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어서 도움을 구하고자 자발적으로 상담 기관을 찾는 성인과 달리 청소년은 대개 부모나 보호자에게 이끌려 비자발적으로 방문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상담자도 성인이다보니 어른에 대해 적대감 또는 거부감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은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한 두 번 상담을 나오지만 곧 어떻게든 상담을 피하려 합니다.
그나마 부모나 보호자가 상담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서 상담 때마다 동반하거나 상담이 지속되도록 신경을 써 준다면 상담자가 청소년과 라포를 형성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지만 그마저도 어렵다면 상담자 한 사람만의 힘으로 상담을 지속해 나가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예약된 시간에 늦게 나오는 걸로 시작해서 점차 시험이나 학원 등의 핑계를 대면서 상담을 미루게 되고 나중에는 연락 없이 상담을 빠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상담자가 보호자에게 통보하기도 하고 청소년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상담을 지속하고자 하는 인식이 전혀 없을 때는 결국 조기 종결하게 됩니다.
이럴 때 많은 상담자들이 조기 종결을 그냥 손놓고 방치하곤 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물론 보호자, 청소년에게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등의 조치를 했는데도 상담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걸 어쩌란 거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상담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더라도 흐지부지 끝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한 명의 상담자가 한 내담자를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상담을 진행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통제못할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상담을 정상적으로 종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한번은 방문을 하도록 설득을 해서 내담자와 얼굴을 마주 보고 종결 상담을 통해 상담을 끝내야 합니다.
최소한 한 명의 어른이라도 자신을 돕기 위해 끝까지 애썼다는 사실을 청소년 내담자가 기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게다가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부족해서, 동기가 없어서,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등등의 이유로 상담을 지속하기 어렵다고 해도 나중에 다른 상담자를 통해 지금보다는 좀 더 쉽게 상담을 재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기 종결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종결 상담은 내담자의 얼굴을 직접 본 상태에서 진행하도록 최선을 다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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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중독치료 초기에 저는 중독자에게 '정직'과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정직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것은 도박중독자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문제가 '거짓말'과 '회피'이고 또한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지표도 바로 거짓말과 회피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치료를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치료자에게만큼은 앞으로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며 거짓말을 하게 되면 도와줄 수가 없게 된다고 단단히 못을 박습니다. 물론 강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치료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최소한 rapport가 형성되고 신뢰가 쌓일 때까지의 기간을 버틸 힘은 되거든요.
그런데 사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책임감을 갖게 하는 일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회피하고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기는 것이 도박중독자의 특징이므로 일상 생활에서 책임감을 갖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거의 항상 치료 초반에 채무 변제 계획을 세우기 위한 채권자 목록을 작성하는 과제를 주는데 금융권 채무와 지인들의 사적인 채무를 구분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인들을 직접 만나서 자신이 도박중독에 걸렸음을 고백하고 빚 갚기를 유예해 달라는 부탁을 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담배를 끊을 때 몰래 혼자서 고민하고 끊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냄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굳게 하듯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의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더 이상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많은 도박중독자들이 이 과제를 죽기보다 싫은 과제였다고, 가장 힘든 과제였다고 회상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생각할까', '나를 비난하거나 소문을 내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거야'와 같이 부정적인 생각들이 끊임없이 도박자를 괴롭히거든요. 자신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고 피하고 싶은 문제를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는 것만큼 힘든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과제의 효과는 실로 대단해서 이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사람은 그야말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근거없는 불안의 늪에서 빠져나올 뿐 아니라 지인들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기도 합니다. 절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에게서 빨리 빚을 갚으라고, 공증한 차용증을 쓰라는 다그침을 당하거나 이와 반대로 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는데 빌린 돈에 신경쓰지말고 어서 빨리 도박에서 벗어나는데 집중하라고, 내가 도와줄 것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격려에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 과제를 완수한 도박중독자는 이전과 전혀 다른 자세로 치료에 임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은밀한 중독'인 도박중독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문제를 주변에 널리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될수록 치유의 그 날은 더 빨리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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