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인적으로 상담, 임상심리전문가 수련 제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왜곡된 supervisor-supervisee 도제 제도의 정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지도 교수의 권위에 굴종하고 비합리적인 처사에 굴복하는 걸 습성화했던 패턴이 전문가 수련제도에도 그대로 답습되어 supervisor는 어디까지나 supervisee가 향후 적절히 기능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support하는 사람에 불과한데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심한 경우 수련 과정에서 탈락시킬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학회가 방임해왔죠.
결국 그 결과로 전문가 자격을 취득한 뒤 현장에서 일을 시작한 임상가들의 자존감이 처음부터 바닥인데다 몇 년이 지나도 도무지 자신감이 올라갈 생각을 안 합니다. 저는 이게 다 무조건 혼내기만 하고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학문적으로 토론하고 임상적으로 숙의하기는 커녕 무조건 깔아뭉개기만 하는 못된 supervisor들과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수련 제도의 시스템 문제라고 봅니다.
이야기가 곁길로 많이 빠졌습니다만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상담자들이 상담을 하게 되면 상담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내담자가 좋아지는 것 같고, 상담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오고, 명절이 되면 간단한 선물이라도 챙겨오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상담에 자꾸 빠지고, 연락이 잘 되지 않고, 그러다가 임의 종결이라도 하게 되면 자신의 무능을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우울에 빠집니다.
내담자의 회복과 치유, 성장을 바라는 마음은 좋습니다. 하지만 상담은 내담자와 상담자가 모두 함께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일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에요. 밝게 웃으면서 꼬박꼬박 상담 시간에 참석하는 내담자의 모습이 자기의 진정한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으려는 방어 기제의 발동일 수도 있고 말없이 상담에 불참한 내담자가 사실은 상담의 효과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나 상담자에게 종결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부끄러워 차마 연락을 못하는 속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내담자가 진정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회복하고 성장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스스로 알게 되겠지요.
그럴 때까지
상담자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는 내담자의 회복이 곧 나의 실력이라는 식의 단선적인 결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고 내담자를 통해 배운다는 겸허함입니다.
그러니 상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담자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상담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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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가 아닌 일반 상담센터나 대학교의 학생생활상담소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는 내담자 중에는 인생이 즐겁지 않고 뭐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으며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내가 못난 사람 같아서 대인 관계에 주눅이 들고 사회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호소를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낮은 자존감 문제는 어찌보면 현대인의 감기(우울증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문제이고 이 문제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 중 어렸을 때부터 칭찬에 인색하고 처벌 위주의 훈육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부모에게 양육된데다 운이 없게도 머리도 그리 좋지 않아서 공부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담이나 심리치료 과정에서 작은 성공 경험을 하도록 manage하기도 합니다.
저도 상담을 하면서 혹은 상담 supervision을 하면서 상담 과정에서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조언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성공 경험이 부족해서 자존감이 낮아졌다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 도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자존감이 낮아지는 이유는 나 아닌 다른 사람(부모, 교사, 손윗사람 등)의 인정과 수용에 목을 매기 때문이거든요.
다른 사람이 원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그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내집단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생각의 틀을 깨지 않는 이상 성공 경험을 아무리 쌓아나간다고 해도 그 노력의 끝은 더 높아진 타인의 기대에 의해 가로막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상담자는 성공 경험 자체가 아예 없는 내담자의 경우에는 성공의 즐거움을 경험하도록 일시적으로 도울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타인의 기준과 평가에 맞춰 살아가야한다는 인식의 틀을 부수고 내담자가 자신만의 수용과 인정 기준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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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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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님의 블로그 walden3에서 자존감을 높이는 근본적인 방법이라는 글을읽고나도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미르님은 상담할 때 내담자가 잘 하고 있는 것을 칭찬..
"나는 매사에 자신이 없는데 제발 자신감 좀 생겼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중에 누가 봐도 자신감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만큼 진정으로 '부족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더군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부족한 부분만 곰씹으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감은 생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요.
손으로 물을 길어 올리는 수동 펌프를 작동하기 위해서 한 바가지의 물은 꼭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펌프로 물을 길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바가지의 물을 펌프 안에 넣고 잠시 동안만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나중에는 적은 수고로도 시원한 물을 펑펑 길어올릴 수 있습니다.
자신감도 수동 펌프로 물을 긷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내가 그렇지 뭐',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돼'라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면서 맥 놓고 앉아있지 말고 의도적으로라도 '나는 잘났다', '이 분야에서는 내가 최고지',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의식적으로 자꾸 생각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소위 '뻥카'를 날리는 겁니다.
너무 큰 허풍을 치고 나면 무조건 도망가서 숨고 싶을 수도 있지만 '뻥카'의 강도만 잘 조절하면 일단 입 밖으로 뱉은 말 때문에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런 노력 가운데에서 작은 성공 하나를 맛보게 되면 그게 펌프 안에 부어진 한 바가지의 물처럼 작용해서 자신감의 싹이 움트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이렇게 자신감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동적으로 자신감이 생성되게 됩니다.
제가 2004년도에 심리평가 supervision을 시작할 때 바로 그랬습니다. 병원 수련 당시 case formulation을 무지 못했던 저는 '나는 심리평가가 적성에 맞지 않는가보다'라고 생각했고 전문가가 된 이후에도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명색이 임상심리 전문가인데 심리평가는 해야 했고 기왕 하는 거 내가 모르는 것, 새롭게 알게 된 것, 심리평가를 하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을 나중에 다시 들쳐보기 위해 정리해 블로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는 제가 심리평가를 잘 하는 줄 알고 supervision을 청하는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생겼습니다.
그 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저는 "걱정마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쳤고 이후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 때의 만용(?)때문에 이제는 받는 수고비 만큼의 도움은 줄 수 있는 supervisor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평가 supervision만큼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일단 한 바가지의 물을 펌프 안으로 부으세요. 실패해도 잃는 것은 한 바가지의 물 뿐입니다.
자신감은 생기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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