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결국 일 아니면 관계 중 하나로 귀결되고 집단주의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관계 문제가 한층 더 심각합니다. 일보다 관계 문제가 더 많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블로그에도 여러 차례 올린 포스팅이 있으니 검색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관계 문제만 떼놓고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에게 섭섭하다는 감정이 깔려 있고 이 섭섭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이유를 탐색하다보면 결국 '내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즉, 내가 give한 만큼 상대방으로부터 take하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비롯하여 섭섭함, 억울함을 지나 분노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마인드가 바로 이 포스팅의 제목입니다.
'모든 관계는 사실 상 계약서 없는 비즈니스 관계이다'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도 감정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모든 관계가 비즈니스 관계라는 명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아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있는가'
약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남편이 왜 당신과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 하나', '여친이 왜 당신과 만나야 하는지 이유를 말해봐라' 등등. 상대방이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과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 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선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면 어차피 상대방도 알 바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어도 문제이고 알고는 있지만 일부러 주지 않고 있어도 문제입니다. 당연히 전자가 훨씬 더 큰 문제이고요.
이제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당신이 주고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알지만 안 주고 있다면 먼저 주세요. 상대방이 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버티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매우 높은 확률로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하면서 버티고 있을 겁니다.
가끔 긍정적인 강화를 하기 위해 품행 문제를 보이는 자녀에게 칭찬할거리를 일부로라도 찾아보라고 조언하면 칭찬받을 짓을 해야지만 칭찬하겠다고 버티는 어리석은(미성숙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파괴적 관심 끌기를 하는 자녀에게 그런 고집을 부리는 건 바보짓이죠.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고 그것을 충분히 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1.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경우 : 직접 알려주거나 잘 안되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2.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으나 일부러 주지 않고 있는 경우 : 헤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호구입니다.
갈등이 야기되는 일반적인 대인 관계를 예로 들었지만 비즈니스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비즈니스 관계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만 먼저 생각하면 제대로 된 결과를 얻기는 커녕 불공정 계약을 하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사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 비즈니스 관계를 통해 상대방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왜 나랑 이 비즈니스 관계를 맺으려는 걸까에 대한 자기 객관화), 내가 과연 상대방의 그 needs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윈 윈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의 반려인과 가정을 꾸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도 이 친구가 내게 뭘 원하는걸까, 내가 그걸 충족시켜줄 수 있나였습니다. 반려인이 원했던 건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둘 다 제가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신이 있었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뭘 해도 가족을 밥 굶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승락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의 깨달음으로 저는 지금도 어떤 제안이 들어올 때 상대방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걸 충족시켜줄 능력이 제게 있는지부터 따져봅니다. 제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는 맨 마지막에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큰 실패 없이 일을 해 온 것 같네요.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관계 문제로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이 부분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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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의외로 상담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 3가지 : 상담자용' 포스팅에서 1)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오는 내담자는 거의 없으며, 2) 따라서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가 진짜 문제일 가능성은 거의 없고, 3) 게다가 내담자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왔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다소 과장해서 말씀드렸지만 그 포스팅의 핵심은 내담자가 보고하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상담자라면 좀 더 넓고 깊게 파고들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죠.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도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발상의 전환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 내담자가 일 영역의 문제(직장, 학업, 진로 등)만 호소하면 불안, 우울 등 임상 증상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내담자가 일 문제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해도 병리적인 문제가 원인이거나 최소한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분부전장애나 신체화 증상이 동반된 불안 장애, PTSD 등으로 인해 일 영역의 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 이와 반대로 내담자가 스스로를 공황 장애, 성인 ADHD, 조울병 등으로 진단부터 내리고자 한다면 일 영역의 문제는 없는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자발적으로 보고하지 않지만 졸업, 진로, 학업에 문제가 생긴 대학생이나 직장 내 부적응 문제가 생긴 직장인들이 문제의 원인을 정신과 장애로 귀인하기 위해(문제를 책임지지 않고 회피하기 위해) 진단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엇이 불편한지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미 어떤 진단이라고 결론내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내방하는 내담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이차 이득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일 영역의 문제만 이야기하는 내담자는 숨겨진 임상 증상이 없는 지 탐색해야 하고, 반대로 특정 진단에 꽂혀서 증상만 이야기하는 내담자는 일 영역에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한 지 탐색해야 합니다.
