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PI-2/A를 선별검사로 실시했는데 Normal Profile(정확하게는 Normal Profile처럼 보이는 결과)이 나오면 평가자는 당황하게 됩니다. MMPI-2/A 결과가 정상이라면 정신과적 진단이 필요한 병리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니 좋은 소식이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그런 수검자가 심리평가를 받으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고 무엇보다 검사 의뢰 사유나 주 호소와 맞지 않죠. 오히려 일반적인 수검자보다 더 다양한 주관적 고통감을 호소하기 쉬워 더더욱 평가자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이 때 평가자가 확인해야 할 해석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성격 장애 가능성
: 자아 동질적(ego-syntonic)인 성격 장애의 경우는 MMPI-2/A에서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아 동질적이라는 의미가 성격 장애 역동이 완전히 자아와 합일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반사회성 성격 장애(TCI 기준 HLL-HLL 유형)라면 MMPI-2/A에서 아무런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양상입니다. 따라서 MMPI-2/A만 실시했거나 SCT와 결합하여 선별심리평가를 진행했다면 TCI/JTCI의 추가 실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2. 중독 문제 가능성
: 특히 도박, 주식, 게임, 관계 중독 등 행위 중독인 경우는 MMPI-2/A에서 아무런 의미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알코올, 마약, 불법 약물 등의 물질 중독이라면 대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신체적인 금단 증상이 있지만 행위 중독은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데 예를 들어 도박에 중독된 상태라면 도박에 빠져 있는 동안은 심리적 고통감을 느끼지 못하는 마비 상태일 수 있어서 중독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다시 MMPI-2/A를 실시하면 그때서야 우울, 불안 등 증상 척도들이 상승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MMPI-2의 APS 보충 척도가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한다면 행위 중독 때문에 정상처럼 보이는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합니다.
3. 성격 장애 + 행위 중독 둘 다
: 가장 좋지 않은 조합인데 최근 이런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더 문제입니다. 특히 애착 외상 관련하여 관계 중독에 빠진 성격 장애 내담자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관계 중독의 양상은 연인에 대한 집착과 스토킹 같은 두드러진 문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는 부모와 융합되어 있는 양상이 더 많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성격 장애의 양상도 수동-공격성을 비롯한 B군 계열에서 의존성이나 회피성과 같은 C군 계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조합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평가자라면 MMPI-2/A가 정상 수준으로 나왔다고 해서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런 수검자가 왔을리가 없다고 의심하고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가끔 상담 수련 기관에서 접수 면접 시 실시한 MMPI-2/A 검사가 정상 수준으로 나오면 별 문제 없다고 판단하여 수련을 받는 상담자에게 배정하고 임상, 내용 척도가 상승하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가정하여 지도 교수급 상담자에게 배정하는데 정반대로 해야 합니다. 성격 장애 profile을 들고 제게 supervision을 받으러 오는 supervisee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5113
상담이나 심리치료에서 내담자가 어떤 문제를 호소할 때 그것이 단순한 증상인지 아니면 성격적인 문제에 기반한 것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933년에 Reich가 신경증을 '증상 신경증(symptom neuroses)'과 '성격 신경증(character neuroses)'으로 구분한 이후 상담자들은 순수한 신경증을 갖고 있는 사람과 신경증적 패턴이 성격에 스며들어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죠.
실제로 이러한 구분은 DSM체계에도 녹아들어 있어 주요 장애와 성격 장애로 구분을 하고 있죠.
이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5가지 질문이 도움이 됩니다.
1. 내담자의 문제는 그 촉발 요인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담자가 기억하기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것인가?2. 내담자의 문제는 극적으로 증가한 것인가, 아니면 점차적으로 악화되고 있는가?3. 내담자가 스스로 찾아왔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방문했는가?4. 내담자의 문제는 자아 이질적(ego dystonic, 내담자 스스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고 비합리적이라고 보는가 )인가, 아니면 자아 동질적(ego syntonic, 내담자가 자신의 문제를 현재의 생활 환경에 대한 유일하고도 당연한 반응으로 보는가)인가?5. 자신의 문제에 대한 조망 능력(분석적 용어로는 '관찰 자아')이 있어서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담자와 치료적 동맹을 맺을 수 있는가, 아니면 상담자를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외부인 혹은 마술적으로 자신을 구원해 줄 구원자로 보는가?
위에 열거한 질문 중 전자는 증상 문제를, 후자는 성격 문제를 가정할 수 있는 단서가 됩니다.
출처 : Nunberg, H. (1955).
Principles of psycho-analysis. New York: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중
재인용 : '정신분석적 진단 : 성격 구조의 이해(1994)'의 일부 내용 발췌 및 요약
이 글의 트랙백 주소 :: http://walden3.kr/trackback/2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