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학부 때는 학력고사 후기 출신이었고, 졸업하고는 다른 학교로 진학했기에 대학원에서는 타대 출신이었으며, 대학원에서 조직 심리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병원 수련을 받을 때는 타 전공 출신이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고 나서 곧바로 상담 영역으로 진출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타 직군이었고, 상담 영역에서도 도박 중독 치료를 주로 했기 때문에 계속 비주류였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아웃사이더의 삶을 살았기에 무리짓기, 배제, 차별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91학번이니 심리학을 공부한 지 거의 30년이 되어 가네요. 그동안 임상심리전문가 대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대 산업인력공단 임상심리사, 상담심리학회 대 상담학회의 헤게모니 싸움과 알력이 반복되는 것도 충분히 봤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커뮤니티에서 임상과 상담이 내가 더 잘났네, 니가 더 못났네 하며 싸우는 꼴까지 보고 있습니다.
임상에서 수련을 받았지만 상담에서 15년 이상 일을 했고 지금도 임상과 상담 양 쪽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그래봤자 편가르기에 참전하는 사람들만 점점 더 한심해지는 쓸데없는 소모전일 뿐입니다.
임상이 심리평가에 대해 뭘 아느냐고 상담을 공격하고(주로 MBTI가 요새 화두더군요), 니네는 상담 수련도 제대로 받지 않으니 어디가서 심리치료 한다고 나대지 말라며 상담이 임상에게 반격하고 싸움박질을 하는 동안....
현명한 임상가는 임상과 상담 양쪽의 강점을 무기삼아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심리평가와 정신병리 지식을 보강한 상담 전문가는 내담자를 이해하는 폭이 웬만한 임상심리전문가를 능가하고 심리치료와 상담 수련을 보강한 임상 전문가는 상담심리전문가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그동안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임상이 우월하냐, 상담이 뛰어나냐 하는 논쟁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더군요.
그저 실력있고 유능한 임상가와 입만 나불거리는 엉터리 임상가가 존재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임상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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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상담심리학회의 자격증인 상담심리사 자격 인정 기간입니다. 수련 수첩을 제출해서 그동안 수련받은 내용을 점검받는 기간이죠.
제대로 된 수련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그 자격의 전문성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의 인기 과열과 맞물려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 선생님의 수가 급증하면서 심사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한 것도, 그래서 학회의 고충이 커진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수련 인정과 관련하여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정을 안 해 주거나 '트집'을 잡아 그렇지 않아도 수련 받느라 힘든 선생님들의 복장을 터지게 한다는 이야기를 꾸준히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참에 올해는 그런 '트집'들이 과연 꼭 필요한 것인지, 정말로 수련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확인해보고자 제보를 받겠습니다.
제보할 내용은 간단합니다.
본인이 수련 인정과 관련해서 직접 경험한 내용 중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주관적으로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면 됩니다.
이 포스팅에 댓글(비밀 댓글도 괜찮습니다)로 남겨 주시거나 walden3@gmail.com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대략 어떤 내용인지 몇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여러 supervisor에게 받지 않고 한 명에게 몰아서 받았다고 문제삼음
: 대체 이게 왜 시비거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이 바닥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심리평가 supervisor를 일일이 찾아서 제각기 다른 supervision fee를 내고 자기랑 맞지 않거나 별로 배울 게 없다고 생각되든 말든 supervisor의 수만 늘려서 수첩을 채우는 게 대체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게다가 이건 supervisee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월권 행위입니다. 그런 강요를 할거면 supervision fee를 학회에서 지원이라도 해 주면서 오지랖을 떨든지....
* supervisor의 사인이 아닌 도장이 찍혀 있다고 인정할 수 없다며 배짱
: 온라인 시스템이 도입되기 바로 전의 수첩에는 '서명'으로 인쇄되어 있지만 구 버전의 수련 수첩에는 엄연히 '인'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제 경우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하였을 때 임상심리학회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 전문가 자격 번호까지 각인된, 비교적 quality가 괜찮은 전문가용 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용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전에 제대로 공지하지도 않고 갑자기 서명이 아닌 도장은 인정할 수 없다니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무엇보다 왜 도장을 인정할 수 없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가 없습니다.
-> 상담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 문제 제기를 하고 재차 문의한 결과 전문가용 도장은 일단 인정하는 걸로 일단락 되었으나 차후에 도장의 진위 여부에 대해 검증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저보고 도장을 갖고 학회로 출석하라고 소환장이라도 발부하려나 봅니다.
* supervisor의 자격 번호가 앞 번호가 아닌 경우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박사 학위가 없는 경우 1급 자격 심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함 - 잠정
: 최근에 제보 받은 내용인데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내용이지만 직접 경험한 내용은 아니라고 해서 일단 잠정 포스팅합니다. 이와 관련해 불이익을 직접 당한 선생님께서는 제보해주시기 바랍니다. 근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내용 확정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보신 것처럼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딴지'를 위한 '딴지 걸기' 행태를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보내주신 황당 사례들은 정리해서 별도로 포스팅하겠습니다.
덧. 이번에 자격 취득을 목표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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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학회에서 전격적으로 온라인 수련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최근에 수련을 시작했거나 그동안 사용하던 오프라인 수첩을 온라인으로 갱신하려고 하는 분들은 온라인에서 상담과 심리평가 수련 과정 일체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련 과정에서 수련 기관과 수련 감독자가 자주 바뀌고 수련 인정을 위해 수련 수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수련 특성 상 만에 하나라도 수련 수첩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입증할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이 없기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인 노력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 수련 수첩 도입은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이고 임상심리학회에서도 벤치마킹해야 하는, 수련 레지던트를 위한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고 해도 온라인으로 관리하는 것에 문제가 아주 없지는 않아서 최근에 심리평가 supervision한 내역이 상담 supervisor에게 발송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다시 심리평가 supervisor에게 전달되었는데요. 수련 레지던트나 학회 차원의 실수가 아니고 시스템 오류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업 초기라서 시스템이 불안정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따라서 당분간은 상담심리학회에서 권고하는 아래의 사항을 꼼꼼히 챙기셔야 할 것 같습니다.
1. 상담, 심리평가 supervision 내역이 각 supervisor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확인 및 supervision 단계 체크
2. 수련 근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수련 내역을 인쇄하여 보관
인쇄하여 보관해야 한다는 건 온라인 수련 시스템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하는 일이기는 하나 시스템이 안정될 때까지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불상사를 대비하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상담심리학회의 온라인 수련 시스템을 이용하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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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하면서 예전에 제가 올린 학술대회 참석 후기글들을 좀 읽어봤는데 하나같이 전문가 연수 평점이 미달되거나 부족해서 경고를 받은 뒤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는 내용이네요;;;;; 저도 참 어지간히 학회 참석을 싫어하는 듯. ㅡㅡ;;;;
역시나 작년에도 전문가 연수 평점 부족으로 경고를 받은지라 올해는 supervisor 자격 유지를 위해서라도 연수 평점을 채워야했는데 임상심리학회 봄 학회를 놓친데다 가을 학회까지 놓치면 정말로 답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연차학술대회 장소는 홍제동에 있는 그랜드 힐튼 호텔이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강남에서 한다고 교통 편이성이 더 올라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셔틀 버스가 9시 55분 부터인가 운행을 시작해서 오전 10시 워크샵을 들어야 하는 저로서는 홍제역에서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첫날 시작부터 그리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잡을 수 있었지만.
심리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비 할인 서비스도 좋지만 10시에 시작하는 워크샵이 그렇게 많은데 셔틀 버스를 일찍 운행하도록 호텔측과 미리 협의했으면 더 좋았겠지요. 좀 아쉽네요. 택시 타고 오면서 보니 다들 홍제역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걸어서 올라오시는 것 같더군요. 오전이라도 날씨가 더운데... ㅠ.ㅠ
그랜드 힐튼 호텔은 오래된 호텔이라 시설이 첨단은 아니지만 오래된 호텔만이 가지는 중후함과 품격이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오래된 호텔을 좋아라합니다(깨끗하기만 하다면). 특히 워크샵들이 열리는 conference room들이 대부분 천정이 높아서 답답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냉방 시설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덥지도 춥지도 않게 잘 조절되더라고요.
별도로 지어진 conference center 뿐 아니라 호텔에서도 분산되어 열리기 때문에 장소를 찾느라 이동 중에 staff들에게 질문을 많이 했는데 하나같이 친절하게 답해주었을 뿐 아니라 장소, 화장실 위치까지 잘 숙지하고 있더군요. 꼼꼼한 운영 좋았습니다.
도착해서 등록을 하려고 가니 등록 데스크가 넓고 가나다 순으로 이름이 정리되어 있어 이름을 이야기하면 한쪽에서는 명찰과 자료를 챙겨주고, 다른 staff이 단말기로 제 이름을 검색해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합니다. 효율적으로 잘 분업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예전처럼 무거운 자료집을 주지 않는 건 좋지만 뜬금없이 칫솔, 치약, 가글액, 빠리바게뜨 단팥빵 1개를 함께 주네요(이건 뭥미). 아마도 어디에서 donation을 받은 것 같은데 심리학회 기념품이라고 보기에는 좀 뜬금없네요. 설명문이라도 좀 붙여놓든지... 저는 칫솔 하나 빼고는 다 필요 없어서 그냥 등록 데스크에 반납했습니다.
남자 화장실이 부족한 건 여성 수가 압도적인 심리학회의 특성 상 불편하더라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제는 점심 식사였죠. 3일치 식권을 미리 나눠주는데 어제는 비빔밥이어서 제가 먹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갈비탕이라서 저는 식권만 내고 한 숟가락도 못 먹었습니다. 결국 호텔 레스토랑에서 비싼 돈을 내고 파스타를 사 먹을 수 밖에 없었죠. 내일도 불고기 정식이라니 미리 준비를 해와야 할 것 같습니다. 채식인을 위한 별도 메뉴까지 고민하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그래도 샐러드 바 정도라도 준비를 해 주었으면 좋았겠습니다. 휴~
21일에 첫 번째 참석한 워크샵은 측정 평가 분야에서 오전 10시부터 시작하는 '레시피(Cole et al., 2008)로 배우는 조절된 매개효과 검증방법'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대부분 대학원생이나 관련 분야 교수인 듯), 경희대 경영학과의 정선호 선생님이 강의하셨고요. 원래 매개, 조절 효과 검증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데다 조절된 매개 효과 검증에 대한 방법론 강의는 꼭 듣고 싶었기 때문에 기대를 했죠. 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수학적인 수식보다는 개념적인 설명에 치중된 강의라서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만큼은 아니지만 정선호 선생님이 말이 굉장히 빠른 편이었는데도 2시간의 강의 시간 중 1시간 30분을 개념 설명에 사용하셔서 SPSS 실습은 시간에 좀 쫓기는 감이 있었습니다. 저는 spd 파일을 설치할 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SPSS 프로그램에 오류가 생겨 어차피 결과물은 못 봤지만요. 마지막 부분에 질문에도 나왔지만 매개, 조절 효과를 검증하는 많은 연구들이 여전히 제대로 된 단계를 밟지 않는 것 같더군요. 여전히 제 블로그의 referer log를 보면 매개, 조절 효과에 대한 검색어로 들어오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말이죠. 구조 방정식 모형을 이용해 잠재 변인을 포함하는 모형 검증을 하지 않고 측정 변인만을 대상으로 매개, 조절, 조절된 매개 효과를 검증하려면 제대로 공부를 해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내용은 중요하기도 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두 번째 워크샵으로는 점심 식사 후 1시 20분부터 시작된 일반 분야의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적 개입 : 애착관계의 조망, 변증법적 행동치료(DBT)'를 들었습니다. Complex PTSD, 특히 애착 외상의 DBT 치료가 메인인데 1부에서는 애착 외상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을 들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을 compact하게 잘 정리하셨는데 아쉬운 점은 강연하신 선생님의 목소리의 tone이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약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것처럼 들렸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얼핏 든 생각은 발달 심리학 전공자인가? 였습니다;;; 어쨌든 내용이 충실해서 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2부였죠. 마인드플니스 심리상담연구소의 김도연 선생님이 나오셔서 DBT에 대한 강의를 하셨는데 1부의 Complext PTSD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그냥 DBT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셔서 나중에는 흥미와 학습 동기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DBT 안에 포함된 기술들을 직접 체험한 시연은 좋았지만요. 그래서 DBT를 국내 Complex PTSD에 적용했을 때 외국의 경우와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질문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물 건너 갔습니다.
