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 내 학생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제게 가져오는 supervision 사례 중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경우가 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음과 같은 검사 sign들이 함께 나타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FBS 척도의 유의미한(65T) 단독 상승 + MHH 기질 유형(LHL 성격 유형) + 신체화 증상
하필 TCI에서 MHH(회피성) 기질의 소유자라면 이차 이득이 존재할 확률이 극도로 높아지게 됩니다.
'TCI MHH 기질 - LHL 성격 유형의 이해 : 상담자용' 포스팅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내면 아이가 미성숙하니 자율성 발달이 지연되었고 이로 인해 회피성 기질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의존성 성격이니 의존 대상이 주변에 존재한다면 상담을 받으러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라포가 형성될 때까지 상담자는 내담자의 의존 대상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 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내담자가 증상을 호소함으로써 회피하고자 하는(정확하게는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기질에 충실하게)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상태에서 증상 완화적 접근만 해서는 라포 형성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거기에 신체화 증상까지 있다면 더더욱 증상 완화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되는 내담자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 신체화 증상은 1) 무언가를 회피하기 위한 핑계, 2)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신호, 3) 상담자에게 관심을 끌 수 있는 도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에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상 완화적 접근을 해서도, 성급하게 소거해서도, 그렇다고 강화를 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조합의 검사 sign을 보이는 내담자가 오면 1) 의존 대상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2)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3)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무의식적인 회피 동기를 정당화하면서 건강한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습니다. 초기에는 상담이라기보다는 코칭에 가까운 작업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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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담자에게 이차 이득이 있다는 건 상담자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이기는 한데 해석 상담 시 이를 내담자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부분에 이르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우울한 건 사실이지만 그 우울 때문에 이득을 보는 점도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특히 FBS 척도는 '무의식적인' 이차 이득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검자가 자신의 이차 이득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자칫하면 수검자가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수검자에게 직접 해석 상담을 진행하는 임상가라면 이차 이득에 대한 내용을 전달하는 법이 궁금하실텐데요. 저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해석합니다.
"~님은 현재 ~~~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어려움을 겪는 이유와 원인이 있죠"
"~님이 그 이유와 원인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FBS 척도가 상승한다는 건 ~님의 마음 만큼은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너무나 불안하고 그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한시라도 빨리 불안을 덜고 싶겠지만 마음은 그렇게 서둘러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불안을 줄여서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싶지만 마음은 취업에 실패했을 때의 심리적 타격이 더 두려워서 불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거죠"
"그러니 취업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들여다보고 다루어야지만 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불안을 없앤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겁니다"
조금 더 간략하게 줄여서 설명하고 싶더라도 그렇게 하다보면 설명이 충분치 않거나 직설적으로 들릴 수 있어 수검자가 평가자를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비유를 들어 완곡하게 표현하는 편이 낫습니다.
핵심은 수검자가 경험하는 고통감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도망가려는 비겁함이 반영된거라는 식으로 표현되어 수치심이나 죄책감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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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처럼 심리평가를 주로 하는, 임상 베이스의 야매 상담자는 잘 빠지지 않지만 오히려 상담 훈련 과정을 정식으로 이수한 상담자에게 위험한 함정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상담 교과서와 실제 상담의 차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 문제가 몇몇 상담자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의 상담자들이 한번쯤은 빠지는 함정이더라고요. 당연히 저도 여러번 빠진 경험이 있고요.
1.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알고 온다
이 함정은 그나마 알아보기 쉬운 편인데 그래도 많은 상담자들이 아직도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 상담자를 찾아온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내담자 본인의 내면에 있는 해결 방법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께요.
"선생님, 저 요새 되게 우울해요.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호소하는 내담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본인이 우울한 걸 본인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가정하지만 정작 내담자가 호소하는 '우울'이 무엇인지 한꺼풀만 더 깊이 들어가보면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우울과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불안을 우울로 믿고 있을 수도 있고, 우울 사고를 우울 정서로 착각하고 있을 수도 있죠. 즉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상담자가 생각하는 문제와 전혀 다른 것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분명해 보이는 고통감을 호소한다고 해서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잘 알고 왔다고 가정하면 안 됩니다. 대부분의 내담자는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잘 모르는 상태에서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생각하는 게 안전한 접근입니다.
