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낳은 아이인데도 쟤는 대체 왜 저럴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내가 부모인데 우리 아이는 왜 나를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을까 싶어서 속상합니다. 그래도 내 자식이니 이해해보려고 다시금 마음을 먹어 보지만 속에서 천불이 올라올 때도 많고 대체 어떻게 해야 서먹해진 관계를 풀어볼까 싶어 마음이 답답해 미칠 것 같기도 합니다.
심리적 궁합은 연인이나 부부 관계처럼 이성 관계에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자녀 관계에서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아니할 말로 사랑해 결혼한 부부라도 이혼하고 나면 남남이 되지만 부모-자식 관계는 피와 유전자로 맺은 혈연 관계니까요. 결국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죠.
내 아이가 나를 닮았을 수도 있지만 배우자를 닮았을 수도 있고 반반씩 나눠 닮았을 수도 있습니다. 드물게는 조부모, 외조부모를 닮기도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무리한 기대를 내려놓게 되고 자녀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 서비스를 통해 부모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알게 됩니다.
* 나는 어떤 사람인지
* 우리 아이는 나와 무엇이 왜 다른지
*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생기는 이유와 해결 방법
* 우리 아이를 기질에 맞게 올바로 양육하는 법
* 검사 도구
: 자기보고형 질문지 도구인 TCI/JTCI, MMPI-2/A 두 가지만 사용합니다.
* 검사 가능 연령 : 초등학생 이상(자녀가 미취학이거나 대학생 이상 성인이라면 별도로 문의 메일 주세요)
- 자녀가 초등학생인 경우 : 자녀 검사지도 부모가 작성합니다
- 자녀가 중, 고등학생인 경우 : 자녀 본인이 작성하고 본인의 이메일로 자료 공개에 동의해야 합니다
* 심리평가 절차
-> 부모님은 본인을 식별할 수 있는 ID(닉네임, 무작위 이름 가능)와 생년월일, 성별, 일반인/대학생 여부를, 중학생 이상 자녀는 ID, 생년월일, 성별, 중/고등학생 여부를 walden3@gmail.com으로 각자의 이메일로 알려주시면 됩니다. 자녀는 '제 검사 결과를 부모에게 공개하는 것에 동의합니다'라는 문구를 넣어서 신청하셔야 합니다' 이는 심리검사 해석을 위한 규준 결정 용도로 사용하는 최소한의 정보이며 기타 신상 정보 뿐 아니라 왜 심리평가를 받으려고 하는지도 전혀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 전문가 자격 인증(이름, 자격 이름과 자격 번호 등) 및 비용 이체 계좌 안내
-> 심리평가 비용 입금 확인
: 15만 원(본인과 자녀 검사지, 해석 비용, 해석 상담 비용 포함) 입금
: 다른 부모도 검사를 받는다면 5만 원 추가(배우자에 대한 본인의 자료 공개에 두 분 모두 동의해야 합니다)
-> 온라인으로 검사 시행(각자의 이메일로 접속 코드가 발송됩니다)
-> 해석 상담 일정 상의
-> 해석 상담 전 검사 결과를 이메일로 제공(자녀에게도 본인의 검사 결과는 제공됩니다)
->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한 실시간 비대면 해석 상담 진행 : 1시간
(부모가 모두 검사를 받았으면 두 분이 함께 해석 상담을 받게 됩니다)
: 본인 여부를 확인한 후 화면을 끄고 해석 상담을 받으셔도 됩니다.
* 특기 사항
1) 자녀가 초등학생인 경우 자녀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아는 부모가 자녀를 평가해야 합니다.
2) 자녀가 중학생 이상인 경우 본인이 작성해야 하며 본인의 검사 결과를 부모에게 공개하는 것에 대해 동의서를 자필로 사인해야 합니다(자격 인증 시 동의서 발송)
3) 합리적인 수준으로 비용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인 심리평가보고서를 제공하지 않고 현장 질의응답으로 보완합니다(녹음 가능).
4) 모든 검사 결과는 차후 다른 전문가에게 제출하거나 상담에 활용할 수 있도록 PDF 파일 형태로 제공합니다.
5) 서비스가 완료되면 검사 결과 및 이메일 주소 등의 정보를 완전히 삭제합니다.
6) 심리평가 해석 상담만 진행하고 직접 상담을 하거나 다른 병원, 상담센터, 전문가를 연결해 드리지 않습니다.
기타 문의 내용은 walden3@gmail.com으로 연락주시면 최대한 빨리 답변 드립니다.
덧. 현재 제 일정에 여유가 거의 없는 상태라서 검사 후 해석 상담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으니(최대 한 달 이상) 충분한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만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심리평가 결과를 어딘가 빨리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다른 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세요. 물론 최대한 빨리 해석 상담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덧. 제 전문가 자격은 아래의 QR코드를 통해 미리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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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녀를 양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정확하게는 어렵지 않은 것이 정상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어렵지 않다고 했지 힘들지 않다고는 안 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힘든 건 당연합니다.
이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어려운 진짜 이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경제적 궁핍 같은 외부 요인은 배제하겠습니다. 경제적 빈곤은 자녀 양육을 떠나서 생존 자체를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고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경제적 요인 등이 동일할 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지는데 대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부모인 자신부터 원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양육자는 자신의 부모를 포함한 원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만 자녀에게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질 수용적인 환경에서 양육되면서 안정적으로 애착이 되지 못했다면 받은 게 없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에게 주고 싶어도 제대로 줄 수가 없고 때로는 이상한 걸 받아서 주게 됩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대가족 공동체 문화였기 때문에 애착 외상을 상쇄시켜 줄 일가 친척이나 동네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핵가족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에 원 가족 부모에게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한 부모는 자녀에게 제대로 된 양육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자신의 기질과 다른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기질과 다른 배우자와 결혼을 했고 일부 자녀가 배우자의 기질을 물려받았을 경우 기질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입니다. 예를 들어 LHL 기질인 여성이 HLH 기질인 남편과 결혼을 했고 자매를 낳았는데 첫째는 자신을 닮아 LHL 기질을, 막내는 남편을 닮아 HLH 기질을 물려받았다면 막내와는 기질이 상극이기 때문에 자신의 기질을 물려받은 첫째에 비해 둘째를 양육하는 걸 훨씬 어렵게 느끼는 게 당연합니다. 설사 자신이 원 가족에게서 적절한 양육을 받았다고 해도 기질 상의 근본저인 차이 때문에 둘째 자녀에게는 그런 양육 방법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습니다(실제로는 문제를 일으킬 뿐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겹치는 경우, 그러니까 원 가족에게서 애착 외상도 입었는데 이로 인해 상극인 기질의 배우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고 자녀가 배우자의 기질을 물려받았을 경우가 최악의 상황인데 공교롭게도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이 주로 만나는 게 이 두 가지 이유가 겹치는 부모들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예방을 위해서는 본인에게 원 가족 문제가 있는 경우 반드시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신과 기질이 비슷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고 나중에 아이를 낳았을 때 자신의 부모에게 받은 것이 아닌 치유 과정을 통해 후천적으로 습득하고 내재화한 사랑을 양육을 통해 제대로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미 가정을 꾸려 자신의 기질과 상반된 자녀를 두었다고 해도 애착 외상은 치유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동일한 기질의 부모가 양육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위의 예에서 막내는 남편이 주 양육자가 되어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렇더라도 애착 외상을 그대로 두면 기질이 같은 자녀(위의 예에서 첫째)와도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치유는 필수적입니다.
