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의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저는 개인적으로 심리평가를 통해 성격 장애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바입니다.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대부분의 임상가는 병원 장면, 그것도 대학병원급의 종합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을 하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무조건 진단을 내리는 것이 상례이고 진단을 내리지 않으면 뭔가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래서 false positive error가 상당히 높은 편이죠. 저도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는 몰랐는데 supervision을 하면서 학생생활상담소, local NP, 종합병원 급의 정신건강의학과, 개업 상담 센터, 국가 기관 등 다양한 임상/상담 현장에서 일하거나 수련받는 분들의 사례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니 대형 병원에서 얼마나 과잉 진단을 많이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일부 대형 병원에서는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DSM의 Axis I 진단이 이미 내려진 환자에게도 반드시 성격 장애 진단을 내리거나 성격 문제를 찾아내도록 교육시킵니다. BIG 5 병원 중 하나입니다. 반성하세요.
성격 문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폭넓게 피검자를 살펴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마는 그걸 이론적 근거도 없이 무조건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게다가
심리평가에 포함된 심리검사 도구의 본질적인 제한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성격 장애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성격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그렇기 때문에 기질이나 특성까지 염두에 두고 종단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를 진단하는 심리검사 도구는 대부분 횡단적인 도구입니다. Full Battery에 포함된 검사 도구 중 성격 문제를 잡아내는 종단적인 검사 도구는 사실 상 없습니다. 그나마 TAT가 가능성이 가장 큰 도구이지만 정작 Full Battery에는 빠져 있기 때문에 결국 남는 후보는 로샤 밖에 없습니다.
자 여기에서 질문입니다. 로샤 검사가 정말 성격 문제를 명징하게 드러냅니까? 로샤 검사로 찾아낸 것이 정말 성격 문제 맞습니까? A, B, C군의 성격 장애를 로샤로 정확하게 변별할 수 있나요?
성격 장애는 충분한 상담을 통해 발달력을 포함한 개인력을 포괄적으로, 그러면서도 깊이 있게 살펴봐야지만, 그것도 어림짐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성격이라는 것은 다면적인데다 DSM의 Axis I에 속한 장애와도 관련성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칼로 무우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왜 DSM-5에서 DSM-IV의 성격 장애가 4개나 빠지는지(40%의 탈락율)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심리평가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으니 의사들의 약물 치료에만 의존하면서 그렇게 무책임하게 진단하지 마세요. 성격 장애가 약물만으로 치료 됩니까? 그런데 왜 자기가 치료하지도 않으면서 정확하지도 않은 진단을 함부로 내립니까? 본인이 성격 장애 진단을 내린 근거를 명확하게 심리검사 sign으로 교차 입증하지 못한다면 심리평가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리평가에 사용되는 심리검사도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특히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데 있어 기존의 Full Battery는 무용지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설쓰기의 위험성을 상당 부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취약한 도구들입니다.
잘려나가는 것이 내 살이 아니라고 그런 무딘 칼 함부로 휘두르지 마세요. 우리가 다루는 건 사람의 마음이니까요. 부끄러운 줄을 좀 아세요.
