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부모들이 가장 관심 있고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주도 학습입니다. 자기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척척 공부하는 걸 싫어하는 부모는 별로 없을테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자기 주도 학습을 하게 할 수 있는지 제게 물어보는 부모들이 참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자기 주도 학습에서 가장 중요한 걸 '호기심'이라고 말해 줍니다. 호기심이 없으면 자기 주도 학습을 하기가 정말 힘듭니다. 왜냐하면 호기심이 끊임 없이 만들어 주는 내적 동기가 없기 때문에 보상과 같은 외적 동기에만 의존해야 하고 그마저 없거나 부족하다면 인내심이라는 밑바닥 연료를 끌어내어 계속 태워야 하니까요.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주로 체계화되어 있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활용하는 학습법만을 떠올리지만 사실 자기 주도 학습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누구에게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해 오던 겁니다. 아이들을 그냥 놀이터나 숲에 풀어놔주면 호기심이라는 나침반이 이끄는대로 알아서 찾아다니며 지식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지요. 어른들이 할 일이라고는 중간에 가는 길을 한번쯤 툭하고 점검해 주거나 호기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과 수확물을 함께 점검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세상은 도무지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호기심을 발동시킬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호기심은 불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데 악용(세상에 대체 불필요한 지식이라는게 어디 있답니까?)당할 수 있다며 대학에 진학하거나 밥벌어 먹고 사는데 필요하다고 사회가 미리 정해놓은 지식만을 습득하는데 표적을 맞추라고 하죠.
이는 모두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런 불신은 반드시 더 큰 불신과 배제와 침묵의 카운터 펀치로 되먹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건 불 보듯 뻔해요.
이건 제 경험인데 하기는 죽기 보다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 했던 수험생 시절과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던 심리학을 호기심에 끌려 즐겁게 공부했던 대학 생활을 비교해 보면 공부 시간은 전자가 압도적이었지만 결과는 후자가 압승입니다. 제가 심리학을 업으로 삼고 있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대학 때 공부했던 지식은 여전히 아주 쉽게 생각이 나고 기억의 저편에서 끌어올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 고등학교 때 무엇을 공부했는지 뿐 아니라 어떻게 생활했는지의 기억까지 모두 뿌옇고 가물가물하기만 합니다. 쉬는 시간에 뭐하면서 놀았는지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부모가 원하는 종류의 사람을 만들겠다고 아이들을 시스템화된 입시 체계에 집어넣고 돌리면 아이들도 죽을 수 있지만 가장 먼저 아이들의 호기심이 죽습니다. 그래서
'아동/청소년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는 이유' 포스팅에 쓴 것처럼 꿈도 희망도 죽은, 시체 같은 아이들로 자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녀에게 얼마만큼의 호기심이 남아 있는지를 꼭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남아 있는 호기심이 별로 없다면 아이가 알아서 공부하고 있다 해도 분명한 목표가 그 아이를 견인하고 있지 않은 이상 내면의 무언가를 쥐어짜면서 버티고 있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물론 부모 자신의 호기심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남아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게 더 먼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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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라도 학원에 가야 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우스개 소리가 익숙하게 들리는 시절입니다. 좁다란 골목에서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그야말로 흙강아지 소리 들어가며 다방구에 비석치기하면서 놀던 풍경은 7080 문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게 되었지요.
놀이터에서 흙장난이라도 하는 애들을 보기가 어렵고 설사 보더라도 엄마가 멀찍이서 지켜보는 가운데 소심하게 노는 취학 전 아이들 몇몇이 전부입니다.
평일에 자녀들이 TV나 PC 앞에 앉는 걸 호환마마보다 더 싫어하는 부모들 때문에 아이들은 결국 학원에나 가야 친구들을 만나고 엄마 눈을 속이고 잠시라고 PC 방에 들르는 일탈을 감행할 수 있지요.
그래서 학원이나 과외, 학습지 등의 사교육은 아이들에게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생활의 일부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교육에 과잉의존하면 생기는 장기적인 문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부모들이야 미친듯이 사교육 돌려서(물론 본인들은 다들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남들이 다 시키니까 불안해서 남들 하는만큼만 하는거라고 자위하면서요) 소위 명문 대학에 보내놓고는 이제는 성인이니 알아서 하라고 손을 놓지만(물론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계속 쥐고 흔드는 속칭 헬리콥터 부모들도 만만치 않게 많습니다만), 사교육에만 의존해서 공부하던 애들이 대학에 가면 갑자기 자기 주도성을 갖춘 성인이라도 된답니까?
대학원생을 붙여 전공 과목 과외를 받는 공대생, 전산 수강신청 하나도 제대로 못해 조교에게 (그것도 직접 못해서 부모를 시켜) 대신 해 달라고 부탁하는 의대생(개인적인 경험임)들이 생기는 것이죠.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수강 계획 하나 세우는데도 며칠씩 걸립니다. 어느 정도 대학 생활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혼자서 공부하면 불안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스펙을 채운다는 미명 하에 다시 토익, 영어회화, 고시학원 등의 학원 뺑뺑이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적인 불안감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죠.
초등학교부터 대학생까지 요즘 애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거의 대부분 "몰라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대답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 모르는 애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학원 다니기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시간이 정말로 없습니다. 주어지는 정보를 쑤셔 넣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거든요.
그러니 안전빵으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돈 많이 버는, 그럴싸하게 보이는 그런 직장만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그냥 저냥 삽니다.
자기 계발이라는 걸 한답시고 손에 잡는 것도 또 스펙 쌓기의 끄트머리일 뿐 그 흔하게 들리는 흥미, 적성에 맞는 건 찾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나이 먹어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서 후회하고 다른 인생을 살고 싶지만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살던 인생 행로 그대로 가다 죽는거죠.
학생생활상담소에 상담하러 오는 대학생들 대부분이 호소하는 문제는 크게 학교 적응, 대인 관계 갈등, 진로 문제로 나뉘는데 그게 뭐든 간에 사교육 과잉 의존이 상당히 큰 원인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의존이 학력 과잉을 만들고 학력 과잉이 무한 경쟁을 만들고 무한 경쟁이 몰개성화와 양극화를 만드는 것이죠.
사교육 의존은 악의 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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