2. 내담자가 호소하는 것이 상담 목표로 삼아야 할 문제이다
제가 주로 했던 도박 중독 상담에서 내담자(또는 보호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단 하나입니다. 도박을 끊고 싶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도박을 끊는 게 어려워서 전문가의 도움을 찾아 온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작 상담에 들어가보면 도박을 끊는 것이 궁극적인 상담 목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도박 중독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닙니다. 그래서 흔히 얄롬이 한 말로 알려져 있는 유명한 경구인, '지도가 영토가 아니듯 증상은 문제가 아니다'라는 말을 항상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경험 상 지금까지 내담자가 대놓고 호소하는 문제를 경감시키는 것이 상담의 최종 목표였던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한번도 없었던 것 같네요;;;). 내담자가 호소하는 것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도와주는 신호일 뿐 상담자가 공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니 내담자가 무엇을 호소하면 그 밑에 감추어진 원인과 이유를 좀 더 깊이 탐색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3.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다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담실에 왔다고 믿는 것도 상담자의 기본적인 특성인데 그것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고 다만 내담자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과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한 접근입니다. 왜냐하면 내담자가 상담 장면에 가져오는 문제는 내담자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유지되어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거거든요. 그래서 많은 상담 supervisor가 싫어하고 그 존재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로 인한 이차 이득이 없다는 게 분명하지 않은 이상은 모든 내담자가 이차 이득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고 이를 찾아보라고 권하는 편입니다.
사실 이차 이득은 나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온 시점에서 내담자의 처지와 맥락에서 부적절한 방식으로 충족하고자 하기 때문에 내담자가 이러한 이차 이득을 보다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게끔 상담자가 도와주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차 이득이 없다고 믿는 상담자는 증상 완화적인 접근을 택할 확률이 높고 그럼으로써 진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다 -> 그래서 상담자가 정리해 줘야 한다
2.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 그 안에 감춰진 진짜 문제가 뭔지 찾아라
3.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이차 이득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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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포스팅한
'FBS 척도의 이해'에서 제가 드린 말씀의 핵심은 FBS 척도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단독 상승했을 때 임상 척도 상승으로 인한 이차 이득을 탐색해 보라는 거였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 FBS 척도와 관련해서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한 아래의 해석 기준을 추천드리고 있습니다.
1. 타당도 척도 중 FBS 척도가 유의미하게 단독 상승했을 때 임상 척도 상승은 반드시 이차 이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탐색할 것
2. 타당도 척도 중 FBS 척도가 가장 높은 점수값(유의미 여부 무관, 성별 기준 적용)일 때는 기질 상의 취약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으며 K 척도가 40T 이하로 하강 시에는 성격 장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함. 따라서 TCI/JTCI를 추가 실시할 것
하지만 FBS 척도가 유의미하게 단독 상승했음에도 TCI/JTCI에서 기질 취약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도 가끔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다음의 순서로 살펴보시는 게 좋습니다.
1단계. TCI에서 기질 취약성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가운데 몰아쓰기' 응답 경향성 때문은 아닌지 응답지를 확인할 것
2단계. 기질 유형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경우 하위차원 수준에 기질 취약성이 숨어 있는 지 확인할 것
3단계. 이 모든 단계에서 나타나지 않을 경우 기질 취약성이 아닌 순수한(?) 이차 이득 때문은 아닌지 점검하기 위해 MMPI-2의 임상 척도를 소척도 연결 분석을 통해 꼼꼼히 살펴볼 것
1단계에서는 실제로 기질 취약성이 있기는 하지만 응답 경향성 때문에 나타나지 않았을 가능성을 점검하고 2단계에서는 자극추구, 위험회피, 사회적민감성 차원에서 두드러지지 않는 취약성이 하위차원에서 나타나지 않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거기에서도 나타나지 않을 경우, 많지는 않지만 이차 이득만을 반영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탐색해보는 순서로 진행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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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소척도에도 겉으로 볼 때 비슷해 보이는 척도들이 꽤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신체적 기능장애(D3)'와 '신체증상 호소(Hy4)' 척도입니다.
우선 각 소척도의 공식적인 해석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신체적 기능장애(D3)
: 자신의 신체 기능에 대한 집착,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함
* 신체증상 호소(Hy4)
: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며 다른 사람들을 향한 적대감의 표현을 부인함
신체 증상을 호소한다는 측면에서는 두 척도가 일견 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두 척도는 많이 다릅니다.
신체적 기능장애(Physical Malfunctioning, D3) 척도는 자신이 약하다는 느낌, 식욕 상실, 체중 변화, 에너지 저하, 변비가 있는 사람에게서 상승하며 'depressive somatization'을 반영하기 때문에 다분히 우울과 관련된 신체 증상에 국한됩니다.