부모에게 안정 애착되고 기질 수용적인 환경에서 양육되었다면 당연히 자신과 기질이 비슷한 사람에게 끌릴 것이고 자녀를 몇 명을 낳든 결국 자신 및 배우자와 비슷한 기질의 아이들이 태어나 자신이 원 가족으로부터 받은 양육 방법과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면 되니 사실 상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두에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이 정상이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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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같은 가족 중심주의 문화권에서는 서구의 개인 중심주의 문화권에 비해 부모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좋은 영향도 좋지 않은 영향도 훨씬 더 크게 미칠 수 있거든요.
일찌기 위니캇은 good-enough mother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마저도 결코 쉬운 게 아니죠.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양육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아서 평소 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 선생님의 역할을 하려고 애쓰지 말 것
: 어렸을 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부모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가 부모가 아닌 선생님의 역할을 하려는 겁니다. 심하면 선생님도 아닌 지식 전달자의 역할에만 치중하기도 합니다. 역할 모델로서 자녀의 거울 역할을 하기는 커녕 기숙사 사감, 독서실 총무, 학원 강사, 운동 코치가 해야할 일만 하는거죠. 새로운 정보를 취합해서 전달하고 성취를 격려하고 때로는 push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내 자녀는 기숙사 생도, 독서실원, 학원생, 운동 선수가 아닙니다. 그 역할은 각자 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부모는 부모의 역할로 돌아와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육체적, 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정서적 교류를 통해 사회 생활을 준비시키는 사람입니다. 부모가 선생님의 역할을 하려하면 부모의 역할을 할 사람이 없게 되고 자녀는 사실 상 부모가 없는 고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부모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 사랑은 선물처럼 줘라
: 자신이 옳다고 믿는 걸 주면서 사랑이라고 강변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희생하는데 뭐가 불만인지 맨날 퉁퉁거리고 말도 안 섞으려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합니다. 자녀에게 물어봤냐고 물으면 애가 뭘 아냐 어른인 내가 더 잘 알지, 물어봤지만 대꾸도 안 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부모 자녀 사이가 단절되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입니다. 자녀를 학대하기 위해 마음대로 행하는 부모는 극소수입니다. 나름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애쓰는 걸텐데 문제는 그 사랑이 자녀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랑은 선물처럼 줘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지 몰래 알아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선물로 적당한 걸 찾아내도 혹시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타이밍이 적절한걸까를 또 한번 고민하죠. 그러기 위해 많은 시간을 내고 관찰하고 또 고민합니다. 사랑도 선물처럼 줘야 합니다. 자녀가 부담없이 받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을요. 내가 주고 싶어하는 선물을 주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내 욕심을 채우면서 자녀에게 고마워하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 잔소리를 하고 싶으면 최소한 칭찬 3번을 하고 해라
: 부부 상담에는 정서 통장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부부가 평소에 사랑을 많이 적립해 놔야 나중에 갈등이 생겼을 때 적립해둔 사랑을 인출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평소에 자녀와 사랑을 많이 쌓아놔야 마음이 상했을 때 쉽게 치유할 수 있는 법입니다. 어른이 되고 나면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 하듯이 자신이 어렸을 때 얼마나 미성숙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고 자녀의 마음에 안 드는 구석만 잘 보이는 법입니다. 자신의 단점이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녀에게 투영되어 그런 것인데 그래서 잔소리를 해서 뜯어고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관계만 악화되죠. "엄마/아빠나 똑바로 하세요"같은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이게 다 평소에 쌓아놓은 적립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제가 흔히 말하는 '당근은 한 개도 안 주면서 채찍만 휘두르는' 부모들이죠. 잔소리를 하고 싶으면 최소한 칭찬 3번을 쌓아놓고 하세요. 칭찬할거리가 통 없다고요? 그걸 찾아내는 것도 부모의 의무입니다. 칭찬을 못 하겠으면 잔소리도 하지 마세요. 최소한 새로운 상처는 안 내겠지요. 잔소리를 하기 위해 억지로 칭찬할거리를 찾아도 됩니다. 그걸 찾는 과정에서 자녀의 예쁜 부분이 새롭게 눈에 들어올테니까요. 그러면 더 이상 잔소리를 하고 싶어지지 않을 겁니다.
제가 부모 교육이나 양육 코칭을 하면서 사용했던 기법 중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정리해 봤습니다. 생각이 나면 또 정리해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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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상담을 하다 보면 자녀에게 엄마 또는 아빠가 필요하다며 이혼을 꺼리는 내담자를 만나게 됩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믿고 계시는 분들도 있고 알고 보면 이혼의 두려움을 감추려고 자녀 핑계를 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그냥 아빠가 아니라 좋은 아빠가 필요하다' 포스팅에서 저는 그런 분들에게 자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냥 아빠, 엄마가 아니라 좋은 아빠, 엄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나쁜 아빠, 엄마는 부모의 존재가 주는 안심보다 자녀에게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치기도 하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이혼을 하게 되면 편부, 편모 가정에서 자라는 게 자녀에게 낙인처럼 안 좋게 작용할까봐 이혼을 꺼리는 내담자도 많습니다. 이 역시도 이혼부, 이혼모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수치심을 감추려고 자녀 핑계를 대는 게 아닌지 먼저 따져봐야겠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혼이 나은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혼보다 부부 갈등이 자녀에게 더 해롭기 때문입니다. 심하게는 부부 갈등의 불똥이 자녀에게 튀어 학대 등 가정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고 그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의 부모가 싸우는 모습이 자녀에게 주는 심리적 고통감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싸우는 모습 자체가 주는 시각적, 청각적 폭력도 만만치 않지만 때로는 미성숙한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요구하거나 자녀를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부모의 갈등 자체가 자녀에게는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부 갈등이 심한 가정의 자녀들이 신체화, 불안, 틱, 주의 집중 곤란, 강박 행동, 중독 행동 뿐 아니라 등교 거부, 품행 문제, 자해 등 자기 파괴적 행동으로 고통감을 호소하는 겁니다.
