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원인 찾기를 그만둬라'라는 포스팅에서 도박 중독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단일 원인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렵고 설사 모든 원인들을 다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이 도박 중독 재발을 완벽하게 막아낸다는 걸 보장하는 것도 아니므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일단 다음의 게시글을 보시죠. '오늘의 유머'에 올라온 '실험으로 밝힌 중독의 진짜 이유.jpg'라는 제목의 이미지입니다.
'실험으로 밝힌 중독의 진짜 이유.jpg'
저 게시글의 내용 중 물질 중독의 신체적 금단 증상이 소통의 재개로 치유될 수 있다는 식의 접근은 지나친 비약이기 때문에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요점은 좀 다른 겁니다.
같은 내용을 도박 중독에 적용해 보죠. 도박 중독자는 왜 도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제일 간단한 의학적인 설명은 '내성'과 '금단 증상'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자발적 회복을 하는 걸까요?
위의 예에서 브루스 알렉산더는 소통부재의 위기 때문에 중독이 발생한다고 보았는데 저는 중독의 시작과 유지, 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결핍'이라고 봅니다. 소통부재도 큰 틀에서 결핍이라고 볼 수 있겠죠.
사람마다 욕구가 다르고 그 크기도 다릅니다. 누군가는 신체적 어루만짐을 원하고, 또 누군가는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원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신적인 편안함을 원합니다. 그리고 원하는 정도 또한 제각기 다르죠.
문제는 이러한 욕구가 어떠한 이유에서든 강하게, 지속적으로 억압됨으로써 채워지지 못하고, 이로 인해 커다란 결핍의 구멍이 생겼을 때 우리는 말 그대로 굶어죽지 않기 위해 그 구멍을 빠르게 채워줄 무언가를 찾게 됩니다.
그것이 근본적으로 어떤 목적을 갖고 있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구멍을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만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게임, 도박, 섹스, 술, 담배, 마약, 종교, 운동 등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것에 빠지느냐는 내가 어떤 성질의 결핍 구멍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심리학자인 브루스 알렉산더는 소통부재가 해결되면 중독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올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중독자가 갖고 있는 구멍이 어떤 결핍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찾고 이를 중독적인 물질이나 대상이 아닌 건강한 욕구로 채워줄 때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찌보면 결핍의 구멍을 찾는 것 역시 중독의 원인을 찾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접근법이 좀 다릅니다. '원인 찾기를 그만둬라'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결핍된 구멍을 찾는 건 도박 중독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결 방안을 모색해서 그 구멍을 도박이 아닌 대체제로 메우기 위해서니까요.
사실 저는 이 결핍의 구멍을 제대로 메우지 못하면 도박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탈도박에 이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하는 편입니다. 반대로 이 구멍을 제대로 메우기만 한다면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아도, 전문적인 상담을 받지 않아도, 단도박 모임을 다니지 않아도 치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단 7회기 상담을 받고 상담을 종결한 뒤 지금까지 도박에 손을 대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제 내담자는 아마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결핍의 구멍을 발견하고, 그 결핍이 무엇인지 이해한 뒤 그걸 확실하게 메웠기 때문에 그런 짧은 시간 동안에 탈도박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그러니 도박에 중독된 분들은 자신에게 결핍된 구멍이 무엇인지, 그것이 무엇이길래 도박으로 메우려고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단도박 모임의 협심자들이나 도박 중독 관련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고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4019
대부분의 가족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왜 이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었는가'이듯이 치유의 길에 들어선 도박자도 내심 궁금해 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이 도박에 빠진 이유입니다. 정신없이 도박을 할 때에는 몰랐지만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잃은 돈을 복구하고 빚을 갚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던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만으로 도박에 집착했던 것 같지는 않거든요.
또한 기왕 도박 중독을 치료하겠다고 결심한 거 왜 도박에 빠졌는지를 알아내면 좀더 쉽게 앞으로 도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 찾아보기도 하고 상담자에게 묻기도 하는 등 원인 찾기에 몰두합니다.
상담자와 함께 하는 도박 중독 치유 과정에서는 어차피 재발 예방 부분에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도박중독의 원인찾기를 치유 초기에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치유 초기에 도박중독의 원인찾기가 해로운 이유는 그 과정에서 도박 충동이 자극되기 때문입니다.