결국 내담자가 보고하지 않는 문제가 진짜 문제일 가능성을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만 잘 챙겨도 회기 낭비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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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담을 받으러 방문하는 내담자들이 호소하는 문제는 거의 대부분 둘 중 하나이기 마련입니다. 대인 관계 갈등이나 어려움이 하나의 영역이고 우울, 불안, 강박 등의 증상이 다른 하나의 영역입니다. 증상을 호소하는 내담자라 해도 그 증상의 원인이나 증상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탐색하면 항상 대인 관계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상담자들은 보통 내담자의 문제 또는 그 원인이 대인 관계의 어려움에 있다고 가정하고 들어갑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프로이트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두 가지 삶의 영역이 '일'과 '대인 관계'라고요.
그런데 왜 임상가들은 대인 관계의 어려움만 탐색하는 걸까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대인 관계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일이 대인 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일이 대인 관계만큼 중요한 삶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제대로 탐색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죠.
학교 부적응 문제로 Wee class나 상담복지센터를 방문하는 아동/청소년이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사례를 supervision하면서 성적이나 학업 성취도를 물어보면 그걸 제대로 확인하는 상담자가 거의 없더군요. 확인을 했다고 해도 내담자나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꼼꼼히 확인해보면 학교 부적응 문제의 원인이 학업 성취도가 낮아서일 때가 많습니다. 수업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니 학업을 따라갈 수 없고 그래서 흥미도 떨어지고 동기도 저하되어 학교를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겁니다. 당연히 이런 아동/청소년은 또래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또래 관계라도 좋다면 친구를 만나러 가는 즐거움으로 학교를 다닐 수는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친구와 만나서 놀 수 있는 건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의 짧은 시간 뿐입니다. 긴 수업 시간은 혼자 버텨야 합니다. 그러니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기 어렵습니다. 학교 부적응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동/청소년 중에 반에서 1등을 하거나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요? 저는 1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보죠.
조직 부적응 문제로 EAP 상담을 받으러 온 직장인이 있습니다. 동료나 상사와 관계가 좋지 않다거나 불합리한 조치 때문에 피해를 당하거나 해서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고 호소합니다. 물론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보고 하지만 그 이유가 대인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 직장인 중에서 본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원하는 회사에 입사했고 일이 너무나 재미있으며 일의 성과를 인정받아서 승승장구하다가 재수없게 이상한 상사를 만나서 다 때려치고 싶을만큼 힘들어져 온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요? 역시 저는 그런 사례가 1건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전교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아동/청소년이나 회사에서 능력으로 촉망받는 직장인은 왜 상담을 받으러 오지 않을까요?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버틸 힘이 있습니다. 그동안 받아왔던 사회적 지지와 인정으로 인해 자존감과 자아 강도가 높은 수준이라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우리나라는 과제 지향적인(task-oriented) 문화보다는 관계 지향적인(relationship-oriented) 문화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과제 지향적인 문화에 속하는데 이를 관계 지향적이라고 포장한 것 뿐입니다. 관계 지향성이 강하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합니다. 조직이나 집단에서 튈 때,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을 때, 그래서 따돌리거나 배척할 때에만 관계 지향성이 중요합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별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동북아 3국인 일본, 중국, 우리나라가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그러므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대인 관계 스트레스 때문에 내담자가 힘들어 하는 게 맞다고 해도 일 영역의 문제를 좀 더 꼼꼼히 탐색해야 합니다.
친구가 자신을 따돌려서 힘들다고 온 청소년은 사실 학업을 따라가지 못해 학교를 다니는 게 힘든데 교우 관계까지 소원해져서 더 이상 못 버틸 것 같기에 상담을 받으러 왔을 수 있고 직장 상사가 자신을 괴롭힌다고 화가 나서 온 직장인은 사실 회사에서 무능력자로 낙인 찍혀서 더 이상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불안감에 상담을 받으러 왔을 수 있습니다.
특히 대인 관계는 최소한 2자 관계 이상으로 연결된 복잡한 문제입니다. 내담자만 바뀐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담자와 연결된 환경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 환경은 통제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설사 통제 가능한 수준이라고 해도 바뀌는데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일은 오로지 내담자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빠른 변화가 가능합니다.
