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의존성 성격 장애 뿐 아니라 TCI 기준 LML, LHL, LHM, LHH 성격 유형인 내담자들이 흔히 하는 질문 세례, "선생님, ~한 경우에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을 알려주세요"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 지에 대한 것입니다.
의존하는 내담자는 그것이 성격 역동 때문이든, 살아온 삶의 궤적이 그렇든 간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에 의존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내면 아이가 어릴수록 자신의 행동 결과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요.
어쨌든 상담자가 구원자의 역할을 떠맡는 순간 자율성을 증진해 의존성 문제를 극복하려는 목표는 물 건너가게 됩니다. 아무리 공감을 잘하고 지지적인 상담자라고 해도 끊임없이 답을 구하며 의존하는 내담자에 의해 야기되는 역전이를 다루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고요.
그렇다고 경계를 엄격하게 설정하고 내담자의 의존 욕구를 칼로 자르듯이 좌절시키면 상담이 조기 종결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라포가 굳건히 형성되기 전인 상담 초기에는 더더욱 그렇고요. 무엇보다 의존성이 강한 내담자의 의존 욕구를 좌절시키면서 라포를 형성하는 것 자체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의존 욕구를 좌절시키면서도 라포를 유지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한데, 저는 아래와 같은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즉, 내담자의 모든 질문에 상담자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닌 것처럼 내담자의 답을 구하는 행동에 상담자가 모두 답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치료적 방향으로 알려주는 겁니다.
"저는 그 질문에 답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답을 알려주면 ~님이 제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강하게 만들기 때문에 해롭고(바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상담을 받는 것이니), 답을 모른다고 말하면 제가 의존할 수 있는 수준의 능력자가 아니라고 섣불리 결론내려 상담을 중지하고 저를 떠날테니 결국 ~님께 해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나름의 답을 알고 있지만 알려주지 않을 것이며 대신 ~님이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이렇게요.
중요한 건 답을 알려줄 것이냐 말 것이냐가 아니라 내담자가 자신의 역동을 상담에서 재현할 때 그걸 다뤄야 하는 겁니다. 내담자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항상 누군가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고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이상 이 상담은 끝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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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 supervision 때 흥미로운 질문을 받아서 이에 대한 답변을 포스팅하고자 합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의존성 성격 장애로 진단할 수 있는 수검자였는데 '아무리 의존성 성격 장애라고 하더라도 예를 들어 평생 의존할 수 있는 배우자를 잘 찾으면 제한적이더라도 치료를 받지 않고 적응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목처럼 의존성 성격 장애는 의존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은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건강한 성격의 사람에게 끌리지 않습니다. 의존성 성격 장애의 입장에서 그런 건강한 성격의 사람은 의존하고 싶을 만큼 강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존성 성격 장애 여성들이 이상하게 나쁜 남자와 엮이는 걸 생각해 보시면 됩니다.
둘째, 우연히 건강한 성격의 사람과 잠시 관계를 맺게 되더라도 건강한 성격의 사람이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끌리지 않습니다. 외모 같은 외적인 요인에 의해 잠시 매력을 느낄 순 있지만 조금만 관계가 깊어지면 의존성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이 엄청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멀리하고 싶어집니다.
셋째, 의존성 성격 장애인 사람에게 반복해서 끌리는 사람은 건강한 성격이기 어렵습니다. 자신에게 모든 걸 의존하는 사람이 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구원자'의 역할에 취해 있거나, 그러한 역할로 인해 '자기애'를 충족하는 사람이거나 상대방의 의존을 이용해 착취하려는 사람 뿐입니다.
그러니 현실에서 의존성 성격 장애가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은 없으며 그런 대상이 설사 있다고 해도 그 역동은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넷째, 안전하게 의존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고 해도 모든 영역에서 의존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혈육인 어머니에게 의존할 수 있다고 해도(사실은 융합된 상태일텐데) 회사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의존해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은 가정에 국한되니까요. 그나마도 어머니가 생존해 있는 동안 뿐입니다.
