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있는 것처럼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까?'에 대한 답을 얻고자 읽은 책입니다.
이 책은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협력하여 20년 동안 청소년 성적 소수자와 그들의 가족, 친구, 선생님 등 주변인들과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엮었습니다.
물론 제가 보고 있는 청소년 사례들의 경우 성 정체성 문제가 확실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지만(그냥 성격 미발달 문제로 인한 성 정체성의 혼란이나 동성에 대한 과잉 의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성 정체성 문제를 갖고 있는 청소년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좀 더 깊은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제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실제 사례를 많이 소개하고 있어 생동감이 있기는 하지만 현장 상담자라면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별로 참신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 정체성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용 교재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청소년의 성 정체성 문제를 판단하지 말고, 수용하고, 성 정체성 문제와 상관없이 인권을 존중하라는 겁니다.
본문의 내용보다는 부록으로 제공되는 참고 서적과 영상 자료 목록, 관련 단체 안내가 더 도움이 됩니다.
성 정체성 문제를 가진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 현실과 학교 장면의 문제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지만 저처럼 실전적인 지식을 원하는 임상가들은 굳이 읽으실 필요 없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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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은 동성애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 동성애에 어떤 원인이 있다는 관점은 실제로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바꾸지도 못하고, 성적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 이성애의 원인은 찾지 않으면서 동성애의 원인만 이토록 집요하게 찾으려 하는지 이것부터 먼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 청소년 동성애자들의 무려 78.5%가 15세 이전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중학생 정도가 되면 이미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 트랜스젠더 성별 변경을 위해 대법원이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 성전환증 환자로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진단
- 2명 이상 인우인의 보증
- 부모의 동의
- 대한민국 국적자로서 만 20세 이상의 행위능력자일 것
- 혼인 중이 아닐 것
- 미성년인 자녀가 없을 것
- 성전환증으로 인해 성별 위화감으로 고통을 받고 반대의 성에 대한 귀속감을 느껴왔을 것
-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을 것
- 종전의 성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할 것
- 범죄 또는 탈법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이 없을 것
=> 국가인권위원회의 기준 완화 요청 속에서 2013년 서울서부지방법원이 성기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하는 결정을 내리는 등 성별 변경의 기준을 완화하려는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
* 눈에 보이는 폭력을 가한 학생 몇몇을 불러서 꾸짖거나 처벌하는 것만으로는 사건 해결과 재발 방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학생이 동성애를 혐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 도한 피해자가 될까 봐 두렵거나, 쉽게 지지받지 못할 행동을 할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육은 모든 학생들에게 필요합니다.
덧. 이 책은 국민 도서관을 통해 북 크로싱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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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보스턴 결혼이 무엇인지는 '여자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라는 이 책의 부제만 봐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상적으로 동성애자 중 레즈비언은 게이에 비해(이성애자에 비해서는 더더욱) 육체적 섹스에 의존하는 경향이 적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반드시 육체적인 섹스를 동반해야 한다는 사회 통념 하에서 성장한 레즈비언들에게 우리의 사랑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안기게 됩니다.
이 책은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위한 레즈비언들의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의 공저자들은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레즈비언들이면서 동시에 대부분 심리학, 여성학을 전공한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레즈비언들의 무성애를 다루고 있지만 이건 이성애자들도 마찬가지로 고민하는 문제지요. '사랑한다면 당연히 주기적으로 섹스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섹스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있다는 건 사랑이 식었으면서도 그저 어쩔 수 없이 생활을 같이 하는 것 아닌가?'와 같은 고민들은 이성애자들도 많이 하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동성애 뿐 아니라 무성애에 대해서도 'Why not? attitude'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는지 공감이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성애자가 아닌 상대방이 섹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이성애자의 경우보다 훨씬 가벼운 수준이었거든요.
오히려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는지, 그리고 그런 트라우마가 그들의 삶을 얼마나 오랫동안 잠식하고 괴롭히는지를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따르는 관습, 주의, 태도, 전통, 양식 중에는 아무런 고민과 숙고가 없는 것들도 참 많다는 것이었죠.
이 책은 초반에는 '보스턴 결혼'의 유래와 이론적 개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고, 중반부에는 레즈비언 커플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가감없이 사례로 담아낸 뒤 마지막에 다시 한번 정리를 해 주는데 여성 심리학을 가르치는 올리바 에스핀 교수의 정리가 참 깔끔하면서도 통찰을 주더군요. 저도 이 책에 나오는 커플들 중 상당 수가 사실 상 보스턴 결혼 상태가 아닌 것처럼 보였거든요.
레즈비언들의 이야기라는 특수성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면 이성애자라고 하더라도 섹스와, 그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반려 관계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해 볼 수 있게 도와주는 책입니다.
섹스 지상주의라는 호수에 던지는 하나의 물수제비 돌이라고나 할까요?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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