉽게 갈 수 밖에 없는거지요. 그런 부담없이 원래 하고자 했던 방식으로 강하게 예방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면 만족도 점수를 80점 이상으로 맞출 수 없기 때문에 편법(울며겨자먹기로 만족도 점수가 너무 낮은 사례를 제외하는 등)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체 이런 방식의 예방 교육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요?
도박 중독자? 치료 전문가? 사행산업체? 사감위?
책상에 앉아서 탁상공론만 하지 말고 제발 현장 전문가의 말을 경청하기 바랍니다. 답은 현장에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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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몇 년 째 일을 하다 보니 최근 들어 이전과 다른 변화를 체감하기 시작했는데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두드러진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2007년 무렵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는 치료를 받기 위해 직장을 잃고 가정이 와해되기 이전에 방문하는 분들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이미 직장, 가정을 모두 잃고 혼자 방문하는 분들의 수가 절대 다수였지요. 개인적으로 그동안 각 기관에서 진행해 온 다양한 홍보와 예방 교육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덕분에 평일과 주말에 상담을 받는 분들의 수가 역전되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보통 3~40대인 도박 중독의 주 연령층이 점차 내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두드러진 모습은 아니지만 20대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20대 도박자의 특징은 전통적인 사행 산업인 경마, 경륜, 카지노가 아닌 성인 PC방을 이용한 온라인 도박 등에 더 익숙하고 더 많이 즐긴다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PC사용에 익숙한 청소년이 쉽게 온라인 도박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고 있는
마지막 변화는 주식 중독자의 급증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현재 상담을 하고 있는 전체 케이스의 20%를 넘어 섰습니다. 혹자는 재테크 수단인 주식이 어떻게 도박 중독의 대상일 수 있느냐고 항변할 지 모르지만 '불확실한 사건의 결과에 대해 돈을 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손실을 감수한 상태에서 돈을 베팅하는 것'이라는 도박의 조작적 정의에 충실한다면 주식도 충분히 도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주식의 불확실성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폭락으로 인해 확실히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주식은 액수 자체가 웬만한 도박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기 때문에 부정적인 파괴력 또한 큽니다. 물론 모든 주식 중독이 도박 중독이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선물, 옵션 거래에 국한될 것 같기는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염두에 두고
향후 도박중독분야를 전망해 본다면 부부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부부치료, 가족치료가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고, 예방 분야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중독, 인터넷 도박에 대한 에방 교육이 중요하게 대두될 전망입니다. 그리고 주식중독처럼 도박중독분야의 범위가 점점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장에서 치료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더욱 다양한 도박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 습득과 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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