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운이 좋게도 회기 제한이 없는 기관에서 상담을 했기 때문에 상담이 너무 loose하지 않도록 게을러지는 제 마음만 잘 다독이면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부분 상담 기관에는 회기 제한이 있습니다. 짧게는 4~6회에 불과하며 회기 연장이 가능하다고 해도 20회를 넘기는 게 쉽지 않습니다.
supervision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상담자 선생님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하나같이 모두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거였습니다. 알고 보면 실력이 절대로 부족한 게 아닌데 심리평가 뿐 아니라 formulation, 구조화, 개입 전략에 이르기까지 통 자신이 없습니다. 물론 이는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평가 위주로 진행되는 도제식 수련 과정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모두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이 부족하더군요.
저는 상담의 성공 경험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을 때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느끼는 '아하 경험',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내담자의 눈빛과 표정, 상담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치료 효과를 반영하는 내담자의 행동 변화 등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회기가 필요하거든요.
단기 상담에서도 이런 성공적인 변화가 가능한 거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당연히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단기 상담만으로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그야말로 mild한 수준의 문제를 갖고 오는 내담자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은 거의 대부분 장기 상담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최소한 1년, 길게는 10년까지 상담을 해야 하는 내담자가 대부분이거든요. 이걸 제가 어떻게 아냐 하면 재발을 밥먹듯이 하는 다양한 수준의 중독 내담자들을 최소 1년에서 길게는 8년까지 상담 해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니 강의나 supervision을 할 때마다 결국 현장 상담자의 최종 목표는 장기 상담을 할 수 있는 개업 상담자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단기 상담을 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담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제목처럼 상담을 마라톤이 아닌 계주처럼 인식하는 겁니다. 저는 이걸 농부의 역할에 비유하기도 하는데요. 지금 우리나라의 상담 현장은 한 명의 농부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고, 수확까지 할 수 가 없습니다. 역할을 나눠서 누구는 밭을 열심히 갈아 다른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 발아율을 높일 수 있는 옥토를 만들어야 하고, 누구는 잡초를 열심히 뽑아서 얼굴을 내민 새싹이 자라는 데 방해받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누구는 최적의 타이밍에 가장 좋은 비료를 뿌려 바람직한 생육 환경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맡겨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다음 상담자에게 바통 터치를 잘 하는 것이 능력있는 상담자입니다. 그러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단계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날카로운 분석 능력이 필수겠지요.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 대부분의 상담자는 항상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초보 내담자를 만나게 되기 때문에 항상 밭을 가는 역할만 하게 됩니다. 그러니 단기 상담 현장에서만 일을 하게 되면 밭은 기가 막히게 갈겠지만 적절한 씨앗을 선택해 뿌려본 적도, 비료를 줘 본 적도, 잡초를 뽑은 적도 없게 되고 특히 수확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자괴감을 버텨낼 수 있어야 번아웃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기 상담 현장에서 오래 일하는 걸 추천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전문가 자격을 취득하고 난 이후에는 3년 이내에 개업을 하든, 장기 상담이 가능한 기관으로 이직하든 액션을 취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진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 현장 상담자에게는 마라톤 완주 경험과 온전한 농부 역할이 요구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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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현장의 여건 상 장기 상담 대신 20회기 미만의 단기 상담이 주력 접근 방법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라서 심리평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몇 번 되지도 않는 상담 회기를 심리평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낭비할 수가 없으니까요.
심리평가를 실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건 당위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꽤나 모호하기도 합니다.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굳이 심리평가를 실시해야 하냐는 질문에 똑부러지게 답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내담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심리평가를 실시한다는 임상가들 중 상당수는 대체 내담자의 문제가 뭔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심리평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보다 더 심하게는 내담자에 대한 감조차 잡을 수가 없어서 일종의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심리평가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일단 심리평가를 실시하고 결과물을 손에 쥐고 있으면 조금은 안심되기도 하고 의미있게 나온 결과에 따라 어떻게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거니까요.
가설을 설정하려고 심리평가에 의존하는 게 몸에 익으면 내담자에 대한 고민이 멈추게 됩니다. 내담자를 궁금해 하지도 않게 되고 내담자를 분석해야 할 기계처럼 생각하게 되어 나중에는 공감도 잘 안 됩니다.
그러니 심리검사 도구부터 들이미는 버릇을 들이면 안 됩니다. 자신이 속한 기관의 시스템이 그렇게 되어 있으면 끊임없이 건의하고 문제 제기를 해서 바꿔야 합니다.
내담자의 호소 문제를 경청하고, 충분히 공감하고, 깊이 고민하고, 가설을 설정한 뒤에야 그 가설을 설정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심리검사 도구를 선정해서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실시해야 합니다. 가설을 검증한 뒤에는 그 결과에 따라 상담 목표와 방향을 수정하고 이를 내담자와 공유하고 상의해야 합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심리평가는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증하기 위해 실시하는 겁니다.
그러니 심리평가의 도움 없이 가설을 세울 수 있도록 실력을 배양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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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7일 미니 강의 80회에서 사용했던 PPT입니다.
