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기문 장관의 UN 사무총장 취임
: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무한 영광이겠으나 친미/숭미주의자인 반기문씨의 평소 행적으로 볼 때, 유엔에서 미국의 입지만 넓혀줄 것으로 예상. 우리나라의 외교력 확대는? 글쎄, 매우 회의적임
2. 마시멜로 이야기 사건
: '대리 번역', '이중 번역', '공동 번역'과 같은 말장난이 난무하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으나 정지영 아나운서는 마시멜로 이야기의 원서를 읽어보지도 않았다는데 한 표. 출판사가 꼬셔서 이름만 빌려줬을 것으로 예상
3. 북한의 핵실험
: 미국의 강력한 대북 압박으로 인해 구석에 몰린 김정일과 군부 강경파가 노림수를 둔 거라고 생각. 김정일이 바라는대로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북한 핵실험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임. 미국이 선제공격하지 않는 이상 북한이 핵무기를 앞세워 남한을 선제공격한다는 망상은 실현 가능성이 극히 낮아 보임.
4. 재경위 국감 증인 채택 부결
: 열린우리당은 이제 한나라당과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냄새까지 비슷해진 상태. 조만간 성추행 추태, 골프장 외유 등 한나라당의 주특기를 그대로 물려받아 지면을 장식할 것으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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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수 차례 크게 실망한 경험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래와 같은 이유와 현상들 때문입니다.
첫째,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극히 소수의 참여자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항상 저도 포함됩니다)은 토론이 장기화될수록 지식의 부족을 드러내면서 했던 말을 지루하게 반복하는 양상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특히 학술적인 토론의 장이 아닌 이상 이런 양상은 갈수록 더 심화하고 결국은 들인 시간과 고민에 비해 참여자가 얻는 것이 거의 없게 됩니다. 인식의 차이를 확인했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자기기만입니다. 실제로 남은 것은 감정적인 상처와 앙금뿐입니다.
둘째, 항상 감정적으로 격앙되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고 토론에 감정을 개입하지 않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을 허탈하게 만듭니다. 어느 누구든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토론의 내용과 상관없이 감정적인 말싸움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인신공격만큼이나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저는 사회적,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그런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감정은 주제와 상관없이 동감하는 사람을 한쪽 방향으로 결집하며 상대방에 대한 감정적인 공격을 합리화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니다. 대부분 감정적으로 먼저 흥분하는 사람일수록 토론의 말미에 긍정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고 자기기만을 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셋째, 흔히 이분법적 사고와 죄책감을 자극하는 방법이 쓰이기 마련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중간자, 관찰자의 입장을 배제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건설적인 대안의 제시를 방해합니다. 또한 제가 가장 싫어하는 토론 방법 중의 하나는 상대방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인데 이 방법은 대상이 되는 어느 누구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만큼은 그 방법의 영향권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비겁한 방법입니다. 대체로 이분법적 사고와 죄책감 자극하기는 동시에 사용되는데 상대방의 감정적인 도발을 유발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더욱 악랄한 토론 방법입니다. 이것들은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날뛰는 칼이기 때문에 아예 꺼낼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넷째, 사회적, 정치적 이슈는 칼로 자르듯이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주제가 별로 없으며(민감한 이슈에 대한 토론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반드시 옳다는 고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미 시작부터 건설적인 토론 자체는 물을 건너간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식의 전문성으로 승부하는 학술 토론장도 아니기 때문에 참여하는 사람의 지식수준에 있어 차이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토론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지식수준을 공격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정보의 제공 및 공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친절한 모습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근거 제시의 요구는 면박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이며 오히려 상대방의 지식 수준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 마련입니다.
모든 토론이 그렇지만 민감한 이슈에 대한 토론은 자신이 잘못 생각할 수 있다는 자기 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전도하는 기독교인을 보면서 느끼는 안타까움은 그들의 본질적인 믿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의 비효과성에 대해서가 아닙니까?
얼굴을 마주보는 오프라인에서도 그럴진대 익명성을 보장받는 온라인에서는 앞서 나열한 네 가지 현상들이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월덴지기는 월덴 3 이외의 장에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입장 표명을 극도로 자제할 생각입니다. 이 글뿐 아니라 앞으로 올라오는 민감한 이슈에 대한 월덴지기의 견해도 월덴 3의 기본적인 운영 방침 상 덧글과 트랙백을 모두 허용하겠지만 부디 트랙백과 덧글은 신중하게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심리학 지식의 공유라는 월덴 3의 목적상 이 블로그 내에서는 운영방침이 의사표현의 자유보다 우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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