지적 제한으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청소년이라면 표준화된 지능 검사 결과에 따라 자신의 능력과 흥미에 맞는 자신의 목표를 다시 설정할 수 있고 원치 않는 영역에서 일하면서 직무 동기가 떨어진 직장인이라면 진로 적성 코칭을 통해 더 늦기 전에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맞는 새로운 일을 찾게 도와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대인 관계' 영역을 탐색하기 전에 '일' 영역을 먼저 탐색합니다. 제 경험 상 '일' 영역의 문제는 항상 '대인 관계'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거든요. 그리고 '일' 문제가 빨리 해결될수록 '대인 관계' 문제도 쉽게 해결되곤 했습니다.
대인 관계 영역에 집중해서 상담을 진행하지만 진척이 잘 되지 않고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 상담자라면 한번쯤 '혹시 내가 일 문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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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4분기 첫 안식주는 4월 1일부터 9일까지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강의, 대면/온라인 수퍼비전을 포함한 모든 공식적인 일을 하지 않습니다. 4월 9일 이후의 대면 수퍼비전 예약 관련 문의만 이메일로 받겠습니다.
온라인 수퍼비전 사례는 3월 30일 자정까지 도착한 것(31일까지 처리가 가능한)까지만 처리하겠습니다.
이번 안식주에는 쉼으로는 1박 2일 글램핑이 예약되어 있고 일 관련해서는 밀렸던 강의안(애착 외상, 그림 검사 관련) 작성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지난 안식주 때도 그랬듯이 실제로 가 봐야 무엇을 하게 될 지 알 수 있겠지요. :)
일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쉼도 그만큼 열심히 할 필요가 있죠. 이 블로그를 방문하는 모든 분들도 일과 쉼의 균형을 잘 지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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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 중 대다수가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하거니와 대부분의 상담자들은 수련 과정의 특성 상 내담자의 문제가 대인 관계에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인 관계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가능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로 탐색해봐야 합니다. 또한 대인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프로이트가 한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그는 모든 인간의 문제가 '일'과 '사랑'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대상을 배우자, 가족, 자녀, 친구 등으로 넓힌다면 결국 대인 관계 문제라고 할 수 있을텐데 과연 대인 관계 문제만 갖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가 얼마나 될까요?
또래 관계 문제로 상담을 받으러 와도 공부가 잘 되고 성적이 잘 나오는 청소년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학교 생활을 버티어 냅니다. 마찬가지로 대인 관계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실 문을 두드리지만 자신의 전공에 만족하는 대학생이 많지 않죠.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차근차근 살펴봐야겠지만 내담자가 '사랑'이 문제라고 호소한다고 해서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 됩니다. 당연히 다음 질문을 해 봐야 합니다. 성적은? 전공은? 회사일은?
'일'이 잘 된다고 '사랑'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사랑'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일'도 문제가 생겼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게다가 '사랑' 문제는 상담실에 내방했을 때 쯤에는 꽤 오랜 시간 진행되어 대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내기 어려우며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많지만 '일' 문제는 의외로 단기 상담에서도 쉽게 문제 해결 중심적 접근으로 다룰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다못해 진로 적성 검사 결과만 갖고 코칭을 해도 좋아지기도 하죠.
그러니 '사랑'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내담자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항상 초반에 '사랑'과 함께 '일'도 함께 확인하는 걸 습관화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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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가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날짜는 7월 1일이었습니다. 그 전에 남은 휴가를 써야 해서 6월 9일 이후로는 회사에 안 나갔고요. 나름 6년 동안 준비를 했음에도 막상 15년을 일했던 직장에서 나오려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지더군요. 몸과 마음을 쉬면서 이후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활용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들어오는 일을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서 소화하느라 한 달 동안 무리를 하는 바람에 심한 감기로 큰 곤욕을 치렀죠.