심리치료 워크샵을 들을 때마다 불만스러웠던 점은 그냥 개념적인 내용만 다루거나 시연을 추가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내담자에게 적용했을 때 외국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경험적으로 어떤 기법이 상대적으로 더 효과적인지, 유의할 사항은 무엇인지 처럼 정작 궁금한 내용은 하나도 알려주지 않는거지요. 적용 사례가 그만큼 없거나, 아님 노하우 유출을 염려해 감추는 것일텐데 어느 쪽이든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김도연 선생님께서 강의 중에 module 별로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장점처럼 반복해서 말씀하시던데 저는 절반만 동의합니다. 기법은 외과의사가 수술 중에 사용하는 칼과 같아서 다양한 칼은 다양한 환부에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각각의 칼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한 외과 의사가 사용하게 되면 더 큰 상처를 낼 수도 있는거니까요. 게다가 이것저것 고르다가 골든 타임을 놓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기법이 많은 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simplicity is the best니까요.
오후의 마지막 순서로는 3시 30분부터는 2시간 동안 진행된 '연구윤리 및 출판윤리' 심포지엄에 들어갔습니다. 서울대 임정묵 선생님이 첫 연자셨는데 그래도 명색이 서울대인데 연구 단계에서 가설을 설정하지 않는 연구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말씀을 하셔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가설 설정은 과학적 접근법의 기본 중 기본인데 그걸 안 한다면 대체 어떻게 연구를 해 온 것인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학부 때부터 실험 심리학과 실험 디자인을 스터디하면서 배웠던 기초적인 내용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솔직히 좀 멘붕이었습니다.
중간에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듣는 학부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던 분이 있는데 연구 윤리를 떠나서 저는 그런 연구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화 대상이 대학생 모집단이 아니라면 말이죠. 연구의 질이 문제가 되는 연구를 돈이 없어서, sample을 구하기 어렵다면서 IRB의 피험자 윤리 규정이 엄격하다고 징징대면 안 됩니다. 그걸 왜 IRB에 호소합니까? 연구자로서의 자기 양심에 물어봐야죠. 두 번째 연자인 조선대 생물교육과의 조은희 선생님은 논문 출간 이후의 후속 조치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논문 출판 게재 철회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들었습니다. 요새는 직접 인용(출처를 제대로 밝힌)의 경우도 상당히 엄격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즉, 다른 연구의 내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지 않고 출판물에서 직접 인용하면 출처를 밝혀도 문제가 되는거지요. 자기가 쓴 선행 연구의 직접 인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거나 점점 강화되는 방향으로 갈 수 밖에 없으니 최대한 보수적으로(직접 인용은 절대 안 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위 논문을 revision해서 학술지에 내는 것도 금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석사 때는 학위 받고 난 뒤 지도 교수 피해서 요리조리 숨던 사람들이 박사 학위 받고 난 뒤에는 어떻게든 여러 개의 논문으로 쪼개서 저널에 내려고 혈안이 되는 걸 보면(업적 점수를 채워야 하니) 참 추해 보여요.
덧. 현장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사진을 첨부하려고 보니 초상권을 보호하려면 손을 대야 하는 사람 얼굴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냥 텍스트 위주로 포스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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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임상심리학회 산하 단체 중 한 곳의 운영진에게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분이 저를 대의원으로 추천했다면서 수락을 요청하더군요. 누가 추천했냐고 하니 개인 정보라서 알려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그냥 고사하는 걸로 통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낯가림이 심한데다 감투 욕심도 전혀 없고 무엇보다 능력이 태부족이기 때문에 심리학회 뿐 아니라 그 어떤 기관이나 단체의 일도 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불과 한 두 달 전에 저는 제가 수련받은 기관의 동문회장 자리를 더 능력있는 후배 동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게 제 마지막 감투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고 영리, 비영리를 떠나 학회를 포함해 어떤 기관, 조직, 모임에서도 감투를 쓸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높게 평가해 추천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앞으로는 어떤 자리가 되었든 일체 사양하겠습니다. 더불어 다른 좋은 분을 대신 추천해 달라는 부탁도 거절합니다. 제가 앉기 싫은 자리에 다른 분을 앉히는 건 더욱 못할 짓이니까요.
세상의 모든 폐해가 인간이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발생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필요한 아주 최소한의 조직을 제외하고는 인간들을 최대한 작은 단위로 쪼개 흩어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감투를 씌우고 조직을 위해 일하라는 건 아무래도 너무한 일 같지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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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에 한국심리주식회사에서 Beck 관련 척도의 판권을 산 뒤 임상심리학회 정회원들에게
협조협박 문건을 발송한 내용을 포스팅한 적(
'한국심리주식회사가 Beck 척도 시리즈를 출시했습니다.....만' 포스팅 참조)이 있습니다.
그 때의 제 논조는 Beck 척도를 사용하는 관련자를 그렇게 잠재적 범죄자 취급까지 했어야 했냐는 감정적인 질타에 가까운 것이었는데요.
1년이 지나는 동안 이 척도들이 사용된 심리평가 케이스를 다수 supervision하면서 문제가 제가 생각하던 수준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봤던 건 BDI와 BAI인데요.
가장 큰 문제는 증상이 과도하게 평가되는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한 수검자에게 MMPI-2/A와 BDI를 동시에 실시하면(기관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검사 수가를 맞추기 위해서 둘 다 실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도 불필요한 검사 비용을 수검자에게 떠넘기는 불합리한 관행입니다만)
전혀 우울하지 않은 타당한 MMPI-2/A 프로파일을 보이는 수검자의 경우에도 대부분 BDI 결과에서는 우울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BDI 결과에서 우울하지 않은 정상 수준으로 나타나려면 MMPI-2/A에서는 정상 수준이 아닌 S나 K가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상승한 방어적 프로파일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BDI, BAI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해서 의미 그대로 해석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우울, 불안하지도 않은 수검자를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잘못 진단할 수 있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다는 말입니다.
물론 MMPI-2/A와 BDI, BAI가 함께 상승한 수검자의 경우는 BDI, BAI의 문항 내용 분석을 통해 수검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지만 이 또한 MMPI-2/A의 문항 분석(결정적 문항 등)을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거든요. 불필요한 비용과 심리적인 부담을 수검자에게 전가하는 BDI, BAI를 굳이 실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나마 MMPI-2/A를 함께 실시하는 경우라면 그래도 해결책이 있는데 선별평가에서 BDI, BAI만 사용하는 경우는 정말 큰일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없거나 파트 타임 임상가로라도 연결되어 있지 않은 local NP에서 여전히 BDI, BAI만 사용해서 우울 장애, 불안 장애로 진단하고 약물치료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저는 false positive error가 높게 나타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BDI, BAI를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덧. BDI의 경우 높은 수준으로 측정된 사례의 문항 내용을 살펴보면 endogenous depression에서 흔히 나타나는 vegetative symptom 관련 문항보다는 guilty feeling, punishment, internal attribution 관련 문항이 높게 평정된 경우가 굉장히 많은 걸 흔히 볼 수 있는데 역기능적인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 교정, 대인 관계 역동 분석을 해야 하는 수검자를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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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애꿎은 어린 생명들이 너무나 많이 희생되었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그 악몽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고요.
총체적으로 무능한 대한민국은 세월호와 함께 동반 침몰 중입니다. 이런 나라에 과연 희망이 남아있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신상 변화도 있었고 세월호 침몰 사건이 너무나 마음 아파 거의 한 달 가까이 블로그를 방치했더랬습니다. 일반 언론은 더 말할 것도 없고 SNS도 가능하면 접하지 않으려고 했죠. 그렇게나 애써 피해다녔는데도 많이 힘들더군요.
그래서 지난 주에 임상심리학회에서 세월호 피해자 및 가족들을 지원하는 심리치료인력 모집을 한다기에 지원했습니다. 원래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먼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존자들이 입원해 있는 안산시 인근 병원에 직접 제안을 했습니다만 거절 당한 터에 임상심리학회에서 나서길래 지원했죠.
학회에서 지침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것으로 예상하지만 저도 그렇고 PTSD를 만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가 아닌 분들은 이 엄청난 심리적 재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지 난감하실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고가 될 만한 책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순서는 제가 생각하는 중요도 순입니다.
* 트라우마의 치유(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3150)
: Jon G. Allen 박사가 쓴 책으로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책 중 가장 comprehensive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한 권 만큼은 꼭 읽으세요.
* 트라우마(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2713)
: Judith Herman이 쓴 트라우마 관련 명저입니다. 성폭력 피해와 관련된 PTSD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만 역시나 읽어두시면 큰 도움이 되실 겁니다. 트라우마의 치유와 함께 읽으시면 더욱 좋습니다.
* 상실 수업(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2130)
: 죽음 연구의 대가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여사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자 유고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읽은 유족과 관련자들을 상담하실 때 필요한 책입니다. 2000년에 나온
'인생 수업'(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1184)과 함께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 자살 심리치료의 실제(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2508)
: 자살 관련 분야의 최고수 중 한 명인 Paul G. Quinnett이 쓴 책입니다. 생존자와 유가족 중 자살 충동을 느끼는 분들을 돕기 위해 필요한 책입니다.
*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관련 포스팅 http://walden3.kr/2560)
: 언뜻 보면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책은 생존 심리학 서적입니다.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생존자들의 심리나 재난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팁을 많이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합니다.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생존하신 분들과 유가족의 빠른 치유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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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주식회사가 임상심리학회 정회원 명의로 회원들에게 발송한 메일 내용의 일부분입니다.
내용인즉슨 지금까지 무료로 사용해오던 BDI, BAI, BHS 등의 저작권을 당사에서 샀으니 이제는 정식으로 출시된 질문지를 사서 써야 하고 무단으로 사용할 시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법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단 저는 저 메일에 포함된 협박조의 문구 정도로도 굉장히 기분이 나쁩니다만 BDI, BAI 검사 소개 페이지의 내용은 정도가 더 심합니다.
'불법 인쇄물을 사용한 의료행위, 임상검사, 논문작업, 상담활용, 연구행위, 보험료청구는 추후 해당감독기관을 통하여 법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인터넷, 방송, 신문, 잡지 등 불특정인이 볼 수 있는 어떤 매체에서든 본 척도의 문항전부 또는 일부를 노출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합니다'라고 되어 있고요.
홈페이지에 가면 그 법적인 불이익이란 게 무엇인지 아주 상세하게 팝업창으로 띄워 놨습니다.
불법 제본, 불법 스캔, 불법 복사를 집중 감시하고 있는데 적발 시 저작권보호센터에 고발조치하여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게 하겠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에 더하여
소속 기관 및 해당 학회의 윤리위원회에 정식 공문을 통하여 실명을 밝히고, 항의조치 하도록 하겠다고 하네요. 아예 밥줄을 끊겠다고 대놓고 협박입니다.
더 치사한 건
이러한 불법현장을 당사에 신고 시 사안에 따라 소정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 바란다고 고발 유도를 하는 겁니다. 하는 짓이 아주 역겨워요.
그런데 이번에 출시했다는 Beck 척도 시리즈를 보면 BDI-2는 모르겠지만 BAI, BHS는 규준 작업을 새로 한 것도 아니고 문항도 기존 문항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무료로 잘 사용하던 것을 내가 판권 샀으니 이제부터는 동일한 quality의 척도를 나한테 돈내고 쓰라는 거지요.
BDI-2, BAI, BHS 각각 부 당 1,200원인 것도 터무니없이 비싸게 느껴지는데 MMPI-2, TCI 등과 달리 부 당 구매를 할 수가 없고 최소 구매 수량이 100부(12만 원)입니다. 개인 구매는 아예 생각도 말라는 걸까요?
예전에 (주) 마음사랑에서 MMPI-2/A를 출시했을 때에도 말이 많았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MMPI가 워낙 문제가 많았던 도구라서 많은 임상가들이 MMPI-2의 도입을 기다려왔는데다 우리나라 규준이 적용된 표준화 작업을 대대적으로 진행해서 상당히 완성도가 높은 검사 도구가 개발되었고 이후로도 사용자 편의성에 맞는 MMPI-RF 버전을 개발하고 해석 보고서나 통계 보고서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솔직히 한국심리주식회사가 BDI, BAI, BHS의 척도 개발, 연구, 표준화, 보급 등에 무슨 기여를 했습니까?
연구자가 애를 써서 개발한 검사 도구를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하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마는 지금까지 무료로 이용하던 척도를 별다른 개선 노력도 없이 저작권만 사서 그럴싸하게 포장한 뒤 예상을 웃도는 가격으로 파는 것도 모자라 지금까지 니네가 불법을 자행해 왔으니 반성하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법으로 처벌하겠다며 출시 초반부터 채찍질에만 열광하는 꼬라지가 아주 기분 나쁩니다. 그동안 BDI, BAI, BHS를 사용해 온 연구원, 임상가, 학생들이 모두 잠재적 범죄자입니까?