부모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옥 같은 생활을 연장하는 것보다 차라리 이혼 후 안정감을 주는 편부, 편모 가정에서 사는 게 자녀의 심리적 안정에 더 좋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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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 현장에서 부모-자녀 관계 갈등이 없는 경우를 만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동/청소년이 어떤 문제를 드러내는 경우는 그보다 건강한 방법으로 부모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할 방법이 없거나 아예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단순한 증상 호소이건 파괴적 관심 끌기이건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자녀 관계 문제가 있는 가정의 부모님들 중 다행스럽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항상 이 말씀을 가장 먼저 드립니다.
"시간을 내세요"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니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더군요.
하나는 '채찍질에는 능하나 당근은 줄 줄 모른다'는 겁니다. 본인들부터 억압받으며 성장해서 그런지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억압 기술에는 매우 능하지만 무엇으로 강화를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한데 항상 채찍질만 하다보니 자녀들이 더 이상 뛰는 걸 거부하게 되는 겁니다.
또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당근을 줄 줄 모른다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당근으로 돈 이외에는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겁니다. 박탈이 심한 부모님일수록 돈과 물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웬만큼 누리고 자란 요즘 세대 아이들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는 방법이고 효과가 있다고 해도 단발성입니다. 왜냐하면 돈에는 마음이 없거든요. '마음은 필요없고 차라리 돈이나 내놔'라고 말하는 건 그만큼 마음을 담지 못하는 어른들에 대한 냉소가 깔린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당근으로 사용해야 하냐하면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자원입니다. 물론 부자라면 일정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자는 시간 단위 벌 수 있는 돈이 상대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더 더욱 시간을 내기가 어렵죠.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남는거라고 생각하기 쉽거든요.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녀에게 마음을 전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한정된 자원인 시간을 내는 겁니다. 시간 대신 돈을 주는 건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만 납니다. 모든 걸 돈으로 때우는 부모일수록 자녀에게 혐오와 냉소만 불러일으키죠.
제가 시간을 내라는 조언을 드리면 자녀가 거부한다는 핑계를 대시는데 그건 자녀가 부모가 시간 내는 걸 싫어해서가 아니라 의도를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자녀에게 시간을 내려면 1) 진정성을 담아서, 2) 자녀가 원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3) 자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자녀가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공부에 매진하도록 만들려는 속셈을 갖고, 몇 번 시도해보다 지레 안 된다고 포기하면서, 부모가 원하는 걸 자녀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와 스펙 쌓기로 많은 시간을 요구받아온 우리 아이들이야말로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 자원이자 선물인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부모가 정말 그걸 자신들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믿을 수 없어 시험하는 것이죠. 그러니 자녀를 위해 그 소중한 시간을 사용하시겠다면 우선 신뢰성 시험부터 통과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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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문화마다 부모가 자녀에게 가할 수 있는 심한 벌의 유형이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신체적 체벌과 버리겠다는 협박이 가장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던 궁핍한 시기에 버리겠다는 협박은 그냥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였으니까요.
그 당시에 태어나 그러한 육체적 체벌과 협박을 당하며 자란 지금의 부모님들은 자신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벌을 자신의 자녀에게 답습해 사용해 보지만 사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거의 먹히지 않는 방법입니다. 사람도 동물이니만큼 신체적 체벌과 버리겠다는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과거만큼 효과적이지 않죠.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심한 벌은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입니다. 실제로 굉장히 효과적이어서 아이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를 활용하는 부모님도 많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는 통제의 수단으로든 벌의 방법으로든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스마트폰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더 이상 유희의 수단이 아닌 소통의 수단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건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입을 틀어막는 것과 같습니다. 그냥 아무런 자극이 없는 어둠 속에 던지는 것과 같아요. 스마트폰 압수나 사용 금지 전략을 사용하는 순간 원래의 교육적 의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의사소통 수단을 빼앗겼다는 분노만 남게 됩니다.
카톡 메시지를 제 때 확인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따돌림의 사유가 되는 아이들 문화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건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처럼 예민하고 격렬하게 반응하는거구요. 부모가 이런 문화를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이미 스마트폰은 아이들의 세상에 뿌리내렸고 다시 돌리기 어려울 겁니다.
반대로 아이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도 스마트폰입니다. 아이가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최신의 스마트폰으로 바꿔주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 주면 스마트폰에만 빠져서 공부를 등한시하고 게임이나 SNS에 중독되지 않느냐고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부모-자녀 관계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교두보는 마련할 수 있겠지요. 구형 스마트폰을 그대로 사용하게 하면 게임과 SNS 중독에서 벗어나 부모가 원하는대로 공부에만 열중하게 되나요?
SNS와 게임 중독은 최신 스마트폰 사용의 부작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자녀 관계 갈등과 소통 부재의 결과입니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그저 자녀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빼앗기만 하는 건 다른 대안을 고민해보고 싶지 않은 부모의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이고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어른들과 다른 용도로 자리매김했다는 걸 인정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인정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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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검자가 아동/청소년인 경우 심리평가 해석 상담을 원칙에 맞춰 수검자에게만 실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법적 보호자인 부모도 그 결과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듣고 싶어할테니까요. 아동/청소년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기를 원하면 해석 상담을 미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부모를 설득해야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대개 부모에게도 해석 상담을 하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어려움을 호소하며 상담/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아동/청소년에게만 문제가 있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자녀는 가정의 불행을 드러내는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서 자녀에게 심리적 문제가 생겼다면 이미 부모-자녀 관계나 부부 갈등, 가족 구성원 간 불화, 심하게는 부모가 치료를 요하는 정신 장애에 걸려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를 대상으로 심리평가를 할 때도 최소한 부모를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TCI, MMPI-2) 정도는 실시해야 하고 이 결과는 부모 각자에 대한 치료적 개입 여부 뿐 아니라 해석 상담을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확인하기 위한 귀중한 정보로 활용됩니다.
부모가 약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 장애로 고통받고 있거나 MMPI-2에서 S척도를 70T 이상으로 띄울 만큼 방어적이라면 해석을 위한 접근이 그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문제는 많은 상황에서 이러한 부모 평가가 불가능하다는거지요. 부모가 심리평가를 거부하기도 하고, 비용 문제로 추가 검사를 실시할 수가 없거나 기관에서 부모용 검사를 제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제한이 있거든요.