프리랜서의 삶은 일이 없어도 곤란해지고 일이 많아도 문제가 됩니다. 일이 없으면 생계가 곤란해지고 일이 너무 많으면 삶의 균형이 깨지게 되죠. 저는 다행히 일이 많은 축이었지만 한 달 동안 지옥의 강행군을 하다보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일이 많은 건 다행이지만 평생 이렇게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런 행복감도 느끼지 못하고 일만 하다 후회하며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삶의 패턴이 고정되기 전에 뭔가 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단 하루는 세 부분으로 나눠서 8시간은 수면, 8시간은 일, 8시간은 여가 시간으로 나눴습니다. 12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8시 30분에 일어나고 9시 40분 쯤에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그 다음에 오전 10시부터 2시간 일하고 한 시간 쉬는 걸 반복하면서 8시간 일을 하면 정확하게 밤 9시에 일이 끝나고 퇴근하게 됩니다. 저처럼 시간 단위로 일하는 직업은 일반 직장인의 일과 전혀 다릅니다. 아무래도 client를 상대하는 일이니까요. 일하는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엄청나게 집중해서 밀도있게 일해야 합니다. 그러니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버텨낼 수가 없더군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8시간을 자면 무엇을 해도 버틸 힘을 확보하게 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잠을 줄이고 그 시간에 딴 짓을 했는데 알고 보니 어리석은 짓이었습니다. 충분히 자고 남은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더라도 매일 이렇게 8시간씩 일하면 결국은 버텨낼 수가 없기 때문에 주 5일제로 고정했습니다. 수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닷새만 일하고 월, 화요일은 철저히 쉬는 걸로 정했죠. 아직은 화요일에도 일이 있지만 차차 줄여나가서 월, 화요일은 응급으로 들어오는 외부 강의를 제외하면 모든 일정을 비우고 쉬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분기마다 일주일을 통으로 쉬는 안식주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올해 4/4분기는 그 첫 시도로 12월 24일부터 1월 1일까지 일주일을 쉬기로 했고 앞으로도 3개월마다 일주일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쉬려고 합니다.
최종 목표는 안식월 도입으로 일 년에 한 달은 통째로 쉬는 겁니다. 내년 12월에 버마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것과 연결하여 12월 한 달을 쉬려고 계획 중입니다. 그러려면 한 달 생활비를 평소에 따로 저축해놔야겠지요. 11개월 일한 것으로 일 년을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여행비는 따로 모으고 있으니 외부 강의비를 떼어 마련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으니 저로서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독립해서 일을 시작한 초기에 일과 쉼의 균형을 맞춰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고민만 하다가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에 일단 시작해보고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기면 그때 그때 보완해 나가려고 합니다. 일과 쉼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잘 되어가는지는 나중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짐을 잊지 않기 위해 일단 포스팅부터 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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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는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크게 나누어 볼 때 '일' 아니면 '사랑(대인 관계)' 문제 중 하나입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관계 문제가 압도적으로 많죠. 이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매일 만나다보면 일 대 일 관계 이상을 맺지 못하도록 정해져 있다면,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 조직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은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게끔 강제하는게 가능하다면 어떨까, 거의 대부분의 관계 갈등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볼 때가 있을 정도입니다.
하여간 많은 내담자들이 관계가 힘들어서, 상처를 받아서,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상담자를 찾습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상담자들은 대인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그런데 많은 상담자들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혹은 강하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들이 분명히 있죠. 대표적인 케이스가 schizoid한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입니다. schizoid한 사람들은 관계 욕구는 분명히 있지만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대상이 동물일 수도 있고, 물건일 수도 있고, 추상적인 object일 수 도 있습니다. 즉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는 없을 수도 있는 것이죠. 관계 욕구의 대상이 동물이라면 동물을 좋아라하고 동물에게 애틋한 감정도 느끼지만 사람에게는 아닌 겁니다.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때로는 싫어하거나 혐오하기도 합니다. 관계 욕구의 대상이 자연이라면 이 사람은 오지에서 혼자 살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인' 관계 욕구가 있다고 믿는 상담자는 이런 schizoid한 내담자에게 반치유적인 접근을 시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관계 욕구는 있지만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schizoid한 내담자를 꽤나 자주 만나는데 이 사람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히키코모리나 사회 부적응자, 아스퍼거, 게임 중독자, 우울증 환자 등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그저 관계 욕구의 대상이 인간, 인간 조직, 인간 사회가 아닐 뿐입니다.