제가 이 회사의 대표였다면 절대로 이딴 식으로 출시를 알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판권 계약을 통해 정식 출시한다고 알리면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비전을 제시하고 임상가들에게 협조를 당부했을 겁니다.
솔직히 제 경험 상 BDI와 BAI는 허위 긍정 오류가 많아서 사용을 꺼리는 도구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각각 CES-D와 STAI를 사용하라고 권하는 편이고 차라리 MMPI-2/A가 종합적인 선별 평가도구로 훨씬 나으니 이걸 쓰면 됩니다.
K-WAIS-IV, K-WISC-IV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이 검사도구들의 문제도 곧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BDI, BAI, BHS는 가능하면 적극적으로 사용을 피할 예정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거 영 기분이 나빠서 말이죠. 쓸 때마다 기분이 나빠질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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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임상심리학회에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표준화된 심리평가보고서를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형식 면에서는 미국의 것을 차용해 그런대로 비슷한 report form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 면에서는 그야말로 중구난방이라서 임상 현장마다 제각각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평가자가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심리평가보고서의 기술 방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표적인 현장 두 곳을 중심으로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할 때 임상 현장에 따라 유의해야 할 부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가장 많은 심리평가보고서가 작성되는 병원 장면입니다. 대부분 정신과(요새는 정신 건강 의학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이거나 심리적 문제와 관련이 많은 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병원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은
심리평가 의뢰자가 거의 대부분 의사이다보니 의사의 진단적 임상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유, 무형의 압력을 느끼거나 최소한 진단을 붙여서 보고서를 내보내야한다는 강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이 평가한 수검자가 자신에게 맡겨진다면 어떻게 치료나 상담을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오히려 무리한 진단을 내리는 것이 치료에 방해가 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어 무조건 진단을 내리는 습관을 고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은
상담센터입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기관이고 국가와 voucher 협약을 맺은 곳도 많죠. 상대적으로 정신 건강 의학과에 비해
문제 행동이나 증상의 심각도가 가볍기 때문에 진단을 내려야 한다는 부담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반대로 모든 문제를 PCRP나 애착 문제로 귀인하려는 선입견을 갖기 쉽습니다. 게다가
평가를 하는 기관이 심리치료나 상담을 병행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를 연동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작 필요한 문제 별 부모 교육이나 사회 기술 훈련, 의사소통 기술 훈련 등을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는 매우 드물며 센터에서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치료나 미술치료만 기계적으로 의뢰합니다. 그러다보니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아이는 무조건 놀이치료?'라는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수검 아동/청소년의 문제와 상관없이 routine하게 센터에서 가용한 심리치료만 제공하는 것이죠.
따라서 상담센터에서 심리평가를 하는 임상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정신과적 진단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이 아닌지 좀 더 세심하게 진단 가설을 설정해야 하고
자신이 속한 기관에서 제공할 수 없는 치료적 기법이 필요하다면 수소문을 통해 연계망을 구성하는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당연히 심리평가를 위해 방문하는 아동/청소년의 문제를 유형별로 분류하고 현황을 파악하여 필요한 심리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치료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양성해야겠지요.
심리평가 작성법에 대한 이해에 앞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현장에 대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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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증을 만들기 이전 소위 임상심리학 1세대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학과 병원에서 맨 땅에 헤딩하면서 임상심리학자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몸으로 굴렀습니다.
그 엄청난 고생의 결과로 임상심리학이 태동을 하게 되었고 본격적인 임상심리학자의 양성이 시작되었습니다. 1세대도 사실 심리학과 교수의 자리는 차지했지만 병원은 의사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터라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장착할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습니다. 임상심리학자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요.
임상심리학 2세대 또한 1세대가 만들어 놓은 자리를 지키고 양적으로 확장하는데 전력했기 때문에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만 역시나 수련 과정의 체계화는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성과를 만들어내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각개전투로 점철된 세월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학번들이 임상심리학 3세대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본격적으로 수여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체계적인 수련을 받은 세대입니다(그 이전에 수련도 받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소급해서 챙긴 분들은 당장 내놓으셔야 합니다. 그거 없어도 먹고 사는데 하등의 지장이 없는 분들이 왜 그렇게 찌질하게 자격증에 집착하십니까? supervision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으면서 더 이상 후학들 망쳐놓지 말고 반납하세요).
문제는 1세대에서 2세대를 지나오는 동안 표준화된 수련과정의 틀이 마련되지 않은터라 3세대가 수련 받은 환경의 차이가 병원마다 너무 큰데다 이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을 때까지도 여전히 표준화된 수련 절차라는 것이 없었던 겁니다(물론 지금도 없습니다).
1세대와 2세대는 그래도 거의 비슷한 상황(열악한 측면에서 동등한 것이지만)에서 고생을 했기 때문에 현장 경험이 많고 체화된 노하우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세대부터는 수련 받은 기관의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3세대가 supervisor가 되면서부터는 개인차에 따라 그 아래에서 수련받은 supervisee의 quality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미 3세대에게서 수련을 받은 4세대 임상심리학자들이 supervisor로 포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자리는 이미 선배들이 어느 정도 닦아놓은 길입니다. 그래서 일의 양은 많아도 모든 걸 몸소 처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심리평가는 무급 '수련생'을 뽑아서 맡기고 연구는 연구원 뽑아서 하고, supervision은 자기가 배운 만큼만 가르치니 특별히 노력할 필요가 없고 그 시간에 학연따라 지도 교수에게 인사 다니거나 같은 병원 출신들끼리 뭉쳐서 책을 번역하든 검사 도구를 표준화하든 하면서 의사들 비위 맞추고(이건 의사들의 잠정적인 진단에 맞춰 심리평가보고서의 진단을 알아서 자발적으로 바꾸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띵까띵까 살아도 됩니다.
그래서 생기는 단적인 문제는 심리평가보고서 quality의 하락입니다. 물론 예전에 제가 수련을 받을 당시에도 심리평가보고서의 질적인 차이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Big 5에 해당하는 대형병원에서 나오는 보고서까지 의심받을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자인 제가 봐도 그대로 믿을 만한 보고서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략 2년 전부터 어느 누가 쓴 보고서도 그대로 믿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으면 원자료를 복사해 오라고 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reading합니다. 그만큼 신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기관에 소속되어 전담 supervisor가 버젓이 있는데도 수련 curriculum을 신뢰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 유급 supervisor를 찾아다니는(그나마도 거의 없지만) 상황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예전부터 잊을만 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련 제도의 정비와 표준화된 체계 마련을 목소리 높여왔던 겁니다.
제가 꿈꾸고 있는 심리치료의 보강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현재 갖고 있는 유일한 무기인 심리평가마저도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 된 이상 임상심리전문가의 몰락은 명약관화합니다.
임상심리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은근히 사회복지전문가를 무시하지만(참 한심한 정신머리입니다만) 그럴 것 없습니다. 그 분들이 하는 고생과 처우를 임상심리전문가들도 똑같이 받게 될테니까요. 이미 사회복지전문가의 명령을 받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있죠. 그게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입니다.
학회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접은 이상 각자 살 길을 찾아야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조만간 제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 분야의 블루 오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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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회는 매년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 취득을 위한 필기 시험에 앞서 수련생(이 용어는 매번 들을 때마다 짜증이 치미는데 학회는 여전히 바꿀 생각이 없나 봅니다) 공동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수련생 공동 교육은 수련 커리큘럼의 표준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작금의 현실에서 레지던트들이 시험을 앞두고 관련 지식을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교육 수강료가 턱없이 비싸다는 비판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년에 단 한번에 불과한 공동 교육이 표류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이를 수강한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불만이 이제는 극에 달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실례로 올해 공동 교육 과목 중 '노년기 심리장애', '가족치료', '신경심리평가', '소아청소년 심리장애' 내용에서 임상심리전문가/정신보건임상심리사 시험에 단 한 문제도 출제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순히 문제가 나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공동 교육과 시험이 완전히 따로 놀았다는 말입니다. 이럴 바에는 대체 뭐하러 공동 교육을 실시하는 겁니까?
물론 공동교육의 내용이 시험에 꼭 나와야 하는 법은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련을 받는 레지던트가 극히 드문 현실에서 유일하게 그동안 몸으로만 때웠던 지식을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공동 교육이라면 문제 출제 위원이 공동 교육을 진행하거나 그마저 어렵다면 공동 교육 강사들이 문제 은행의 기출 문제들을 한번쯤은 읽어보고 그에 따라 레지던트들이 꼭 익혀야 하는 지식을 정리해서 교육을 실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전문가들조차도 당장 시험을 보면 줄줄이 미끄러질 정도로 공부를 안 하는 마당에 시험 대비를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공동 교육에서마저도 엄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면 먼 거리를 마다않고 천금같은 시간과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하고 모여든 레지던트들은 뭐가 됩니까?
준비된 강사를 섭외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학회의 어려움을 수련 레지던트에게 전가하는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기로 문제 은행의 내실화를 위해 새로운 출제 위원을 계속 보강하고 있기 때문에 공동 교육의 강사들이 강의 영역의 출제 문제를 일독하고 공동 교육안을 작성토록 하는 방안을 추천합니다.
학회가 문제 유출을 막고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원칙만 계속 고집한다면 공동 교육의 내실화는 요원합니다.
수련생 공동 교육의 내실화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시급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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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임상심리전문가는 한국심리학회 산하 임상심리학회에서 관리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2007년 1월 초에
'임상심리학의 위기'라는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어찌 보면 그 글은 총론적인 위기에 대해 쓴 것이고 오늘 내용이 각론에 해당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제 맘대로의 예측이며 개인적으로는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원래 임상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만든 자격이지요. 이후에 국회에서 관련 자격에 대해 입법을 하게 되자 임상심리전문가를 국가공인자격증으로 만들려고 학회에서 애를 썼지만(개인적으로는 전략의 부재로 평가합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보건복지부에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만들어지고 두 개의 자격 제도가 생기게 됩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급조된 자격으로 수련 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상심리학회에서 수련위원회를 꾸려 수련 감독을 대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수련을 받았던 임상심리 레지던트 중 일부는 3년의 기간 동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동시에 취득하는 행운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다 보건복지부에서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 이관해서 총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나오니 반발하지만 역시나 진압되고 결국 정신보건전문요원의 관리를 국립정신병원에서 담당하게 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자격을 동시 취득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전과 달리 자격 요건을 상당히 까다롭게 심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 당시 수련 인정때문에 불이익을 당한 수련 레지던트가 꽤 많았지만 학회에서는 아무런 대책 마련도 못 했습니다. 그 피해는 레지던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에 이전처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하면서 대충 정신보건센터에서 시간을 때우고 수련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본격적인 이원화가 일어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때까지는 임상심리학자가 두 가지 자격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 때부터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면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수가 늘면서 임상심리학회의 기반을 위협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심리학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소속감이 없거든요. 상담 심리학회 회원들에게 모 학회인 심리학회에서 회비를 통합 징수하려고 할 때 일어났던 문제의 이유와 유사하죠. 임상심리학회에서는 산하의 임상심리전문가들을 정신보건전문요원협회에 가입하도록 독려하면서까지 밀월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임상심리학회와 상관이 없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궁여지책이 바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에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인정해서 그대로 자격을 수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몇 몇 교수들이 바로 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즉,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은 갖고 있지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이 없는 임상심리학 교수에게 학회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그냥 준 것이죠. 당연히 정상적인 수련 과정 없이요. 물론 이런 부당한 혜택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현재도 심리학과에서 강단에 서고 있는 임상/상담 심리학 교수 중 상당수가 정상적인 수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소급해서 그냥 준 것이죠. 뭐 원로 대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필요악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불공정한 정책이 임상심리학계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의 뿌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부실한 수련마저도 받지 않고 자격을 얻은 교수들이 심리평가, 심리치료에 대한 개념이 있을리가 만무하니까요. 뭘 알아야 가르치죠.
어쨌거나 이런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전문가의 관계는 좀 껄끄럽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두 자격 중 하나만 갖고 있는 전문가들의 위치가 어정쩡한 것이지만요.
