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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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예전에 유시민씨가 쓴
'청춘의 독서(2009)'를 읽으면서 그 책에 나온 6권의 추천 서적을 찜 해 두었는데 그 중 두 번째로 읽은 책(첫 번째는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이 이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들고 다니는 걸 함께 사는 이가 보더니 '이거 대학생 교양 서적인데 이런 책도 보냐(왠지 이 책을 이제서야 보냐는 투로 들림;;;)'고 하더군요. 이 책이 대학생 교양 서적에 속하는 반열의 책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무식이 통통 튀는군요. ㅠ.ㅠ
우리나라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책이 몇 권 안 되기는 합니다만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해 보면 이 책의 저자인 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번역본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만큼 유명한 책이죠.
그런데 겉표지만 봐도 읽고 싶어지지 않을 수준의 북 디자인에 딱 눈에 거슬리는 글씨체와 조판 등등. 사실 이 책을 손에 들고 펼치기까지 갈등이 참 많았더랬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지금까지 읽은 이런 류(?)의 교양서 중 가장 쉽고(정말?) 재미있습니다.
카아는 이 책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별로 특별해보이지도 않는 이런 결론이 나오게 된 과정이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고, 문서에 적힌 것들이 사실인지를 밝혀야 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역사가를 연구해야 하고, 현재의 눈을 통해 과거를 봐야 하고, 역사의 법칙을 살펴봐야 하고, 도덕적 판단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의미있는지도 생각해야 하고 나중에는 진보의 개념도 적용해봐야 하더군요. @.@
만만치 않은 내용이지만 차근차근 읽어나가면 명쾌하게 전개되는 주장의 힘을 맛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역사는 완전히 특수한 것을 다루고,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다룬다', '역사는 어떠한 교훈도 가르치지 않는다', '역사는 예언을 할 수 없다', '역사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역사는 과학과 달리 종교와 도덕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와 같은 잘못된 오해를 하나하나 부수는 쾌감을 맛 볼 수도 있습니다.
대학생 때라면 지루하고 따분해서 도전해 볼 엄두도 안 났지만 이제는 머리도 어느 정도 영글었고 다시 한번 에드워드 카아의 명저에 도전해보고픈 분들께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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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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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유태인 대학살을 다룬 자료들은 많습니다. 영화에서 여러 차례 다루기도 했고 증언록, 고백록, 다큐멘터리 등도 많고요. 그런 의미에서 얼핏 보면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라는 특이성 외에 이 책에 주목할 이유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심리학도라면 멀리서 찾지 않더라도 빅터 프랭클이라는 걸출한 아우슈비츠 생존 심리학자가 있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이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책에는 특별한 점이 많습니다. 히틀러와 나치의 유태인 절멸 계획에 대한 피를 토하는 고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강제수용소의 처참한 현실이 자극적으로 나열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이런 류의 책에는 빠지지 않는 가스실과 화장터에 대한 묘사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돌베개 출판사가 이 책의 소개글 서두에 쓴 것처럼 이 책은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가장 진지한 문학적 답변'입니다. 프리모 레비는 2차 대전이 끝나면서 파시즘이 사라진 것이 아니며 우리가 역사의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 참혹한 진실을 바탕으로 반성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경험한 그 지옥이 다시 도래할 것이고 '인간' 그 자체의 위기와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냉엄한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저자 개인의 너무도 세밀한 체험기도 놀랍지만 파시즘의 위험과 인류의 위기를 경고하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그가 1987년 고향인 토리노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유태인의 95%가 목숨을 잃고 단 5%만 돌아왔다는 통계를 본다면 그가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을텐데 그는 왜 결국 목숨을 버린 걸까요? 수용소의 삶이 전쟁 이후에도 계속 연결되었고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 그동안 버텨오다가 자신의 할 일을 다 마치고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간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그 답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각자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의 첫 저작인데 이후로 '휴전(1963)', '주기율표(1975)',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1986)'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에 모두 번역되어 들어와 있고 순서대로 모두 읽어볼 생각입니다.
단순히 수용소의 끔찍한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만만치 않은 문학적인 향기가 느껴지는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돌베개 출판사는 정말 좋은 책을 많이 출판해서 마음에 쏙 듭니다.
얼마전에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었는데 이 책에서 프리모 레비가 유태인 수용소와 러시아 수용소를 비교해서 설명한 대목이 나와 매우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덧. 저는 이 책을 읽기까지 아우슈비츠가 단일 수용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40여개에 달하는 수용소 군집을 말하는 것이더군요. 참고로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 속한 모노비츠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덧2.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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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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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사회주의 체제에 현존하는 모순과 비인도성을 고발하는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솔제니친의 첫 작품이 바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입니다.
197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1973년에 파리에서 출판한 '수용소 군도'가 센세이션을 일으켜 소련으로부터 추방당하는 바람에 스위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솔제니친이 몸소 경험한 스탈린 치하의 수용소 생활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라는 평범한 농민 출신의 죄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강제 수용소에서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하루 동안 겪은 지독하게 단조로운 생활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수용소 죄수의 따분한 하루를 소설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의아해했지만 역시 대작가는 다르더군요.
10년 형을 받고(책 속에서도 묘사되지만 주인공이 8년을 복역 중인데 형이 끝나도 유형지로 거주지가 제한되고 중간에 아무런 이유없이 다시 복역 기간이 추가되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희망이 없는 상태이죠), 게다가 나중에 들어온 죄수는 일괄적으로 25년 형을 받는다니 자유의 몸이 될 것을 기대할 수도 없는 절망적인 삶이 끝도 없이 계속되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절망하거나 하지 않고 그 안에서 나름의 즐거움과 안온함을 찾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고 어쨌거나 삶은 계속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군 생활하면서 찹쌀 도너츠 하나에 일희일비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깊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ㅠ.ㅠ
아주 짧은 단편이기 때문에 누구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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