그래서 부모가 어떤 분들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녀 심리평가 결과의 해석 상담을 해야 할 때 주의해야 하는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 자녀의 문제가 부모 탓인 것처럼 들리게 말하지 말 것
: 실제로 자녀의 문제가 부모에 의해 생긴 게 맞다고 하더라도 그걸 부모에게 직면시키는 건 거의 항상 효과가 없습니다. 아무리 열린 마음을 가진 부모라고 해도 자신을 탓하는 평가자의 해석을 접하면 자동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하게 마련입니다. 그게 인간이니까요. 그러니 문제의 원인보다는 해결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 부정적인 내용만 이야기하지 말 것
: 특히 임상 장면에서 일하는 평가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인데 훈련 과정 자체가 문제를 찾아내는 것에 치우치다보니 보고서를 쓸 때도 수검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기술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죠. 그래서 해석 상담을 할 때만이라도 수검자의 문제 하나 당 강점 하나씩을 함께 이야기해서 해석의 체감 온도를 조절하려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소에 검사 결과를 해석할 때도 어떤 부분이 수검자의 강점인지 부모에게 할 해석 상담을 염두에 두고 찾는 버릇을 들여야 하고요.
* 균형을 맞춘다는 느낌으로 해석할 것
: 예를 하나 들자면, 많은 아동/청소년들이 강압적인 훈육 방법을 고집하는 부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심리평가를 받게 되는데 그런 부모일수록 평가자/상담자에게 원하는 건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빨리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이럴 때 공부만 강요하는 훈육 방법을 고집하면 안 된다고 훈계하듯이 이야기하는 건 소용없습니다. 그게 바로 그 부모가 자녀에게 사용하던 방법이니까요. 그럴 때는 균형을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저는 두 날개의 비유나 포르쉐 엔진을 단 프라이드 자동차 비유 등을 많이 사용하는데 채찍을 많이 사용하는 부모에게 당근으로는 무엇을 사용하는지 묻거나, 규율과 규칙을 중요시하는 부모에게는 정서적 스킨십과 칭찬 등을 얼마나 사용하는지 묻거나 하는 식으로 부모가 잘못 하고 있다는 핀잔 식이 아니라 당연히 아시겠지만(물론 전혀 모르거나 알고도 사용하지 않는 부모가 태반입니다만) 조금 더 신경 써 주시라는 의미로 뜨끔하게 만드는 정도로만 이야기 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리지만 설사 부모가 자녀 고통의 원흉이라고 해도 부모를 가능하면 적으로 돌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내담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도저히 설득이 불가능한 부모를 밀어내고 아동/청소년 내담자에게 집중하기로 결정하는 건 가장 마지막에 꺼낼 카드입니다.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부모를 협조자로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고 신중한 해석 상담이 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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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많지만 우리나라에 한정하여 그 중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만 꼽아보라면 다음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 기승전'공부'이기 때문
상담을 하면서 많은 부모들을 만나는데 자녀의 문제가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 부모가 원하는 건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겁니다. 부모의 나이, 학력, 직업 불문하고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습니다. 겉으로는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학교 적응을 잘 했으면 좋겠다. 좋은 친구를 사귀었으면 한다고 포장하지만 결국은 깔대기처럼 공부로 모아집니다. 공부를 꼴지해도 좋으니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즐겁게 살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 부모의 자녀는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의 문제가 생기지도 않을테니 앞으로도 저를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주제가 무엇이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은 돈, 성공, 경쟁과 같은 주제로 흐르게 되고 결국은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에 이르기 때문에 아이들은 부모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아니라고요? 그럼 학원, 학교, 수업, 숙제, 진도, 진학처럼 공부와 관련있는 단어를 빼고 한번 대화를 시도해보세요. 아마 할 이야기가 거의 없을 겁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부와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 완전 초보들입니다. 정작 본인들부터 공부로부터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본 경험이 많지 않고,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그런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백지 상태니까요.
둘째.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
부모들이 심하게 착각하는 점 중 하나는 자녀보다 자신이 세상을 오래 살았고 경험이 더 많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이야기를 하면 삶의 지혜에서 나온 조언을 자녀들이 귀담아 들을거라고 착각하는 겁니다. 미안하게도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조금만 머리가 굵어져도 어른들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행동만 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 아이들이 "네, 잘 알고 있어요"라고 말한다면 그건 "엄마 아빠나 실천하세요. 말만 그럴싸 하게 늘어놓지 말고요"라는 뜻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빨간 불 신호등일 때 길을 건너지 않는지, 식당 종업원을 정중하게 대하는지 등을 유심히 봅니다. 그리고 따라합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인류의 지혜가 들어있으니 우리 아이가 책을 가까이 했으면 좋겠는데 왜 그리 책을 안 읽으려는지 모르겠어요 하고 한탄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그런 불평을 하는 부모 중에 본인이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말로는 인류의 보고라면서 책을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자신은 책을 멀리하는 부모의 행동을 보고 아이들이 책을 읽을리 만무합니다. 비슷한 예로는 부모는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 아이들보고는 쓸데없는 것에 관심가지지 말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는 강압도 있죠.
아이가 어떤 좋은 습관을 들였으면 하고 기대하려면 그보다 먼저 부모 자신이 그런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부모와 아이는 서로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두 가지 큰 이유를 들었지만 저는 기저에 더 큰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바로
결과중심주의인데 이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지 부모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의 사회, 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결과를 따지고 평가하는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의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중심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입니다. 호기심과 탐구 동기의 상실은 지속성을 앗아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결과중심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과에 타격을 줍니다.
결과중심주의가 우리 교육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건 간단합니다. 비교와 평가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됩니다. "참 잘했네", "지난 번에 비해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좋아졌다", "조금만 더 하면 잘 할 수 있겠다" 등의 말은 모두 결과중심주의에 입각한 말입니다. 최종적으로 잘한 상태라는 것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거든요. 어른들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결과중심주의 용어로는 '가성비'가 있습니다.
반대로 과정중심주의는 과정 중에 무엇을 경험하고 느꼈느냐에 초점을 둡니다. "해 보니 어땠어?", "즐거웠니?", "재미있었니?"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죠. 평소에 자녀와 상호작용할 때 이런 말들을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마 거의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부모가 공감하지만 결과중심주의 시스템 하에서 과정의 의미를 추가로 부여하는 것으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결과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잘한다", "못한다"는 말 자체를 일체 사용하지 않는 겁니다. 쉬울 것 같지만 실제로 해 보시면 "잘한다", "못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자녀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금방 알게 되실 겁니다.