심리평가만으로 성격 장애를 진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기존의 Full Battery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덧. 정신병리연구회 사례회의에 참석했을 때 병원에서 수련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과 수련 감독자가 이구동성으로 피검자가 histrionic 하다느니, narcissistic 하다느니 하는 걸 듣고 기가 차서 하는 포스팅입니다(DSM-5에서는 histrionic PD가 빠지죠. 훗). 정작 어이없는 것은 그 사례는 Full Battery 검사도 안 했다는 거. 치료도 안 하면서 소설 그만 쓰세요. 병원에서 성격 장애로 함부로 진단내리면 정작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상담센터 등의 현장 임상가들이 뒷수습하느라고 얼마나 힘든지 압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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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임상심리전문가는 한국심리학회 산하 임상심리학회에서 관리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007년 1월 초에
'임상심리학의 위기'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글은 총론적인 위기에 대해 쓴 것이고 오늘 내용이 각론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맘대로의 예측이며 개인적으로는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임상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만든 자격이지요. 이후에 국회에서 관련 자격에 대해 입법을 하게 되자 임상심리전문가를 국가공인자격증으로 만들려고 학회에서 애를 썼지만(개인적으로는 전략의 부재로 평가합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보건복지부에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만들어지고 두 개의 자격 제도가 생기게 됩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급조된 자격으로 수련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상심리학회에서 수련위원회를 꾸려 수련 감독을 대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수련을 받았던 임상심리 레지던트 중 일부는 3년의 기간 동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동시에 취득하는 행운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 이관해서 총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오니 반발하지만 역시나 진압되고 결국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자격을 동시 취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전과 달리 자격 요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당시 수련 인정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수련 레지던트가 꽤 많았지만 학회에서는 아무런 대책 마련도 못 했습니다. 그 피해는 레지던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에 이전처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하면서 대충 정신보건센터에서 시간을 때우고 수련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인 이원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때까지는 임상심리학자가 두 가지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때부터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면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수가 늘면서 임상심리학회의 기반을 위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심리학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감이 없거든요. 상담 심리학회 회원들에게 모 학회인 심리학회에서 회비를 통합 징수하려고 할 때 일어났던 문제의 이유와 유사하죠. 임상심리학회에서는 산하의 임상심리전문가들을 정신보건전문요원협회에 가입하도록 독려하면서까지 밀월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임상심리학회와 상관이 없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바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에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인정해서 그대로 자격을 수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 몇 교수들이 바로 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즉,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은 갖고 있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없는 임상심리학 교수에게 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그냥 준 것이죠. 당연히 정상적인 수련 과정 없이요. 물론 이런 부당한 혜택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도 심리학과에서 강단에 서고 있는 임상/상담 심리학 교수 중 상당수가 정상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소급해서 그냥 준 것이죠. 뭐 원로 대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필요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불공정한 정책이 임상심리학계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의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부실한 수련마저도 받지 않고 자격을 얻은 교수들이 심리평가, 심리치료에 대한 개념이 있을리가 만무하니까요. 뭘 알아야 가르치죠.
어쨌거나 이런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전문가의 관계는 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의 위치가 어정쩡한 것이지만요.
문제는 이후에 산업인력공단에서 임상심리사 자격이 국가 공인 자격으로 또 만들어진 것이죠. 이 자격은 수련 과정 없이 시험으로만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 임상심리사 2급의 수가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을 합한 수보다 많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2급 자격자만 있다가 최근에 1급 취득과 승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현장에서 각축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 그럼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종합병원급의 수련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가 아닌 전문가(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며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이 대표적인 경우)가 supervisor가 되는 순간부터 임상심리전문가가 마음 편히 누리던 수련 과정의 핵심축이 붕괴되기 시작할 겁니다. 현재는 supervisor가 임상심리전문가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카르텔에 의해 모교 출신이나 최소한 심리학회 회원만 수련 레지던트로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supervisor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기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심리평가의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속도가 더 빨라졌거든요. 임상심리전문가는 지금까지 '정신과 병동 수련'과 '심리평가'라는 유용한 tool을 가진 이득을 배타적으로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상담심리학회에서 심리평가 수련을 위해 문호를 대폭 개방하고 상담심리전문가 자격까지 갖추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그 교육을 담당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의 유일한 무기였던 심리평가의 잇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요?