다섯째, 강력한 의존 대상을 찾았다고 해도 나에게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의존 대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의존성 성격 장애는 그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타인에게 의존해오면서 실패의 두려움은 피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성공도 외부 귀인했기 때문에 유능감도 떨어지고 자존감도 낮아져서 그 의존 대상의 기대 수준을 맞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의존 대상이 강력한 사람일수록 그 대상의 요구 수준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버림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의존성 성격 장애가 가야할 길은 강력한 의존 대상을 찾아서 그에 안주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격 미발달 문제를 해결한 후 자신의 의존성 기질을 수용하고 다시 건강해진 성격으로 기질을 잘 조절해서 자신에 대한 의존과 타인에 대한 의존의 균형을 맞추면서 사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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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장애의 진단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상담 장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대인 관계 기능(interpersonal functioning)의 문제이고 내담자 스스로도 이 영역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경험(또는 보고)합니다. 물론 군(cluster)에 따라 양상의 차이는 다소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포스팅의 주제는 군(cluster)의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성격 장애의 대인 관계 문제가 동성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동년배의 동성 관계에서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먼저 A군 대표로 분열성 성격 장애를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A군 기질의 소유자는 대인 관계에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분열성 기질은 더더욱 대인 관계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A군 기질이 원하는 건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A군 기질은 전반적으로 대인 관계에 관심이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공유하는 사람과는 피상적일지언정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열성 성격 장애 남성은 극도로 내향적이고 자신만의 자폐적 공상 세계에 빠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남성들에게 어필하기 어렵습니다. 좋게 봐도 괴짜이고 나쁘게 보면 히키코모리 같기 때문에 같이 놀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관심 분야에 따라 어필할 수 있는데 분열성 성격 장애들은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경향이 있어 그 분야가 예술성을 발휘할 수 있거나 흔히 말하는 SNS에서 각광을 받을 수 있는 분야(식물 기르기, 캘리그라피, 사진이나 그림 등)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거든요(물론 그 관계가 오프라인 관계의 친밀함으로 연결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분열성 성격 장애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내향적이고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 있지만 가부장제 사회인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에 남성에 비해 훨씬 더 강한 박해와 억압을 받기 때문에 분열성 성격 장애 남성에 비해 좀 더 외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사회운동이나 스포츠 등 활동적인 분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고 이게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요소가 됩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너무 세 보이거나 지나치게 체제 저항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거부감을 주기 쉽죠. 그래서 동성의 또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겁니다.
다음으로 B군 대표로 연극성 성격 장애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A군과 달리 B군은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데다 자극추구 기질도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대인 관계가 중요하고 특히 연극성 성격 장애는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극성 성격 장애 여성이 동년배의 여성에게 관심을 받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연극성 성격 장애 여성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관심을 받기 위한 시도 자체가 어설픕니다. 동년배의 성숙한 여성들에게 그런 시도는 가식처럼 보이거나 재수 없어 보이거나 하기 때문에 따돌림 당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외모나 애교 등으로 관심을 받기 쉬운 동년배의 남성과 관계를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연극성 성격 장애 남성도 비슷합니다. 동년배의 성숙한 남성들과 관계를 맺으려면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런 성숙함이 없기 떄문에 아동처럼 미숙하게 보이고 그래서 여성과 관계를 맺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합니다. 물론 동년배 보다는 모성애를 자극할 수 있는 연상의 여성들에게 밀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C군 대표로 의존성 성격 장애를 살펴보겠습니다. C군은 위험회피기질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의존성 성격 장애는 동시에 사회적민감성 기질도 높기 때문에 사람에게 의존해서 위험을 회피하려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자신이 의존할 수 있는 강한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의존성 성격 장애 여성은 같은 여성에게 의존하기 어렵습니다. 성숙한 동년배의 여성들은 give & take가 확실하고 대인 관계에서도 미성숙한 또래를 돌보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의존을 하고자 하지만 그 댓가로 지불할 것이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동년배의 남성은 의존성 성격 장애 여성에게 성숙함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성숙하고 유약해 보이는 여성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어하죠. 반대로 의존성 성격 장애 남성도 위험을 피하기 위한 의존 대상이 필요하지만 동년배의 남성은 너무도 무섭습니다.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서열 의식이 있어 자신이 서열의 아래에 위치할 경우 자신이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격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여성에게 끌리는 것이죠.
결국 모든 성격 장애 내담자가 겪는 대인 관계 문제는 동성의 또래 관계에서 더욱 두드러집니다. 그러니 이성의 또래 관계가 잘 유지되는 것 같아 보인다고 성격 장애가 아니겠지 하고 마음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바꿔 말하면 TCI에서 기질 취약성이 관찰되었을 때 동성의 또래 관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성격 장애까지는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격 장애가 의심되면 동성의 또래 관계는 어떤지 관심을 갖고 탐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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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하다 보면 상담하러 올 때마다 일주일 동안 뭔가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뀐 모습을 상담자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고 보고하는 내담자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는 것이 상담에 바람직할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아래의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괜찮다고 보는 편입니다.
첫째, 의존성 성격 장애처럼 내담자가 상담자에 대해 극도의 의존을 보이거나 혹은 의존 문제가 상담의 주요 문제인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상담자가 그냥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죠.
둘째, 내담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기존 상담의 목표나 주요 문제를 압도할 정도로 큰 경우입니다. 소위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인데 변화에 대한 압박감이 본래 상담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된다면 이 부분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위의 두 가지 경우가 아니라면 내담자가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상담자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은 충분히 긍정적입니다.
상담 장면이라는 것이 내담자가 일상 생활에서 겪는 문제를 안전하게 재경험하는 장이 되는 것처럼 상담을 통해 깨닫고 익힌 것들을 일상 생활에서 실제로 해 보고 feedback을 받음으로써 연습해야 하는 것이 중요할 때가 많은데 내담자가 상담자를 염두에 둔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해 봄으로써 이러한 과정을 가속화할 수 있으니까요.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부담을 느낀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상담자가 이를 적절히 인정, 수용함으로써 충분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담자를 encourage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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