주제에서 좀 벗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녀가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결과중심주의 시스템에서 자란 부모와 대화를 하게 되면 결국 내재적인 동기와 호기심이 말살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정확하게는 불길함을 느껴서)입니다. 심리평가를 할 때마다 문장완성검사에서 "이번 방학 때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좀 더 노는 것".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친구와 노는 것"이라고 쓰는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녀와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은 부모는 1) 잘했다, 못했다와 같은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결과중심주의와 적극적으로 싸우고, 2) 공부를 제외한 다른 주제에 스스로 관심을 갖고, 3) 스스로 이를 체화하고 습관화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 부모는 미안하지만 자녀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이를 충족하는 부모의 수가 너무나 적습니다. 더 암울한 건 상황이 나아질 징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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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사랑은 내리 사랑이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부모가 되어 봐야 아낌없이 주는 부모님의 바다와 같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부모의 사랑은 자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일까요?
저는 그런 사랑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상담일을 하면 할수록 무조건적인 사랑은 허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짙어지거든요.
자녀가 사소한 일로 감정이 폭발해 부모님은 항상 나를 무시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걸 듣고 황당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온 부모님이 계십니다. 당신은 자녀를 무시하는 마음을 품은 적이 한번도 없다고 억울하다고 하시면서요.
그런데 왜 그 자녀는 부모님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건 그동안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왔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부모가 나에게 조건부 사랑을 줬다고 느꼈는데 그 사랑을 받기 위한 기대를 충족할 능력이 본인에게 없으니 답답했던 것이죠.
부모와 자식의 이런 생각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이런 차이를 보이는 가족이 정말 많습니다. 저는 이럴 때 부모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순서대로 합니다.
1. 자녀를 사랑하시나요?
: 놀랍게도 이 질문부터 선뜻 자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부모가 별로 없거든요. 물론 자식을 사랑하는게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2. 사랑한다면 왜 사랑하시나요?
: 안타깝게도 이 질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대답하는 부모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사랑한다고, 부모가 자녀를 무슨 이유가 있어서 사랑하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국 부모가 스스로의 마음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사랑하는 이유가 무언가는 반드시 있더군요.
3. 자녀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도, 내 기대에 반하는 삶을 살아도 사랑할 수 있나요?
: 아직까지 이 질문에 대해 진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부모를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 질문을 들은 모든 부모가 주저하거나 대답을 꺼리고 피하더군요.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 면을 세워주고, 내가 바라는 직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원하는 배우자를 얻고, 내가 봤으면 하는 손주를 안겨 주고, 내가 원하는 효도를 한다면 그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반대라면요? 그래도 사랑할 수 있나요?
세 질문에 모두 "예"라고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조건부 사랑이 아닌지를 의심해 보세요. 즉,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줘야,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사랑하겠다는 메시지를 나도 모르게 주고 있지는 아닌지를요.
조금 과격하게 말한다면 그건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한 겁니다. 게다가 그 투자는 상대방이 원치 않은 것이라는데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앞서의 예로 돌아가 자신을 무시하지 말라고 울부짖는 자녀는 이미 부모의 속마음을 읽고 있던 겁니다. 그냥 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해 달라고 절규하는거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무조건적인 사랑은 없으며 모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마음을 다쳤거나 마음이 약해진 분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마음이 건강한 분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어야만 조건부로 사랑하면서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부모와 그런 부모의 기대가 너무도 부담스러워 그 사랑을 굴레처럼 느끼는 자녀의 관계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방적인 관계지요.
부모가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욕심과 기대를 명징하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기대가 자신도 모르게 대물림되어 자식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때가 되면 비로소 진정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포스팅에서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 국한해서 말씀드렸지만 연인, 배우자, 친구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면 별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아무런 기대 없이 사랑하고 있는지를요, 상대방이 내 기대에 반하는 삶을 살아도 사랑할 수 있는지를요. 만약 그렇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행복한 관계를 맺고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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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대체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 되실텐데 (부모가 보기에) 통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에만 빠져 있는 자식을 답답해 하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해보죠.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식이 게임을 그만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일텐데요.
"그놈의 쓸데없는 게임 좀 집어치고 이제 공부 좀 해라"
"그렇게 공부 안 해서 나중에 뭐가 되려고 그러냐"
"엄마 친구 아들은 지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잘만 한다던"
"공부란 게 다 때가 있는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아빠 말 들어라"
등등의 잔소리를 하기 쉽습니다. 위에서 예를 든 잔소리들은 긍정적 or 부정적 내용, 비교, 협박, 미래 예견 등 서로 다른 내용을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공부'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이죠.
부모의 의도가 자식이 공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니 공부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고 하실 수 있지만 도리어 말하고 싶은 의도가 들어간 그 단어를 입 밖에 내는 순간 그 말이 의도하는 효과는 물 건너 가는 겁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노골적인 의도가 실린 단어는 반복적인 사전 경험에 의해 이미 부정적인 정서를 유발하게끔 조건화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부라는 낱말은 듣기만 해도 짜증, 혐오감,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이 자동으로 유발됩니다. 그러니 '공부'라는 단어를 제외한 나머지 내용이 아무리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해도 차단되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녀가 공부를 하게 만들고 싶을수록 '공부'라는 단어를 빼고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요새 애들 뭐 좋아하냐?"
"쉬는 시간에는 주로 뭐 하니?"
"직장이 아닌 직업이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는데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차근차근 생각해봐라"
"맨날맨날 놀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위의 말만 들으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지 짐작하기 쉽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단어가 빠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 말을 하는 부모의 의도는 결국 공부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거지요. 하지만 이야기를 계속 끌고 나가려면 '공부'라는 단어가 만든 차단벽을 일단 우회해야 합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단어가 부모가 아닌 자녀의 입에서 절로 나올 수 있도록, '공부'가 낳는 두려움, 불안 등의 심리적 불편감을 스스로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만 빼고 말하는 역발상의 전략이 가끔은 더 깊은 수준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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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2015년 4월 10일의
'부모가 자녀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3가지' 포스팅에 기반하여 내담자가 호소하는 문제의 원인을 추론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정리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부모가 자녀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3가지로
1. 버리겠다는 협박
2. 상처받은(실패한) 자녀 탓하기
3. 편애의 노출
을 들었습니다. 이 3가지 부모의 실책은 워낙 중요하기도 하고 또 상담 현장에서는 너무나 흔히 만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상담자는 내담자의 어떤 문제를 봤을 때 이 3가지 원인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할까요?