문제는 이후에 산업인력공단에서 임상심리사 자격이 국가 공인 자격으로 또 만들어진 것이죠. 이 자격은 수련 과정 없이 시험으로만 취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원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지금 임상심리사 2급의 수가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을 합한 수보다 많을 겁니다. 게다가 지금까지는 2급 자격자만 있다가 최근에 1급 취득과 승급이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향후 몇 년 안에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현장에서 각축을 벌이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자 그럼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제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종합병원급의 수련병원에서 임상심리전문가가 아닌 전문가(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며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이 대표적인 경우)가 supervisor가 되는 순간부터 임상심리전문가가 마음 편히 누리던 수련 과정의 핵심축이 붕괴되기 시작할 겁니다. 현재는 supervisor가 임상심리전문가이기 때문에 암묵적인 카르텔에 의해 모교 출신이나 최소한 심리학회 회원만 수련 레지던트로 받는 것이 가능하지만 심리학회 회원이 아닌 정신보건임상심리사가 supervisor가 되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기피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심리평가의 차별성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이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제 예상보다 속도가 더 빨라졌거든요. 임상심리전문가는 지금까지 '정신과 병동 수련'과 '심리평가'라는 유용한 tool을 가진 이득을 배타적으로 누려왔습니다. 하지만 상담심리학회에서 심리평가 수련을 위해 문호를 대폭 개방하고 상담심리전문가 자격까지 갖추고 있는 임상심리전문가가 그 교육을 담당하면서 임상심리전문가의 유일한 무기였던 심리평가의 잇점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을까요?
저만 해도 제게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supervisee 선생님 중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지 않는 수가 이미 절반을 넘어섰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나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자격만 취득하는 분들이 더 많다는 말입니다. 이게 저에게만 해당되는 특수한 상황일까요?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면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만 놓고 볼 때 임상심리전문가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격차는 이미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supervisor의 지도를 받았느냐가 더 큰 차이를 낳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이 격차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즉 임상심리전문가의 가장 큰 무기였던 심리평가가 앞으로는 현장에서 그다지 우위가 되는 기술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투입된 노력과 시간 대비로 비교해보면 임상심리전문가는 메리트가 별로 없습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동일한 quality의 일을 할 수 있다면 굳이 임상심리전문가를 써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직까지는 현장에서 임상심리전문가를 우위로 생각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요? 저는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은 각 병원의 supervisor의 실력에만 맡겨놓고 수련 제도를 방기하고 있는 학회의 책임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학회가 수련 제도 정비를 위해서 뭘 했습니까?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기본 교재가 있습니까? 아니면 supervision을 위한 manual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미 자격 번호 600 번대의 junior supervisor가 종합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supervisor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아무런 orientation도 없이요. 이런 supervisor에게 수련을 받은 레지던트들이 전문가가 되어 현장에 나오는 건 금방입니다. 당장 내년부터 나오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임상심리전문가가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안에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에게도 밀릴 것으로 예상합니다. 물론 학교가 아닌 임상 현장 이야기입니다. 저는 솔직히 학교는 생각도 않고 있고 기대도 안 합니다. 이미 개혁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암울한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수련 제도를 정비하고 supervision을 표준화, 강화해야 합니다. 수련 현장 나름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학회 차원에서 표준화된 manual을 만들어서 최소한 이것만큼은 교육이 되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취득하면 임상 현장에서 이 정도는 기대할 수 있겠다는 정도의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supervisor가 자신이 수련받을 때 배웠던 것만 달랑달랑 가르치는 수준으로는 질적 하락이 불보듯 뻔합니다. 게다가 supervisor가 심리평가, 심리치료 하나 안 하면서 수련 레지던트만 착취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임상심리전문가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둘째, 심리치료 분야를 강화해야 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가장 답답한게 뭔지 아십니까? 제 분야가 아닌 내담자의 문제를 의뢰하고 싶어도 전문가가 하나도 없다(혹은 모른다)는 겁니다. 가정 폭력 문제가 있는 도박자의 가정에 개입하고 싶어도 가정 폭력 전문 치료자가 없어서, 하다 못해 청소년 우울증을 전문으로 다루는 전문가가 누군지 몰라서 속앓이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현행 의료보험 제도가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정신과 의사들은 약물 치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심리치료를 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상담과 심리치료에 대한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충족시켜줘야 하나요? 임상심리전문가가 뛰어들지 않는다면 계속 심리평가나 하면서 수지 타산이나 맞추고 있을 겁니다. 언제까지요?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가 심리평가 분야를 잠식해서 벼랑으로 떠밀릴 때까지요. 심리치료만 놓고 보면 임상심리학회는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나 다름 없습니다. 수련 레지던트의 사례 발표나 하는 수준이지 전문가의 사례 발표는 눈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고명하신 교수님들은 정년 보장이 되니까 심리학의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달콤한 꿀빨기에 여념이 없으시겠지만 미안하게도 현장이 죽으면 학교도 죽습니다. 아닐 것 같습니까?
수련 제도의 대대적인 개혁과 정비, 그리고 심리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매진,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임상심리전문가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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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에도 적용됩니다.
물론 모르는게 너무 많아서 심정적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 막막함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내려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점검하고 헷갈리거나 분명하지 않은 것을 따로 list up해 supervision 때 다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supervision point를 물어봅니다. 이 케이스를 왜 supervision 받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도요. 이 질문을 자꾸 던지는 이유는 supervision을 준비할 때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무엇을 알고 싶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case formulation이 어렵기 때문에 supervision을 받으려고 하지만 point를 잡기 위해 곰곰히 생각하다보면 자신의 취약점을 찾아낼 수 있고 이 취약점을 보강해야 supervision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을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supervision point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진단의 문제인가
:
진단이 헷갈리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가설 검증 방식에 의한 case formulation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진단을 위해 필요한 정신병리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검사는 그런대로 하겠는데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막막함을 느끼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정신병리에 대한 지식을 더 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 결과를 대충 꿰맞추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자신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단명을 붙여 제출하게 됩니다.
2. 검사 sign 통합의 문제인가
: 검사 sign이 통합되지 않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역시 가설 검증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보다 중요한 검사 sign을 선별하지 못함)이고
다른 하나는 각각의 검사 sign이 어떠한 심리적 상태, 증상, 문제와 연결되는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과도한 정보에 압도되어 보고서 작성 시점에서 수많은 정보를 늘어놓고 골라내는데 어려움을 겪게되고 후자의 경우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해 혼란을 겪게 됩니다.
전자의 경우는 가설 검증 방식으로 접근하는 체계적인 연습을 통해 문제를 개선할 수 있고
후자의 경우는 각 검사 sign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검사 별 manual과 해석서를 보다 심층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3. 검사 sign과 배경 정보의 불일치 문제인가
: 심리검사의 실시 및 채점, 해석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도 겪게 되는 이 문제는
대부분 배경 정보의 신뢰도를 제대로 점검하지 못해(자녀를 방임한 어머니의 주관적 보고를 의심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 등)
screening에 실패하거나 꼭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병력이 있는 정신분열병 환자가 복용하던 약물 미확인 등)
발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심리검사 실시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나머지 검사 실시, 채점, 해석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죠. 이 경우는
부족한 정보를 수집하는 노하우를 익히게 되면 간단히 해결됩니다.
4. 검사 실시 및 채점, 해석의 문제인가
: 수련 과정에서 가장 많이 다루고 중요시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맹점이 많은 부분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종합병원 급 수련 기관에서도 검사의 실시, 채점은 대학원에서 충분히 익히고 왔다고 가정하며 1년차 때 윗년차가 몇 번 관리 감독하는 것으로 마스터했다고 여기는데 실제로 전문가가 된 이후에도 잘못된 검사 실시 방법을 본인도 모르는 채 고집하는 경우가 많으며 검사 도구 자체에 대한 지식마저도 부족(예를 들어 K-WAIS의 언어성-동작성 지능의 유의미한 차이 점수가 연령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름)한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세부적인 지식을 supervision을 통해 교정해야 합니다.
5.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의 문제인가
: 이건
임상심리학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데 현재 어느 수련 기관에서도 어떻게 심리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수련 레지던트의 자질하고는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는 심리평가보고서 작성법에 대한 참고 서적이 한 권도 없으며 Clinician's Thesaurus와 같은 외국 서적을 참고할 수 밖에 없습니다.
supervision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표준화된 보고서 작성법보다는 적절한 용어 사용, 군더더기 없는 기술, 논리적인 연결법 등입니다.
6. 심리평가 보고서 활용의 문제인가
:
심리평가 보고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술 방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지체 판정을 위한 보고서이냐, 심리치료를 위한 평가이냐, 학교 제출용이냐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지고 제언(recommendation)도 달라지게 됩니다. supervision에서는 이러한 각각의 활용도에 따라 심리평가 보고서를 어떻게 달리 작성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밖에도 많은 점검 point가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정리를 했으니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선생님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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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에 이메일 한통을 받았습니다.
46대 임상심리학회 총무이사가 되신 박지선 선생님 명의로 발송된 이메일의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동계학술대회가 지금까지 관례 상 전문가 자격 시험을 앞둔 수련 레지던트들의 포스터 및 사례 발표의 장으로 활용되온 것이 적절하지 않으므로 향후 동계학술대회는 본연의 취지로 활용할 것이라는 것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학술대회는 학술대회의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학회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련 레지던트들에게 미칠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2년 간의 유예 기간을 설정한 학회의 사려깊은 조치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제 생각에 이제 학회가 고려해야 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수련 레지던트들의 포스터 및 사례발표를 통해 어찌 보면 손쉽게 채울 수 있었던 동계학술대회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점점 들을 것이 없어서 학회에 참석하기 싫고 연수 평점을 채우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억지로 간다는 회원들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 내실있는 내용으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할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전문회원들의 사례 발표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이흥표 선생님이 교육 이사로 일하실 때 총대를 메고 추진하셔서 그 해에는 현장에서 치료와 상담을 실시하는 선생님들의 생생한 발표를 들을 기회가 그래도 있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없어져서 이제는 예전과 다름없이 심리평가든 심리치료든 전문가의 사례 발표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지회나 연구회도 그다지 상황이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만 되면 심리평가, 심리치료 사례 발표를 하지 않는데 이래서는 학회의 발전이 없습니다.
또 하나 고려할 점은 그저 지회나 연구회에서 사례 발표를 완료하라고만 요구하지 말고 학회 차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의 수효와 사례 발표 완료 건수 등을 조사하여 필요하다면 임시 사례 회의라도 열어서 어떤 레지던트 선생님도 수련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지회와 연구회에서 사례 발표 기회를 잡느라고 애를 먹는 수련 레지던트들이 많은데 동계학술대회에서마저 포스터 및 사례발표를 할 수 없게 된다면 병목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 자명하니까요.
사전 경고도 좋지만 수련 레지던트의 입장에서 대안 마련까지 고민하는 학회가 되었으면 더 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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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임상심리학회 수련위원회에서 올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응시 예정자에게 발송한 메일 중 일부입니다.
닫기
안녕하세요, 수련위원회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 필기 및 면접시험 자격심사에 응시하시는 분들은 다음 사항들을 유념해주시기 바랍니다.
(3) 심리평가 -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1항에 따르면, 3년 동안 심리평가 수련 중 최소 30례 이상은 종합평가(Full Battery)를 시행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이번 수련완료 심사에는 3년 동안 시행한 심리평가 중 종합평가 30례를 함께 첨부(인쇄물)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 모든 심리평가는 수련감독자의 지도하에 실시되어야 하며 3년 동안 300시간 이상 수련해야 한다. 이중 50%까지는 신경심리평가, 재활기능평가로 할 수 있으며, 종합평 가(FULL BATTERY) 30례 이상으로 한다. (박사 과정생은 총 200시간 및 종합평가 20례 이상, 박사학위 취득자는 총 150시간 및 종합사례 15례 이상으로 한다.) 단, 수 련시간 산정에 있어서 종합평가에 대해 1사례 당 8시간까지만 산정할 수 있다. |
- 수련수첩에 기록 시, 실시검사 란에 “종합평가”“종합신경심리평가”“성격검사” 등으로만 기재하시 마시고, 각 평가들이 어떤 검사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기록해주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터 수련과정 시행세칙 7조 1항이 심리평가 30례를 인쇄한 보고서 형태로 제출하도록 바뀌었는지 모르겠지만 수련위원회의 이 요구에는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레지던트 선생님이 잘 정리해 주신 것처럼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요구가 의도가 무엇이었느냐와 상관없이 학회의 행정편의주의에만 입각한 것이라는 겁니다.
우선 제출되는 심리평가 보고서에 포함되는 피검자가 무시되었습니다. 치료 사례를 제출할 때에도 내담자의 동의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학회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 제공동의를 구하지 않은 심리평가 보고서를 제출(그것도 30케이스라면 대체 어떻게 동의를 구하라는 말인가요?)하라는 요구는 아무리 익명 처리를 한다고 해도 평가자와 피검자 관계를 생명처럼 생각해야 하는 학회에서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고도 윤리 교육에서 피검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못하겠습니다.