이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불편감은 사실 '대인' 관계 욕구가 없는 이들을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강제하는 인간 사회가 유발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들을 진정으로 돕는 방법은 이들을 억지로 인간 사회에 편입시켜 강제 연애를 주선하고, 커뮤니티에 집어넣고 억지로 대인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질적 특성을 온전히 수용하고 인간 사회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심리적 거리(schizoid한 사람들에게는 이 거리가 굉장히 중요한 개념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대부분의 내담자에게는 대인 관계 욕구가 있고 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내담자도 있다는 걸 상담자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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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까'라는 포스팅에서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평생 할 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 포스팅과 연결됩니다. 맥락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포스팅에서 저는 아무리 재미있고 흥분되고 즐거운 일을 한다고 해도 그런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고 그렇게 되면 결국은 그 안에서 다시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낼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 때의 내용이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제는 선택한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00% 괴로운 일도 없고 100% 즐겁기만 한 일도 없고 모든 일에는 좋아하는 부분과 싫어하는 부분이 포함되고 결국은 비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좋아하는 부분을 많이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부분을 적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이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정서가(emotional value)가 다르기 때문인데 당연히 부정적인 것의 심리적 무게감이 훨씬 더 큽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의 양이 비슷하다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죠. 몸에 묻은 오물의 양과 동일한 양의 향수를 뿌린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싸고 향이 좋은 향수를 뿌리는 것보다 오물이 묻지 않도록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옥같은 회사에서 6개월 일을 하고 그 다음 6개월을 천국같은 휴양지에서 쉴 수 있다면 어떨까요? 휴양지에서의 휴식을 기대하고 버텨낼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회사 생활이 더 지옥같이 느껴질 겁니다. 사람들이 일 하기 좋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구글을 꼽으면서 다양한 복지를 꼽지만 그건 겉으로 보이는 부분일 뿐입니다. 구글이 동일한 복지를 제공하면서 삼성처럼 일을 시킨다고 해도 과연 일 하기 좋은 기업의 선두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돈을 버는 일을 하든, 집안 일을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부정적인 부분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려고 해도 부정적인 부분이 그 장점을 손쉽게 상쇄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싫어하는 일을 적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어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이게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사회에는 '어떻게 사람이 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냐?', '누구나 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면 하기 싫은 일은 누가 하는데?'라는 집단적 사고가 일종의 문화처럼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합니다. 모두 함께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덜 불행을 느끼자는(실제로는 너만 행복한 꼴을 못 보겠다는) 식의 압력을 행사하는거죠.
이 오해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란 게 대동소이하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은 누구나 창의력을 발휘해 뭔가를 창조하는 일을 좋아하고 단순 반복적인 일을 싫어한다는 선입견이 대표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없는데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기존에 있는 것들을 효율적으로 정리해 시스템을 구축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거든요.
물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일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좋아하는 일의 양을 최대한 늘리고 난 뒤 아무도 선택하지 않아 남은 일이 구체화되었을 때 기계화, 자동화로 최소화하고 그래도 남은 게 있다면 그 때 나누어도 됩니다.
잊지 마세요. 싫어하는 일을 참고 하면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그 때란 건 결코 당신의 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계속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될 겁니다. 게다가 점점 더 싫어하는 일만 많이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싫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싫어하는 일이 점점 더 몰리게 되는데 일을 시키는 사람에게 만만하게 보여서 그렇기도 하고 그걸 좋아하는 사람처럼 오해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싫어하는 일을 줄이려는 노력 없이 좋아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것도 효과 없습니다. 일시적인 회피일 뿐이니까요. 적극적으로 없애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싫어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 있거나 늘어납니다. 결국은 해야 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적극적으로 줄이고 없애세요.
그제서야 좋아하는 일을 (양을 늘려) 할 수 있고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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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우리는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가능하면 힘들지 않은 일, 하면서 재미있는 일, 남들보다 보람있고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을 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경제가 많이 어려워져서 일할 수 있는 자리만 주어져도 감지덕지인 사람도 많지만 그래도 평생 해야 할 일이라면 가능하면 위에서 나열한 특성들을 갖춘 일을 누구나 하고 싶을 겁니다.
