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 들어가서 혼자 살 게 아니라면,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려면 적당히 예의를 차리는 것이 꼭 필요한 처세술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생각도 안 하면서 만면에 억지 웃음을 띄우고 고맙다고 고개 숙이고, 만나서 즐거웠다고 인사치레하고,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하다며 너스레를 떨곤 합니다.
최근에 회자되는 빈 껍데기 예의로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인사가 있죠. 이런 겉치레는 쌍방 모두 그 내용을 알고 있지만 의도를 알기에 넘어가는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습니다.
'니 마음이 대충 어떤지 알겠지만 뭐 악의는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주겠다'는 태도죠.
그런데 이런
겉치레 예의가 상담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내담자가 몇 번을 연속해서 상담 약속 시간에 늦습니다. 그리고는 늦어서 죄송하다고 상담자에게 사과를 합니다. 상담자는 머릿속으로는 실제로 늦을 만한 일이 내담자에게 연속해서 생긴 건지 궁금해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게 혹시 내담자의 저항이 아닐까 되짚어 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자신의 역전이를 분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담자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괜찮지도 않으면서 괜찮다고 인사치레를 하고 적당히 마무리합니다.
보시는 것처럼 상담 공간이 사회적 예의를 차리는 장으로 오염되게 되면 상담자와 내담자의 진실된 교류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상담에서 나누는 대화는 겉돌게 되고, 상담자는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내담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내담자 또한 자신에게 부여된 위치(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러 왔기 때문에 적당히 아쉬워하고 그러면서도 비용 대비 나아지는 것이 없는 것에 대한 의문, 서운한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참는)를 유지하는데만 애쓰게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상담자와 내담자가 사회적 예의를 차리는 그 시점부터 상담이 겉돌게 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권투에 비유하면 서로 가벼운 잽이나 날리면서 계속 몸만 풀고 있을 뿐 정공법에 의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대방이 예상치 못한 곳을 노리는 훅을 날리는 것도 아닌 상태가 계속되는 것이죠.
그런 상담은 결국 '어쨌거나 우리는 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라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예의고 격식이고 차릴 것 없이 그냥 맘 가는 대로 막 던지면 되는 걸까요?
솔직하게 대한다고 반드시 무례의 옷을 입을 필요는 없죠. 그저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걸 그냥 넘어가지만 않아도 됩니다. 앞의 예로 돌아가서 내담자가 반복해서 늦을 때 기분이 편치 않다면, 내담자의 사과가 진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걸 그 회기의 상담 주제로 삼기만 해도 됩니다.
"벌써 세 번 연속으로 15분 이상 상담에 늦으셨는데 그동안 말씀하셨던 지각 사유 이외에 혹시 다른 이유는 없으신가요? ~님을 기다리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운 게 저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마음이 불편하거나 걸리는 게 있으시다면 부디 제게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정말로 돌발 상황 때문에 내담자가 늦게 된거라면 다음 회기에는 늦지 않을테고, 하고 싶었던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면 그 회기에서 상담자에게 털어놓을 겁니다.
중요한 건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신호를 사회적 예의와 겉치레로 포장했다고 해서 상담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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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이 영화로 김민희씨가 백상예술대상 여자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지요. 요즘의 연애 실태를 현실적으로 잘 그리고 있고 코믹한 요소도 적잖이 배치되어 있어 내 이야기가 아닌 이상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꽤 재미있게 봤고요.
개인적인 감상을 좀 말씀드리면,
연애란 건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거라지만 김민희와 이민기가 연기한 두 사람의 연애는 잘 되기가 굉장히 힘듭니다. 영화에서는 다시 한번 잘 해보는 걸로 해피엔딩 처리했지만 개인적으로 결국은 다시 헤어질 수 밖에 없을거라 예상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우선, 두 사람은 사내 커플입니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정도가 아니라 같은 지점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은행원이죠. 예전에
'모든 다중 관계는 해롭다'는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내 커플은 사이가 좋을 때에는 상관없지만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파괴력이 훨씬 더 큽니다. 온갖 구설수때문에도 그렇고 연애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충시켜줄 자기만의 안전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50점을 깔고 들어가는 불리한 연애입니다.