언제 처음 도박을 시작했는지, 처음에 도박을 하러 갔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얼마를 잃었는지, 언제부터 베팅액수의 제한이 되지 않고 고삐가 풀린 것처럼 마구 추격매수를 했는지 등등을 생각하면 할수록 도박과 관련된 기억, 감정 등이 쏟아져 나오고 이것이 연결된 도박 충동을 자극하기 때문에 도박 충동이 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박 자극과 관련된 기억, 감정 등에 자꾸 접촉하는 건 아직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폭탄을 주물럭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치유 초기에는 도박 충동을 다루기 위한 기술도 부족하고, 도박 충동이 자극되는 상황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도박 충동이 자극될 수 있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도박중독의 원인을 찾는답시고 호신술 도장을 다닌 지 일주일 밖에 안 되는 초심자가 자신이 왜 과거에 불량배에게 두들겨 맞았는지 알아보려고 제발로 불량배를 찾아가는 일만큼은 없어야겠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3034
도박 중독자의 가족을 가장 심하게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대체 무슨 이유로 이 사람이 도박에 중독되었을까'하는 의문입니다.
도박에 중독되기 이전부터 돈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거나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도박자들은 승부욕이 강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을 못 참기는 하지만 대개는 집중력이 강하고 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인정을 받곤 합니다. 게다가 착하고 성실한 사람도 많아서 가족들의 고민이 더 크죠.
도박에 중독될 성격이 아니라면 개인적인 요인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찾자면 잘못된 양육에 의해(부모의 내부 귀인), 살면서 내조를 잘못해서(배우자의 내부 귀인)와 같이 도박자가 아닌 외부 환경,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게 그 탓을 돌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
'적절한 죄책감과 부적절한 죄책감'이라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적절한 죄책감이 생기게 되어 자괴감에 빠지거나 스스로를 괴롭히게 되는데 가족의 지원이 간절한 도박자에게도 이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은 하나의 단일 원인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병입니다.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모든 원인을 다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고 설사 모두 찾아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도박 중독 재발을 완벽하게 막아내는 걸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도박 중독의 원인을 찾으면서 오히려 더욱 감정이 상하거나 자칫하면 번지수를 잘못 짚어 엉뚱한 이유를 원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도박 중독의 원인 찾기는 도박 중독 치유에 별로 도움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치유 과정에서, 혹은 재발을 예방하는 과정에서 도박자 개인에게 중요한 요인들이 부각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러한 요인들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원인 찾기를 그만두고 도박 중독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 찾기를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태그 -
가족,
도박,
도박 중독,
도박자,
도박중독,
부적절한 죄책감,
원인 찾기,
원인찾기,
재발,
죄책감,
치유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887
상담자가 잘 빠지는 함정 중의 하나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입니다.
이건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만 경우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에게 상습적인 구타를 당하는 것 이외의 다른 스트레스가 없는 부인의 경우 반응성 우울증의 원인으로 남편의 구타에 주목하고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대부분의 심리적 문제 원인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원인 찾기에만 집중하면 상담자의 관심 영역이나 상담자가 유능한 영역의 문제만 선택적으로 찾아서 거기에 안주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부터 자꾸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어요'라고 내담자가 호소한다고 가정해보죠.
어떤 치료적 접근법을 따르는 상담자냐에 따라 초점을 맞추는 영역이 달라질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최근에 발생한 스트레스 상황을 분석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어렸을 때 경험했던 트라우마를, 누군가는 애착 관계를 비롯한 대상 관계를, 누군가는 정신 병리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될 겁니다.
그런데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가설을 설정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그 원인에만 집착하게 되면 상담의 폭이 지나치게 넓어지고 깊이있는 상담이 어려워집니다.
무엇보다 원인 찾기는 행동의 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인데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발에 족쇄를 채우는 것을 상담자가 고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과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면 미래에서 현재로 밀어닥치는 문제에 대처할 여분의 에너지가 없어서 문제가 심화되거나 또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특히 상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면 무조건적인 원인 찾기에 매진하기보다는 문제 해결 중심적인 접근을 주로 하면서 상담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더군요.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