심리학이 인기 있는 분야가 된 지금 심리학을 공부해서 심리학으로 먹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했고 그러다보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 분들의 문의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고픈 사람들은 심리학으로 큰 돈을 벌기는 어렵다는 정도는 대체로 알고 물어봅니다. 궁금한 건 이거죠. 자신이 지금 갖고 있는 호기심과 설레임, 열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심리학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가.
보수 수준, 직업의 안정성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다분히 심리적인 속성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재미나 보람, 열정을 주는 일을 찾아 헤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건 파랑새를 찾는 것과 같거든요.
우리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리 재미있는 게임을 해도, 아무리 흥분되는 모험을 해도 그러한 즐거움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기준이 평생 할 일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질리지 않고 계속 할 수 있는가'입니다.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 쉬운 부분과 힘든 부분을 갖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비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질리지만 않을 수 있다면 결국은 그 안에서 다시 긍정적인 내용, 쉬운 내용, 즐거운 내용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제게는 심리학이 그렇고, 여행이 그렇고, 블로깅이 그렇고, 고양이가 그렇습니다.
심리학과 여행과 블로깅, 그리고 고양이는 질리지 않더군요. 아직까지는요.
그러니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을 한 방에 찾아주는 일을 찾기보다는 질리지 않아서 계속 꾸준히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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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몸에 해로운 디스트레스와 어느 정도 유익이 있는 유스트레스로 굳이 나누지 않더라도 적당한(tolerable) 수준의 스트레스가 야기하는 가벼운 긴장감(또는 설레임)은 심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행동을 활성화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를, 그것도 장기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받게 되면 굉장히 해롭습니다. 그러한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평소에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요.
90년대를 풍미한 스트레스 대처 모형을 주창한 Lazarus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개인 및 환경적 요인을 변화시킴으로써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려는 '문제 중심적 대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유발된 부정적 정서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갖는 '정서 중심적 대처'로 스트레스 대처 방법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Lazarus는 다분히 정서 중심적 대처를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대처 방식으로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저는 Lazarus의 대처 방식 분류가 이성과 논리를 감성과 마음에 우선하는 다분히 미국적인 이분법에 입각해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견해를 조금 달리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대처 방법의 효과성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느냐보다는 일, 관계 차이에 따라 달라집니다.
도식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 일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일과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 사람(관계)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 -> 대처 방식의 성질이 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풀어야 함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 논문을 써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답답해 미칠 것 같음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친구와 만나서 폭풍 수다 (X)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헬스장 윈드밀에 올라 땀 흘리며 운동 (O)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 맨날 나만 보면 갈구는 상사 때문에 입맛도 없고 출근하기가 싫음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상황
-> 주의를 돌리기 위해 일에 푹 파묻힘 (X) :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비효과적
-> 그 상사를 겪어본 동기와 선배를 만나 상의 (O) :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이기 때문에 효과적
첫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둘 다 정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제가 볼 때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릅니다.
두 번째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은 Lazarus의 분류법에 따르면 위의 경우와 반대로 둘 다 문제 중심적 대처 방식이지만 역시 효과성의 측면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갖고 오게 됩니다.
중요한 건 대처 방식이 문제 중심적/정서 중심적이냐가 아니라 스트레스의 원인이 일이냐 관계냐에 따라 그에 해당하는 속성을 가진 대처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위의 예는 다른 맥락 정보가 없고 순수하게 일 또는 관계로만 받은 스트레스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트레스 요인이 일, 관계 복합적이라는 걸 감안하면 지나치게 단순화된 접근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 일과 관계 중 어느 쪽 요소가 강한 지 잘 생각해보면 스트레스의 성질을 결정하는 main part는 있을 겁니다. 그게 일이라면 과제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반대로 관계라면 관계 지향적 스트레스 대처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스트레스 대처와 관련된 집단상담을 진행하면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상황과 대처법,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짝지어서 분류해봤는데 너무나 분명하게 나뉘는 걸 보고 제가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직 통계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고 경험적인 발견에 불과하지만 스트레스 대처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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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가져 오는 문제는 프로이트가 이야기 한 '일'과 '사랑'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랑', 즉 대인 관계 문제가 압도적 다수라고 할 수 있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건 모든 사람들이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는 흔히 '그럼 나한테 문제가 있는건가?'하는 의문을 품은 상태에서 상담자를 찾게 됩니다.