또한 이 요구는 현장의 상황을 무시했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는 의무 기록입니다(물론 학회는 이런 것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수련 기관은 병원 장면이고 간단한 의무 기록도 의무 기록 확인을 거쳐 발급하는 의료 기관에서 아무런 절차 없이 의무 기록 제출을 허가할 리 만무하니 현실을 무시한 무리한 요구입니다. 제가 병원장이라면 허가 안 할겁니다. 수련 레지던트에게 행정 절차를 무시한 기록 제출 부담을 안기는 일입니다.
이 요구는 수련 레지던트도 무시했습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진다면 어느 피검자가 그 수련 레지던트 내지는 그 레지던트가 속한 수련 기관을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며 이 때 학회가 과연 수련 레지던트를 방어할 수 있을 지 매우 회의적입니다. 즉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의무 기록에 준하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보안성이 떨어지기 이를 데 없는 문서로 제출하고 문제가 생기면 네가 알아서 책임지라는 식의 매우 무책임한 요구입니다.
이 요구는 supervisor도 무시했습니다. 즉 수련 수첩에 적힌 심리평가의 내용과 supervisor의 관리 감독 능력을 믿지 못하겠으니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직무 유기를 자행하는 supervisor의 사례가 왕왕 보고되고 있으니 학회 차원에서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테지만 방법이 틀렸습니다. 정말 이 방법 밖에 없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 절차는 행정적으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매년 1만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가 서류 형태로 수련위원회에 도착할텐데 아시다시피 수련위원회는 사무실이 없으며 수련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매번 병원과 같은 수련 기관이 수련위원회로 사용됩니다. 즉 A 병원에서 작성한 보고서가 B 병원의 어딘가(임상심리실 내지는 검사실 캐비넷, 전공의실 등)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죠. 보안 유지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걸 누가 다 점검할 겁니까? 수련위원회 간사? 간사도 수련 레지던트입니다. 그럼 수련위원장이 다 볼 겁니까? 어느 세월에? 그리고 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겁니까? 적법한 절차를 거쳐 폐기할 겁니까? 아니면 다시 수련 레지던트에게 일일이 비용을 들여 돌려줄겁니까? 이후 생각을 하지 않은 단순한 요구라고 봅니다.
저는 이처럼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supervisee에게만 모든 부담을 떠 넘기는 심리평가 보고서의 문서 형태 제출을 기본적으로 반대합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supervision 체계를 바로잡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supervisor의 직무 유기 행위부터 바로 잡아야 합니다. supervisor가 supervision도 제대로 안 하면서 대충 도장이나 찍어주는 행위부터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supervisor가 제대로 supervision을 안 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해도 그냥 supervisee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편법, 탈법 행위가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수련 레지던트가 전문가가 되고, supervisor가 되면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겁니다.
그러니 정 수련 내용을 살펴봐야겠다면 표본 추출을 해서 표적 실사를 하고 문제가 적발되면 supervisor의 자격을 정지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당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supervisor들이 수련 내용을 꼼꼼히 챙길테고 supervisor들이 학회에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게 됩니다.
이 문제 제기에 대해 수련위원회 간사가 너무도 빨리 답변을 했던데 수련위원회 위원들의 회람을 거쳤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다만 이 답변에만 그치지 말고 최초 문제 제기자가 우려했던 부분에 대해 믿을만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임상심리학회의 핵심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며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임상심리학회의 앞날은 매우 어둡습니다.
학회의 용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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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임상심리학회가 당면한 모든 위기는 임상심리학회를 지탱하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제도의 문제에 기인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 제도가 제대로 돌아가면 나머지 문제는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는 의미입니다.
자격 제도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건 제대로 된 수련 과정을 통해 양질의 전문가가 현장에서 제 몫을 담당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현장의 임상심리전문가는 심리평가/치료/교육에 모두 능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 가르침에 따라 지금도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임상심리학회는 세 영역의 불균형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기존의 강점이었던 영역마저도 점차 약점으로 전락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선 심리평가 영역은 제가
'심리평가를 하찮게 생각하는 임상심리학자'라는 글을 올린 것이 2007년 2월이니 거의 3년이나 되어가는데도 오히려 그 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 감소는 누구라도 체감할 정도인데 그 이유로는 표준화된 심리평가 보고서의 부재(관련 포스팅
'표준화된 심리평가보고서의 필요성'), R/O 또는 NOS 진단의 남발(관련 포스팅
'심리평가에서 NOS의 의미'), case formulation이 아닌 검사 별 기술 방식의 남용(관련 포스팅
'임상심리평가보고서 이렇게 쓰면 안 된다')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심리평가 supervision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supervisor에게 1:1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제게 Big 5에 속하는 수련 기관마저도 1:1 supervision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심리평가를 전혀 하지 않는 supervisor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10년 째 동일한 강의 노트를 고수하는 교수들을 뒤에서 얼마나 욕했습니까? 자신이 심리평가를 하지도 않고 1:1 supervision도 하지 않는 supervisor를 우리는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치료 영역은 더 암담합니다. 사실 상 치료 영역의 수련은 전무하다고 봐야 됩니다. 그나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을 겸하고 있는 기관에서 정신보건센터를 활용하는 것과 대학교의 학생생활연구소가 동원되는 것을 제외한다면 과연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 치료 수련이라는 것이 있기나 할까요? supervisor부터 치료를 하지 못하는데 수련 레지던트에게 치료 기회가 있을리 만무하고 그러니 제대로 된 치료 supervision이 가능할 리 없지요. 그런데도 사례 발표가 이루어지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지경입니다. 제대로 된 심리치료라고는 배운 적이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가 되고 현장에 투입되니 학회에서도 전문가들의 치료 사례 발표나 치료 기법 공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교수들이 학회에서 치료 기법 강의하는 것도 인정하자고 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런 분들께는
'내가 생각하는 임상심리학 교수의 최소 역할' 포스팅의 일독을 권합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일을 할 때 제가 환자나 내담자를 다른 전문가에게 의뢰하려고 해도 제대로 된 치료자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렵습니다.
교육 영역도 마찬가지입니다. supervision만 놓고 본다면 supervisor를 위한 supervision 지침서 한 권 없기 때문에 모든 수련 과정이 supervisor 자신이 배운 그대로 답습되며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supervisor의 지식 편차가 supervisee에게서 그대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심리검사에 대한 개론서(아무리 봐도 별로 차별화되지 않는 그 책이 그 책 수준인)는 매년 그렇게 쏟아지고 있건만 정작 수련 레지던트를 위한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법과 같은 필수적인 책은 한 권도 없으며 Clinician's Thesaurus같은 책이 번역된 적도 없습니다. 정말 답답해 죽겠습니다.
그럼 연구는 좀 나은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funding이 이루어지고 의사와 co-work이 되는 일부 수련 기관에서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물이 간간히 나올 뿐 대부분의 수련 기관에서는 심리평가 loading에 치인 나머지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대학원 연구 논문 수준을 능가하는 결과가 나오기 힘들고 그나마 학교에서는 연구 대상군인 환자를 접할 수 조차 없기 때문에 만만한 대학생(그것도 교양 강의를 듣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을 대상으로 해 일반화 가능성이 극히 낮은 뻔한 논문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제가
'좋은 논문 고르는 법' 같은 포스팅을 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 학회도 점점 재미가 없고 매번 뻔한 커리큘럼이라는 feedback이 나오는 겁니다(참고로 이번 임상심리학회 추계학회에서는 EMDR 강의 하나 겨우 건졌다는 후문입니다). 도무지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니 시류에 맞춰 인기있는 새로운 영역의 기초 발표만 반짝 이루어지고 후속타가 없습니다.
이처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이 빈틈투성이니 자격 제도가 건실할리가 없고 자격 제도가 부실하니 임상심리학회의 허리가 약할 수 밖에 없으며 그러니 점점 동력을 잃게 되는 겁니다. 동력을 잃게 되면 임상심리학회의 미래는 암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일대 개혁해야 합니다. 시행 세칙이나 바꾸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부터 재정비해야만 임상심리전문가, 더 나아가서는 임상심리학회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처방이냐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다른 글로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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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썼지만 제목 한번 참 유치합니다. 이건 무슨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도 아니고... -_-;;;;
이 포스팅을 하는 이유는 지방의 일부 몰지각한 supervisor들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따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라며 수련 레지던트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이가 집을 나가는 바람에 이 supervisor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지만, 아마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의 유무와 상관 없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감독을 할 수 없는 사람일 겁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지정 기관에 있는 supervisor였다면 이런 엄한 소리를 할리가 없으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 없이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갖춘 supervisor거나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갖고 있더라도 어차피 수련 감독을 할 수 없는 교수들이 틀림없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와 임상심리전문가 자격을 모두 갖춘 supervisor가 그런 소리를 했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정말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국 승패(?)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능력과 그보다 더 중요한 심리치료 능력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만 현실적으로 살펴보면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 비해 임상심리전문가가 여러모로 불리해보입니다.
첫째, 제가 수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의 quality가 더 높았고 requirement도 더 세세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에 현장에 나오면 정신보건임상심리사보다는 임상심리전문가를 더 인정해주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만 두 가지 자격을 모두 갖춘 supervisor들이 수련 기관에 자리를 잡으면서 수련 과정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고 현재도 격차가 계속 줄고 있습니다.
둘째, 첫째 조건과 연결되는데 연구 논문과 치료 사례 발표 조건(이 문제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을 하겠지만 대학원에서 지도 교수가 횡포를 부리듯이 이 조건을 갖고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supervisor가 꽤 많습니다)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포기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만 취득하려고 하거나 아예 심리학 베이스가 아니기 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포기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임상심리전문가는 그야말로 쪽수에서 밀리고 있습니다(매년 현장에 나오는 임상심리전문가의 수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수를 비교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학회에서 정신보건임상심리사 협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아마도 심리학 베이스가 아닌 순수(?) 정신보건임상심리사들을 포섭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잘못된 생각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셋째,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에서 심리평가 영역이 더 이상 강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들의 심리평가실력이 나아졌다는 말이 아니라 반대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들의 실력이 저하되었다는 말입니다. 즉 하향 평준화되었다는 겁니다. 이건 제가 6년 동안 현장에서 supervision을 하면서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문제인데 저는 이걸 현장의 supervisor들이 제대로 심리평가 supervision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이것도 조만간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심리평가 supervision만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치료 supervision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하다 못해 social skill training이나 집단 프로그램이라도 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정신보건임상심리사에 비해 점차 치료 영역에서도 밀리게 될 겁니다.
넷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일 수 있는데 국가 기관에서 전문가를 채용할 때에는 국가 공인 자격이 우선시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당장 저만 해도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없었다면 지금 일하는 직장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기관에 속한 전문가 전원이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갖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군, 법원 등 전문가가 진출할 수 있는 국가 관리 영역은 점차 넓어지겠지만 이미 국가 공인 자격을 요구하고 있고 아직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국가 공인 자격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을 수련 과정 없이 소급해서 받은 교수급 전문가들은 그 당시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거나 설사 알고 있더라도 그 심각성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제가 직접 겪은 일이고 지금도 현장에서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당장 몇 년 뒤에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갖춘 사람과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만 갖춘 사람이 국가 기관에 apply하면 누가 채용될 것 같습니까? 저랑 내기라도 해 볼까요?
내년부터 산업인력공단의 임상심리사 1급 자격자도 현장에 나오게 될텐데 임상심리전문가는 임상심리사 1급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만 따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local NP에서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보다 임상심리전문가를 더 쳐준다고 합니다만 실상을 알면 어깨 으쓱할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대부분 개업 10년이 되지 않은 의사들로 수련받을 때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레지던트와 생활을 같이 했던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임상심리전문가를 선호하는 것일 뿐 제가 이 글의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심리평가 보고서의 quality와 자신들이 커버하지 못하는 다양한 심리치료를 감당할 수만 있다면 굳이 임상심리전문가일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결론을 맺겠습니다.
저는 수련 당시에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의 고마움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이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현장에서는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이 무엇을 하더라도 큰 힘이 됩니다.
