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로서의 저를 아는 분들은 제가 심리평가나 상담과 관련하여 가능한 한 투명하게 모든 것을 내담자와 공유하는 걸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심리평가와 관련해서는 관련글을 여러 차례 포스팅 한 적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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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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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검자가 자신의 심리평가 결과를 보겠다는데(혹은 갖겠다는데) 그걸 왜 막나'
그런데 부부 상담이 실패하여 이혼 소송으로 귀결된 상황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 다 자신의 내담자였던 부부 중 한 쪽 배우자가 이혼 소송에 사용하겠다며 상담 기록을 달라고 요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담 기록은 내담자의 것이니 그냥 줘도 될까요? 아니면 소송 상대인 배우자의 동의가 없는 한 요청한 내담자의 상담 기록만 추려서 제공하면 되는 걸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법적인 문제가 걸린 경우에는 가능하면 상담과 관련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담자로서의 중립 위반
아무리 객관적인 입장에서 상담 기록을 요약하거나 확인서를 쓰려고 노력해도 이미 진행된 상담 내용을 통째로 주는 것이 아닌 이상 개인의 주관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부 상담자로서의 중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할 위험성이 큽니다. 상담자의 중립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지고지순한 가치라든가, 중립을 지키는 것이 100%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couple therapy의 경우 상담자가 중립을 지키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그러기 어렵다는 거지요.
2. 상담 내용의 오용 문제
상담에서는 내담자의 치유를 위해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지만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담과 반대로 법은 옳고 그름만을 따지지, 내담자의 치유에 대해서는 관심 없습니다(법은 사실 그래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치유를 위해 내담자가 힘겹게 털어놓은 본인의 치부와 비밀이 악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상담 기록을 요청하는 배우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걸 활용하려고 요구하는 것이죠).
3. 이중 관계
제가 법적인 문제가 걸려 있을 때 상담 기록 공개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이중 관계를 맺는 것이고 치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진한 상담자는 내담자를 돕고 싶은 마음에 상담 기록을 넘길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법적인 조력자 또는 지지자의 관계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 없이 추가되는 겁니다. 그 뿐 아니라 상대방 배우자(한 때 내담자였던)와 맺었던 치유 관계가 훼손되는 것도 피할 수 없습니다.
많은 상담자들이 법적인 문제로 상담 기록을 요구받을 때 법적 한계와 상담자가 져야 할 법적 책임의 무게만 고려하기 쉬운데 치유적인 관계 안에서만 생각해도 깊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적 소송 때문에 상담 기록을 요청받으면 상담 중이든 이미 종결한 상태이든 반드시 요청한 내담자와 다시 약속을 잡아서 전후 사정을 듣고 이를 상담의 틀 안에서 다루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은 상담 기록의 요구가 냉철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분노의 충동적 표출이나 수치심의 배출 경로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상담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담자의 역할을 고수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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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중독자가 치료를 거부하면서 도박을 중단하지도 않아 배우자가 결국 이혼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 도박 행동은 결혼 파탄의 귀책 사유로 이혼 법정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고려될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중요한 이유는 도박자가 자신이 도박을 한 이유는 배우자가 돈 문제로 하도 바가지를 긁어서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고 많은 배우자들이 이것이 이혼 소송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사용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도박 중독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혼 사유로 고려됩니다. 이 때 도박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배우자가 도박자에게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것이 도박자의 도박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배우자가 도박자의 도박 중독 정도를 인정받기 위해 도박자가 방문을 했던 상담 센터나 치료 기관에 치료를 받았다는 증빙을 요구하는 경우(대개 배우자의 담당 변호사가 요청)가 있으나 이 때 환자/내담자의 개인 정보 보호 차원에서
본인이 동의를 하지 않으면 정보를 공개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이혼 소송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얻으실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혼 상대방인 도박자가 자신의 도박 사실을 부인하지 않고 수긍한다면 별도의 입증이 필요없지만 이를 부인하는 경우 도박 사실의 입증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기 때문에 만약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남편의 도박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 수집을 미리미리 해 두어야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법조계의 전문가와 상의를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덧. 이 포스팅은 변호사의 법적 자문을 거쳐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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