심리검사도구의 도움을 받아 보기도 하고 상담자와 상담을 하면서 나에게도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뭔가 대화 기술이라도 배워야 하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의사 소통 기술을 향상시키기 위해 처세술 책을 들춰보기도 하고 뭘 좀 아는 분들은 비폭력 대화법 등을 배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꽤 많은 대인 관계 문제에서 대인 관계 기술과 같은 표면적인 문제가 아닌 근본적인 차이가 발견됩니다.
바로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동기, 의지, 욕구가 없는 것이죠. 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확실한 건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대화 기술은 상대방도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나 접점을 찾기 어려울 때 도움을 받으려고 익히는 것이지 나와 대화 자체를 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동기를 불어넣는 기술이 아닙니다.
그러니 뭔가 대화가 겉돌고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는 대화 기술을 새로 익힐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이야기(접촉, 관계 유지)를 하고 싶은 것이 확실한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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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사를 구분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보기보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사사로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하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일종의 청탁만 거절하면 된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그 사사로운 요구라는 것이 단순히 외부 사람들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함께 일하는 사람과 단순한 동료의 범위를 벗어나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게 되면(이성관계이든 동성관계이든 간에) 반드시 공과 사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에서든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과는 일을 함께 하지 않습니다.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사적으로 얽히게 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기 어려운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되고 반대로 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과 일을 함께 하게 되면 일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목표와 성과가 있기 때문에 감정 상하는 일이 꼭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일은 일대로 사적인 관계는 사적인 관계로 분리해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속 편한 방법이더군요.
지금까지의 제 경험이 그랬고 그렇지 않은 예외 경우를 별로 보지 못한지라 저는 앞으로도 계속 이 원칙을 고수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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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까지 변변한 직업 없이 잉여인간으로 살면서 일, 인생, 인간 관계에 대해 고민해 온 내용을 책으로 펴내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나카지마 요시미츠의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2001)'을 북 크로싱합니다.
일본식 번역투가 아주 쪼~금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안에 담긴 내용이 충분히 상쇄 하는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글'을 참고하세요.
이 책을 읽고 싶은 분은 아래의 북 크로싱 제도 안내에 있는 내용대로 제게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 월덴 3의 북 크로싱에 대해 궁금한 분들은 여기를 클릭!
* 북 크로싱 신청을 하시기 전에 반드시 경고 제도를 숙지하세요!
* 신청자 명단(2014년 1월 22일 9:38 현재)
- 김희진(독서 완료) : 9월 6일(신청), 9월 7일(배송), 11월 23일(독서 완료)
- 이루다님(독서 완료) : 11월 17일(신청), 12월 3일(독서 시작), 1월 28일(독서 완료)
- 84yahoo님(독서 완료) : 9월 24일(신청), 10월 14일(독서 시작), 11월 25일(독서 완료)
- 벨라님(독서 완료 & 보관 중) : 1월 5일(신청), 1월 15일(독서 시작), 1월 21일(독서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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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저는 제가 하고 있거나 관여하는 대부분의 일을 현재 좋아하고, 충분히 즐기고 있다는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일하기 싫은 사람을 위한 책은 대체 뭐 하러 읽었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따라가다가 제 팔로워 중 한 분의 추천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저도 제가 하고 있는, 그리고 해야 할 일에 대해 큰 회의를 품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그 행복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어 이 책이 표방하는 바에 끌렸고 다른 하나는 바뀐 제 삶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일말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 책은 일하기 싫어 죽겠고 그래서 뭔가 탈출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술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적으로 살 것을 권장하는 철학서에 더 가깝습니다.
부조리, 불합리, 우연이 가득한 세상을 무조건 피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히키코모리처럼 사는 것은 결국 자신도 용납하기 어렵게 된다는 진리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은 마음챙김과 수용, 그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쉼 없이, 그러면서도 목표를 세웠으면서도 거기에 집착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느샌가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죠.