* 버리겠다는 협박 : Rejection Fear
: 대인 관계 문제를 호소하는 내담자 중에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어릴 때의 경험(실제가 되었든, 가상의 위협이 되었든 간에)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과도한 착취를 감수하는 등 희생으로 인한 고통을 받습니다.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연약한 어린 아이일 때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음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춘 어른이 되어서까지도 계속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된 것이죠.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불평등한 대인 관계 상황을 참고 있는 내담자가 있다면 어렸을 때 primary caretaker로부터 버리겠다는 협박을 받고 이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입은 건 아닌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 상처받은(실패한) 자녀 탓하기 : Basic Trust
: basic trust는 성과나 결과에 의해서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만으로 수용되고 인정받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할 때 형성되는 것이죠. 바꿔 말하면 나름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실패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해 비난을 받게 되면 과정이나 노력이 아닌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고 결과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결과 지상주의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의도야 당연히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라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그런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실패한 결과에 대해 비난받은 자녀는 자신이 존재만으로 사랑받고 수용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그 당사자가 무려 자신을 낳아준 부모이므로 나중에는 그 어떤 사람의 말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됩니다.
* 편애의 노출 : Low Self-esteem
: 자기 혼자 독점하던 사랑을 새로 태어난 동생에게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동생을 돌보도록 강요받는 경험을 하거나 외모, 성적 등 자기가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수행을 보이는 형제자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건 누구에게도 기분 좋은 것은 아니지만 부모가 다른 형제자매를 자신보다더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받는 상처는 결코 작은 게 아닙니다. 특히 부모가 편애를 할 때의 이유란 게 대부분 외모, 기질, 성품처럼 개선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뛰어난 성적처럼 따라하기 매우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사랑을 받지 못한 자녀에게 큰 상실감과 좌절을 맛보게 합니다. 이런 편애가 지속되면 당사자는 자신이 원체 못났으며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자기 비하, 자기 회의적 사고와 무력감에 빠지게 되어 객관적으로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부모가 자녀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3가지 행동과 상담에서 내담자가 흔히 호소하는 문제를 짝지어서 설명했지만 자세히 보면 rejection fear, basic trust, low self-esteem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존감이 낮은 내담자가 외동이라면 부모가 편애의 노출이 아닌 실패한 자녀 탓하기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반복적인 과도한 책망도 낮은 자존감 형성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부모의 잘못된 행동과 내담자가 보이는 문제가 일 대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호소했을 때 이러한 영역들을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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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청소년 상담을 하거나 상담 케이스를 supervision할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세상에는 정말 병든 부모가 많더군요. 대표적인 게 근친 성폭력 문제인데 굳이 그렇게 심한 경우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는 부모가 너무 많아서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을 법도 한데 그럴 때마다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충격적인 사례를 만나곤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부모라면 절대로 자녀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1. 버리겠다는 협박
제가 어렸을 적에도 아이들이 말을 듣게 하려고 다리 밑에 사는 거지들에게 갖다 버리겠다고 하거나 집 밖으로 내쫓겠다면서 어른들이 협박을 하곤 했었죠. 추운 겨울에 신발도 제대로 못 신은 채 쫓겨나 어디 가지도 못한 채 대문 밖에서 덜덜 떨다가 어머니가 몰래 들여보내줘서 구들장 밑에서 언 발을 주무르다 잠이 들었다는 일화도 어디에선가 본 기억이 나고요.
어른들은 어른 말 어려운 줄 깨닫게 하려고 별 생각없이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라면 아이들에게 농담으로라도 절대로 버리겠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독자 생존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경우 부모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건 곧 죽으라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습니다. 이혼을 앞둔 가정에서 자신들이 누구랑 사는지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이유가 엄마, 아빠의 애정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자신을 돌봐줄 지 점검해야만 하는 절박감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고 지켜주겠다는 말만큼 아이들의 마음을 안심시키는 게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주겠다는 말, 다 큰 어른이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 아닙니까?
2. 상처받은(실패한) 자녀 탓하기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차였을 때, 목표했던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때, 어렵게 준비했던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을 때, 마음 잡고 공부했으나 원했던 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았을 때.... 등등 아이들이 상처받는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자녀가 기대했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걸 보는 건 부모에게도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닙니다. 자녀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는 부모일수록 그런 열패감과 좌절감이 더 크겠죠.
그렇다고 해도 상처받은 자녀의 탓을 하는 것 만큼은 부모라면 절대로 피해야 하는 일입니다. "네가 조금만 더 노력했어도~", "네가 미리미리 준비했다면~", "네가 나만큼만 머리가 좋았어도~", "그러게 더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와 같은 말은 자녀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혀 그대로 뼛속까지 얼려 버립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부모와 자녀 사이에 두터운 얼음벽이 가로막히고 자녀는 부모가 자신을 집 밖으로 쫓아내는 것 같은 냉혹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실패와 좌절은 아쉽지만 기회는 또 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그 때 자신의 편을 들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비난했던 부모를 용서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상처의 경험을 딛고 신뢰를 다시 쌓는 것도 역시 쉽지 않고요. 그러니 실패와 상처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자녀의 편이 되어 주세요.
3. 편애의 노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자식이 다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아픈 손가락이 있고, 덜 아픈 손가락도 있는 법입니다. 그냥 마음이 더 가고, 예쁘고,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자식이 있는 반면, 뭘 해도 안심이 되지 않고, 못마땅하며, 눈에 차지 않는 자식도 있게 마련이죠.
여러 자녀가 있을 때 더 사랑스러운 자녀와 덜 사랑스러운 자녀가 저절로 가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문제는 편애하는 자식의 존재 여부가 아닙니다. 그런 편애가 당사자인 자녀들에게 노출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편애를 받는 자녀는 일시적으로 우쭐할 수도 있고,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편애를 받지 못하는 자녀와 관계가 불편해집니다. 또한 편애의 대상이 되지 못한 자녀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부모가 원치 않는 방향의 행동을 함으로써 '파괴적인 관심끌기'에 몰두할 수도 있습니다. 편애의 노출은 편애를 받는 자녀이든, 편애를 받지 못한 자녀이든 간에 모든 자녀에게 해롭습니다. 사실 편애를 감추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어떻게든 티가 나게 마련이죠), 그래도 최선을 다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로 많은 힘이 드는 일입니다. 조심해야 할 것들도 참 많고요.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버리겠다는 협박, 상처받은 자녀 탓하기, 편애의 노출)만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어렵다면 최소한 나쁜 부모라도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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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상담을 하게 된 이후 supervisee 선생님들께 지나가는 말처럼 자주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개인 감정대로만 생각하면 시험을 봐서 일정 수준을 통과한 부모만 아이를 낳도록 허용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내용입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에서 무슨 망발이냐고 나무라실 수 있지만 그만큼 자격도 능력도 안 되는 부모들이 생각없이 낳은 아이들이 지금도 받고 있는 상처와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아이를 증오하고 노골적으로 학대하는 부모가 분명히 있고 그보다 더 흔하게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은밀한 학대 또한 존재하니까요.