저만 해도 제게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supervisee 선생님 중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지 않는 수가 이미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나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만 취득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말입니다. 이게 저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상황일까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만 놓고 볼 때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격차는 이미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supervisor의 지도를 받았느냐가 더 큰 차이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이 격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임상심리전문가의 가장 큰 무기였던 심리평가가 앞으로는 현장에서 그다지 우위가 되는 기술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투입된 노력과 시간 대비로 비교해보면 임상심리전문가는 메리트가 별로 없습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quality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굳이 임상심리전문가를 써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를 우위로 생각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각 병원의 supervisor의 실력에만 맡겨놓고 수련 제도를 방기하고 있는 학회의 책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회가 수련 제도 정비를 위해서 뭘 했습니까?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기본 교재가 있습니까? 아니면 supervision을 위한 manual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미 자격 번호 600 번대의 junior supervisor가 종합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supervis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아무런 orientation도 없이요. 이런 supervisor에게 수련을 받은 레지던트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나오는 건 금방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나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임상심리전문가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밀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학교가 아닌 임상 현장 이야기입니다. 저는 솔직히 학교는 생각도 않고 있고 기대도 안 합니다. 이미 개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암울한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수련 제도를 정비하고 supervision을 표준화, 강화해야 합니다. 수련 현장 나름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표준화된 manual을 만들어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교육이 되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취득하면 임상 현장에서 이 정도는 기대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supervisor가 자신이 수련받을 때 배웠던 것만 달랑달랑 가르치는 수준으로는 질적 하락이 불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supervisor가 심리평가, 심리치료 하나 안 하면서 수련 레지던트만 착취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임상심리전문가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둘째, 심리치료 분야를 강화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답답한게 뭔지 아십니까? 제 분야가 아닌 내담자의 문제를 의뢰하고 싶어도 전문가가 하나도 없다(혹은 모른다)는 겁니다. 가정 폭력 문제가 있는 도박자의 가정에 개입하고 싶어도 가정 폭력 전문 치료자가 없어서, 하다 못해 청소년 우울증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가가 누군지 몰라서 속앓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현행 의료보험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심리치료를 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충족시켜줘야 하나요? 임상심리전문가가 뛰어들지 않는다면 계속 심리평가나 하면서 수지 타산이나 맞추고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요?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심리평가 분야를 잠식해서 벼랑으로 떠밀릴 때까지요. 심리치료만 놓고 보면 임상심리학회는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나 다름 없습니다. 수련 레지던트의 사례 발표나 하는 수준이지 전문가의 사례 발표는 눈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고명하신 교수님들은 정년 보장이 되니까 심리학의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달콤한 꿀빨기에 여념이 없으시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장이 죽으면 학교도 죽습니다. 아닐 것 같습니까?
수련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과 정비, 그리고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매진,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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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틀렸습니다.
저는 3년 전 임상심리학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 이후로 결성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일종의 원년 멤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꾸준히 오프 모임에도 나갔고 초기에는 무료로 게릴라 워크샵도 진행을 했습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뒤로 물러나 이제는 수련에 도움이 될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정도로만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모임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글은 빠짐없이 읽고 댓글로 의견도 개진하는 편입니다.
올 4월에 임상심리학회에서 부회장이신 조선미 선생님의 명의로 대의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의 대표 참석을 권유하는 공식 요청이 모임에 도착했는데 일단 시일이 촉박했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임상 심리학회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3년 동안 회원 수가 500명이 넘는(2009년 10월 3일 현재 523명), 가장 큰 수련생 모임을 방치해 왔습니다. 물론 그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도 자신의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 가입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수련 레지던트들의 수가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임상 심리학회에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수련생 협의회로 발족시켜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공식적인 절차 없이 대표 참석을 요구하는 것은 수련생이 처한 약자 입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고 실제로 이 사안에 대해 준비 모임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반가운 시도이기는 하나 누가 총대를 멜 것인지 걱정이라는 논조가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가장 큰 조직이기는 하나 대표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수련생들이 배제되는 문제가 당연히 발생할텐데(이 점에 대해서도 모임에서는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아닌 전체 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한 배려도 아쉬웠습니다.
따라서 저는 임상 심리학회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의원 제도와 맞물려서 무엇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의협의 전공의 협의회처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위한 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학회가 총대를 메고 임상심리 레지던트 권익 보호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깊어진 불신의 골을 지금이라도 메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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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자료라 함은 심리평가 보고서와 심리검사 원자료, 거기에 면담 요약, 진료 기록지 등 심리평가를 위해 활용되는 피검자의 모든 기록을 말합니다.