신체증상 호소(Somatic Complaint, Hy4) 척도는 신체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상승하지만 2번 척도보다는 1번 척도와 상관이 더 높은 문항들로 구성됩니다. 'somatic conversion'을 반영하기 때문에 대개 신체화 방어 기제와 관련 있으며 신체 증상을 통해 관심을 끄는 등의 이차적 목적이 동반됩니다. 1번(Hs) 임상 척도와 HEA 내용 척도가 다소 모호하면서도 일반적인 신체적 불편감 호소라면 Hy4 척도는 비교적 구체적인 증상 호소입니다.
그래서 신체적 기능장애 척도만 유의미한 경우 신체 기능 이상을 동반한 우울 장애를 고려해야 하며 신체증상 호소 척도만 유의미한 경우에는 미성숙한 방어 기제인 신체화 방어 기제를 통해 관심 끌기 등의 이차 이득을 얻으려는 건 아닌지 고려해야 합니다. 일차로 Hea2(A-hea2) 척도가 상승하지 않는지 확인하세요.
위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신체적 기능장애 임상 소척도 : depressive somatization, 우울 관련 신체 증상 국한
* 신체증상 호소 임상 소척도 : somatic conversion, 구체적이지만 이차적 목적 동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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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 이득(secondary gain)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쉽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호소하는 증상이 궁극적으로 내담자에게 유,무형의 이득을 가져올 때 이러한 이득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흔히 이차 이득을 반드시 탐색해봐야 하는 장애로 신체화 장애를 들곤 합니다. 신체화 장애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차 이득의 형태로는 참석하고 싶지 않은 모임 약속이 생길 때마다 두통이 생겨서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있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두통은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의식적인 수준에서는 결코 원치 않으나 모임을 빠질 수 있다는 강렬한 이차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이차 이득은 대부분 심리적인 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상담자도 알아차리기 쉽지 않고 무의식적인 부분도 많아서 당사자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차 이득은 신체화 장애와 같은 특정한 문제에서만 나타나는가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모든 심리적 문제에는 어떤 종류이든, 어떤 정도이든 이차 이득이 있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호소할 때 그 문제가 야기하는 고통의 정도와 부정적 영향 이면에 그로 인해 내담자가 얻게 되는 이차 이득이 무엇이 있는지를 항상 탐색합니다. 왜냐하면
내담자의 무의식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서 동시에 해결하고 싶지 않은' 양가 갈등 상태인데 해결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차 이득과 관련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차 이득을 염두에 두고 탐색을 하다 보면 상담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찾아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항상 내담자의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고 있는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차 이득은 상담자만 관심을 가지면 충분하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내담자라도, 내담자가 아닌 누구라고 자신의 이차 이득을 스스로 탐색해 보는 게 유익한데 특히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고 나름 노력해 봤지만 소용이 없으며, 어딘가 꼬여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 지 모르겠다면 이런 상태로 인해 내가 얻는 이차 이득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던 이차 이득이 자리잡고 무의식 속에서 자신을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 본론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이차 이득이 있는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의외로 간단합니다.
자신을 괴롭히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가 해결된다면 도리어 나에게 불리하게 되고 내가 손해보는 점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죠? 문제가 해결된다면 좋아지는 점을 찾는 게 아닙니다. 그건 일차 이득과 관련있고요.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도리어 나빠지는 것, 그것이 바로 문제를 지속시키는 이차 이득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5년 째 부모님의 지원을 받으며 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년 목표하고 있는 시험날이 가까워 올 때마다 눈앞이 흐릿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 증상이 시작됩니다. 병원에 가서 각종 검사를 해 봐도 모두 정상이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합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이 문제로 매년 시험을 망쳤고 아무래도 올해도 그럴 것 같습니다. 대체 이 사람의 이차 이득은 무엇일까요?
눈앞이 흐릿하고 집중이 되지 않는 증상이 말끔히 사라진다면 이 사람이 나빠지는 건 무엇일까요?
시험에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독립을 해야 하고 더 이상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친구나 동료들이 사회에 진출해 이미 적응한 상태이고 자신은 이제서야 뒤쳐진 상태에서 그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초조함과 직면해야 합니다. 혼자의 힘만으로 가정을 꾸려야 하며 본인의 능력으로 가정 부양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이차 이득입니다.
가상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차 이득을 확인하지 못하고 증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증상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상담이나 심리치료만 받으면 결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차 이득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 열등감 등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물어보세요. 이 문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내가 볼 손해는 무엇인지, 나빠지는 면은, 악화되는 면은 무엇인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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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원자료를 raw material이라고 쓰거나 제목의 reading을 다른 용어로 바꾸거나 해야 하는데 적절한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네요. 너무 습관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업계 용어는 막상 바꿔쓰고 싶어도 대체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심리검사의 원자료를 잘 엮어서 핵심을 뽑아내는 것입니다. 물론 각 검사들의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당연히 필요한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문제죠.