'임상심리학 관련 자격증' 포스팅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저는 임상심리전문가 자격보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실질적으로 더 쓸모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수련을 받아야 하고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 과정과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과정을 선택할거라고 자신있게 말 못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덧붙이자면 레벨이 있는 모든 자격증은 최상위 자격만이 가치가 있습니다. 정신보건임상심리사 1급 자격이 있는한 2급은 절대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최상위 레벨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2급 자격을 가진 선생님들 중 심리학 베이스가 아닌 분들은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기 위해 심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 아니라 정신보건 1급 승급을 위해 지정 기관에 들어가서 5년의 경력을 쌓으면서 평가든, 치료든 자신만의 영역과 노하우를 쌓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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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틀렸습니다.
저는 3년 전 임상심리학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 이후로 결성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일종의 원년 멤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꾸준히 오프 모임에도 나갔고 초기에는 무료로 게릴라 워크샵도 진행을 했습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뒤로 물러나 이제는 수련에 도움이 될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정도로만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모임 게시판에 올라오는 모든 글은 빠짐없이 읽고 댓글로 의견도 개진하는 편입니다.
올 4월에 임상심리학회에서 부회장이신 조선미 선생님의 명의로 대의원회 구성과 관련하여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의 대표 참석을 권유하는 공식 요청이 모임에 도착했는데 일단 시일이 촉박했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방법이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임상 심리학회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3년 동안 회원 수가 500명이 넘는(2009년 10월 3일 현재 523명), 가장 큰 수련생 모임을 방치해 왔습니다. 물론 그동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던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의 잘못도 없는 것은 아니나 지금도 자신의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 가입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수련 레지던트들의 수가 부지기수인 점을 감안한다면 당연히 임상 심리학회에서 수련생 협의회 준비모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수련생 협의회로 발족시켜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의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련의 공식적인 절차 없이 대표 참석을 요구하는 것은 수련생이 처한 약자 입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동이고 실제로 이 사안에 대해 준비 모임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반가운 시도이기는 하나 누가 총대를 멜 것인지 걱정이라는 논조가 가장 많았습니다.
또한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가장 큰 조직이기는 하나 대표성이 없는 상태에서 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수련생들이 배제되는 문제가 당연히 발생할텐데(이 점에 대해서도 모임에서는 수련생 협의회 준비 모임이 아닌 전체 수련생을 대상으로 한 의견 수렴을 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는 타당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 점에 대한 배려도 아쉬웠습니다.
따라서 저는 임상 심리학회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대의원 제도와 맞물려서 무엇보다도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의협의 전공의 협의회처럼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위한 협의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학회가 총대를 메고 임상심리 레지던트 권익 보호를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깊어진 불신의 골을 지금이라도 메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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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평가자료라 함은 심리평가 보고서와 심리검사 원자료, 거기에 면담 요약, 진료 기록지 등 심리평가를 위해 활용되는 피검자의 모든 기록을 말합니다.
이 중 진료 기록지 등 일부 자료는 의무 기록으로 분류되어 의료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자료는 피검자의 정신장애 진단 및 심리 상태와 같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방치된 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로 무성의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심리평가자료는 유출될 경우 피검자에게 법적, 사회적 불이익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엄청난데도 학회에서 공식, 비공식 지침 한번 발표된 적이 없을 정도로 그 심각성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임상심리학자를 상근 고용하지 않는 의료기관의 경우가 가장 문제인데 심리검사를 위한 전용 검사실을 갖추지 못한 곳이 태반이고 그러다 보니 심리평가자료를 보관하는 장소도 없어서 임상심리학자들이 그 중요한 심리평가자료를 개인적으로 (집에) 보관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경우 그대로 폐기함으로써 나중에 재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없어집니다. 게다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임상심리학자가 그만두면 그 평가자가 평가한 피검자의 자료는 몽땅 며느리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지는 것이죠.
물론 종합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심리평가 보고서를 스캔하여 광파일로 보관하고 검사 원자료는 의무기록실에 저장해 병원 밖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신경을 좀 쓰는 편입니다. 그래도 역시나 헛점은 있는데 예를 들어 수련을 마친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전문가가 되어 병원을 나가게 되면 당연히 그동안 작성했던 심리평가보고서 파일을 모두 백업하고 유출이 되지 않도록 PC, 노트북의 파일을 삭제해야 하는데 제가 알기로 그렇게 하는 병원은 국내에 하나도 없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제가 수련받던 당시에 작성했던 심리평가보고서 파일을 모두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당연히 백업 후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확인도 안 하더군요. 이건 사실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피검자의 개인 정보가 오로지 임상심리학자 개개인의 양심에 맡겨져 있다는 건데 이래서는 안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든 심리평가자료가 임상심리학자 개인의 손에 맡겨져 언제든 유출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정보 유출의 문제로 소송이 걸리고 자격이 박탈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지금이라도 학회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소한 전문가 회원을 중심으로 심리평가자료를 어떻게 보관, 관리하는지 실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관리 지침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현재 임시방편이기는 하지만 제가 실시했던 모든 심리평가자료를 년도 순으로 보관하고 있으며 10년이 지난 후 순차적으로 파쇄기를 이용해 폐기할 예정입니다. 또한 심리평가 보고서의 문서 파일은 비밀번호를 알아야 접근이 가능한 저장장치에만 보관하고 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방법이 정답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기준은 될거라고 봅니다.
모쪼록 학회가 빨리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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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의 유성진, 권석만 선생님이 한국 임상심리학회지(2009, Vol. 28, No. 2, 563-586)에 publish한 '심리평가 및 심리치료에 있어서 기질-성격 모형의 임상적 시사점' 논문의 요약입니다.
이 논문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구 대상 : 103명의 대학생
* 사용 척도 : TCI-RS, PANAS, SWB(주관적 안녕감 척도), 행복 척도, 성격적 강점 검사, PBQ(성격적 신념 질문지)
* 분석 방법 : 상관 분석, 중다회귀분석
* 연구 결과
1. 자극 추구 기질은 군집 A, B, C 성격 장애와 정적 상관
2. 위험 회피 기질은 군집 A, C 성격 장애와 정적 상관
3. 사회적 민감성 기질은 군집 A 성격 장애와 부적 상관
4. 자극 추구 기질은 심리적 적응과 유의미한 상관 없음.
-> 상당히 복잡한 속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
-> 탄력성(창의성 및 호기심의 발현을 통한 잠재적 보상 기회의 획득)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을 의미.
-> 강점의 부재가 곧 부정적 정서로 대변되는 심리적 부적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
* 월덴지기가 이 논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내용
1. 치료자는 심리치료를 통해서 변화시킬 수 없는 내담자의 독특한 개인적 요인까지도 충분히 인식하고 그 임상적 의미와 영향을 면밀히 평가할 필요가 있다.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은 변화시키고 변화시킬 수 없는 요인은 수용하는 것이 내담자의 적응에 유익하기 때문이다.
2. 기질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적응에 영향을 미친다.
1) 기질의 개인차는 세상과 환경에 대한 개념 형성에 기여한다. 기질적 성향의 영향으로 어떤 사람은 세상을 위험한 곳으로 표상하지만, 다른 사람은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표상한다.
2) 기질의 개인차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개념 형성에 기여한다. 기질의 영향을 받아서 어떤 사람은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여기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 여긴다.
3.
자극 추구 기질은 군집 B 성격장애와 상관이 높고 위험 회피 기질은 군집 C 성격장애와 상관이 높으며 사회적 민감성 기질은 군집 A 성격장애와 높은 역상관을 보인다.
4. 자극 추구 및 위험회피 기질은 약할수록 그리고 사회적 민감성 및 인내력 기질이 강할수록 적응에 유리하였다.
5. 초기의 기질 모형은 성격장애 유형과 심리적 부적응 여부에 대한 평가라는 진단적 목적에서 비롯되었지만, 후기의 기질-성격 모형은 성격의 발달과 성숙을 통한 기질의 조절과 수용이라는 치료적 목적까지 내포하고 있다.
6. 기질 차원은 극단적일 때, 성격 차원은 미성숙할 때 심리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월덴지기의 Comment
1. 이론적 개관, 논문의 짜임새라든가, 전개 방법 등은 아주 매끄럽다고 생각함. 솔직히 부러울 따름. 그런데 기질-성격 모형의 임상적 시사점을 살펴보는 것이 이 논문의 핵심인데 연구 대상은 대학생(그것도 연구자의 수업을 듣는 수강생으로 추정되는)으로 국한되어 있음. 제한점에서 일반화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유성진, 권석만 선생님 정도 되는 연구자가 연구 시작 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 몰랐을리가 없음. 솔직히 말하면 임상적 시사점을 보려고 하는 연구인데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려면 안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함. 도박 중독자에 대한 실존 치료의 효과를 검증하는데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말이 됨? 아마도 유성진 선생님이 박사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한 requirement 차원에서 쓰신 것 같은데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좀 실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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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임상심리학회 산하 정신병리연구회의 회원입니다(커밍아웃?). 수련을 마친 뒤에도 될 수 있으면 정기모임에 참석하려고 노력하는데 하나는 제 자신을 단련하는데 필요한 지적 자극을 받기 위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가가 되고 나서도 계속 자리를 지켜 수련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에게 기운을 북돋아주기 위해서입니다. 게다가 어제는 제가 일하는 분야의 이야기라서 일부러 시간을 뺐습니다.
6시 30분부터 시작이라서 조금 일찍 도착해 등록을 하고(2009년 회비로 3만 원을 냈습니다. ㅠ.ㅠ), 병원 구내에서 라떼 한 잔을 산 뒤 뒷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지하 1층에 커다란 카페가 새로 생겼네요. 환자를 위한 시설에는 신경쓰지 않고 여전히 돈 벌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참 씁쓸합니다.
모임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도록 김밥 등을 제공한 것은 좋았습니다. 저야 일찍 저녁을 먹고 갔지만 병원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오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많을테니까요.
대신 각 병원의 supervisor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무책임하게 보였습니다. 과거에는 어느 병원에서 발표를 하건 supervisor들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질문도 많이 해서 모임을 활발히 이끌었는데 어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바쁜 지 모르겠지만 별로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초심을 지켰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발표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성 안드레아 병원의 1년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병적 도박의 정의와 원인, 이론, 측정도구에 대해 발표했고 2년차 선생님이 이어서 치료와 사례, 연구 결과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상당히 긴장을 하셨을텐데 침착하게 시간도 잘 조절하면서 하시더군요. 예전에 제가 발표할 때 엄청 떨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내용이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임상심리 레지던트를 대상으로 한 발표였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외국 자료를 그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현장과 다른 점을 짚어주지 못해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의심없이 믿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한국의 도박중독 유병률을 9.28%라고 소개(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치)하면서 reference가 되는 금홍섭(2006)의 연구에서 어떤 평가 도구를 사용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SOGS가 허위 긍정이 매우 높은 도구라서 현장에서는 단독 사용을 꺼리는 데 대표적인 평가 도구라고만 소개를 하고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도박 중독자의 MMPI profile에 대해 설명하면서 외국 연구자의 주장을 그대로 소개(주로 4번을 위주로 한 profile)했는데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거든요. 이런 부분들은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운 부분은 성 안드레아 병원에서 운용하고 있는 치료 프로그램의 소개였는데 다양한 치료 기법을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임상심리학자들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럴꺼라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역시나 도박 중독자를 맡기지 않더군요.
제가 장담하건대 임상 심리학자를 치료에 적극 활용하지 않는 이상 성 안드레아 병원에서 도박중독치료의 질이 높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정신병리연구회에서 도박 중독에 대해 발표하는 것을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한편으로는 고무되면서도 앞으로는 더 이상 이론적인 부분이 아닌 실제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전달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월덴지기의 Comment
그래도 MMPI-2와 TCI 자료를 열심히 모으고 계시더군요. 조만간 논문도 나올 것 같던데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2005년부터 자료만 줄기차게 모을 뿐 논문 한 편 쓰지 않고 있는 제게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저도 좀 논문도 쓰고 그래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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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학회는 한국 심리학회 산하 분과학회 중 가장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전문가 집단입니다.
그동안 양적으로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사회적인 인지도도 높아져서 학교와 병원에만 국한되던 일터가 국 공립 기관, 군과 경찰, 다양한 민간 기관과 기업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은 전혀 뒷받침되지 않아 임상 심리학 전공의 인기에 힘입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석사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련 기관의 수가 태부족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신규 수련 기관의 수를 늘리느라 애쓰지만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하여 여전히 유급 수련을 받을 수 있는 레지던트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수련 레지던트들은 무급 수련의 늪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임상 심리학회는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신세입니다. 그저 그나마 있던 수련 자리도 없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현장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레지던트에게만 모든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수련 레지던트의 처우가 문제가 되어 수련생 협의회가 결성되었을 때에도 수련 레지던트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낸 senior supervisor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임상 심리학회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병원의 supervisor만 되면, 학교로 돌아가 임상 심리학 교수 자리만 꿰차면 수련 레지던트가 무급으로 수련을 받든, 그나마 수련받는 기관의 supervisor가 무능하여 자기 돈으로 유료 supervision을 받든 알 바 아니라는 것이죠.