이 중 진료 기록지 등 일부 자료는 의무 기록으로 분류되어 의료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자료는 피검자의 정신장애 진단 및 심리 상태와 같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방치된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무성의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심리평가자료는 유출될 경우 피검자에게 법적,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엄청난데도 학회에서 공식, 비공식 지침 한번 발표된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를 상근 고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의 경우가 가장 문제인데 심리검사를 위한 전용 검사실을 갖추지 못한 곳이 태반이고 그러다 보니 심리평가자료를 보관하는 장소도 없어서 임상심리학자들이 그 중요한 심리평가자료를 개인적으로 (집에) 보관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 그대로 폐기함으로써 나중에 재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임상심리학자가 그만두면 그 평가자가 평가한 피검자의 자료는 몽땅 며느리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죠.
물론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스캔하여 광파일로 보관하고 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실에 저장해 병원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좀 쓰는 편입니다. 그래도 역시나 헛점은 있는데 예를 들어 수련을 마친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전문가가 되어 병원을 나가게 되면 당연히 그동안 작성했던 심리평가보고서 파일을 모두 백업하고 유출이 되지 않도록 PC, 노트북의 파일을 삭제해야 하는데 제가 알기로 그렇게 하는 병원은 국내에 하나도 없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제가 수련받던 당시에 작성했던 심리평가보고서 파일을 모두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백업 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확인도 안 하더군요. 이건 사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피검자의 개인 정보가 오로지 임상심리학자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져 있다는 건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든 심리평가자료가 임상심리학자 개인의 손에 맡겨져 언제든 유출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로 소송이 걸리고 자격이 박탈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학회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소한 전문가 회원을 중심으로 심리평가자료를 어떻게 보관, 관리하는지 실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관리 지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현재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제가 실시했던 모든 심리평가자료를 년도 순으로 보관하고 있으며 10년이 지난 후 순차적으로 파쇄기를 이용해 폐기할 예정입니다. 또한 심리평가 보고서의 문서 파일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접근이 가능한 저장장치에만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방법이 정답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될거라고 봅니다.
모쪼록 학회가 빨리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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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임상심리학회 산하 정신병리연구회의 회원입니다(커밍아웃?). 수련을 마친 뒤에도 될 수 있으면 정기모임에 참석하려고 노력하는데 하나는 제 자신을 단련하는데 필요한 지적 자극을 받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계속 자리를 지켜 수련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입니다. 게다가 어제는 제가 일하는 분야의 이야기라서 일부러 시간을 뺐습니다.
6시 30분부터 시작이라서 조금 일찍 도착해 등록을 하고(2009년 회비로 3만 원을 냈습니다. ㅠ.ㅠ), 병원 구내에서 라떼 한 잔을 산 뒤 뒷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하 1층에 커다란 카페가 새로 생겼네요. 환자를 위한 시설에는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돈 벌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합니다.
모임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도록 김밥 등을 제공한 것은 좋았습니다. 저야 일찍 저녁을 먹고 갔지만 병원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오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많을테니까요.
대신 각 병원의 supervisor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게 보였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병원에서 발표를 하건 supervisor들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질문도 많이 해서 모임을 활발히 이끌었는데 어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바쁜 지 모르겠지만 별로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초심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발표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성 안드레아 병원의 1년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병적 도박의 정의와 원인, 이론, 측정도구에 대해 발표했고 2년차 선생님이 이어서 치료와 사례, 연구 결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상당히 긴장을 하셨을텐데 침착하게 시간도 잘 조절하면서 하시더군요. 예전에 제가 발표할 때 엄청 떨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내용이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한 발표였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외국 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현장과 다른 점을 짚어주지 못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의심없이 믿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한국의 도박중독 유병률을 9.28%라고 소개(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치)하면서 reference가 되는 금홍섭(2006)의 연구에서 어떤 평가 도구를 사용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SOGS가 허위 긍정이 매우 높은 도구라서 현장에서는 단독 사용을 꺼리는 데 대표적인 평가 도구라고만 소개를 하고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도박 중독자의 MMPI profile에 대해 설명하면서 외국 연구자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주로 4번을 위주로 한 profile)했는데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부분들은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성 안드레아 병원에서 운용하고 있는 치료 프로그램의 소개였는데 다양한 치료 기법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임상심리학자들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럴꺼라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역시나 도박 중독자를 맡기지 않더군요.