아동을 만나는 임상가들은 미묘한 형태의 아동 학대를 탐지하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 학대를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하는 심리검사 결과를 정리해 봤습니다.
* 아빠의 MMPI-2 결과
- K척도의 상승(70T 이상 또는 그에 근접하는)
- DISC 성격병리 척도의 상승
- GM, ES 보충척도의 상승
* 엄마의 MMPI-2 결과
- S척도의 상승(70T에 근접하고 K척도의 상승 보다 높은 수준)
- GF, Re 보충 척도의 상승
* 아동의 문장완성검사 결과
- 부정적 내용이 거의 없으며 특히 부모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기술로 일관
위와 같은 아빠는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방어적이며 가부장적인 성역할에 집착하고 고집이 매우 세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특징을 보입니다. 주변 사람이 볼 때는 진중하고 무게감 있게 보일 수 있지만 자기의 가치관을 가족에게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고 DISC 척도가 상승할 때 분노, 적대감을 측정하는 척도가 동반 상승하지 않아도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발현 가능성에 주의해야 합니다. 배경 정보에 음주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경우는 특히 조심해야 하고요. 대부분의 경우 문제 인식이 없고 치유적인 개입에 거의 반응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는 MMPI-2, SCT와 같은 검사 실시 자체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엄마는 아빠처럼 K척도의 상승으로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드러내지 않지만 S척도의 상승이 더욱 두드러지는데 다른 사람에게 바람직하게 보이려는 경향 때문에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밖으로 노출하지 않으려고 감추는데 급급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의 도움 호소를 무마하거나 축소하여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남편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역할만 감당하기 쉽고 원가족의 어머니에게 밀착되어 있고 어머니도 자신과 비슷한 경우 이런 성역할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녀 학대와 관련해서는 방관자의 위치를 담당하기 때문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있도록 자아 강도를 강화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 됩니다.
학대를 당하는 아동의 경우 부모의 단점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지능이 우수한 아이일수록 이런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경향이 일반화되면 아예 부정적인 내용의 이야기 자체를 못하게 되거나 부정적인 감정 표현을 전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신체적인 학대를 주로 당하는 아동은 가해 부모에 대한 두려움을 강하게 드러내고 무섭다는 표현을 하거나 악몽을 꾸는 등의 증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언어적인 공격이나 정서적 방임, 지나친 기대 투사 등의 미묘한 학대를 가하는 부모의 경우에는 그것이 사랑에 기인하는 것으로 포장하거나 스스로도 자녀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아동을 이중 구속의 덫에 빠뜨립니다. 즉 '내 부모가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를 사랑해서이고 부모가 원하는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나서이다'라는 식으로 자기 귀인하게 만듭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자란 아이는 자존감이 낮을 수 밖에 없고 어른이 되고 난 이후 성공 경험을 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처받은 학대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위에 나열한 심리검사 결과는 아주 전형적인 profile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여러가지 형태의 변이가 존재할 수 있으며 위의 검사 결과를 모두 충족했다고 해도 그것이 곧 부모의 아동 학대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덧. 아동을 학대하는 부모를 다룬 훌륭한 참고 서적으로는 수잔 포워드가 쓴
'독이 되는 부모(2002)'가 있죠.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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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것 중 하나는 머리가 굵어진 자녀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춘기가 되어 변성기가 되고 여드름이 돋아 나기 시작하면 슬슬 짜증이 늘고 어른들에 대한 반항이 심해지면서 고민이 시작되곤 했는데 요새는 그 연령대가 점점 내려가고 있고 스마트폰 등 IT기기로 인해 대화 단절의 시기가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생만 되면 이미 자녀의 대답 패턴이 "네", "아니오", "몰라요", "싫어요"와 같이 단답형에 그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부모들이 많죠.
어렸을 때야 부모의 권위를 앞세워 이래라 저래라 해도 찍소리 않고 고분고분하게 복종했던 자녀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대답도 시큰둥하고 눈도 안 맞춘 채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부모를 귀찮아 하면 괘씸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지요.
그래도 자녀를 사랑하는 많은 부모들이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대화의 물꼬를 터 보고자 애를 쓰지만 방법을 잘 몰라 답답해들 합니다.
몇 가지 중요한 원칙과 Tip이 있는데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내 자녀는 나와 독립적인 인격 개체이며 나에게 종속된 것이 아니라는 인식입니다. 알게 모르게 내 자녀는 내가 낳았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걸 사랑으로 포장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너는 내 아들/딸이니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대화를 시도하는 한 절대로 자녀들의 말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철저히 존중하는 마음을 바탕에 깔고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탤런트 최수종씨가 집에서 아이들과 상호존대를 결코 그냥 하는 게 아닙니다. 그 정도까지는 못해도 자녀를 대할 때 밖에서 다른 어른을 대할 때 처럼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대화를 시도할 때는 '강요'가 아닌 '부탁'하듯이 말을 건네야 합니다. 대화를 시도했다가 자녀에게 거절을 당했을 때 기분이 상한다면 자녀라면 당연히 부모의 대화 시도에 응해야 한다는 기대를 깔고 있는 것이고 그건 자녀에게 대화를 강요한 겁니다. 자녀들은 그런 강요를 아주 예민하게 눈치채거든요.
거절당해도 기분이 상하지 않을 때만이 부탁하듯이 대화를 시도한 것이죠.
이렇게 전향적인 자세로 말을 걸었는데도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자녀들에게는 어떡할까요? 잠깐 그 전에 이것부터 생각해보죠. 혹시 이미 거절당할 것을 각오하고 계셨나요?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냉소를 짓지는 않으셨나요? 지금까지 자신에게 관심도 없어 보이던 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다정하게 말을 건다고 '아~ 우리 부모가 개과천선을 해서 드디어 나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구나'하고 생각하는 자녀는 없습니다. "왜 이러시지? 뭐 잘못 드셨나? 내가 뭐 잘못했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이죠. 그래서 역시나 방어적인 반응이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중요한 Tip 한 가지.
자녀가 기대했던 것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녀에게 긍정적으로 반응해 주세요. "오늘 별로 이야기 할 기분이 아닌가 보네. 아빠가 귀찮게 해서 미안해. 나중에 한가할 때 다시 이야기하자. 언제라도 아빠와 이야기하고 싶으면 와"라는 식으로요. 대화는 물처럼 흐르는 겁니다. 잠시 끊어진 것처럼 보이더라도 계속 흐를 거라는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되죠.
