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에 올린 글인데
'임상심리평가보고서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포스팅에서 심리평가보고서를 쓸 때 검사 요약지처럼 쓰지 말라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그 글에 연결되는 데 그렇다면 왜 검사 별로 나눠서 보고서를 작성하면 안 되는 걸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간략하게나마 설명 드렸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검자의 전체 모습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검사 별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면 각 검사가 측정하는 내용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하나의 검사 결과에 대한 기술이 끝나고 나면 다음 검사의 내용에 의식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이전 검사의 내용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수검자의 전체 모습을 그리는 건 심리평가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것은 치명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검사 별로 나눠서 작성하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는 내용의 중복으로 인해 심리평가보고서에 군더더기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심리검사는 주의력 전문 검사처럼 특정 기능만 세부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검사 도구는 여러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측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로샤 검사의 경우 정서에 대한 부분을 측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각이나 사고 과정 등도 살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내용은 지능 검사와도 겹치고 문장 완성 검사와도 일부분 겹치게 되지요. 그런데 검사 별로 작성하게 되면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기술되는 문제를 피할 수가 없어서 간결성을 잃게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족을 그리거나 팔이 세 개 달린 사람을 묘사하는 걸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심리평가보고서는 수검자를 묘사하는데 꼭 필요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정보를 생략하는 간결성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간결성 내지는 간명성을 잃는다는 건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검사 별로 작성하면 안 되는 이유는
자칫하면 앞뒤가 모순되는 기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의 앞 부분에서는 자기 보고형 검사 결과에 입각하여 수검자가 정서 표현을 잘 한다고 기술하고는 투사법 검사 결과를 다루는 뒷부분에서는 정서 표현이 잘 되지 않고 억압하는 문제가 있다고 쓰는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검사 별이 아닌 기능 별로 보고서를 쓴다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각 심리검사가 측정하는 영역들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각 검사에 대해 충분히 숙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내용을 분해해서 기능 별로 재구조화하는 것도 연습해야 하니까요. 상당한 공부와 시간, 연습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 익숙해져야지만 수검자의 전체 모습을 통합적으로 기술하고 묘사할 수 있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기능 별이 아닌 검사 별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익숙해지면 절대로 수검자의 심리적 특성을 통합적으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려운 길이라고 돌아가려고만 하지 말고 처음부터 정공법을 택해서 기능 중심으로 검사 결과를 재구성하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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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특정 병원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게 되면 말미의 진단 부분에
R/O Depressive Disorder
R/O Adjustment Disorder
R/O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와 같이 예상되는 모든 장애의 이름을 그대로 나열한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DSM-IV 다축진단체계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지한 상태에서 일부러 저렇게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매우 잘못된 보고서 작성법입니다.
무엇보다 심리평가보고서는 의뢰 목적에 충실하게 쓰여져야 합니다. 따라서 진단이 중요한 피검자는 분명하게 진단을 내려줘야 합니다. 장애 판정이나 병사용 진단서 등에 사용되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위와 같이 기술하는 것은 평가자의 책임 회피이며 직무 유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만...
보고서에 각종 검사 지표가 주욱 나열되든, 검사 지표는 전혀 없이 순전히 유장한 언어적 표현으로만 피검자의 심리적 모습이 기술되든 간에 최소한 보고서를 읽었을 때 전후문맥이 일맥상통해야 하며 피검자의 심리적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야 합니다. 주변의 다른 직능을 가진 전문가에게도 그런 모습이 빠르게 그려진다면 금상첨화이겠지요. 의뢰 목적 뿐 아니라 읽는 이의 수준을 고려해 작성되는 보고서가 더욱 훌륭한 보고서이니까요.
평가자는 항상 자신에게 맡겨진 피검자가 특정 장애인 경우 자신이 맡아서 치료를 한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단을 내릴 때에도 좀 더 신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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