'단기 상담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4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단기 상담이란
* 모든 상담의 공통 치료 요인 4가지
* 단기 상담에 대한 흔한 오해
* 단기 상담과 장기 상담의 비교
* 단기 상담의 장점
* 단기 상담의 기간
* 단기 상담의 기간 설정
* 상담자가 단기 상담을 꺼리는 이유
* 자발적 회복(Spontaneous Recovery)
* 상담자의 자세
* 상담자의 역할
* 직접적인 제안은 상담에 해로운가
* 상담자의 주요 활동과 단기 상담
* 단기 상담의 목표
* 단기 상담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 단기 상담에서 심리평가의 활용
* 심리검사의 구분
* 단기 상담의 라포 형성
* 단기 상담의 최초 면접
* 단기 상담의 상담 기록
* 단기 상담의 초기 변화
* 단기 상담의 중기 변화
* 단기 상담의 조기 종결 문제
* 단기 상담의 과제 사용
* 단기 상담의 종결 신호
* 단기 상담에서 종결은 어떻게 하는가
* 단기 상담의 효과
* 단기 상담의 효과 평가
* 단기 상담의 추수 상담
* 변화 단계 파악
* 효과적인 단기 상담을 위한 핵심 요약
* 향후 단기 상담의 추세 전망
딱딱한 원론적인 내용은 최대한 배제하고 현장에서 직접 단기 상담을 해야 하는 임상가들에게 필요한 실전 지식으로만 구성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얼마든지 내려받아 사용하시면 됩니다. 출처만 명기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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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이상 상담한 케이스를 장기 상담으로 분류하여 통계를 냅니다. 사실 도박 중독 상담은 상담 횟수가 얼마나 되느냐보다는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다만 도박 중독자가 워낙 병에 대한 인식이 없고 치료받고자 하는 동기도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정신 장애 분야는 말 할 것도 없고 중독 분야에서도 워낙 조기 탈락율이 높습니다.
그래서 5회 정도는 상담이 이루어져야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 어느 정도의 치료적 동맹 관계가 형성되고 경험적으로 볼 때,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편의 상 그렇게 분류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이번 국정 감사에서 모 국회의원이 5회 이상을 장기 상담으로 보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라며 트집을 잡으면서 전문가들(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뻔한 바닥에서 그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저는 정말 궁금합니다)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형식적인 운영을 질타하는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논리가 지난 달인가 사감위에서 모 언론에 사행산업체에서 운영하는 센터(제가 근무하는 기관을 콕 집어서)가 유명무실하고 형식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인터뷰를 할 때 근거로 내세웠던 것과 똑같다는 것이죠.
뭐 이 질의를 한 국회의원이 그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그런데 웃기는 건 이런 분류 기준에 따른 통계 자료를 요구한 시초가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었다는 것(국정감사 이전에는 이런 분류를 한 적이 없습니다)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참 민망하고 우습지만 제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5회 상담한 것은 상담 축에도 못 듭니다. 2~30회 상담한 내담자가 수두룩한데다 제가 어제도 상담한 내담자는 50회(그것도 지금은 종결을 위한 준비 기간이라 한 달에 1번 만나는 것이라서 50회이지 실제 햇수로는 3년 째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에 육박하니 5회 상담을 장기 상담이라고 우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도 현재 제가 상담하고 있는 내담자 중에서 10회가 넘지 않은 내담자는 한 명도 없는 것 같거든요.
저는 오히려 궁금한 것이 국가기관인 사감위 중독예방치유센터는 대체 얼마나 장기 상담을 잘 하고 있기에 다른 기관을 그렇게 폄하하느냐는 것이죠. 과연 저희처럼 모든 내담자의 개인 chart 관리를 하고 있을까요? 5회는 장기 상담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쉬운 5회를 넘기는 내담자 비율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집단으로 돌리는 프로그램 말고 개인 상담으로 말이죠. 저는 그게 참 궁금하거든요.
원래 다른 사람 옷에 묻은 겨는 보여도 지 몸에 묻은 똥은 보이지 않는 법이죠.
그래도 악취는 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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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supervision을 하다보면 많은 선생님들이 어떤 구체적인 방법으로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답답해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는 비교적 상담 경험이 많고 능숙한 선생님들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근무하는 기관이나 시설에서 정해준 회기만을 진행해야 하는 경우 단기간에 어떤 치료 효과나 성과를 내기 위해 조바심을 내다 보니 더 더욱 구체적인 기술과 기법에만 치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단기 상담에서 오히려 장기 상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라포(Rapport) 형성입니다. 왜냐하면 장기 상담의 경우에는 내담자와 라포가 공고히 형성되지 않은 것을 모르고 진행하다가도 발생한 문제를 바로잡고 관계를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상담자에게 그래도 기회가 있지만 단기 상담에는 그런 기회를 허용하는 시간 자체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포만 제대로 형성되면 주어진 회기가 얼마 되지 않은 단기 상담이라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제 경험 상, 단기 상담이든, 장기 상담이든 라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기의 상담 목적을 달성하고 종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technique을 연습하기보다는 내담자와 라포를 형성하는데 힘을 쏟기 바랍니다.
굳이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상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습니다.
라포는 상담의 시작이자 끝이며 사실 상 상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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