제가 장담하건대 임상 심리학자를 치료에 적극 활용하지 않는 이상 성 안드레아 병원에서 도박중독치료의 질이 높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정신병리연구회에서 도박 중독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한편으로는 고무되면서도 앞으로는 더 이상 이론적인 부분이 아닌 실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전달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월덴지기의 Comment
그래도 MMPI-2와 TCI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계시더군요. 조만간 논문도 나올 것 같던데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05년부터 자료만 줄기차게 모을 뿐 논문 한 편 쓰지 않고 있는 제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저도 좀 논문도 쓰고 그래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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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신과 외래에서 요구하는 심리평가 보고서의 길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분량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표나 그래프를 삽입해서 시각적으로 화려한 것을 의사들이 선호하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곳도 많다고 하더군요. 이건 실제로 제가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들어주지는 않았지만요. 그래서 짤렸나 봅니다. ㅠ.ㅠ
참 답답한 일입니다. 물론 의료보험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수십 만 원에 달하는 평가 비용을 내는 환자, 특히 부모의 입장에서는 뭔가 근사해 보이는 colorful하고 화려한 보고서를 기대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심리평가 보고서의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가 환자, 피검자 아동 부모의 시각적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 작성하는 것인가요? 심리평가 보고서는 피검자의 인지 기능, 성격, 정서 상태, 대인 관계 양상, 대처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필요 시 정확한 진단을 하고 치료적 제언과 예후를 제공하는 심리평가의 최종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피검자에게 최대한의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성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조건 길이를 늘리는 방향으로 보고서가 작성되다 보면 외형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case formulation이 제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중언부언 불필요한 문구가 삽입되어 읽는 사람들이 피검자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렵고 실제 치료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는 사람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A4 5장이 넘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모두 읽는 치료자가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다에 한 표 던집니다. 정작 의사들도 대부분 summary & recommendation만 밑줄치면서 읽고 맙니다.
제가 나름대로 지키고 있는, 길이와 관련된 심리평가 보고서의 작성 원칙은 딱 하나 뿐입니다.
"빼고 나서도 피검자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문구는 과감히 뺄 것"
어떤 문구를 빼고 나서도 피검자를 이해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 문구는 불필요하게 들어간 것이고 오히려 앞 뒤 연결에 혼란만 가중하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빼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원칙을 갖고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어떤 문구를 쓸 지, 그것이 피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지 고민하게 되기 때문에 익숙해지면 한결 군더더기가 줄고 간결하게 작성하게 됩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는 최대한 짧게 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성인 종합 보고서의 경우 A4 기준으로 3장을 넘어가지 않도록 작성합니다. 여러가지 표나 그래프가 들어가는 소아 종합 보고서의 경우라도 A4 4장을 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항상 상기하세요. 대체 왜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지를...
덧. 사실 약자인 임상심리 레지던트 입장에서 의사나 병원의 요구에 당당하게 맞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일하는 supervisor의 역할이 중요하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회 차원의 대응입니다. 이건 뭐 완전히 각개전투에요.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벽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격이니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학습된 무력감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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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공식적인 명칭이 임상심리 레지던트였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에도 그렇게 기술했고 병원 가운에도 '임상심리 레지던트'라고 새겨 있었고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 현장에 나와 '임상심리 수련생'이라는 명칭을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수련생이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수련을 받는 학생이라는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수련생'이라는 말은 착취를 정당화하는 용어입니다.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전문 기술과 지식을 사사받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족쇄같은 명칭입니다. 실제로 정당한 급여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수련 병원에 가운, 식대 비용으로 일정한 금액을 내고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수련생 협의회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명칭을 쓰자는 말이 나왔고 임상심리학회 게시판을 통해 건의도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여전히 수련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요.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학교에 계신 교수님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supervisor로 있는 전문가들도 심각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경우 '전공의'라고 하지 절대로 '전공의 수련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의사들의 인턴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십 과정에 들어온 사람들이 학생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더 큰 문제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마저 스스로를 '수련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 교수의 절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임상심리 레지던트는 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 고급 수련 과정에 있는 준 전문가이며 이미 검사 수가, 치료, 연구 등 충분한 공헌을 수련 기관에 하고 있습니다. 수련생이라고 폄하될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임상심리학회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부터 지켜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들 스스로도 자기를 낮추는 이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용어를 추천하고 지금도 제게 supervision을 받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어떤 쪽으로 정리가 되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부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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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피검자의 긍정적인 측면을 찾아내는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병원이라는 수련 환경의 특성 상,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제를 찾아내는 훈련만 집중적으로 받게 되기 때문이죠. 거기에 치료라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배제되는 우리나라 임상 현실이 반영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전문가가 된 이후 심리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발생합니다. 심리평가도구를 이용해 환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진단을 하는 것에만 치중된 수련을 받은 전문가는 문제로 자신의 책임 하에 환자를 치료하게 될 때 엉킨 실타래를 앞에 둔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방법을 무작정 시도해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작 심리치료는 문제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에서 시작해야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에게 단순 반복적인 행동 수정 기법이 효과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듯이 말이죠.