험한 이야기를 하느라고 길어졌습니다만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임상 심리학회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실속 없는) 대접 받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경정신의학회가 학회를 열면 당연히 제약회사들이 지원을 합니다. 의사들이 약물을 처방하니까요. 임상 심리학자들은 겉으로는 그들의 유착 관계를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부러워해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돈 걱정 안 하면서 학회를 하나' 하면서요.
임상 심리학회는 돈이 없습니다. 풍족했던 적이 없죠. 이사가 되면 일을 하는 댓가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회원보다 회비를 더 내야 합니다. 명예직이니 어쩌니 하는 입바른 소리들으면서 말이죠. 그렇게 희생을 강요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학회재정을 위해 기금을 끌어오고 후원금을 받을 생각을 안 합니다. 제대로 된 댓가를 받지 못하니 명예욕이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회장과 이사를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억지 춘향 격으로 일을 하게 되니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고 그냥 시간이나 때우면서 다음 회장단으로 넘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발전이 없습니다. 누가 회장이고 누가 운영진인지는 아는 사람만 알고 일반회원은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해도 똑같으니까요. 회비 완납율이 낮다고 항상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회비 완납 안 하면 전문가 자격 안 주고, 논문 안 실어주는 식의 징벌적인 보완책 밖에 못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민간 기업에서 후원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알량한 체면 따지면서 그냥 돈만 주면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조건이 까다롭냐면서 배부른 소리를 합니다. 기업이 학교 같은 줄 아나요? 윈-윈 하지 않으면 한푼도 안 내놓는 곳이 기업입니다. 그리고 후원에 있어서만큼은 기업이 '갑'이고 학회가 철저히 '을'입니다.
학회 재정만 제대로 확충하면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좋은 강사 모시고 더 좋은 교육을 받아서 회원들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 지금 이런저런 거 재게 생겼나요? 후원금을 주는 기업이나 기관에 임상 심리학회 회장이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요?
이제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학자는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되지도 않는 소리 씨부리지 말고 당당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돈으로 회원을 위해 써 달라고 지극히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회원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고 회원을 위해 자존심을 잠시 접을 수 있는 그런 회장이 나와야 합니다.
전문성은 대접해달라고 떼를 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전문성을 키우면 자연스레 대접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놈의 전문성은 당당함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배가 부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배가 고프지 않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생계가 위태로운데 전문가가 되면, 박사가 되면 뭐한답니까?
지금 임상 심리학회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난 후 나는 학회의 재정을 위해 얼마의 후원금을 모아들였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회장과 이사진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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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익명으로 좋은 상담자를 찾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을 하셨습니다. 질문을 받고 보니 저 또한 내담자의 입장에서 적절한 상담자를 고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에
'내가 상담/심리치료를 받는다면'이라는 글에서 일반적인 지침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심리평가나 정신과의 약물 치료가 아닌 순수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고자 결정하고 상담자를 찾는 경우 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해 봤습니다.
질문한 분도 말씀을 하셨지만 심리적인 서비스는 입소문으로만 찾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서비스의 속성 상 성형외과처럼 입소문으로 '어디어디가 잘 한다더라'라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죠. 물론 방송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상담자를 찾아갈 수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 권하지 않습니다. 일단 유명세를 떨치게 되면 방송 출연하는데 시간을 온통 빼앗기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도 없고 상담할 시간도 태부족입니다. 그러니 금방 상담의 감을 잃고 실력이 없어지거든요.
저라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1. 한국 심리학회 홈페이지(단 업데이트가 빠르지 않기 때문에 주의!)를 찾는다.
: 물론 정신과 의사 중에도 심리치료의 대가가 있지만 그 수가 심리학자보다도 더 적을 뿐 아니라 찾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게다가 찾더라도 대기자가 많거나 상담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ㅠ.ㅠ
2. 개업 심리학자 명단을 찾는다.
3. 내가 상담을 원하는 문제를 주로 다루는 전문가를 찾는다.
: 부부 갈등이라면 부부 문제를 주로 다루는 전문가, 청소년 자녀 문제라면 청소년 문제를 주로 다루는 전문가 등
4.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줄인다.
: 처음에는 좋은 상담자라면 어디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상담을 시작해 보면 거리가 상담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제약 조건으로 대두됩니다.
5. 홈페이지가 있는 상담실을 추려낸다.
: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고 상담을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담자를 배려해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시도 자체가 상담자의 기본 마인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상담실에 속한 상담자의 면면을 훑어본다.
: 약력과 수련 배경, 상담 경력 등을 꼼꼼히 훑어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 저곳(특히 연관성이 없는 곳)을 많이 옮겨다닌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는데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내담자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7. 온라인 상담실이 있다면 비밀글 기능을 이용해서 간략하게 상담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문의한 후 답글을 기다린다.
8. 답글을 본 후 마음에 드는 상담자를 선택한다.
: 답글을 올린 상담자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예약하면 된다. 온라인 상담을 하는 상담자와 대면 상담을 하는 상담자가 다른 상담실도 있기 때문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 배제 기준
1. 교수
: 현재 심리학계의 교수들은 대부분 상담을 하지 않으며 상담 현장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실력이 의심스러운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학과 부설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현장감을 유지하는 분들도 있지만 정교수가 되면 본인이 직접 상담을 하기보다는 박사 과정이나 전문가를 고용해서 상담/심리치료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교수는 맨 처음부터 배제합니다. 비용 대비 효율성이 가장 낮은 상담자입니다.
2. 전문가가 된 지 3년이 되지 않은 초보 상담자
: 임상, 상담을 막론하고 현재의 수련 제도는 상담/심리치료에 대한 수련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투입된 지 3년이 안 된 상담자는 자신의 주 영역에 대한 전문성과 상담 경험 자체가 모두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저라면 현장에서 3년 이상 상담한 상담자가 아니라면 상담을 받지 않을 겁니다.
3. 내세우는 자격증의 수가 너무 많은 상담자
: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경우는 관심 분야가 다양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전문 영역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그걸 보상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격을 모두 취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PTSD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것도 아니면서 무조건 EMDR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런 상담자는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라면 피하겠습니다.
4. 박사 과정생
: 이 경우는 설명이 좀 필요한데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현장에서 상담/심리치료를 오래 하다가 학위 취득을 위해 학교로 돌아간 사람이 아니라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에 곧바로 학교로 돌아간 박사 과정생을 말합니다. 2번의 배제 기준과 비슷하게 임상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박사 과정생이라고 해도 현장의 초심 상담자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번역한 책이 많고 논문을 많이 써도 상담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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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 때에는 공식적인 명칭이 임상심리 레지던트였습니다. 심리평가 보고서에도 그렇게 기술했고 병원 가운에도 '임상심리 레지던트'라고 새겨 있었고요. 그래서 전문가가 되고 난 이후 현장에 나와 '임상심리 수련생'이라는 명칭을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수련생이 무엇입니까? 문자 그대로 수련을 받는 학생이라는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수련생'이라는 말은 착취를 정당화하는 용어입니다. 너희는 학생이기 때문에 급여를 받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전문 기술과 지식을 사사받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논리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족쇄같은 명칭입니다. 실제로 정당한 급여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수련 병원에 가운, 식대 비용으로 일정한 금액을 내고 수련을 받는 임상심리 레지던트가 있습니다.
재작년인가
수련생 협의회에서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명칭을 쓰자는 말이 나왔고 임상심리학회 게시판을 통해 건의도 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그 결과로 여전히 수련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고요. 참 통탄할 노릇입니다.
학교에 계신 교수님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supervisor로 있는 전문가들도 심각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의 경우 '전공의'라고 하지 절대로 '전공의 수련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 의사들의 인턴 과정에 해당하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레지던십 과정에 들어온 사람들이 학생 취급을 받아야 합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더 큰 문제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들마저 스스로를 '수련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도 교수의 절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나면 알게 모르게 주눅이 들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이건 아닙니다.
임상심리 레지던트는 전문가 자격 취득을 위해 고급 수련 과정에 있는 준 전문가이며 이미 검사 수가, 치료, 연구 등 충분한 공헌을 수련 기관에 하고 있습니다. 수련생이라고 폄하될 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임상심리학회는 이런 기본적인 권리부터 지켜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임상심리학회 회원들 스스로도 자기를 낮추는 이런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임상심리 레지던트'라는 용어를 추천하고 지금도 제게 supervision을 받는 모든 선생님들에게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학회 차원에서 어떤 쪽으로 정리가 되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부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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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다녀왔습니다. 원래 전체 일정이 1박 2일이기는 하지만 함께 일하는 선생님이 이틀 모두 참석하신다기에 직장을 지켜야 하는 만큼 저는 5월 1일 하루만 참석하고 당일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길게 늘어선 등록 대기줄이 싫어 7시 KTX를 타고 내려가서 셔틀 버스도 첫 차를 탔는데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는지 셔틀버스 기사분이 엉뚱한 곳에 내려주는 바람에 결국 시간 이득도 별로 못 보고 등록을 했죠. 다행히 등록 데스크가 꽤 큰 데다 전문회원은 따로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줘서 편하게 등록을 마쳤습니다. 미리 신청해 둔 도장과 신분증을 받고 사인도 등록을 했습니다.
행사장이 4월 말에 개관한 곳이라서 그런지 비까번쩍하고 좋기는 한데 임상 심리학회 회원들은 가까운데도 많이 오지 않았더군요. 아는 얼굴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로 건강 심리학회 회원들인 듯. ㅠ.ㅠ
오전에는 개회식과 '치료 사법'에 대한 심포지엄을 매우 큰 강당에서 진행했는데 제 관심 분야가 아닌지라 저는 숨어서 가지고 간 노트북을 이용해 내내 블로그 관리하고 포스팅하면서 놀았습니다. 죄송~ 무선 인터넷이 빵빵하게 잘 잡히더라고요. ^^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만나서 점심을 먹고 난 후 예전부터 사려고 찜 해 놓았던 책을 몇 권 샀습니다. 학지사나 시그마프레스의 경우 학회 후원을 하면서 심리학 관련 서적을 현장 판매하는데 이게 할인폭이 꽤 큽니다. 신간의 경우에는 인터넷 할인도 거의 되지 않기 때문에 학회 행사장에서는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을 상당히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거든요. 저는 어빈 얄롬의 '카우치에 누워서', '로르샤하 해석의 원리', '분노의 기술'을 샀는데 각각 17,000 원, 20,000 원, 15,000 원을 14,000 원, 15,000 원, 13,000 원에 샀습니다. 정가 총액 5만 2천 원인 책들을 4만 2천 원에 샀으니 1만 원이나 절약을 한 거지요. 학회에 참석하실 분들은 한번 고려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책을 사고 나서 2시부터 진행하는 집단동기강화상담 워크샵을 들으러 갔습니다. 자리가 부족해서 나중에 의자를 더 가져와야 할 만큼 관심있어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신성만 선생님이 워낙 강의를 재미있게 하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청중의 무반응에 살짝 상처받으신 것 같은데 그리 예민하게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더군요. 제가 들어본 강의 중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재미있는 강의니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워크샵 내용으로는 제가 기대했던 것 만큼 얻은 것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managed care를 따르는 미국의 실정 상 어쩔 수 없이 개발된 만큼 우리나라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 같았습니다. 신성만 선생님이 번역하고 계시는 도박 중독자를 위한 메뉴얼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집단으로 모이는 것을 싫어라 하는 우리나라 도박중독자의 특성 상 개인 상담을 병행하면서 전 숙고 단계와 숙고 단계 양 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도박 중독자에게만 시험적으로 실시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집단의 인원 수라든가, 지나치게 많은 worksheet의 양을 조절하는 문제, 같은 변화 단계에 있는 중독자들로만 homogeneous하게 구성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냐하는 점 등등 짚어봐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고민을 많이 해야 하겠더군요.
저녁에 일이 있어 원로 선생님들의 강의와 만찬은 건너 뛰고 곧바로 KTX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KTX는 다 좋은데 50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 애매한 시간 문제로 잠을 자기에도 그렇고, 뭔가 책을 보기에도 그런, 어정쩡한 시간이 항상 문제에요.
* 좋았던 점
1. 식사를 부페식으로 하지 않은 점. 오전 심포지엄이 끝나고 수 백명이 한꺼번에 몰리는데 부페식이었다면 장사진이 되었을 것을, 미리 세팅을 해 둔 덕에 곧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장 바로 옆에 식당을 배치한 것도 센스 만점!!
