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우 도박 중독자들이 전문적인 치료 기관이나 GA와 같은 자조 모임을 찾아 도움을 구하게 되는 것은 대체로 재정적인 문제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시점입니다.
그만큼 돈 문제는 도박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도박자가 계속 도박을 하게 되면 재정적인 문제가 가족들의 미래를 위협하게 되니 가족들은 절망에 빠질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도박자도 이 빚만 갚으면, 그동안 잃어버린 돈만 찾으면 언제든 도박을 그만둘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희망도 없는 도박에 계속 매달리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박 중독 때문에 생기는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돈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돈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사이의 관계 문제입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신뢰가 무너지는 문제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도박 때문에 생긴 재정적인 문제는 도박 중독자가 정신을 차리고 도박을 그만두면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거나 회복될 수 있습니다. 도박자에 따라서는 도박하기 이전의 경제적 풍요를 금방 되찾기도 합니다. 많은 도박자가 성실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도박에 쏟아붓고 있던 에너지와 열정을 경제적인 부분으로 돌리면 사정이 빠르게 나아집니다.
하지만 사람이 곁을 떠나고 고립되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한번 신뢰가 무너지면 다시 회복되기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도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던 배우자도 신뢰가 무너지면 그 신뢰를 회복하느라 굉장히 힘들고 먼 길을 가야하니까요.
게다가 이 신뢰는 돈이 많다고 금방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말과 행동의 일치, 그것을 꾸준히 일관되게 지키는 것이 수반되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도박 중독의 가장 큰 피해는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떠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곁에 남아 있을 때 도박 문제를 공개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을 돌려놓는 것은 황금으로 가득찬 수레를 끄는 황소들로도 어려운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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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심리학회는 한국 심리학회 산하 분과학회 중 가장 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전문가 집단입니다.
그동안 양적으로는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사회적인 인지도도 높아져서 학교와 병원에만 국한되던 일터가 국 공립 기관, 군과 경찰, 다양한 민간 기관과 기업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많이 확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은 전혀 뒷받침되지 않아 임상 심리학 전공의 인기에 힘입어 매년 쏟아져 나오는 석사들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련 기관의 수가 태부족입니다. 최근에 들어서야 신규 수련 기관의 수를 늘리느라 애쓰지만 그 효과는 극히 미미하여 여전히 유급 수련을 받을 수 있는 레지던트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에 별따기입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수련 레지던트들은 무급 수련의 늪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거기에 임상 심리학회는 어떠한 공식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신세입니다. 그저 그나마 있던 수련 자리도 없어질까봐 전전긍긍하면서 현장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레지던트에게만 모든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2년 전에 수련 레지던트의 처우가 문제가 되어 수련생 협의회가 결성되었을 때에도 수련 레지던트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당당히 목소리를 낸 senior supervisor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임상 심리학회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저 병원의 supervisor만 되면, 학교로 돌아가 임상 심리학 교수 자리만 꿰차면 수련 레지던트가 무급으로 수련을 받든, 그나마 수련받는 기관의 supervisor가 무능하여 자기 돈으로 유료 supervision을 받든 알 바 아니라는 것이죠.
험한 이야기를 하느라고 길어졌습니다만 오늘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임상 심리학회가 환골탈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실속 없는) 대접 받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경정신의학회가 학회를 열면 당연히 제약회사들이 지원을 합니다. 의사들이 약물을 처방하니까요. 임상 심리학자들은 겉으로는 그들의 유착 관계를 비난하면서 속으로는 부러워해왔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렇게 돈 걱정 안 하면서 학회를 하나' 하면서요.
임상 심리학회는 돈이 없습니다. 풍족했던 적이 없죠. 이사가 되면 일을 하는 댓가로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회원보다 회비를 더 내야 합니다. 명예직이니 어쩌니 하는 입바른 소리들으면서 말이죠. 그렇게 희생을 강요당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도 학회재정을 위해 기금을 끌어오고 후원금을 받을 생각을 안 합니다. 제대로 된 댓가를 받지 못하니 명예욕이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회장과 이사를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억지 춘향 격으로 일을 하게 되니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고 그냥 시간이나 때우면서 다음 회장단으로 넘기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발전이 없습니다. 누가 회장이고 누가 운영진인지는 아는 사람만 알고 일반회원은 알지도 못하고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누가 해도 똑같으니까요. 회비 완납율이 낮다고 항상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회비 완납 안 하면 전문가 자격 안 주고, 논문 안 실어주는 식의 징벌적인 보완책 밖에 못 내놓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민간 기업에서 후원을 할 수 있다고 하면 알량한 체면 따지면서 그냥 돈만 주면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조건이 까다롭냐면서 배부른 소리를 합니다. 기업이 학교 같은 줄 아나요? 윈-윈 하지 않으면 한푼도 안 내놓는 곳이 기업입니다. 그리고 후원에 있어서만큼은 기업이 '갑'이고 학회가 철저히 '을'입니다.
학회 재정만 제대로 확충하면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좋은 강사 모시고 더 좋은 교육을 받아서 회원들의 전문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데 지금 이런저런 거 재게 생겼나요? 후원금을 주는 기업이나 기관에 임상 심리학회 회장이 찾아가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그렇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요?
이제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거짓말하지 말고, 학자는 돈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되지도 않는 소리 씨부리지 말고 당당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 돈으로 회원을 위해 써 달라고 지극히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회원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고 회원을 위해 자존심을 잠시 접을 수 있는 그런 회장이 나와야 합니다.
전문성은 대접해달라고 떼를 쓴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전문성을 키우면 자연스레 대접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놈의 전문성은 당당함과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배가 부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배가 고프지 않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 생계가 위태로운데 전문가가 되면, 박사가 되면 뭐한답니까?
지금 임상 심리학회는 굶주리고 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난 후 나는 학회의 재정을 위해 얼마의 후원금을 모아들였노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회장과 이사진을 저는 보고 싶습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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