그 다음으로 이 연애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에게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그러면서 상대방을 위해서 그랬다고 둘러대기만 하죠) 뒤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느라 온갖 방법(페이스북 감시, 미행, 전화 확인 등등)을 동원합니다. 사랑하는 사이에 가장 중요한 신뢰가 싹틀 틈이 없습니다. 신뢰를 쌓아둔 것이 없으니 갈등이 생겼을 때 인출한 애정 자금이 없는거지요.
게다가 이 두 사람은 자신에게,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기대를 합니다. 연애란 이럴 것이라고까지 기대하기 때문에 매번 그 기대를 충족하는지 확인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좌절하고 슬퍼합니다. 자신이 만든 기대의 덫에 스스로 걸려서 고통스러워하는거지요.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은 집착과 희생 밖에 없습니다. 그래봤자 고통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 뿐이지만요.
마지막으로 부정적인 예후를 보여주는 건 동희(이민기 분)의 주사와 두 사람의 통제불능증과 기본 예의 부족입니다. 주량 통제가 잘 안되고 일단 술에 취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제맘대로입니다. 영화에서는 그런 요절복통 야단법석이 재미난 에피소드처럼 그려졌지만 사실 이런 주사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항상 맘졸여야 하지요. 실제로 이 영화에서도 박계장이라는 후배가 남자 주인공 때문에 개고생합니다. 그리고 이 커플은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서로에게 쌍욕을 하거나 몸싸움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 역시 연애 동안에는 화끈하고 열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기본적인 존중과 매너를 지키지 않는 커플의 미래는 아주 어둡죠.
그래서 이 두 사람의 연애는 결실을 맺기도 어렵고 설사 결실을 맺는다고 해도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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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블로그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사야 하듯이 블로그를 만들려면 우선 비용을 내고 유료 계정을 임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태터툴즈와 같은 툴을 이용해서 집을 짓습니다. 남들이 찾기 쉬운 주소를 받기 위해 도메인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설치형 블로그입니다.
이것 저것 귀찮은 사람은 이미 지어진 집을 계약하고 들어가서 내부만 취향에 맞게 고칩니다. 이것이 가입형 블로그입니다.
내부 구조는 집 주인의 독특한 취향이 느껴지도록 나름대로 개성있게 꾸밉니다. 정보를 모아 도서관이나 자료실처럼 꾸미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집한 물건으로 전시장처럼 꾸미기도 하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은 갤러리처럼 꾸미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이 공들여 지은 집을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선 보입니다. 메타 블로그에 등록해서 자신의 집을 알리기도 하고 때로는 우체부가 보고 지나간 후 입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인기있는 집에는 정기적으로 마실을 다니는 단골도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다보니 유지비 충당을 위해 광고를 유치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자신의 집을 들르는 과객들과 교류를 원하는 집주인은 방명록을 준비하기도 하고 방문하는 사람들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공개된 장소라고 해도 엄연히 남의 집이니만큼 우리는 집주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해야 합니다. 시설물을 아끼는 것은 기본이지요.
그런데 가끔 집주인이 공개한 곳이니 내 기분 내키는대로 낙서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해하지 못할 논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집 주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을 수 있고 우연히 들어간 집이 자신의 취향과 너무 달라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집을 손상시키거나 낙서를 해도 되는 면제부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으로만 욕하고 조용히 돌아나오세요.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세요. 그 집의 주인도 자신의 집을 좋아하지 않은 방문객을 반기지 않을 겁니다. 그런 방문객이 있었는지 알고 싶지 않을지도 몰라요(최소한 저는 그렇더군요. 제 집을 좋아하지 않는 분은 오지 마세요. 좋아하는 분들에게 드릴 관심도 부족합니다).
그것이 방문객의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자기의 집을 가진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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