2. 두 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것이니 만큼 참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을 예상해 등록을 하는 booth를 대형으로 준비해 두었더군요. 별로 기다리지 않고 빨리 등록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3. 이것저것 별로 쓸데도 없는 기념품을 마구 뿌리지 않고 자료집과 유용한 플라스틱 가방 하나로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은 바람직 해 보였습니다.
* 아쉬운 점
1. 학회가 열린 컨벤션 센터가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건물이라서 셔틀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들이 하나같이 정확한 장소를 모르더군요. 제가 첫 차를 탔는데 엉뚱하게 대전 엑스포 웨딩 컨벤션 센터에 내려주는 바람에 아침부터 생쑈했습니다. 다행히 학회 운영진과 통화가 되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곧바로 2호차도 거기에 사람들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황당했습니다.
2. 여전히 제대로 읽지도 않는 두꺼운 논문집을 자료집과 함께 주더군요. 개인적으로 논문집은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관련 포스팅 참조) 미안하지만 행사장에 버리고 왔습니다. 앞으로는 필요한 사람만 주던가, PDF파일로 배포했으면 좋겠습니다. 종이값이 아깝습니다. 너무 낭비잖아요.
3. 1박 2일 전일 참가하는 사람 위주로 편성을 했는지 하루만 참가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교통편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행사 진행 요원들도 잘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택시를 타거나 꽤 먼 거리를 걸어서 지하철역까지 나가야 한다고만 안내를 하더군요.
4. 새 건물에 온도 조절도 잘 되는 것은 좋은데 행사장의 의자를 너무 다닥다닥 붙여놔서 옆에 앉은 사람과 간격이 좁더군요. 강의에 집중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꽤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습니다.
5. 오후 심포지엄과 워크샵 장소에 대한 안내와 배치도가 눈에 띄지 않아 들으려는 워크샵 장소를 찾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앞으로는 로비나 등록 데스크에 안내도를 설치하고 각 행사장에도 큼지막하게 안내문을 붙였으면 좋겠더군요.
6. 장소가 없어서 그랬을 것 같기는 하지만 행사장 벽 쪽으로 포스터 게시대를 다닥다닥 붙여놔서 주목성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게다가 신청자 중에서 포스터를 붙이지 않은 빈 곳이 많아서 볼썽 사나웠습니다. 그리고 신청하고 포스터 게시를 하지 않는 무책임한 회원에 대해서는 적절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뭡니까? 책임감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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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부터 임상심리학회 게시판의 글쓰기와 답글 달기 기능이 실명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악플을 차단하기 위해 정통부에서 강력하게 권고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의사개진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서마저도 완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명제를, 임상심리학회에서 몇몇 회원들의 요청만으로 단행한 것입니다. 솔직히 부끄러워서 어디 가서 이야기도 못하겠습니다.
사실 그간 감정적인 게시글과 덧글이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포털 사이트의 자유 게시판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라고 할 정도로 정도가 약한 편인데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일부 집행부의 과잉 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실명제를 대체 왜 실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보기 싫으니까 이름 까고 말하라는 것으로 밖에 이해가 안 됩니다. 게다가 회원들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고, 양해를 구하는 공식적인 공지글 하나 없이 달랑 안내 문구 하나 걸어놓은 것을 보면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확 상합니다. 까라면 그냥 까야하는 겁니까? 요새는 군대도 그렇게 안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이름 밝히고 떳떳하게 말하라"는 요구라면 더더욱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수련 제도 자체가 엄격한 도제 시스템에 입각해 사실상 '언로'가 막혀 있는 임상심리학회에서 실명으로 글을 올리라는 것은 비판적인 말일랑 할 생각을 말고 입닥치고 있으라는 말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이번 실명제 실시를 촉발시켰을 것으로 짐작되는 MMPI 저작권 관련 글들은 사실 현장, 특히 병원 장면에서 일하는 임상 심리학자라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수 있는 사안이고 학회에서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명제 실시라니요. 뭔가 거꾸로 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명색이 사람의 심리를 다룬다는 사람들이 감정적인 글의 행간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고 다소 무례하고 보기 싫다고 해서 실명제를 실시한다니 참 답답합니다.
집행부 및 회원들의 요청이라고는 하지만 누구의 요청인지도 상당히 궁금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수련을 받고 있는 선생님들은 단 한분도 안 계실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명제를 주장하신 선생님들 중 지금까지 게시판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분이 얼마나 되는지도 정말 궁금합니다.
앞으로 실명제 게시판에 소위 영양가가 있는 글이 올라오기는 힘들 겁니다. 가뜩이나 썰렁한 학회 게시판이 실명제 실시 이후로 파리만 날리고 있죠. 저라도 제 이름을 걸고 글을 올리기가 꺼려집니다. 그만큼 임상심리학회는 좁고 뒷말이 많은 곳입니다.
게시판의 실명제 실시는 재고되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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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최근 임상심리학회가 정신과 의사들의 공식 모임인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정식으로 보낸 공문을 image capture한 것입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임상 현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검사 도구인 MMPI의 저작권을 임상심리학회가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대행 판매하고 있는 회사인 한국 가이던스와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앞으로는 MMPI를 구매할 수도 없고 사용해서도 안된다는 통보문입니다.
우선 제가 알고 있기로 MMPI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1950년대 전란의 참화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해 학문적인 기반 마련이 되지 못한 우리나라에 임시변통으로 사용 허가한 것을 지금까지 임상심리학회에서 저작권을 대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판의 공식 저작권에 대한 승인이 없었기 때문에 MMPI 한국어판을 이용해 연구한 논문은 지금까지 SCI에 실을 수도 없었고요. 일종의 뜨거운 감자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구도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는 문제라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모두의 암묵적인 묵인 하에 그대로 사용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임상심리학회가 MMPI의 저작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생뚱맞게 들릴 뿐 아니라 오히려 새로 개발된 MMPI-2(이것은 제대로 된 저작권이 있습니다)를 밀어주려고 하거나 아니면 가이던스와 뭔가 수가 틀려서 잘라버리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런데 정작 문제는 MMPI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자가 누구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이런 사실이 정작 현장에서 MMPI를 사용하는 임상심리학회 회원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 공문을 접수하자마자 전파하여 현재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이 도리어 이 공문을 들이밀면서 함께 일하는 임상심리학자에게 정황에 대해 묻고 있는 형편인데 사태를 전혀 모르고 있던 임상심리학자들은 뒷통수를 맞은 듯한 황당함과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습니다. 대체 임상심리학회는 누구를 위한 학회일까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또 하나는 보험 수가에 잡혀 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이 사용하는 MMPI의 사용이 사실 상 금지됨으로써 MMPI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전혀 없습니다. 보험 수가 산정이 되지 않은 MMPI-II를 알아서 구매해 사용하라는 것인지, 기존에 대량으로 구매해 놓은 MMPI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MMPI 사용에 있어 보험 공단에서 삭감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인지의 여부 등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에 대한 설명과 대안 제시가 전혀 없습니다.
지난 번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과정 위탁 문제로 수많은 회원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
관련 포스팅 참조) 이 겨우 1년 남짓인데 정신을 못 차리고 또 다시 발등을 찍는 학회를 회원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평소 학회의 회장은 병원이나 클리닉에서 일하는 현장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처럼 야전에서 일하는 회원들을 등한시하는 행정을 접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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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톨릭 대학교에서 한국임상심리학회 추계학술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정기총회와 심포지엄이 있었고, 내일은 수련생 공동교육 및 워크샵이 진행됩니다.
저는 내일 오전에 열리는 <단일표본연구설계법>이라는 방법론 워크샵을 들으러 갑니다. 혹시 내일 임상심리학회에 오는 분들은 저를 만나더라도 모른 척 해 주세요(농담입니다. ^^;;;).
임상심리전문가는 1년에 10점의 연수 평점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학회나 연구회, 지회 등의 행사에 될 수 있는 한 참석을 해야 합니다. 2년 연속으로 연수 평점을 못채우면 경고를 받게 되고 경고가 누적되면 자격이 정지될 수도 있습니다. 자격이 정지된 전문가 이야기는 아직 못 들었습니다만...
꼭 강제 요건이라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된 이후에도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부는 계속해야 하는 것이므로 학회 참석은 될 수 있는 한 하는 것이 좋죠. 저는 오랜만에 그리운 얼굴들도 보고 바람도 쐬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만...(연차 휴가를 냈어요).
오후에도 연수 평점을 채우기 위해 관심도 없는 워크샵을 신청했습니다만, 평점 조회를 해 보니 오전의 방법론 워크샵만 들어도 올해 할당량(?)은 충분하기에 과감하게 환불했습니다. 무려 30%의 수수료를 떼더군요(어흑~).
가톨릭 대학교가 역곡역 근처인데 두 정거장인가 차이나는 개봉역 부근에서 2시 30분에 인라인 동호회 후배가 결혼을 하니 오전에 워크샵을 듣고 결혼식에 참석하면 시간이 딱 맞겠네요(럭키~).
하여간 다녀와서 <단일표본연구설계법>에 대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덧. 저는 내일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가톨릭 대학교 니콜스관 N407호에 있을 예정입니다. 결혼식 참석 가능 복장으로 워크샵에 들어갈거니까 알아보기는 쉬울 겁니다. 혹시 제 얼굴이 궁금한 분들은 거기로 오세요(궁금한 분이 있으려나~). 자판기 커피라도 한 잔 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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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던 임상 심리학회가 최근에 불거진 문제로 온통 아수라장입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지금까지 임상 심리학회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국가 공인 자격증인 정신보건임상심리사의 수련 점검을 위탁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정신보건 전문요원에 대한 수련 점검을 강화하면서(왜 갑자기 그렇게 되었는지 behind story는 저도 잘 모릅니다) 1급 1년차로 모집보고를 하고 1년 수련을 받은 다음 2급 자격증을 받고, 그로부터 2년간 수련을 받은 후에 다시 1급 자격증을 발부받는 사례를 앞으로는 용인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왔습니다(운 좋게도 3년을 동일한 수련 기관에서 수련을 받고 자격을 취득한 저는 그런 수련 방법이 가능한 지 솔직히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후배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한 죄가 정말 큽니다). 즉, 1급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3년 동안 같은 수련 기관(1급 TO를 보유하고 있는)에서 수련을 받아야 하고, 그것도 중간에 쉼 없이 연속해서 수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사실상 1급과 2급의 수련 트랙을 엄격하게 구분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의지로 볼 수 있는데 사실 지금까지 이런 관행이 묵인되어 온 이유는 수련을 받을 수 있는 수련 기관의 수 자체가 턱없이 적을 뿐 아니라 수련 기관에 배정되는 TO마저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철저하게 무시한 탁상 행정으로 인해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수련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자리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수련생의 고통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되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규정 적용을 엄격히 함으로써 1년의 수련 기간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안타까운 수련생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처럼 문제가 심각한데도 회원들의 권익 보호를 책임지고 있는 임상 심리학회의 대처는 지극히 안일하고 무책임합니다. 이런 편법 수련이 편하게 수련을 받겠다는 일부 회원들의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라 보건복지부의 수련과 관련한 근시안적인 행정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한데에도 학회의 공식적인 견해 표명은 물론 보건복지부의 담당 부서와의 접촉 등에 대한 경과보고 등 가시적인 움직임이 전혀 없습니다.
게다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수련위원회의 간사는 앞으로의 수련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수련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독이지는 못할망정 보건복지부의 원칙적인 공지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화살을 보건복지부로 돌리려는 모습을 보이는 등 학회에 대한 회원들의 배신감과 분노에 기름을 끼얹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모습이 아닐 수 없고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것은 자기는 이미 자격을 취득했고, 학교의 교수로, 병원의 supervisor로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아쉬울 것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일부 선배들입니다. 이참에 터져 나온 수련생의 검사 fee까지 착복하는 supervisor가 있다는 내부 고발은 정말 이 학회가 어디까지 왔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저는 원래 사교성이 부족하고 outsider를 지향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회비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워크숍이나 학술 대회에 머릿수를 열심히 채우는 정도로만 학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습니다.
학회는 부당한 대우로부터 회원들을 보호할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책임을 게을리해 회원들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신뢰를 저버린 그 대가는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임상 심리학회는 지금이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똑바로 인지하고 위로는 회장으로부터 아래로는 준회원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박봉과 과중한 수련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의 심적, 영적 치유와 회복의 도우미가 될 꿈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수련생들의 꿈이 꺾이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온라인 문법/맞춤법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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