따라서 심리평가를 할 때에는 피검자의 문제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장점과 건강한 심리적 자원을 찾아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건 전통적인 수련과정에서 제공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항상 자신이 평가한 피검자를 자신이 맡아서 치료를 한다고 가정하고 그 출발점을 그 피검자가 갖고 있는 장점에 두는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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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임상심리학회의 회원 게시판을 보면 무자격자가 심리평가를 하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혹자는 그것도 밥그릇 싸움이 아니냐고 할 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밥그릇 싸움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는 그래도 아직까지는 밥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임상 심리학자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보다 타인의 정신적 고통에 공감하고 돕기 위해 이 길로 뛰어든 사람이 더 많다고 믿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
무자격자가 심리평가를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임상/상담 쪽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 사설 연구소 등에서 전문가를 초빙해 다양한 심리검사 도구에 대해 워크샵을 열고, 수료증을 주면서 활동을 하는 것 같은데 그 정도의 지식으로 심리평가를 하는 것은 어림없는 짓입니다.
심리평가는 단순히 심리검사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정신 장애와 병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보다 임상 심리학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이 바탕으로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세부 전공을 마치고도 병원 장면에서 3년이라는 긴 기간을 훈련하는 것이지요. 그 기간 동안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정신장애를 접하고 supervisor의 혹독한 수련을 거쳐 겨우 한 명의 전문가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심리검사 워크샵만 듣고도 열심히 복습하고 연습하면 검사 실시와 채점은 가능합니다(피검자에게 적합한 검사 도구를 적절히 선정했는지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정말 답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다양한 검사 결과를 통합해서 일명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코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수련을 받지 않고 현장에서 그냥 일을 하는 분들이 작성한 심리평가 보고서를 보면 검사 결과를 장황하게 나열, 기술하고 있으나 팔이 3개가 달렸거나 다리가 없는 괴물을 묘사해 놓은 경우가 태반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처럼 능력이 부족한 무자격자가 심리평가를 실시함으로써 사회 일반에 심리평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게 되고 특히 치료적인 목적으로 심리검사를 받는 피검자/환자에게 막대한 유형/무형의 피해를 입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잘못된 병사용 진단서나 정신장애진단서가 발급될 가능성은 말 할 것도 없고 엉터리 보고서로 인해 잘못된 약물을 투여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최종 책임은 의사가 지는 것이기 때문에 엉터리 보고서를 작성한 무자격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지요.
심리검사가 아무리 재미있고 흥미로워도 제발 심리검사 워크샵에서 배운 지식은 심리평가 보고서를 읽을 때에만 사용하시고 어설픈 실력으로 위험천만한 행동은 자제하시기를 간곡히 부탁 말씀드립니다. 3년이라는 기간과 엄정한 수련 과정이 그냥 심심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임상 심리학의 저변 확대라는 허울좋은 간판을 내걸고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자격자를 대상으로 돈벌이하는 임상 심리학자들은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야 할 것입니다. 특히 누구보다도 모범을 보여야 할 교수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피가 거꾸로 치솟습니다(제 교수혐오증이 그냥 생긴 병이 아닙니다). 정규 수련 과정에 등록된 임상심리 레지던트 중에서도 supervisor를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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