자녀와 대화할 때는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쁩니다. 다른 부모는 다 실패하더라도 나는 내 아이들과 꼭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거라는 희망을 잃지 마세요.
결국 끈질지게 시도하는 자가 이기는 것이 자녀와의 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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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평가 불안으로 인한 부적응이 의심되어 심리평가를 받으러 온 아동의 부모를 면담할 때 자신들은 절대로 공부하라고 push하지 않는다며 강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학원도 굳이 보내려고 하지 않으며 특별히 사교육도 강요하지 않는다면서요.
이들의 MMPI-2 결과도 신뢰로운 걸 보면 실제로 겉으로는 별다른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약 이들이 겉으로는 공부는 억지로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네가 필요할 때 말하면 그 때 학원도 보내주겠다, 공부에 취미가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말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공부를 못하면 결국은 실패자가 된다든가, 자신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사랑할 수 없다든가 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자신들의 학업 기대를 감추면서 공부와 상관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길을 허용하지 않는 부모라면 이런 부모가 자녀의 정신건강에는 훨씬 더 해롭습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이런
double message는 자녀에게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차단시켜 더 절망으로 몰아넣습니다. '부모님은 말로는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지만 속으로는 공부가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그러니 공부로 인정받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는 부모님께 사랑받을 수가 없다'는 식으로 말이죠.
둘째. single message만 주는 부모는 차라리 simple합니다. 부모를 포기하거나 미워하거나 받아들이는 식으로 선택하는데 갈등이 덜하니까요(쉽기만 하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double message를 주는 부모는 자녀를 양가 갈등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이런 고마운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해. 부모님이 공부를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니 공부를 잘 못하는 건 오로지 내 잘못이야'라고 본인을 괴롭히게 됩니다.
그러니 아동의 심리평가 결과에서 심한 불안이 드러나고 있는데 부모가 공부 강요를 하지 않는다고 보고할 때 이런 discrepancy를 위에서 말씀드린 틀로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겉으로는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기대하는 표리부동한 부모인지 말이죠. 제 경험으로는 학력 수준(학벌)이 높을수록 이런 부모가 확률적으로 훨씬 더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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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YES24
토니 험프리스의 책은 월덴 3에서도 이미 두 차례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 꽤 오래전에 출판되었지만 2009년에야 국내에 소개된
'부부의 사생활(1997)'과 얼마 전에는 긍정심리적 접근을 다룬
'투덜이의 심리학(1996)'을 소개했었지요. 두 권 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인데 이제서야 국내에 소개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토니 험프리스라는 임상가가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토니 험프리스는 주로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가인데 그 중에서도 부모-자녀 관계, 부모의 양육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토니 험프리스가 가장 자신있는 핵심 분야를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5년 간의 임상 노하우를 정리해 놓은 책이라서 2004년에야 출판이 되었습니다. 84개의 질문(출판사에서는 83개라고 하는데 제가 일일이 세어 보았더니 84개더군요)을 다음의 6개 주제군에 따라 나누어 놓았습니다.
1장. 육아에 임하는 마음가짐2장. 부모의 역할3장. 육아의 기술4장. 아이들의 문제행동5장. 부모들의 문제행동6장. 아이의 교육과 미래
각 장의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문제있는 자녀의 행동을 다루는 세부 기술보다는 오히려 부모의 역할과 가치관 등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건 이 책에서 부모는 자신이 도달한 단계 만큼만 자녀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반복되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니 험프리스는 참 글을 쉽게 씁니다. 게다가 이 책은 번역도 잘 되어 있어서 일반인이 읽기에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자녀의 특정 문제 행동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특효 기술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임상가들에게도 별반 특별할 것이 없는 내용들이라서 이 책은 임상가들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모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책이라서 어린 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에게는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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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들어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강요를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가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고 있습니다. 정신과나 상담센터에서 소아/아동/청소년 심리평가를 담당하는 선생님들은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절감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자라면서 누리지 못한 것을 누리게 하고 싶다, 내 자식에게 물질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물려주고 싶다, 내가 후회했던 삶을 반복하지 않도록 안전한 길로 이끌고 싶다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부모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정작 자신의 자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포장되었을 뿐 내용물은 강요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원치 않는 선물을 안기고 나서 고마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자식은 분재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랑스럽더라도, 그 모습이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더라도 분재가 된 아이는 피눈물을 흘리며 부모를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면서도 증오하기 때문에 깊은 죄책감과 절망의 늪에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자녀의 행복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신의 행복을 투사하여 자녀를 통해 대리 만족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녀는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크는 것입니다. 부모가 할 일은 스스로 성장하는 자녀를 지켜보면서 도움을 요청받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움은 어디까지나 자녀가 원하는 수준에 그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의 주옥같은 시를 한 편 올려드립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칼릴 지브란이 이미 다 했더군요. 이전에 포스팅한
'각자 행복해야 둘이 되어도 행복합니다'에서도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인용했습니다만 정말 생각의 깊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닌 것을.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는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속에서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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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원칙을 말씀드린다면 아이가 너무 어려서 도박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알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분위기 변화에 훨씬 더 민감합니다. 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집안의 공기가 냉랭해지다가 부모가 도박중독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하루씩 정기적으로 집을 비우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데 부모가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 주지 않는 경우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어른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감추거나 대충 둘러대는 것으로는 절대 그 불안이 감소되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명을 할 때에는 도박중독에 걸린 당사자가 자녀를 대상으로 도박중독과 치료에 대해 설명을 하게 되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공개하는 치료적 효과와 함께 책임감이 생기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 때, 너무 부정적인 어투로 심각하게 설명하는 것보다 아이에게 익숙한 인터넷 중독이나 PC 게임 등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도 아빠(엄마)와 약속한 것처럼 게임을 1시간만 하고 싶어도 게임이 너무 재미있다 보면 1시간만 하기가 어렵지? 아빠(엄마)도 그게 잘 안되는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고 있거든. 너도 자제를 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으면 아빠(엄마)처럼 빨리 도움을 청해야 한다"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이전부터 도박에 대해 상세하게 가르치는 시간이 정규 교과 과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도박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도박에 대한 적절한 개념을 정립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쉽게 인터넷 도박을 통해 정규 도박으로 빠질 위험성이 큽니다. 따라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도박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또한 아이를 치료받는 기관으로 함께 데리고 가 밝은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게 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담하는 날을 가족 이벤트로 활용하자' 포스팅에서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상담하는 날을 가족 이벤트로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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