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장애(Adjustment Disorder)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DSM에서도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하는 장애입니다. 게다가 PTSD가 워낙 드라마틱하면서도 뚜렷한 증상을 드러내기 때문에 두 진단을 변별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Acute PTSD가 아닌 Delayed PTSD의 경우는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잠복되어 있는 기간 동안 PTSD가 우울 장애를 비롯한 다양한 장애로 이환할 수 있는데다 Acute PTSD처럼 재경험이나 flashback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적응 장애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가족 폭력, 성 폭력, 만성 장애 환자군처럼 onset 당시에 적절히 manage하지 못하고 방치되어 Delayed PTSD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심리평가 시 2차 가설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질문을 해 보는 것이 두 장애를 구분하는데 어느 정도(완벽하지는 않고 rough한 수준이지만) 도움이 됩니다.
하나는
'객관적 스트레서'와 '주관적 트라우마'의 차이입니다. 적응 장애는 진단 기준에서조차 확인 가능한 스트레스 요인이 존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Delayed PTSD의 경우에는 환자가 이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때로는 강하게 억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스트레스 요인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은 윤색되거나 과장된 주관적 트라우마 에피소드를 주로 보고하기 때문에 적응 장애의 주관적 불편감 호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음은
'역기능적 부적응 상태'의 유무입니다. 증상만 갖고 Adjustment Disorder와 Delayed PTSD를 구분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재경험이나 flashback 등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적응 장애에서도 자주 보고되는 우울감, 불안감, 초조, 짜증 등을 Delayted PTSD환자도 똑같이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역기능적 부적응 상태'의 유무라는 기준으로 살펴보는 것이 좀 더 낫습니다. 적응 장애의 경우 Delayed PTSD에 비해 부적응 상태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학생이라면 성적이 떨어지거나 등교를 거부하고 전업 주부라면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직장인이라면 일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식으로 말이죠.
Adjustment Disorder와 Delayed PTSD의 구분이 어려운 분들은 위의 두 가지 질문을 한번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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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적응을 못하는 문제로 심리평가를 받으려는 아동들의 수가 원래 많기도 하지만 점점 더 늘고 있다는 걸 체감하는 요즈음입니다.
거의 모든 부모들이 앞다투어 보고하는, '공부를 열심히는 하는데 도무지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걸 보니 ADHD 아닌가',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다' 등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실제로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동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제가 이런 아동을 심리평가할 때 가설을 세우는 3단계 방법을 소개합니다.
* 1단계 : MR이나 BIF 혹은 BA가 아닌가
: 지적 제한으로 인해 학교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을 하거나 선생님으로부터 negative feedback을 반복적으로 받게 되어 학교에 안 가려고 하거나 또래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적 능력 부족으로 아동이 경험하는 주관적인 불편감과 문제가 대부분 설명될 수 있다면 굳이 추가적인 진단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당 수의 아동이 지적 제한으로 인해 학교 부적응을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 2단계 : 공존 장애로 Adjustment Disorder 진단 고려
: 지적 제한이 없거나 혹여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아동의 문제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때, 추가적인 진단이 필요할 정도로 고통감이 크다면 그런 고통감을 야기하는 요인이 확인 가능한 스트레스 요인(identifiable stressor)인지 점검하고 만약 그렇다면 Adjustment Disorder 공존 진단을 고려하는 겁니다. 이 때 어린 아동의 경우 with anxiety, with depressed mood와 같은 specifier를 습관적으로 붙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어린 아동일수록 정서가 제대로 분화되지 못한 경우가 많아 부적 정서가 우울인지, 불안인지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쉽지도 않고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치료적으로는 의미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 3단계 : 문제와 관련된 추가적인 요인 고려
: 추가적인 진단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원인 확인이 어렵다면 Anxiety Disorder나 Depressive Disorder, Reactive Attachment Disorder, ADHD 등의 중복 진단을 고려해보고 진단 기준을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거나 그 심각도가 공존 장애를 진단내려야 할 수준이 아니라면 PCRP나 PRP 등을 통해 설명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많은 평가자들이 3단계의 진단부터 먼저 고민하다가 정작 핵심적인 부적응을 설명할 수 있는 지적 능력 부족 문제를 놓치는 경우가 많고 구체적인 원인 확인이 가능한 경우에 내릴 수 있는 진단인 적응 장애 또한 간과하는 경우도 많아 안타까운 마음에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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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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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 Quinnett은 제가 2009년 3월에 혹평했던
'인간은 왜 낚시를 하는가?(Pavlov's Trout, 1998)'라는 책을 쓴 임상심리학자입니다. 못말리는 낚시광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분은 자살 관련 분야의 최고수 중 한 명입니다.
보통 자살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연예인 자살이나 생활고에 시달려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떠올리곤 하는데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임상가들에게는 훨씬 더 자주 접하는 문제입니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 아니더라도 자살로 귀결되거나 자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은 매우 많거든요. 속된 말로 임상 현장에 있으면서 환자나 내담자를 자살로 잃어 본 경험이 없는 임상가는 초보이거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환자나 내담자를 잃을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정신적 타격은 임상가를 burn-out시킬 수 있습니다. 저만 해도 2009년에 도박 중독이었던 내담자, 2010년에 우울 증세가 동반된 적응 장애 피검자를 각각 자살로 잃었습니다. 1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는데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해 썼던 글이 바로
'임상심리학자들이 피검자/내담자를 자살로 잃는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도박 중독 분야에서는 다행히 자살 시도를 하는 빈도가 적은 편이지만 자살 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도박자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흔한 문제이고 도박 중독자들은 충동성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언제든 불행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도 전문가 자격을 갖추고 현장에 투입되는 임상가 중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제 나름대로 대비를 하는 차원에서 고른 책인데 결과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30년 이상 현장에서 자살 환자를 치료한 전문가의 노하우가 그대로 녹아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이런 책은 실제 현장에서 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로 쓸 수 없습니다. 저도 이런 책을 꼭 한 번 쓰고 싶군요. ㅠ.ㅠ
이 책에 담긴 몇 가지 중요한 내용들은 정리해서 포스팅도 할 생각이지만 현장에서 자살 위험성이 있는 환자/내담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임상가라면 꼭 한번은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입니다.
강력 추천합니다.
덧. 이 책은 저도 소장하면서 가끔 참고해야 하기 때문에 새 책으로 북 크로싱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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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화를 이해하는 접근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증상'으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즉, Somatization Disorder나 Hypochondriasis와 같은 신체화 관련 장애의 진단을 염두에 두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이 때 신체 증상은 피검자가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이며 면담에서도 특정한 신체 증상이 부각됩니다. 이 경우 심리평가에서도 문장 완성 검사, MMPI, 로샤 검사 등에서 신체화 반응과 관련된 sign이 일관되게 관찰됩니다.
다른 하나는
대처 기제로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즉, 우울 장애나 적응 장애처럼 주된 문제는 따로 있지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여러 가지 다양한 loading을 회피하기 위해 신체화를 사용하는 것(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입니다. 이 경우 신체화 증상이 주가 되는 신체화 장애와 달리 다양한 정서적 불편감이 주관적으로 보고 또는 객관적으로 관찰되며 신체화 증상은 부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평가에서도 MMPI에서는 SOD, HEA 등의 척도 상승이 관찰되지만 아주 높은 수준은 아니며 문장 완성 검사에서는 오히려 대인 관계 갈등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 기술 등 신체 증상과 관련이 없는 문제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로샤 검사에서도 신체화 반응이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평가 보고서 작성을 위한 formulation에서 헷갈리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셔서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본 것이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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