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상처를 받든 간에 상처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프지만 부모에게서, 그것도 특히 어릴 때 받은 상처가 더 치명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 어릴수록 상처를 받아 안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도 작고, 마음의 힘도 강하지 못해 그릇이 깨지기 쉬우며 심리적 방패도 단단하지 못하고 말랑말랑해서 상처를 받으면 훨씬 더 깊이 패이고 상처가 깊게 마련입니다. 타격을 심하게 당하니 상처가 크고 깊어서 회복되는 시간도 어른에 비해 훨씬 오래 걸리고 심하게는 영영 회복이 되지 못할 수도 있죠.
둘째. 첫 번째 이유와도 상관이 있는데 받은 상처를 감당할 능력이 안 되니 살아남기 위해 무의식으로 상처를 억압하거나 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심리적 상처라는 게 영영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잠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상처를 받은 당사자가 그 상처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증상들만 표면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본인도 그렇고 도움을 주려는 외부 사람들도 증상과 상처의 연결 고리를 찾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어릴 나이에 받은 상처일수록 치유하기가 더 힘든 법이죠.
셋째. 특히 부모에게 받은 상처의 경우에는 자기 증오의 덫에 걸릴 수 있는데 부모가 자신을 학대, 방임하거나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이유가 부모가 아닌 자신에게 있다고 내부 귀인하는 경우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내가 오죽 나쁜 아이였으면 나를 낳아준 부모가 내게 그랬겠어'라고 부모가 준 상처를 정당화하고, 그럼으로써 벌을 받아 마땅한 자신을 스스로 학대하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의 신체와 영혼을 함부로 대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합니다.
자기 파괴적인(self-destructive) 언행을 일삼는 내담자를 만나는 상담자는 반드시 내담자가 어릴 적에 큰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을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하고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내담자도 마찬가지로 어릴 때의 경험을 안전한 상담 공간에서 탐색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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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심리학자이자 정신 분석가인 Theodore Isaac Rubin이 쓴 책입니다. 꽤 유명한 책인데 저는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4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사실 이 책의 핵심은 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인간에게 치료 효과를 저해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자기 증오(Self-hate)'이다. 2) 가장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내는 요소는 '관용'이다.
나머지 내용은 자기 증오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하는 것과 관용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에 할애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쓰여진 1975년이라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내용이었겠지만 지금은 2012년입니다. 이보다 더 정교하게 인간이 절망에 빠지는 이유를 분석한 책들도 많죠.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만도 20만 부가 넘게 팔린 책인데도 저는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자기 증오의 개념을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한 부분이 오히려 가장 거슬렸습니다. 물론 도박 중독도 정신 분석적인 접근에서는 자기 증오에 의한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모든 걸 다 자기 증오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우울증을 자기 증오에 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개인적으로 동감합니다만....
관용이라는 치료적 요소도
'웨인 다이어의 노자 읽기'나
'행복한 이기주의자'에서 말하는 것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10년 전에만 읽었어도 상당한 감명을 받았을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책에서 Rubin의 다음과 같은 말에는 참 동감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권태를 쫓아버리기 위한 시도에서 나는 '참여가 관심보다 먼저다'라는 원칙을 기억하면 크게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들은 흥미가 유발되기 전에, 어떤 행동이나 계획에서라도 최소한의 참여를 감수해야만 한다. 실제로 참여하기 위한 조처들을 취하기 전에 흥미가 우리들을 자극해주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은 평생 동안 우리들을 상대적인 권태 상태로 붙잡아두는 격이다. 참여 이전에 흥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과정은 사실 상 자기를 증오하는 권태를 연장시키는 무의식적인 방법이며, 필요한 참여의 경험은 없이 흥미만을 기대하는 신경증과 연결된다"
그리고 이 말도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나는 이 하루가 마지막 하루이거나 내 삶의 유일한 하루인 것처럼 살아가기를 거부한다. 그 관점은 너무나 큰 압박감을 주고, 좌절하게 만든다. 나는 이 하루가 첫 하루라고 간주하기를 더 좋아한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제 1회 한국 번역문학상까지 수상한 '하얀 전쟁'의 작가 안정효 선생의 번역이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중간까지는 번역이 얼마나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은지 다른 사람이 초벌 번역한 것을 그냥 실은 줄 알았습니다. 한 줄 한 줄이 껄끄럽고 잘 안 읽히더군요. 20여 권의 책을 쓰고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Rubin이 이렇게 글을 못 쓰지는 않을텐데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이 책을 읽은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덧. 이 책은 북 크로싱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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