죽음의 의미를 다루는 Irvin D. Yalom의 냄새도 살짝 나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병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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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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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하는 일에 아주 만족하는 편입니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프로이트의 '일과 사랑'은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칼로 두부 자르듯이 딱 잘라 떨어지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과 사랑이 하나라는 말도 아니며 일을 사랑한다는 것도 아니며 사랑을 일처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사랑과 일의 교집합 영역이 생각보다 상당히 클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상당히 축복받은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자신의 일에 불만스러운 사람들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혹은 휴식처를 찾기 위해 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읽기 전보다 더 한 실망을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알랭 드 보통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가만 보니, '사랑'의 영역과 '일'의 영역 사이에 놀라운 유사점이 있더군요. 요즘 우리는 으레 사랑과 결혼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또 일의 영역에서도 돈과 만족을 동시에 얻기를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 대부분이 사랑과 일에서 빈번히 위기를 겪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요"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고 힘들어 죽겠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일이 편해지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아닐겁니다.
다만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현상과 사물을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재조명하는데 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를 읽고 있으면 '와~ 이 사람은 어떻게 이런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가 있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도 알랭 드 보통은 새로운 시각으로 '일'에 대해 조명합니다. 물론 '비스킷 공장', '송전 공학', '로켓 과학' 등 특이한 직업과 일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그림', '회계', '물류'처럼 우리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직군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찰의 틀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랭 드 보통의 전작들에 비해 뽀쓰가 부족하기 때문에 별 3개로 평가했습니다만 4장에 나오는 '직업 상담' 분야 때문에 별을 하나 더 추가했습니다. 이 책에서 영국의 직업 상담사로 나오는 로버트 시먼스는 심리학이 직업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좋아하는 상담자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더군요. 솔직히 그가 일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잠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자신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가장 흔하고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착각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평범하게 살기만 하면 그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인생을 제대로 사는 것이냐 하는 문제에 관한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당연시하는 착각이었다. 학위를 얻기도 전에, 가족을 꾸리기 오래전에, 집을 사기도 전에, 법률회사의 정상에 올라서기 오래전에 그런 직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은 어떤 잘못이나 어리석음 때문에 그런 직관을 얻지 못했고, 그 결과 진정한 '소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에 남아 괴로워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4장이야말로 이 책에서 우리가 바랬던 답의 힌트를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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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가족들이 도박자가 상담도 꾸준히 받고 있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기는 한데 혹시 안 보이는 곳에서 몰래 다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이미 여러 차례 뒤통수를 얻어 맞은 기억이 있는 가족들의 입장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고 상담자로서 공감도 됩니다.
하지만
일과 도박을 모두 열심히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박은 돈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에너지와 시간, 주의집중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도박은 그 어떤 것보다도 우선시 되기 때문에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도박을 할 수는 없습니다. 도박이 최우선이죠.
따라서 도박 중독자가 만약 다시 도박을 시작했다면 처음에 어느 정도는 일과 도박의 균형을 이룰 수 있지만 곧 그 균형이 깨져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주의가 온통 도박으로 쏠리게 되어 밖으로 티가 나게 됩니다.
그러니
도박자가 일에 열중하고 있고 그러한 모습이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하다면 아직은 다시 도박을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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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을 할 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다양하지만 저는 크게 3가지 차원(뭔가 거창하다~)에서 사람을 구분합니다.
1. 똑똑하다 - 무식하다 차원2. 열심이다 - 게으르다 차원3. 선량하다 - 사악하다 차원
차원이 3가지이니 2 X 2 X 2 = 8가지 유형이 나오겠네요.
물론 선량-열심-똑똑 조합이 최고의 일꾼이겠습니다. 같이 일하면 엄청 편하고 배우는 것도 많고 그야말로 신바람나는 사람이죠.
최악의 조합은 사악하고 무식한데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의 정부가 딱 이 조합이니까요. 무식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도 하는 일마다 (빠르게) 망쳐놓는데 거기다 사악하기까지 하니 주변에 끼치는 피해는 안하무인이고 오로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공감제로의 인간들이기 때문에 미래를 암울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대개 이 조합은 자기가 굉장히 공명정대하고 사명감을 갖고 사심없이 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서 제어가 안 되는 타입입니다. 일종의 구제불능이라서 타협을 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말고 최선의 방법은 빨리 폐기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무식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선량한 조합이라든가, 똑똑하지만 게으른, 선량한 조합 정도는 그래도 참을 만 하죠.
저요? 저는 무식하고 게으른, 선량(정말?)한 조합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에는 좀 빨라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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