특히 빠지기 쉬운 함정은 각 검사 sign이 공통적으로 의미하는 부분만 찾으려고 애쓰는 것인데 그렇게 딱딱 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런 전형적인 profile보다는 반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원자료 리딩을 잘 하기 위해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 중 하나는 '의외성'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한 검사에서 발견되는 의외성을 눈여겨 보고 그 검사 sign으로부터 가설을 설정한 뒤 그 의외성을 다른 검사의 sign들과 교차 검증해 보면 그때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역동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등교 거부를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동이 할머니와 함께 심리평가를 받으러 왔고 부모가 바빠서 동행하지 못해 발달력 등의 개인 정보가 거의 없는데다 할머니가 손주와 함께 살지 않아 자기보고형 평가 도구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를 한번 보죠. 문장 완성 검사에서도 아이가 부모나 가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기술로만 일관하고 지능 검사 결과도 평이해서 별로 연결된 고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KFD에서 모든 가족 구성원을 그렸는데 자신만 안 그렸다면 밖에 나가서 놀고 있어 안 그렸다는 아동의 보고만 믿고 넘어가지 말고 그 의외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자아중심성이 강하고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이인데 가족화에서 자신만 안 그렸다면 가족 내 갈등이 있거나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등교 거부도 학교에서 또래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파괴적인 관심끌기나 알 수 없는 이차 이득이 있을 수도 있죠. 이런 의외성을 염두에 두고 다른 투사법 검사의 sign들을 살펴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 보고형 검사 등 구조화된 검사 결과와 궤를 달리하는 투사법 검사 결과가 새로운 가설을 입증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러니 원자료 리딩을 할 때에는 공통된 부분을 찾으려고만 하지 말고 뜻밖의 모습을 보이는 검사 sign을 눈여겨 보고 새로운 가설을 설정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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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를 할 때 가설 검증 방식을 사용하면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할 뿐만 아니라 체계적이고 순차적으로 원자료를 검토함으로 인해 판단 착오의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가 끝난 뒤 검사 원자료를 주욱 늘어놓고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리면서 답답한 한숨만 푹푹 쉬는 평가자라면 한번쯤 가설 검증 방식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죠.
하지만 아무리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해도 모든 사례에 가설 검증 방식을 적용할 수는 없는데 가설 검증 방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몇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 아동을 심리평가 할 때 부모의 보고 신뢰도가 현저히 의심되는 경우입니다. 아동이 너무 어리면 MMPI-A와 같은 자기 보고형 검사 도구를 사용할 수가 없어 KPRC나 K-CBCL처럼 부모가 아동의 문제를 평정하는 척도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부모가 아동의 문제를 잘 몰라서 제대로 평가할 수 없거나(차라리 그러면 다행인데),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것을 염려해 문제를 축소 보고하거나 반대로 상대방 배우자나 그의 부모를 원망하기 위해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우, 또는 정작 자신에게 심리적 문제가 있어 문제를 왜곡해서 지각할 수 있는 경우에는 부모의 주관적 관찰 보고에 의해 가설을 설정하게 되면 오히려 더 헤맬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설 없이 blinded evaluation을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또한 부모의 평정 신뢰도를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MMPI-2와 SCT 정도의 자기 보고형 검사는 screening 차원에서 반드시 실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성인을 심리평가 할 때 이차 이득(secondary gain)이 두드러지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자면 군 복무를 피하려는 목적으로 정신과 진단서를 받기 위해 심리평가를 받는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죠. 이 경우는 자신이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상태임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은 다양한 증상들을 과장해서 보고하기 때문에 그런 호소(complaints)를 바탕으로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설명되지 않은 가설만 잔뜩 만들었다가 정작 원자료와 충돌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이 역시도 blinded evaluation을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셋째. 배경 정보로 추정한 1차 가설들이 서로 배타적으로 충돌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내 욕을 하는 환청이 들린 지 10년이 넘었다는 문제와 기분 변화가 너무 심해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는 증상을 동시에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첫 번째 문제는 SPR계열 장애의 1차 진단 가설이 가능할테고 두 번째 문제는 기분 장애군에 속하는 1차 진단 가설이 가능할텐데 두 가설의 접점은 Schizoaffective Disorder 정도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환청이 10년이나 들릴 정도로 만성화되었다면 그 가설은 별로 신빙성이 없죠. 이런 경우 억지로 여러가지 문제를 공통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설정하는 건 무리한 시도입니다. 그러니 가설을 설정하지 말고 원자료를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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